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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마도 1권 (4화)
뜬금없이 모습을 드러낸 괴한이 아무런 말도 없이 훈련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사풍단 단주의 표정이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비록 오랜 시간 무저갱에 갇혀 있던 구양운이었지만, 무인의 감각까지 모두 죽은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쏘아지는 날카로운 시선을 느낀 구양운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사풍단 단주가 천천히 단상에서 내려왔다.
구양운의 지척까지 다가온 그가 은은한 살기를 담아 입을 열었다.
“여기는 사풍단의 연무장이라 외인은 출입을 불허하는 곳이오. 신분을 밝히시오.”
그의 입에서 나온 정중한 말과 다르게 말투엔 잔뜩 가시가 돋아 있었다.
“…….”
“…….”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주변이 들썩거릴 정도로 수련을 하던 사풍단의 대원들은 모두 검을 멈추고 그 광경을 구경했다.
원래 가장 재밌는 것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 않는가.
구양운은 심각해지는 분위기 속에서도 느긋하게 미리 생각해 둔 대로 답했다.
“이번에 마교로 입교한 섭군영입니다. 사풍단으로 배정받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구겨질 수 없다고 여겼던 그의 인상이 더 와락 구겨졌다.
외인이라고 생각했거늘 사풍단의 새로운 무인이란다.
그것을 아는 순간 단주는 방금 전과는 극명하게 달라진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풍단의 새로 온다던 섭군영이 너냐? 새로 입단하는 놈이 이렇게 늦게 온다는 것이 말이냐 될 성싶더냐!”
구양운이 능청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막 귀주에서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단주님께 인사를 하려 했는데 새벽부터 다들 연무장에 있다고 전해 들어 이곳으로 왔습니다.”
“네놈이 강호에서 어떻게 굴러먹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위명 높은 사풍단의 단원이다. 그것도 제일 말단 단원 말이다!”
사내는 수련을 멈춘 단원들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안 그래도 큰 목소리를 더 높여 소리쳤다.
“사풍단은 묘시(卯時:오전 5∼7시)부터 수련을 시작한다. 어떤 이유든 그것을 막론하고 지각한 자는 어떻게 처벌하는가!”
마치 사자후를 내지른 것처럼 연무장 곳곳으로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에 단원들은 하나같이 입 모아 외쳤다.
“하루 종일 마보(馬步)자세를 취합니다!”
함성과 같은 소리와 함께 사풍단 단원의 야유와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다.
단주는 다시 구양운을 보며 말을 이었다.
“들었나? 너의 자리는 저곳이다.”
그가 가리킨 자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수련장의 끝부분에 위치한 구석이었다.
“나는 사풍단의 단주 유호광(劉豪洸)이라고 한다. 내일 수련은 늦지 마라.”
단주는 그 말을 마치고 다시 단상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는 단원들을 보며 소리쳤다.
“누가 연무 시간에 쉬라고 했나? 다시 수련을 개시한다!”
단원들은 그가 무서운 건지 순식간에 방금 전과 같이 칼을 휘두르며 수련에 임했다.
채채챙!
다시 수련장에는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기합 소리가 울러 퍼졌다.
‘이것이 단주가 사풍단을 다스리는 방법인가?’
구양운은 묵묵히 아까 유호광이 지적한 자리로 걸어갔다.
무공 수련의 기본이 바로 마보 자세였다.
몸의 중심을 잡는 마보는 검을 휘두를 때 몸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막아 준다.
하체가 안정되면 검에 붙는 속도나 힘이 완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무공을 익힌 자라면 누구나 아는 자세였다.
구양운 또한 어릴 적부터 무공을 수련해 왔으니 마보 자세를 아는 것은 당연했다.
마보를 처음 취했을 때의 모습을 상기하며 마보 자세를 취했다.
‘큭, 그래도 하루 종일이라니.’
쓴 입맛을 다시며 구양운은 그렇게 한참을 버텼다.
보통은 마보 자세를 취하다 심하게 고통스러워지면 잠시 자세를 풀었다가 다시 갖추는 게 옳았지만, 구양운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었다.
그렇게 구양운의 이마 위로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갔다.
‘나의 기우인가?’
사풍단의 단주 유호광은 알게 모르게 구양운을 주시하고 있었다.
‘언제 수련장에 들어섰는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는 단호한 눈빛으로 수련장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내린 결론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풍단을 이끌고 있는 유호광은 마교에서도 어느 정도 알아주는 고수였다. 또한 새로 들어오는 사풍단 단원의 신상 정보는 유호광 또한 미리 통보 받는다.
유호광이 아는 한 이번에 들어온 수하는 자신의 감각을 속일 정도의 무위를 지니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예민해져서라고 치부하고 다시 수련을 감독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두 시진쯤 흘렀을 때였다.
짝짝짝!
단상에서 단주가 손바닥을 치자 모두의 시선이 그리 주목됐다.
“밥 먹고들 와! 한 식경 후에 다시 모인다!”
단주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던 건지 사풍단의 단원들은 제각기 밥을 먹기 위해 부산히 움직였다.
무인이라고 해도 먹어야 사는 것이다.
이런 훈련이 계속된다면 한식경이라는 시간은 참으로 빡빡한 것이었다.
구양운 역시 마보 자세를 풀었다.
땀이 한차례 식어 가는 느낌이었다.
‘후우.’
기분은 묘하게 상쾌했다.
원래 기본이란 게 참 중요한 것이다. 단단한 반석 위에 쌓아야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은 구양운에겐 좋은 훈련이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이 시간을 대충 흘려보낼 마음이 없었다.
“거기, 신입!”
구양운도 사람들을 따라 막 밥을 먹으러 움직이려 할 때 사풍단의 단원으로 보이는 자가 그를 불렀다.
다른 사람을 부르는 건가 하는 마음에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그는 정확하게 구양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말인가?”
구양운이 어처구니없는 듯 웃음을 흘렸다.
“오늘 들어온 신입이 너밖엔 더 있어?”
참으로 평범한 인상의 사내였다. 적당한 키에 적당한 생김새, 사람이 많은 곳에서 지나쳤다면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인물이었다.
“난 너보다 한 달 먼저 사풍단으로 온 전문통(錢文通)이다.”
거드름 피우는 듯한 전문통의 말투에 구양운의 눈빛이 변했다. 온몸에 솜털이 삐쭉 설 정도로 그의 눈빛은 날카로워졌다.
그러자 순식간에 살얼음판처럼 공기가 변했다.
방금 전 단주와 능청스럽게 대화를 나눌 때와는 차원이 틀렸다.
“초면에 반말이라, 내가 우습나?”
구양운의 낮은 목소리가 으르렁거리는 듯하자 전문통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게 아니라 나, 나는 너보다 한 달이나 먼저 들어왔는데?”
전문통이라 자신을 소개한 사내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간이 작은 것인지 말을 금세 더듬어댔다.
“그래서?”
구양운은 거두절미하고 자신을 부른 이유를 듣고 싶었다.
전문통은 순간 땀을 삐질 흘렸다.
자신은 사풍단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구양운 역시 자신을 윗사람으로 받들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서라니!
좀 더 강하게 몰아붙이고 싶었지만 이 분위기는 당장이라도 칼부림이 날 것만 같았다.
‘이런 것을 원한 건 아닌데……’
지금 전문통에게 필요한 건 한 달간의 외톨이를 벗어나 말벗을 구하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 목표는 자신의 부하를 만든다이었지만.
“그, 그래서라니,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거지.”
전문통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푸근해 보였다.
‘큭큭.’
구양운은 속으로 크게 웃었다. 그만큼 눈앞의 전문통이라는 사내의 표정 변화는 재밌었다.
구양운 역시 사풍단의 정보를 알려줄 사람이 필요했던 차였지만, 이미 암영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그는 초반에 기선제압을 당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너무나 잘 알았다.
단 내에서도 서열이란 것은 분명히 존재하니 말이다.
물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는 것을 싫어하는 구양운이었지만, 그가 딱 원했던 인물이 등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가? 나는 섭군영이다.”
그 한마디였다.
전문통은 구양운의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에서 빛을 발했다.
그 뒤로부터 전문통의 입은 쉬지 않았다.
구양운은 간혹 대꾸를 하며, 꾸준한 손놀림으로 입에 밥을 넣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훈련의 강도가 세진 것도 우리 사풍단이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나 봐. 이공자님의 추천으로 어디를 간다는데 그곳이 어딘지는 잘 모르겠고.”
“임무?”
구양운의 관심 어린 말투에 전문통은 더 신이 났는지 침을 튀기면서 말했다.
“그래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단주가 저렇게 열을 내면서 훈련을 하는 거지. 너도 알다시피 사풍단이 대내외적으로 유명한 무력 단체는 아니잖아.”
구양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활동했던 시절 사풍단이라는 단체는 없었다.
분명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 마교 내의 신생 단체일 것이다.
그것이 외부 사람들이 들어와도 마교 내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란 자들과는 당연히 차별되는 것이었다.
그런 외부 인원을 받는 단체라면 그 단체의 무력이나 핵심도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단체란 말 그대로 수족같이 같이 움직이는 자들인데 같이 한 시간이 짧기 때문에 합격술에 취약하고 무공이 제각각이기 때문이었다.
‘이공자의 추천이라……’
구양운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공자가 아무 생각 없이 구양운을 사풍단으로 잠입시켰을 리가 없었다.
분명 이번에 맡은 임무와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구양운에게 시간이 얼마 없다는 말과 일치했다.
구양운은 이공자를 믿지 않았다.
이공자가 무저갱에 있는 구양운에게 자유를 줄 순 있었지만, 과거 마교가 자신에게 그러했듯이 구유수라마검을 가지고 돌아온다고 하여도 자유를 줄 거라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이 살 길을 만들어 놔야 했다.
그리고 그 준비할 시간이 지금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전문통의 입은 쉬지 않고 놀렸고, 구양운은 가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그렇게 구양운과 전문통은 식기를 치우고 다시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한 식경이란 시간은 다른 짓을 할 만큼 넉넉하지 못했다.
벌써 연무장에는 수풍단의 단원들로 가득했다.
구양운은 자신의 자리로 갔고, 전문통은 구양운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하곤 합격술을 익히는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자리했다.
시간이 되자 사풍단의 단주 유호광이 다시 단상에 자리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 사풍단이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는 것은 이미 소문을 통해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단주 유호광의 말에 사풍단은 조용해졌다.
모두 별다른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다들 소식을 알고 있는 듯하였다.
“이번 임무는 원래 우리 사풍단이 맡을 것이 아니었는데, 이공자님의 추천으로 우리가 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임무를 완벽하게 성공시킬 것이다.”
말을 하는 유호광의 눈은 이글거렸다.
투지(鬪志)!
그것이 유호광이 몸에서 타올랐다.
“우리가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이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실수를 용납할 수 없는 중요한 임무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일을 성공시킴으로써 앞으로 더 많은 임무를 받고 우리 사풍단이 강한 무력 단체로 인정받게 할 것이다.”
“…….”
모두 조용했다.
그만큼 유호광의 말을 경청하고 있고, 동의한다는 표현일 것이다.
“정확한 임무 내용은 출발하는 날 통보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갖은 바 무공을 갈고 닦을 것이다.”
쿵쿵쿵!
지축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먼지가 뽀얗게 올라오며 일정한 소리가 북 치듯이 들려왔다.
모든 사풍단원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오른발로 바닥을 내리 차고 있었다.
사풍단의 공동 합격술을 펼치기 전에 내는 소리였다.
단체전에서 상대방을 기선 제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누구도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단주와 뜻을 함께 하겠다는 그들만의 표현이었다.
단주가 빙긋 웃으며 크게 소리쳤다.
“자, 이제 다시 수련을 시작한다!”
단주가 그렇게 외친 후 모두 쉬지 않고 훈련을 했다.
합격술을 익히는 놈부터 시작해서 대련하는 놈들까지 각양각색이었지만, 모두 마교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모인 것이다.
그들에게 하루라는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어둠이 찾아온지도 한참이 지났다.
구양운은 여전히 마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전문통의 말을 빌리자면 사풍단이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 단주는 오늘 처음으로 그것을 공식석상에서 말함으로써 사기를 최대한으로 올려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