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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마도 1권 (5화)


이제 임무를 이행할 시간이 그만큼 다가왔다는 것이다.
아직 마교의 정세도, 더 나아가 중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또 두 개의 세력 중 누가 우위를 차지하는 지 구양운은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전문통을 향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고, 믿을 수 있는 말은 사풍단에 관련된 내용뿐이었다.
그가 개방도 아니고 정보각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데 다른 무림의 정세를 묻는다 해도 그 역시 주워들은 것이었다.
개중에는 분명 위조된 소문도 있을 것인데 어찌 그 신빙성을 믿겠는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정보였다.
구양운은 지금 현재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사풍단에 잠입해 있지만, 분명 자신을 지켜보는 눈동자는 주위를 맴돌고 있을 것이다.
그게 마교이고, 그게 임무인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 중 하나가 바로 과거 구양운이었다.
아무리 은신술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구양운의 감각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한 명…….’
아주 뛰어난 은신술이라 사풍단의 단주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이목까지 완벽하게 속일 수 있는 자였다.
구양운 역시 지금 그가 어디서 자신을 지켜보는지 그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감각이 분명히 경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양운은 그 감각을 믿었다.
‘하아 하아.’
구양운은 오랜 마보 자세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손과 발이 부들부들 떨려 와도 그는 자세를 쉬이 풀지 않았다.
원래 마보 자세라는 버티기가 가장 중요했다.
오래 버틸수록 도움이 되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나의 살 길을 열어 줄 것이다.’
비명을 지르는 몸과 다르게 구양운의 눈동자는 고요했다.
근력(筋力).
지금의 최선은 죽어 있는 근육들을 깨우는 것이다.
“좀 더 팔꿈치를 들고 찔러라.”
단주 유호광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늦게 훈련하는 단원들을 다독이기 위해서인지 단주는 연무장을 빙 돌면서 단원들의 무공 하나하나를 지적하며 가르침을 주고 또는 다독여 주었다.
쉬익.
그 단순한 동작에 검이 허공을 가르며 순식간에 앞으로 뻗어 나갔다.
단주가 직접 동작을 시범해 보였다.
기본적인 동작이지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기도 했다. 단주라는 직위가 허명이 아니듯 그의 검을 날카로웠다.
“이렇게 찌르면 훨씬 나을 것이다.”
“예!”
그의 동작을 본 단원은 크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 유호광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다른 사람에게로 또 다가섰다.
그렇게 유호광이 구양운의 앞까지 다가왔다.
“섭군영.”
구양운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단주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단주는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독문 무기가 비도라 들었다. 사풍단은 곧 임무 수행을 위해 마교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너는 사풍단의 합격술을 익힐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단주 유호광은 구양운에게 얇은 책자를 꺼내어 건네었다.
구양운은 그 책자를 받아 들으며 물었다.
“이것이 뭡니까?”
“사풍단의 합격술은 진법을 토대로 사용한다. 거기에 적힌 것이 사풍단의 진법이다.”
단주가 구양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진법이 난해할 수 있겠으나 눈에 익히면서 진법 안에서 넌 너의 독문 무기를 사용하면 될 것이다.”
이 책자는 단주가 구양운에게 주는 배려였다.
구양운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책자를 바라봤다. 책자 앞면에는 철기오행진(鐵騎五行陣)이라고 적혀 있었다.
단주 유호광은 구양운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른 사람에게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걷던 단주가 무언가 생각난 듯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보 자세는 이제 풀어도 좋다. 채우지 못한 시간은 나중에 돌아와서 하도록 하지.”
구양운은 책자를 향해 있던 시선을 들어 단주를 쳐다보았으나, 단주는 이미 몸을 돌려 걸어가고 있었다.
단주의 뒷모습을 보면서 구양운은 피식 웃었다.
하루 종일 고생했으니 이제 그만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는 나중에 돌아와서 하자니.
고약하지만 사람 다루는 방법을 아는 단주였다.
좋은 단주.
암영대의 대주 역시 그랬다.
구양운 입가에 걸린 작은 미소가 씁쓸하게 번졌다.
그는 그 자리에 털썩 앉고 철기오행진의 첫 장을 펼쳤다.
이미 암영대에서 진법에 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던 구양운은 어렵지 않게 파악해 갔다.
철기오행진의 기본은 삼재진(三才陣)에 있었다.
진법 중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천(天), 지(地), 인(人)을 뜻하는 삼재진의 단점을 보완하고, 다수 전에서 더 편리하도록 오행을 접목시켜 만든 것이 철기오행진이었다.
삼재진이 세 명이서 공격을 하는 진이라면 철기오행진은 다섯 명이 한 조를 이루어 공격을 했다.
모든 것은 무턱대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순서대로 치밀하게 상대를 옥죄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반복되는 공격으로 상대가 어지러움을 느끼거나 당황하는 순간 제압당하는 것이다.
철기오행진에 공격의 가장 주체는 한 사람이며, 가장 무공이 뛰어난 자가 맡아야 했다.
구양운의 눈에 철기오행진은 난해하지 않고 오히려 간단했다.
하지만 삼재진의 단점을 보완하고 세 명에서 다섯 명으로 진을 이루는 사람을 늘림으로서 모든 면에서 훨씬 용이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렇게 철기오행진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이 자식이!”
구양운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의 거친 목소리였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속에서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일 만도 하지만 구양운은 책자를 향하는 시선에 미동이 없었다.
“아…… 미, 미안.”
전문통의 기어 들어가는 자그만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구양운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쳐다보았다.
무의식적으로 주의를 둘러보았지만, 사풍단의 단주 유호광과 교관들은 보이지 않았다.
단원들을 둘러본 뒤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차앙!
감정이 격해졌는지 전문통에게 소리 지른 사내는 검을 뽑아 들었다.
“덤벼라 멍청아. 너 때문에 임무 수행하다가 죽느니 지금 여기서 널 죽이겠어!”
사내는 빈 말을 내뱉은 게 아닌 것 같았다.
그의 몸에선 살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주변에는 몇몇 구경하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전문통이라는 자가 사풍단 내에 어떤 존재인지 단편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거, 검을 거둬. 앞으론 진식을 틀리지 않을게.”
전문통은 잔뜩 겁을 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기소침한 전문통의 말에 사내는 더 의기양양해져선 외쳤다.
“합격진을 매번 틀리는 네놈 때문에 우리 단은 전멸할 거다, 겁쟁이!”
전문통은 억울하다는 듯 사내를 쳐다봤지만 그는 여전히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검을 뽑지 않으면 먼저 간다. 날 원망하지 마라.”
그의 말과 함께 날카로운 검이 전문통을 향해 순식간에 쏘아졌다.
“너 같은 놈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아!”
전문통은 검집에 꽂혀 있는 채로 검을 높이 들어 사내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막았다.
“죽엇!”
차아앙.
사내가 강하게 살수를 펼치는 것을 전문통은 어렵게 피해 나갔다. 그게 심기를 더 뒤틀었는지 사내는 점점 더 강하게 몰아쳤다.
구양운의 눈에 전문통은 충분히 기본공을 잘 닦아 놓은, 결코 약하지 않은 사내였다.
두 사람이 생사대결을 펼친다고 해도 전문통이 크게 뒤떨어질 실력이 아니라고 느꼈지만.
그의 약한 심성이 문제였다.
초반부터 겁을 집어먹고 싸움에 임했기 때문에 끝까지 보지 않아도 결과는 사내의 승리였다.
기선 제압, 그것은 싸움에서 큰 역할을 차지했다.
구양운이 묵묵히 싸움을 지켜보는 가운데,
사내가 전문통을 향해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그의 검이 쏜살같이 전문통의 목젖을 향해 날아들었다.
전문통이 다급하게 막으려고 검을 뻗어 보았지만 그 예리한 검로를 바꾸지 못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문통은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질 거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피우우웅.
그 찰나의 순간.
구양운의 손에서 유엽비도(柳葉飛刀)가 빛의 속도로 뻗어져 나갔다.
타앙!
무엇도 막지 못할 것만 같았던 사내의 검이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내는 손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누구냐?!”
처음에 무관심하던 단원들도 싸움이 커져 갈수록 점점 훈련을 멈추고 싸움을 관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전문통의 숨을 끊을 것만 같던 검을 막았으니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은 유엽비도가 날아온 곳을 향했다.
모두의 시선이 닿은 곳에 그가 서 있었다.
새하얀 피부가 유약해 보이기도 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풍기고 있는 사내.
구양운이었다.
칠흑 같은 구양운의 눈동자가 고고하게 빛났다.
그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하니 사내는 순간 움찔했다.
지금 사풍단에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다가오는 중대한 임무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싸움이 벌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전문통과 싸운 사내 역시 날카로운 상태이기에 지금 구양운에게 느끼는 압박감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냈다.
“건방진 놈, 너냐? 내 검을 막은 것이?”
그 사내가 소리치자 일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전문통 역시 놀란 눈으로 구양운을 쳐다보았다.
사내는 재빠르게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검을 주워들었다.
“오냐, 너부터 없애 주마.”
사내가 구양운에게 검을 겨누며 기수식을 취하자, 구양운의 미간에 주름이 하나 깊게 잡혔다.
“진정 죽고 싶나? 검을 치워라.”
낮은 구양운의 목소리는 명백히 경고를 하고 있었다.
사내는 구양운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쥔 채로 구양운에게 달려들었다.
구양운의 손에는 어느새 비수(匕首)가 쥐어져 있었다.
단도의 일종인 비수는 칼집받이가 없는 날카로운 무기였다.
구양운의 몸에선 살기가 피어올랐다.
단순한 살기가 아니라 전쟁터만 돌아다니는 귀신들이나 풍길 법한 지독한 살기였다.
이 연무장에 있는 모두 숨이 막힌다고 느꼈다.
단 한 번도 자신에게 검을 겨눈 자를 용서한 적이 없는 구양운이었다.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구양운의 독문 무기는 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수를 든 그 모습에서조차 빈틈이 없었다.
“하아앗!”
사내는 처음부터 강한 공격으로 밀어붙였다.
검과 단도.
그 길이의 차이는 엄청났다.
무인들의 싸움에 한 발의 차이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수는 근접전보다 암기로 장거리에서 주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사내의 검이 섬광처럼 번쩍이며 구양운의 눈앞을 지나쳤다.
모두 숨을 죽일 정도로 위험한 한 수였음에도 구양운의 표정엔 일말의 변화조차 없었다.
구양운은 비수를 여타의 다른 검처럼 바르게 들지 않았다. 비수의 칼날을 팔꿈치로 향하게 꺾어 들고선 몸을 회전시켰다.
부우웅.
구양운의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했다.
타아앙!
구양운의 비수가 사내의 검과 허공에서 마찰했다.
단도보다 당연히 강한 힘을 낼 수밖에 없는 검임에도 구양운은 손쉽게 그의 공격을 제압했다.
사내는 몸을 살짝 비틀거렸지만, 그 정도로 주저앉거나 쓰러지진 않았다.
“이 개자식이!”
사내의 눈이 분노로 붉게 충혈됐다.
구양운은 그의 공격을 가볍게 막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겨우 이 정도인가?”
구양운의 조롱 어린 말에 사내의 분노는 크게 폭발했다.
“으아아아!”
사내는 연무장이 떠나갈 것만 같은 기합 소리를 내지르며 다시 구양운에게 달려들었다.
구양운의 급소를 노리고 파고드는 검을 보며, 그는 미동 없이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전문통이 다급하게 외쳤다.
“위……위, 위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