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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마도 1권 (6화)


무인의 검은 빠르다.
전문통이 크게 외친다고 해서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다시 두 눈을 질끈 감으려고 했다.
하지만 전문통의 감기는 실눈 사이로 그는 똑똑히 보았다.
구양운은 다가오는 검 앞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내의 검이 구양운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리꽂힐 때, 기적은 거기서부터 일어났다.
멈춰선 구양운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바람에 휘날리는 것만 같이 움직이던 것이 어느 샌가 여러 개의 비수가 사내를 향해 쏘아지는 듯한 환영이 보였다.
그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의 검이 구양운에게 채 닿기도 전에 구양운의 단도가 순식간에 그의 목덜미를 갈랐다.
최대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다.
그 말이 비로소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
“…….”
모두 조용했다.
이 큰 연무장 안에 많은 단원들이 서 있었지만 모든 이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바로 사풍단의 단주 유호광이 온 것이다.





三.이공자의 그림자



그는 말을 차마 잇지 못하고 얼굴만 시뻘게졌다.
유호광과 함께 자리를 비운 교관들도 암담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뭣들 하고 있어?!”
유호광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모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어서 곤소우(琨素雨)를 의당으로 옮겨!”
교관 중 한 명이 서둘러 다가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곤소우란 사내의 혈을 짚었다.
출혈이 멈추도록 손을 쓴 것이다.
그리고 그 출혈 부위에 금창약을 부어 버렸다.
금창약을 바른다고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다급한 손놀림이었다.
그리고 사내의 몸이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조치한 뒤 몇몇 단원들이 그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두의 눈길은 구양운을 향해 있었다.
구양운은 그저 꼿꼿이 허리를 펴고 서 있었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전혀 연관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유호광이 구양운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섭군영은 내 처소로 따라와라.”
말을 한 유호광이 먼저 몸을 돌려 어딘가로 걸어가자 구양운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순간 정신을 놓고 있던 전문통도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잰걸음으로 구양운의 옆에 섰다.
자신의 책임도 있었다. 구양운이 나서지 않았다면 저렇게 쓰러져 있는 것은 전문통이었을 것이다.
전문통은 고맙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미묘한 감정으로 구양운을 올려다 보았다.
‘헛.’
순간 그는 속으로 헛바람을 들이켰다.
구양운은 분명 자그맣게 웃고 있었다.
그 웃는 얼굴이 왠지 너무도 섬뜩해서 전문통은 등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구양운의 옆을 조용히 걸었다.
지금 구양운의 모습은 마치 지옥의 나찰(羅刹)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입가의 미소는 비웃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결투에서 이긴 승자의 웃음도 아니었다.
뭐랄까?
피를 보고 그것을 즐기는 듯한 소름 끼치는 웃음이었다.
전문통의 머릿속은 실타래가 엉킨 것처럼 복잡해져 갔다. 그렇게 얼마 걷지 않아 세 사람은 유호광의 처소 앞에 도착했다.
유호광이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전문통은 문득 구양운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무표정.
평소처럼 특별히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이단아 같은 모습이었다.
‘후우.’
그제서야 전문통은 왠지 한시름이 놓였다.
그렇게 전문통이 방문 앞에서 주춤거릴 때 구양운은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유호광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달칵.
자그만 문소리가 천둥번개 치듯이 크게 들려왔다.
유호광은 어느새 다탁 앞에 앉아 있는데, 아무 말도 없는 그의 모습이 전문통은 더 긴장이 되었다.
“섭군영.”
유호광의 딱딱한 목소리엔 아무런 감정이 섞여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더 분노한 것 같았다.
“곤소우를 죽일 생각이었나?”
유호광의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구양운의 입이 열렸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단주님이 오시기 전에 죽었을 겁니다.”
‘끼어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전문통이 마음이 복잡해지며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카아앙!
유호광의 내력이 담긴 손으로 다탁을 내려쳤다.
순간 귀가 멍해질 정도의 큰소리라 전문통은 본능적으로 몸을 파르르 떨었다.
“지금 생사고락을 함께할 단원을 저 지경으로 만들고도 그리 말을 하는 것이냐?”
유호광의 눈썹이 파르르하게 떨렸다.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었다.
전문통이 보기엔 당장에라도 유호광이 저 손으로 구양운을 일격에 쳐 죽일 것만 같았다.
아까 본 구양운의 무위는 꿈결같이 강했지만 눈앞에 있는 유호광은 현실이었다.
쿠웅!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유호광과 구양운은 갑작스럽게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이 향했다.
그 자리엔 전문통이 순식간에 무릎을 꿇었다.
“단주님 제 잘못입니다. 곤소우가 저를 죽이려 하자……”
전문통의 눈이 자연스럽게 구양운에게 향했다.
“군영이 저를 구한 것입니다.”
전문통이 손으로 바닥을 짚더니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말했다.
“군영이가 아니었다면 그곳에 누워 숨진 것은 저였을 겁니다. 그러니 처벌을 하시려면 저, 저를 해 주십시오!”
전문통이 간절한 눈을 하며 머리를 다시 들자 유호광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물었다.
“그것은 또 무슨 말이냐?”
“그, 그것이……”
전문통은 아까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자신이 진법에 미숙해 같은 조였던 곤소우가 화가 나서 자신에게 칼을 겨눈 것과 자신이 죽을 뻔하던 순간에 구양운이 자신을 구한 것에 대해 말했다.
말을 마친 전문통이 조심스레 유호광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치를 보았지만, 유호광은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무거워 보이던 유호광이 입이 달싹거렸다.
“이 일은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우선 각자 처소로 돌아가 근신한다.”
“네? 네!”
전문통은 고개를 크게 끄덕임과 동시에 대답했다.
아직 처벌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의 위기를 모면한 것 때문인지 전문통의 그늘졌던 얼굴이 일순 밝아졌다.
구양운은 유호광을 향해 포권지례를 하곤 절도 있는 동작으로 문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전문통이 질세라 뒤를 재빨리 쫓아 나갔다.
유호광의 눈이 예리하게 구양운의 뒷모습을 훑었다.
아직도 방금 연무장에 도착했을 때가 생생했다.
진득한 피의 냄새.
사풍단 단원 모두가 석상처럼 얼어붙어선 섭군영이라는 한 사내를 쳐다보고 있었다.
스스로도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눈빛은 모두 하나같았다.
두려움.
그 많은 사풍단의 무인들을 압도한 것이다.
섭군영이라는 한 사내가.
복잡한 유호광이 눈동자가 무심코 전문통의 뒤를 쫓아갔다.
둘의 모습은 그렇게 순식간에 멀어져 갔지만 유호광의 눈빛은 복잡했다.
‘어째서…….’
전문통의 숨겨진 정체를 아는 것은 사풍단 내에 유일하게 자신밖에 없었다.
전문통을 맡긴 그분은 신신당부를 했다.
마치 그를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를 보듯이.
분명 약한 무공도 아니었거늘 사풍단에 잘 녹아들지 못하는 전문통을 보면서 나름 고충도 많았지만…… 저 섭군영이라는 사내는 무슨 수를 썼는지 전문통의 마음을 금세 얻었다.
유호광은 마냥 찜찜하기만 했다.
쓸데없는 기우가 많아지는 것은 그것이 착각이 아니란 말과 같았다.
‘섭군영, 도대체 어떤 자란 말인가?’
유호광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우선 구양운에 대한 보고가 잘못된 것은 분명했다.
보고받은 그의 무공 수위는 곤소우보다 낮았다.
강호에서 정확한 보고가 어딨느냐만은 유호광은 못내 걱정스러운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후우, 어쨌든 이 일을 어찌 처리한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사풍단 내에서 부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이 모든 이유를 불문하고 단체 생활에 있어선 안 될 독이었다.
절대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름은 곪아 버리기 전에 제거를 해야 했다.
유호광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 * *

저벅 저벅.
어두운 밤길에는 마교의 내부라 해도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적막하기만 했다.
그 적막한 공간에 처소로 향하는 구양운의 발자국 소리가 일정하게 울려 퍼졌다.
타박타박.
그리고 그 뒤로는 또 하나의 발자국 소리가 더 들려왔다.
구양운이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어디까지 따라올 셈이냐?”
구양운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뒤따라오는 발소리에게 물었다.
“나는…….”
머뭇거리며 말하는 전문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양운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바닥만 보고 따라 걷던 전문통이 그의 발걸음에 맞춰 걸음을 멈추곤 그를 쳐다보았다.
둘의 시선이 마주치자 전문통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꺼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온 거야.”
눈앞에 구양운의 처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통은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말을 붙이지 못하고 계속 쫓아오기만을 했다.
구양운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했다.
“말해라.”
시원한 밤임에도 불구하고 전문통은 괜스레 소매로 이마에 땀을 훔쳤다.
그리고 자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고, 고…….”
너무 한적한 밤이라 작은 소리조차 잘 들릴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문통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도통 들리지 않았다.
“뭐?”
구양운이 다시 반문했다.
“고……고, 고맙다고!”
말의 끝부분으로 갈수록 전문통의 목소리는 커져 갔다.
구양운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피식 웃었다.
“특별히 너를 위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 말은 받아 두겠다. 그러니 이제 그만 돌아가도록 해.”
구양운이 몸을 돌려 처소로 다시 들어가려는 행동을 취하자,
“군영아!”
전문통이 다급하게 그를 불러 세웠다.
구양운은 고개를 돌려 다시 그를 바라봤다.
“더 할 말이 있나?”
구양운의 질문에 전문통은 고개를 힘없이 떨어뜨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구양운은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 전문통의 말을 들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의 딱딱해진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말투는 아까완 사뭇 달랐다.
“너는 무인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만 한다면 아까 그놈 말처럼 너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다.”
전문통은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른 대답이었는지 순간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구양운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몸을 돌려 처소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몇 발자국 내딛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너처럼 강한 무인이 될 거야!”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내지른 소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외침은 적막한 마교의 밤길을 가로질렀다.
구양운은 다시금 전문통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도 또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다만 속삭이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쉽지 않을 텐데.”
그 말을 들은 전문통은 구양운 그가 웃었던 것처럼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그렇게 웃었다.
사풍단의 밤은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다음날 모두가 궁금해하던 사풍단의 출정 일자를 단주가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달 그믐으로 이제는 열흘조차 남지 않은 빠듯한 날짜였다.
모두 임무 수행을 위해 열심히 훈련에 임했지만, 구양운의 모습은 그날 이후로 사풍단의 연무장에 비치지 않았다.
그것은 단주가 구양운에게 내린 벌이기도 했다.
“지난 밤 사건으로 섭군영은 사풍단의 임무 수행에서 제외된다. 같이 출정은 하되 그는 후미로 빠진다.”
그 말은 즉, 사풍단이 임무를 완수했을 때 구양운의 공은 제외시킨다는 말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