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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마도 1권 (7화)


사풍단에 소속된 무인으로 그 안에서 도태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모두 반박하지 않았다.
구양운과 대결을 한 곤소우 역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목 부근에 큰 흉터가 남을 만한 상처였기 때문에 그 역시 임무 수행을 위해 출정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 두 사람을 공평하게 제외시킴으로써 이번 사건은 마무리 지어졌다.
오직 그 부분에 불만을 갖은 것은 전문통 하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결정된 일이 달라지거나 하진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하, 하하!”
그 사건의 내용이 적힌 서신을 손에 쥔 육대방은 그저 너털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운도 좋은 놈.’
육대방의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단어는 그것이었다.
수뇌부 이외에는 모두 알지 못할 일이지만, 이번에 사풍단이 맡은 임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이 살아 돌아올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왜냐면 그들이 맡은 임무는 이제는 살아 있는 전설이 되어 버린 마교 최강의 무력 단체 지옥혈마대(地獄血魔隊)의 전대 대주 흡혈귀마(吸血鬼魔) 종금도(宗金刀)에게 보내지는 서찰이었다.
마교에 수많은 공로를 세웠으나 뜻밖에도 그는 젊은 나이에 은퇴해 버린 고수였다.
그 사건으로 많은 말들이 떠돌았으나 그것은 교주와 연관되어 있다는 추측만 난무할 뿐 진상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번에 교주가 친히 쓴 서찰이 산중 깊은 곳에 은거하는 그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모두 입 밖으로 꺼내지만 않을 뿐 그 내용은 짐작하고 있었다.
바로 대공자 사공강(司空康).
그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함이었다.
현 마교 교주 사공영호(司空靈昊)의 첫째 부인이었던 구현린(鳩弦鱗)은 아무런 세력도 없을 뿐 아니라 무공조차 모르는 평범한 여인이었다.
구현린이 사공강을 낳으며 숨을 거두자 교주는 이 거대한 무리를 다스리기 위해 가장 큰 세력인 대장로 악불위(岳不位)의 외동딸과 혼인을 했다.
그것이 지금 마교의 안주인인 악비영(岳比英)이다.
교주가 아무리 사공강을 후계로 삼아 소교주의 자리를 내어 주고 싶다고 하여도 악비영의 소생인 이공자 사공악을 몰아낼 수는 없었다.
이 팽팽한 관계는 사공악이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어쩌면 악비영을 부인으로 맞으면서부터 예기된 일이었다.
마교의 모든 중심부의 인물들이 사공악을 소교주로 추천하고 있으니 교주는 종금도를 끌어들여 사공강의 힘이 되게 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니 지금 출정을 코앞에 둔 사풍단은 마교 내에서도 달갑지 않으며, 구파일방을 비롯한 오대세가 역시 고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쓰레기들만 모아 놓은 이 작은 단체는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이 사풍단에 구양운을 넣은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아무런 종적 없는 한 무인이 마교 바깥을 빠져나가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모두의 눈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교가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을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대공자를 위해 손을 쓴 교주가 이공자의 추천인 사풍단을 꺼림칙하더라도 거절할 수 없는 것이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구양운은 그들과 함께해선 안 되었다.
죽음을 위장해서라도 중간에 그를 빼돌려 천마총으로 보내는 것이 지금 육대방에겐 숙제나 다름없었다.
“하하하!”
육대방은 다시 호탕하게 웃어 제꼈다.
이 사실을 구양운이 눈치챌 리는 없었지만, 자신이 살 길을 자신이 열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육대방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준 것은 시원했으나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라 꺼림칙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놈을 볼 때마다 느끼던 그 불길함이 아직 잊혀 지지 않았다.
육대방은 그래도 구양운 그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기에 마음을 편히 가졌다.
그리고 그를 지켜보고 있을 십영(十影)에게 구양운에게 전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붓에 먹을 잔뜩 묻히고 힘 있게 써 내려간 글을 작게 접어 전서구의 다리에 묶었다. 덩치가 큰 육대방은 손도 가마솥만큼 커서 그 모양새가 우스웠다.
육대방은 전서구를 허공으로 다시 날리는 동작까지 마치곤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그놈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벌인 짓은 아니겠지?’
하지만 육대방은 으레 그랬던 것처럼 그럴 리 없다고 치부해 버렸다.
지금 마교의 정세조차 모르는 구양운이 이 같은 짓을 꾸몄을 거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알면서도 벌인 일이라면?’
육대방은 순간 등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이내 육대방의 입가에 스스로에 대한 웃음이 걸렸다가 사라졌다.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여겼기에 그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의 손은 다시 부지런하게 종이를 넘기며 처리해야 할 일들을 눈여겨보았다.

* * *

모두가 수련을 하고 있을 한적한 시각.
구양운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 구양운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었다.
수련을 할 시간이 마땅한 것도 아니었으며, 더군다나 이 짧은 며칠이란 시간 안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긴 힘들었다.
하지만 구양운은 돌파구를 목격했다.
그가 사용하는 묵성환영검(墨星幻影劍)은 단 칠 초식으로 이루어졌다.
일곱 가지 초식 모두 내력 소모가 강한 편이었으나 후 삼초식은 상승 무공으로 어마어마한 내력을 필요로 했다. 그렇기 때문에 무저갱에 갇히기 전에는 후 삼초식을 능숙하게 조절하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바로 곤소우와의 결투에서 구양운은 그것을 완벽하게 펼쳐 보였다.
그 후 삼초식의 첫 번째,
검환폭풍세(劍環暴風勢).
폭풍 같은 수십 개의 환영으로 상대를 옥죄어 가는 공격이었다.
그러므로 상대가 구양운에게 가까이 다가오면 올수록 환검의 허와 실을 구분해 내기란 더욱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거리에서 환검을 펼친다면?’
그것은 무저갱에 있을 때 생각했던 하나의 가정이었다.
그리고 그 가정은 적중했다.
구양운은 더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갈고 닦아야 했다.
그것이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땐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
구양운은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명상에 잠겨 있을 때,
슈슈슉!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로 듣기 전에 구양운은 감각으로 먼저 느꼈다.
그것은 천마총에서 생사고비를 건너고서 생긴 구양운만의 큰 무기였다.
구양운은 날아오는 표창(?槍)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것은 어차피 구양운을 노리고 날아드는 것이 아니었다.
구양운의 관심은 오로지 표창을 던진 이에게 있었다.
누군가가 있다고 감각은 끝임 없이 경고했지만, 기척을 잡을 수 없었던 자.
바로 무저갱을 나오는 순간부터 따라오던 이공자의 눈이었다.
구양운은 자신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을 이공자의 눈을 잡고 싶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다면 구양운의 행동에 커다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저갱을 나온 뒤 처음으로 잡은 그의 기척을 놓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구양운은 동작은 섬광과도 같았다.
순식간에 움직이는 찰나에 그의 몸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것 같은 환영까지 보일 정도였다.
그가 발을 짚고 도약을 한 것은 단 한 호흡에 일어난 재빠른 동작이었다.
구양운이 다다른 곳은 그의 처소 앞에 있는 하나의 나뭇가지 위였다.
구양운은 손으로 그 나뭇가지를 쓰다듬었다.
‘아직 온기가 있다.’
온기가 있다는 것은 즉 그가 얼마 전까지 여기에 앉아 구양운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온기를 느끼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 대결이었다면 구양운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었을 거라는 것이다.
“크큭.”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자신이 진 것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흘러 넘치는 호승심을 애써 감추고 싶지도 않았다.
한 번은 졌다.
하지만 다음은 없다.
그것이면 족했다.
구양운은 나뭇가지를 힘 있게 짚고 다시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기둥에 꽂혀 있는 표창을 손으로 잡았다.
끝이 호로 모양으로 된 다섯 치 길이의 이 표창은 아주 평범했다. 창의 전체(全體)가 앞은 무겁고 뒤는 가볍게 하여 던져 맞히기에 편하게 만든 전형적인 표창이었다.
보통 무인을 식별하는 데는 발걸음이나 호흡 그리고 외향으론 태양혈을 보고도 알아맞히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손쉬운 것은 손이었다.
항시 검을 손에 쥐고 있을 무인은 손에 굳은살이 배어 있었다.
붓을 쓰는 글쟁이와 농사를 짓는 민초들 그리고 무인들은 손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어디 곳에 소속되어 무공을 배운 무인이라면 검에 흔적이 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시체를 가지고도 범인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가끔은 이런 표창이나 작은 무기들에게도 그 사람만의 흔적이 묻어 나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깨끗했다.
누구도 던질 수 있지만 누구도 던질 수 없는 너무나도 평범한 표창이었고 또 표창을 뺀 기둥에 새겨진 모양까지도 완벽했다.
구양운은 자신을 숨어 보고 있을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은 구양운이 잡을 수 없는 자였다.
구양운은 입맛을 다시며 표창에 묶여 있는 종이를 펴보았다.

사풍단과 호남성까지 동행(同行)
그 후 천마총. 명령불이행 살(殺)!

아주 간략한 글이었다.
말 그대로 호남성까지 사풍단과 함께 동행하되 그 이후는 천마총을 향해 길을 가라는 뜻이었다.
그것을 어긴다면 구양운을 죽이겠다는 협박과 함께.
구양운은 화섭자를 이용해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읽은 즉시 종이는 태워 버렸다.
육대방이 처음 준 비단 주머니처럼 특별히 외워야 할 것은 없었다.
다만 그의 앞길을 정해 줄 뿐이었다.
‘역시 예상대로인가?’
사풍단.
언제부터 생긴 단체인지 또 무슨 임무를 띠고 어디를 향하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길은 죽음의 냄새가 풀풀 풍겼다.
마치 천마총으로 향해 출정했던 암영대처럼.
구양운은 확신할 순 없었지만 설령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 하더라도 그 사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무림은 강한 것만을 중시하지 그 외에 하찮은 목숨 따윈 파리 취급도 받지 못하는 곳이었다.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분명 신경 쓰이는 이공자의 눈일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좋은 호법 또한 구하기 힘들지 않은가.
구양운은 입에는 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덜커덕.
구양운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명상에 전념하고 있을 때 뜬금없이 방문을 젖히는 소리가 들렸다.
구양운은 감은 눈을 조용히 떴다.
앞에는 전문통이 양손 가득 음식을 들고 있었다.
“아직 식사 안 했지? 아무리 수련이 중해도 거르면 안 돼.”
전문통은 그 일이 있은 뒤부터 구양운의 식사를 도맡아 챙겨 주었다.
덕분에 구양운은 방 안에서 편하게 수련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딱히 거부하지 않았다.
전문통 역시 사풍단의 막바지 수련이 힘들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머무르지 못하고 식사만 끝내고 가는 것이라 시간을 많이 소진하지도 않았다.
대화의 주제도 그저 평범한 하루 일상이라 특별한 것은 없었다.
“난 어렸을 때 수련을 하면 할아범이 챙겨주곤 했는데.”
전문통은 자신이 말한 그 할아범을 떠올리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구양운은 가져온 음식에 젓가락을 놀리며 무심코 전문통에게 물었다.
“할아범?”
“아 나의 유일한 가족이야, 할아버지이자 스승님이지.”
구양운은 음식을 먹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전문통은 다른 주제로 전환을 하려는지 다시 밝게 물었다.
“내일이 출정일이다? 떨리지 않아?”
그의 말에 구양운은 여전히 음식을 입에 담으며 무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사람의 힘이란 게 기적처럼 강해지는 것은 희박하지, 하지만 순간 방심하면 약해지는 것은 다반사다. 평소처럼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백전노장이네.”
전문통은 동조한다는 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