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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마도 1권 (8화)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두 사람 다 배가 고팠는지 순식간에 음식은 바닥을 보였다.
전문통은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바구니 안에 담았다. 그 위를 천으로 다시 덮은 뒤 몸을 일으켰다.
“단주님이 내일 미시(未時:오후 1∼3시)까지 남문에서 집합이라고 전해 달라셨어.”
구양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를 잡고 가부좌 자세를 취했다.
전문통은 그런 구양운을 힐끔 쳐다보곤 다시 방 밖으로 나갔다. 그 역시 사풍단의 촉박한 식사 시간에 서둘러 움직여야만 했다.
타닥타닥.
전문통의 발걸음 소리는 금방 주변에서 사라져 갔다.
오로지 묵묵한 구양운과 그를 바라보고 있을 십영이라는 자뿐이었다.
구양운은 아마 내일 출정을 하기 전까지 그 자세에서 미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구양운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아야 하는 십영은 지루할 만도 하건만 자세에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십영의 맑은 눈동자에 구양운의 모습이 비쳤다.
‘변하지 않았군요.’
한때 암영대는 마교 최고의 살수 부대라는 호칭을 달았었다. 그중에 단연 으뜸이었던 구양운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사내라고 하기엔 너무 가냘파 보이는 그의 몸매가 보였다. 복면을 한 흑의복으로도 다 감추지 못한 늘씬한 교구가 드러났다.
조금만 더 자세히 관찰한다면 그가 여인이라는 사실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과거 처음 살수의 길을 걸었을 당시 십영(十影)은 여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편견 어린 시선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 시절 구양운을 우연찮게 보았다.
아직도 그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생했다.
구양운이란 사내는,
살수였다.
그것도 완벽한 살인자.
살인을 위해 가장 최적화된 몸놀림과 그의 무자비한 손놀림.
당시 구양운의 자태는 지금의 십영 교일지(喬一芝)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당당히 인정받고 사공악의 열 개의 그림자 중 하나로 비약적인 도약을 한 그녀였다.
그녀의 실력이 다른 그림자들에 비해 뒤쳐져서 열 번째 순서인 십영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가장 어리고 늦게 입문한 이유였다.
이렇게 막강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조금도 긴장을 끈을 놓치지 않았다.
구양운이라는 이 사내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여인이기 전에 살수였다.
그것도 가장 냉혹한 살수라고 꼽히는 사공악을 지키는 십영 중의 일인.
지금 그녀의 먹이는 그토록 동경하던 구양운이었다.
교일지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기척을 숨긴 채 구양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응?’
석상처럼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던 교일지의 신형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향기가 풍겨 왔기 때문이었다.
꽃향기나 음식에서 풍기는 그런 향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훈련받은 자만이 맡을 수 있는 그런 향이다.
십영은 극도로 훈련된 열 명의 살수였다.
그들만의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이 향기는 그들을 부르는데 사용하는 것이었다.
교일지가 도착한 곳은 사방에 높은 담이 있어 달빛마저 비추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이미 해가 저 버린 어두운 밤이라지만 사물을 식별하기조차 어려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둠도 교일지의 눈을 가릴 순 없었다.
그늘진 담 한 부분에서 한 신형이 교일지 앞으로 다가왔다.
“일영(一影).”
교일지가 그를 보고 말했다. 그녀의 청아한 음성이 밤하늘을 뒤덮었다.
눈앞에 등장한 일영 역시 교일지처럼 흑의복을 입고 있었지만 복면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십영의 임무는 항상 위험했기 때문에 사상자도 많아서 수시로 바뀌기도 했었다. 가장 말단으로 들어온 게 교일지라면 이 일영은 가장 오래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뜻밖에도 교일지와 크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은 젊은이였다.
날카로운 턱선이 이지적인 느낌을 주는 사내였다.
“무슨 일이죠?”
갑자기 자신을 불러낸 것에 대해 의문을 말하자 일영의 입이 움직이며 말했다.
“이공자님의 전언이다.”
교일지가 눈빛을 빛냈다.
이 임무를 받기 전 이공자에게 명을 받은 것은 두 개였다.
구양운을 감시하는 것과 가능하다면 구양운과 함께 천마총으로 잠입하라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위험한 임무였기 때문에 교일지가 투입된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전언이라는 것은 그 명령이 또 다른 것으로 변경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교일지가 일영의 말을 기다리자 일영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구양운이 천마총으로 들어갈 때, 그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너는 그곳에서 그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영의 눈빛이 순간 달빛에 비춰 요사스럽게 빛났다.
“그가 나오면 죽여라.”
일영의 말이 놀라울 만도 하건만 교일지는 바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명을 받듭니다.”
“십영, 너도 잘 알겠지만 그가 가지고 나온 검보를 꼭 회수해야 할 것이다. 만약에 천마총을 나왔을 때에 그의 품에 검보가 없다면 더더욱 그자는 살려둘 의미가 없지.”
교일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슨 의미인지 굳이 일영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구유수라마검의 검보를 구양운의 품에서 회수하되, 혹시라도 그것이 그의 품에 없다고 한다면 더 이상 구양운의 가치는 없었다.
검보를 가지고 나올 수 없는 그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말이었다.
상황이 어떻게 되든 그는 천마총까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공자님의 다른 전언은 없나요?”
“그래, 임무를 마치고 보도록 하지.”
굳이 십영들의 두령을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내에서도 또 사공악조차도 은연중에 그들의 우두머리를 일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교일지는 일영에게 고개를 살짝 숙임으로 예를 표하곤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아무런 기척도 또 소리도 없이 교일지는 다시 구양운을 감시하러 간 것이었다.
일영 역시 다시 커다란 담이 만들어 준 그늘 속으로 다시 걸어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으레 날 법한 발자국 소리조차 그에겐 없었다.
어둠으로 일영의 몸이 가려지자 그 역시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다시 아침을 알리는 해가 떴다.
구양운의 눈이 슬며시 뜨이며 가부좌를 풀었다.
바깥을 보니 벌써 태양빛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곧 사풍단이 출발한다는 것과 일치했다.
구양운은 간단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가 챙기는 짐이란 간단한 옷가지와 마른 고기 정도로 지극히 단촐했다.
그리곤 적색의 무복으로 갈아입었다.
사풍단을 상징하는 풍(風)이라는 글자가 가슴 한편에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는 옷이었다.
구양운의 새하얀 피부에 붉은색 계통의 옷을 입혀 놓으니 그것 또한 나름 운치 있어 보였다.
본인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굴에는 별 감흥이 돌지 않았다.
며칠 밤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피곤할 만도 할 법한데 그는 운기조식만으로도 거뜬한지 멀쩡해 보였다.
구양운은 느릿한 걸음걸이로 어제 전문통이 전해 준 말대로 마교의 남문으로 걷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마교의 전각들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그것이 구양운의 시선을 붙잡아 두진 못했다.
‘이제부터로군.’
드디어 마교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지금부터 구양운만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의 입가가 세로로 비틀어지며 웃음을 자아냈다.
‘마교.’
어느샌가 구양운의 눈앞엔 사풍단의 옷을 똑같이 차려입고 긴장한 모습들로 나열해 있는 단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양운은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아주 맑았다.
과거 그는 하늘을 올려다볼 만큼 여유를 가지고 살아 본 적이 없었지만 오늘 하늘만큼은 아주 청명했다.
‘잘 있거라.’
구양운은 마음속으로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모든 기억이 함께하는 이곳.
이제 더 이상은 이 땅을 밟을 일은 없었다.
구양운이 행렬의 가장 뒷줄에 몸을 세울 때 즈음이었다.
시간이 이제 다 된 것인지 사풍단의 단주 유호광이 가장 선두에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던 구양운이었지만, 그날 밤의 사건 이후로 사풍단의 몇몇이 곁눈질을 하며 그를 의식하고 쳐다보았다.
하지만 곧 긴 호각 소리가 들리며 단주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출발한다!”
四.호남성(湖南省)까지
호남성(湖南省)은 화중지구(華中地區)의 양자강(揚子江) 중류의 남쪽 연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 구릉 중에 솟아 있는 형산(衡山)은 오악의 하나로서 남악(南岳)으로 알려져 있다.
호남의 기이한 계곡, 봉우리, 소나무, 산새들이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했다. 마치 신선이 사는 곳과 같은 무릉도원(武陵道原)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그들이 찾아야 할 지옥혈마대의 전대 대주 흡혈귀마 종금도가 있었다.
사풍단의 단주 유호광의 눈빛이 빛났다.
별 무리 없이 많은 길을 지나왔다.
이제 목적지인 호남성이 코앞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호광이 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리자 절도 있게 사풍단의 행렬은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쉬었다가 간다.”
그의 말이 끝나자 모두 나무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기 바빴다.
마교를 떠나온 날부터 하루라도 편하게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다. 제대로 먹지도 또 쉬지도 못하고 고단한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한편으로는 기대했을지도 모를 긴장감 넘치는 전투조차 없었다.
지금 여기까지는 그저 순조롭다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이 없었다.
전문통은 자신의 마시던 가죽 주머니를 구양운에게 건네자 구양운은 소매로 땀을 훔치며 그것을 받고 물을 마셨다.
처음에는 잔뜩 긴장한 전문통의 모습이 갈수록 마교 바깥으로 산책을 나온 것처럼 바뀌어 갔다.
물론 그것은 전문통뿐 아니라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긴장감이 풀어지는 것으로,
이제 목표를 눈앞에 둔 나태함이었다.
“호남성은 뭐가 맛있을까?”
전문통의 나른한 중얼거림에 그 옆을 지나가던 단원 하나가 대답을 했다.
“호남 요리? 매운 것이 많지. 그중엔 단연 자룡탈포(子龍脫袍)가 으뜸이고.”
자룡달포는 새끼용이라는 뜻이다. 이는 뱀장어가 마치 새끼용 같이 생긴 데에서 불려 진 것이었다.
“에?”
전문통이 관심을 보이자 말을 건넨 사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꾸했다.
“너 못 먹어봤구나?”
전문통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사내는 키득키득거리며 음식 얘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보다 임무를 완수하면 보상은 뭘까?”
전문통과 사내의 대화에 끼어든 것은 구인호(具仁虎)였다.
그는 사풍단에서 꽤 오래 굴러먹은 놈으로 지금 전문통과 대화하고 있는 양마달(梁馬達)과 막역한 사이였다.
전문통을 바라보며 양마달은 당연하다는 듯 낄낄대며 말했다.
“당연히 술과 여자 아니겠냐?”
그것 말고 뭐가 필요하냐는 듯한 말투에 구인호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서 세간에서 우리를 삼류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외부에서 굴러먹던 놈들이니 제대로 된 상승무공이라도 하나 떡하니 내놓아야 되는 거 아니냐?”
“표면만 그럴싸했지. 생각해 보면 마교에서 파견된 우리를 건드릴 사람이 누가 있겠냐? 이렇게 쉬운 임무에서 그런 것을 내줬다면 진즉에 절세고수가 됐겠다.”
양마달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전문통에게 동조의 눈빛을 보냈다.
“그렇지 않냐?”
“아…….”
전문통은 갑작스럽게 돌아온 질문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중간에 말을 끼어든 구인호도 자신의 의견에 동조받고 싶은 듯 전문통에게 물었다.
“넌 뭐가 받고 싶냐?”
임무를 완수하기 전에 나눌 대화는 아니었음에도 그들은 그것에 대한 거리낌이 없었다.
“나는……”
전문통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자룡달포나 먹어보고 싶은데?”
구인호는 전문통의 허무한 대답에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둘의 모습을 바라보던 양마달 역시 할 말이 없는지 그저 실실 쪼갤 뿐이었다.
전문통은 무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욕심 따위는 찾아보기 힘든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