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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마도 1권 (18화)
그곳엔 이 마을을 들어서고 본 것 중 가장 화려해 보이는 객잔이 있었다.
금화객잔(金貨客棧).
현판부터가 지극히도 화려했다.
“그러지.”
구양운이 쉽게 수긍하자 정려군이 먼저 달려갔다.
어지간히도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구양운이 그 뒤를 따라 이내 둘은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둘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 뒤에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내는 귀살각의 막내 쾌영신(快影身) 초련운(超蓮運)이다. 그의 별호답게 초련운은 귀살각 내에서 가장 빠른 발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귀살각 내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림에서 초련운의 발을 따라잡을 자는 많지 않았다.
‘흐음…….’
여인과 함께 희희낙락하고 있는 사내를 보니 이번 임무가 정말이지 쉽게만 느껴졌다.
먼저 정찰을 하러 온 초련운은 당장에라도 내려가서 목표물을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저런 놈쯤이야 혼자서라도 충분할 것 같았다.
어차피 이번 임무도 산책하는 것처럼 다녀오라는 교주의 명이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자신을 먼저 보내기 전 귀살각의 각주이자 큰형 도일맹이 한 말이 떠올랐다.
“발견하면 절대로 가까이 다가가지 마라. 구양운이라는 놈…… 만만한자가 아니야.”
초련운은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큰형은 근심이 많아서 탈이야.’
잠시 그 둘을 지켜보고 있자 점소이가 와서 그들에게 음식을 잔뜩 가지고 왔다.
얼마나 많이 시켰는지 상다리가 휘어질 지경이었다.
저놈을 따라잡느라 귀살각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추격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잡지 못했을 것이다.
왠지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자신은 저놈 죽이러 미친 듯이 달려왔건만 저놈은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과 같이 산해진미를 맛보고 있다니.
‘조금만 접근해 볼까?’
초련운은 목표물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구양운 일행이 있는 객잔 안으로 접근했다.
객잔의 지붕에 몸을 숨긴 채 아래를 보니 둘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구양운과 정려군의 대화 소리를 들으려 귀를 기울였다.
“…….”
“…….”
하지만 음식을 먹는 소리만 들릴 뿐 말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 구양운과 정려군은 서로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허겁지겁 먹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정도 배가 부르자 정려군이 손을 들어 점소이를 불렀다.
“점소이! 여기 술!”
“예예.”
점소이는 대답과 동시에 척 봐도 돈이 많아 보이는 구양운 일행에게 눈치껏 가장 비싼 술을 내왔다.
눈앞에 놓인 작은 술병을 내려다보곤 정려군이 지긋이 점소이를 쳐다봤다.
“이건 너무 작잖아. 술 단지로…… 알지?”
“아, 알겠습니다요.”
정려군은 구양운과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술을 단지 채로 주문했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객잔 주인은 매상이 올라가는 생각에 얼굴이 환해졌다. 덩달아 점소이도 몸을 바삐 움직였다.
술 단지가 워낙 커서 점소이가 양손으로 안고 낑낑대며 옮길 정도였다. 점소이는 금세 술병을 치우고 술 단지를 정려군 앞에 내려놓았다.
그제야 정려군은 만족한 듯 술로 한 모금을 축였다.
술맛이 마음에 드는지 진한 미소가 입가에 생겼다. 그와 동시에 구양운을 향해 시선이 갔다.
“값싼 경단도 안 사 줬으면서 이렇게 비싼 건 많이 먹어도 되는 거예요?”
정려군은 아까 경단을 사 주지 않은 것을 기억하고는 다시 묻는 것이었다.
구양운은 게슴츠레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정려군에게 시선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것은 당신이 계산하고 나가서 경단을 사는 게 낫겠소?”
“호호, 농담도 못해요.”
구양운의 무심한 대답에 정려군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리고 구양운 앞에 놓인 술잔에다가 술을 채우며 말했다.
“소협도 한잔하세요.”
정려군은 배가 부르고 술이 가득 앞에 놓이자 기분이 좋은 듯 연신 미소를 띠며 말했다.
구양운도 피식 웃으며 정려군의 따라준 술잔을 집으려 손을 들었다.
그때였다.
구양운의 귀가 꿈틀거렸다.
미세한 기척이 느껴졌다.
사풍단에서 생활했을 때도 십영의 위치를 감지해 내진 못했지만 누군가가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챈 구양운이었다.
구양운의 예리한 감각은 경고하고 있었다.
술잔을 입으로 가져다 대며 슬쩍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객잔 안에 무림인으로 보이는 자는 없었다.
‘나를 노리는 건가?’
구양운은 가장 최악의 상황부터 생각을 했다.
마교 이공자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만큼 천마총까지 가는 길은 안전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쉽게 추격자라고 단정 짓기가 어려움에도 구양운은 매사에 신중을 기했다.
구양운이 술을 들이키자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려 갔다.
그리고 뒤이어 조심스럽게 술잔을 내려놓았다.
“맛 좋죠? 한 잔 더 해요.”
여전히 정려군은 웃음기 있는 말투로 말했다.
아직까지 숨어 있는 자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했다.
이것은 과거 살수로 행동했던 구양운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수준이었다.
구양운이 대답이 없자 정려군은 다시 한 번 물었다.
“한 잔 더 따라드려요?”
“아니, 됐소.”
구양운이 사양하자 정려군은 더 권하지 않고 혼자 홀짝 홀짝 마시며 웃음을 띠울 뿐이었다.
“아, 좋다.”
개방 방도인 정려군에겐 술과 음식만 있으면 그곳이 최고였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정려군은 자신의 술잔을 채워 나갔다.
하지만 그런 정려군과 반대로 구양운은 바짝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였다.
구양운은 왠지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한 삼류 살수였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려군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고수가 기척을 숨긴 채 갑자기 이 객잔에 아무 이유 없이 등장할 리는 만무했다.
구양운은 아무런 기색도 비치지 않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서 방까지 잡고 오늘은 쉬어 가기로 하겠소.”
정려군은 그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행이군요. 오늘은 술을 남기고 가는 죄를 범하지 않겠네요.”
“그럼, 잠시 기다리시오.”
구양운이 몸을 일으켜 객잔 주인이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천천히 움직이며 주변의 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방 두 개. 하루 묵고 갈 거요.”
임산부처럼 배가 나온 객잔 주인은 그의 몸매와 어울리지 않는 값비싼 비단옷에 멋들어진 수염을 기른 자였다.
“예, 가장 좋은 방으로 모십죠. 식사를 다 하시면 점소이를 따라 가시면 됩니다요.”
객잔 주인은 손을 만지작거리며 구양운에게 고분고분할 말투로 대답했다.
“오늘 말을 사려고 하는데…… 객잔 안에 있는 마구간을 먼저 한 번 보고 싶소만?”
“아, 그러시겠습니까요? 잠시만 기다리십쇼.”
객잔 주인은 고분고분할 말투를 버리고 큰소리로 점소이를 향해 말했다.
“손님을 마구간으로 안내해 드려라.”
“아, 예예.”
점소이는 하던 일을 마치고 후다닥 구양운 앞으로 다가왔다.
“자, 그럼 따라오십시오.”
자그마한 소년인 점소이가 앞서 걷자 구양운은 뒤를 따라 걸었다.
슬쩍 원래 자리를 향해 눈길을 줬지만 정려군은 별 탈 없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객잔을 나서자 멀지 않은 곳에 손님들의 말을 관리하는 자그마한 마구간이 보였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역시 값비싼 객잔다웠다.
“항상 청소하며 청결을 유지하고 있습죠. 마음에 드실 겁니다.”
점소이가 객잔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은 것을 한 귀로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묘하게 뇌리를 자극하는 무엇을 구양운은 찾고 있었다.
‘언젠가와 똑같은 기분이다.’
구양운은 마구간을 보는 척하면서 객잔 전체를 세심하게 훑어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점소이는 그저 까다로운 손님이라고 생각하며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구양운의 눈이 사방을 훑으며 지나갔다.
그때였다.
구양운의 시선에 걸리는 것이 발견되었다.
무심코 본다면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구양운에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였다.
객잔 지붕 쪽에는 자그맣게 사선으로 그어진 빨간색의 선들이 보였다.
서로 엇갈려서 단순하게 그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획으로 순서에 맞게 그려 놓은 하나의 표식이었다.
“크크, 크크큭.”
구양운은 갑자기 웃음 터뜨렸다.
그 모습에 점소이는 놀라서 구양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구양운의 기세가 왠지 너무 무서워 점소이는 차마 입이 떨이지지 않았다.
저 표식을 쓰는 곳은 단 한 군데뿐이었다.
귀살각.
자신들의 목표물이 이곳에 기거한다고 서로에게 알리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구양운은 이것을 처음 본 것이 아니었다.
바로 무저갱에 갇히기 전.
천마총에서 홀로 살아남아 마교로 돌아갔을 때 그곳에서 구양운은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곧장 구양운은 마교를 벗어나기 위해 홀연히 몸을 감췄었다.
마교 내의 고수는 하늘에 떠있는 별만큼 수없이 많다.
하지만 구양운에게 마교는 태어나서 자란 곳이었다. 가뜩이나 잠입에 능통한 구양운이 몸을 숨기면 그곳을 쫓을 수 있는 고수는 많지 않았다.
그때 구양운의 뒤를 쫓아온 것이 그들이었다.
교주의 명만을 받드는 암살부대 귀살각의 십 인.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하얀 동공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던 그 사내가 기억에 선명했다.
구양운은 그때를 기억하며 미소 지었다.
“저, 저기 손님…… 무엇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점소이가 조심스럽게 물어오자 구양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
구양운의 눈동자는 바다처럼 고요했다. 하지만 그 눈 속의 작은 파동을 눈치채는 자는 없었다.
‘도일맹, 이번엔 힘들 것이다.’
구양운은 짧은 시간 동안 생각에 빠졌다.
여기까지 쫓아왔다면 도일맹이 들이닥치는 시기는 이미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한 번 마주했기 때문에 귀살각의 힘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구양운이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마침 구양운의 눈 안에 들어온 것이 자신을 어렵게 올려다보고 있는 점소이였다.
구양운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점소이를 슬쩍 바라봤다. 그리고 품안에서 동전 몇 닢을 꺼내 점소이에게 건넸다.
“내가 몇 가지 심부름을 시킬 일이 있는데……”
구양운의 손 안에 있는 동전을 본 점소이의 눈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리고는 서둘러 대답했다.
“아, 예예, 말씀만 하십쇼.”
점소이는 작은 손을 냉큼 내밀며 말했다.
그러자 구양운은 점소이의 손 위에 동전을 내려놓으며 말을 했다.
“말 세 필과…….”
구양운이 점소이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는 바람에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점소이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까지 마련할 수 있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니 한 시진이면 충분합죠.”
점소이는 구양운을 향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구양운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객잔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한걸음에 정려군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정려군은 유유자적하게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구양운이 그런 정려군을 보며 말했다.
“이곳은 시끄러우니 위로 올라가서 한잔하지.”
“좋아요. 오늘은 밤새도록 마셔 보자고요.”
정려군이 혼자 술을 마시는 게 재미없었던 모양인지 흔쾌히 승낙을 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구양운을 마구간까지 안내해 준 점소이는 보이지 않았다. 구양운이 시킨 일을 하러 벌써 간 모양이다.
하지만 금세 다른 점소이가 구양운 앞에 나타나 말을 건넸다.
“방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따라오세요.”
말을 마친 점소이가 술 단지를 옮기려고 하자 정려군은 손을 저으며 말렸다.
“내가 들게.”
점소이가 낑낑대며 옮겼던 술 단지를 정려군은 가볍게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렇게 점소이의 안내에 따라 정려군과 구양운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점소이는 짧은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구양운은 점소이가 사라지자 방문을 굳게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