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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전 1권(14화)
第六章 소림의 수호신승(2)


비가 샌다고는 했지만 이 정도로 격하게 흐를 줄은 몰랐기에 나는 쫄딱 젖으면서 천장을 수리해야 했다.
“말해 봐요 사부. 일부러 그런 거죠?”
사부는 다 고쳐져 물 한 방울 새지 않은 안락한 자신의 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미령이는 언제 왔는지 그 옆에 앉아 벽에 걸린 커다란 염주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부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뭘 말이냐?”
“천장에 인위적인 폭포가 만들어진 것 말입니다.”
제자를 괴롭히려는 것도 정도가 있지. 무슨 짓을 했기에 천장에 주먹만 한 인공 폭포가 생성되었단 말인가.
“나는 못난 제자와는 달리 키가 커. 멋지며 고독한 은거기인의 기본 조건이지. 자다가 일어났는데 그만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지 뭐냐.”
그렇게 말했기에 나는 사부의 허벅지를 꼬집어 벌떡 일어나게 만듦으로써 헛소리임을 증명했다. 천장에 머리가 닿으려면 머리 하나는 더 자라야 할 듯했다.
멋쩍어진 사부는 키가 줄어들었다며 괜히 고기 탓을 했기에 무시해 주었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사냥을 한다는 건 정말 불쌍한 일일 테니까.
“식사하러 왔습니다.”
밖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축 늘어진 토끼가 서 있었다. 사부는 토끼가 먹어 달라며 와 주었다고 기뻐했으나 그 정도로 정신줄 놓은 미친 토끼는 아니었다. 토끼는 죽은 체였으니까.
그리고 토끼의 뒤에는,
“빈손으로 오면 쫓아낼 거라 해서 오는 길에 잡아왔습니다.”
비 오는 날 사냥을 한 불쌍한 류진룡이 서 있었다.

***

란은 이제 미령이의 몸을 꽤 잘 움직였다. 스스로 벽곡단을 집어 올려 입에 넣고 씹는다. 혀에 닿기만 해도 토악질이 올라올 정도로 극악무도한 맛이건만,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다. 젠장. 어쩐지 미령이가 멀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방 안에는 불편한 기운이 떠돌았다. 아니, 나만 불편했다. 어째서인지 사부가 류진룡을 초대했고, 정말 비오는 날 사냥까지 해 가며 류진룡이 온 것이다.
“예의상 한 말이었거늘! 정말 올 줄이야. 참으로 예의로와. 그렇지 않느냐 불손한 제자야?”
“사부를 위하는 제자의 마음에 대한 표현으로, 천장에 폭포를 재건하겠습니다.”
사부는 그래 봐야 다시 내가 고쳐야 할 거라면서 낄낄거렸다. 이번에는 나도 안 고칠 거라고 엄포를 내놓으려는 찰나, 류진룡이 말했다.
“저 소저는 자네 동생인가 보군. 소개 좀 시켜 줄 수 있겠는가?”
“아, 그게…….”
난처한 상황이었다. 미령이는 현재 미령이가 아니다. ‘고서’ 란이 미령이의 몸속에 들어간 것이다. 물론 인간으로서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겠고, 그 느낌이 이 사건을 모르는 타인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도움을 받고자 사부를 보았으나,
“육질이 예술이로다. 가히 극락의 경지야!”
사부는 고기에 혼을 팔았다.
하여 나는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
“이름은 란. 보다시피 얼마 전에 겪은 일에 대한 충격으로 말을 잘 못해.”
류진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군’, 이라며 건조하게 말했다. 다행이다. 크게 관심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식사가 시작되었다.
류진룡이 가져온 토끼 고기를 먹으며 머릿속에는 온통 어째서 찾아온 것일지 생각하고 있었으나 짐작도 가지 않았다.
천하제일가의 소가주 류진룡.
소림사의 수치인 취중망승.
도무지 어울리지 않은 궁합이도다. 대체 류진룡은 왜 내 사부를 찾아온 것일까.

이윽고 식사를 마쳤다. 그래도 손님 접대를 해야 한다 하여 차를 내오자 류진룡과 사부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제법 무거웠다.
“가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닿았던가.”
“잘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들’이 움직였다 합니다. 예측되는 목적지는 숭산. 이유는 모릅니다.”
꽤 심각한 이야기로 보여서 나는 잠자코 들었다. 사부는 내가 내온 차를 코로 킁킁 거리더니, 문 밖에 홱 뿌리고는 그 잔에 술을 따랐다. 망할 사부. 다음부터 절대 안 타 줄 테다.
그래도 궁금한 것이어서 나는 물었다.
“‘그들’이라니. 무슨 말이야?”
“음. 자네는 모르는가?”
모르니까 묻는 거다. 류진룡은 내가 내온 차를 마시며 사부를 바라보았고 사부는 몹시도 당당하게,
“내가 말을 안 해 줬다!”라고 엄포했기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지만 조금은 신경 써 주면 좋지 않나.
류진룡은 쓰게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고서’를 지닌 자들을 말한 것이네.”
“고서……? 너, 고서를 알아?”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끄덕였다. 난 몹시도 놀랐으나 사부는 여전히 알고 있었다는 뻔뻔한 얼굴이었다.
아무튼 ‘고서’를 지닌 자들이란 말에 나는 순간 금대호가 떠올랐다. 그가 쥐고 있던 단도 ‘하현’이 어떤 힘을 갖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자들이 몰려온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도 대단히 위험해 보였다.
“그런데 왜 그들이 숭산에?”
“나도 그것까지는 잘 모르네. 하지만 지금껏 그들이 단체로 움직이는 이유는 하나였어. ‘고서’의 회수. 그 외에 그들이 단체적으로 움직이는 일은 없는 것으로 아네.”
“뭐!”
나는 너무 놀라 펄쩍 뛰다 천장에 이마를 부딪쳤다. 사부가 경악을 내뱉는 것을 무시한 채 나는 미령이의 몸을 차지한 란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그들이 고서를 회수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 말대로라면 미령이가, 미령이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고서 란이 위험하다.
하지만 어쩌면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그들’ 중 하나인 금대호는 란을 알아보고도 얌전히 물러났다. 해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고서를 지니고 있는 자들이라면 고서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미령이를 되돌릴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찰나였다.
“혹여 그들이 방법을 알고 있을까 생각하는 거라면. 그럴 일은 없다.”
마치 내 생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이 사부가 말했다.
“그들이라고 방법이 있진 않아. 오히려 연구 대상이 될지도 모르지. 흔하지 않은 경우니까.”
그러니까 지금 사부는 무지무지하게 큰일났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위험은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다급해졌다.
“어떻게 소림의 힘으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소림은 전통과 실력을 자랑하는 정파무림의 기둥이잖아요?”
“불가. 고서의 주인이 다섯만 몰려와도 끝장날게야.”
태연하게 술을 먹으면서 절망을 읊조리고 있다.
“소림만으로 안 되면, 그래! 무림맹이 있잖아요?”
다행히 이 자리에는 무림맹의 실권을 쥐고 있는 천하제일 류씨 세가의 소가주. 류진룡이 있다. 나는 희망을 품고 류진룡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들은 나설 수 없어.”
“어째서?”
“무림을 갖는 대가로, 이면무림(異面武林)에 대해 간섭할 권한을 잃었으니까. 부끄럽지만 욕심을 낸 대가라네.”
“뭐야? 그럼, 소림은. 고서는…….”
“뭐가 그리 걱정인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들이 고서, 즉 ‘란’을 회수해 간다면 미령이를 되돌릴 방법이 있고 없고를 떠나 미령이를 볼 수 없게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류진룡은 의문을 품을 만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 류진룡은 방법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소림에도 고서의 주인이 있지 않은가.”
“뭐라고?”
깜짝 놀라는 내 반응에 류진룡은 ‘설마 그것도 말하지 않은 겁니까.’라고 투덜거리더니 말했다.
“자네의 사부. 수호신승의 고서는 당대 최강이라네.”



第七章 수호신승의 보구(1)


내 사부의 이름은 취중망승, 이 아니라 허상. ‘허’자 항렬의 소림 제자로 위로는 방장 스님인 허태 대사가 있고 아래로는 집법당의 무시무시한 허백 당주님이 있다. 그 아래로도 몇 분 더 소림의 중역을 도맡고 계신다.
그런데 왜 내 사부는 이 모양일까.
“사부, 그만 제 방에서 나가 줘요.”
안 그래도 좁은 방에 세 명이 있는데, 사부가 한 없이 뒹굴거리며 세 평 좁은 방을 종횡무진하는 것이었다.
“나쁜 제자 놈아, 하나밖에 없으며 하늘 같은 스승께 무슨 무례더냐. 나가려면 네놈이 나가.”
내 방에서 내가 축객령을 당하는 어이없는 경우는 또 처음이었기에 반박했다.
“미령이를 돌봐야 해서 안 돼요. 그리고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도 모릅니까.”
“난 일곱 살이 아니라서 괜찮다.”
순간 원래 그런 뜻이었나 하며 번민에 휩싸이나마나 그런 뜻이 아니잖아!
“그리고 제자야. 나에게 이러면 안 된다. 네놈이 기절해 있을 때 이 사부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짐짓 침울하게 하는 말에는 나도 입을 닫은 것이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사부는 처연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다른 녀석들 제자 놈들은 다 제 스승 생각해서 온갖 영약이며 술이며 공양을 퍼붓는데, 내 제자는 그렇지 아니하다. 이는 필시 사부에 대한 존경과 경외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덕이 모자라 그런 것이라 생각하여 자책하지만, 제자가 못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보면 요 근래 젊은이들은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다. 이는 분명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대낮의 도난 사건과 강도 사건, 심지어는 살인 사건까지 젊은층들이 주를 이룬다. 범죄가 늘고 있다. 수 많은 시주들이 두려움에 떨며 산다. 단적으로 내 제자만 봐도 그렇다. 사부는 제자를 위해 늙어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이끌고 그렇게 여시주를 간호했다. 옷이 더러워 갈아입히고, 몸이 지저분해 구석구석 씻기기까지 하는 갖은 노동을 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고마움이라고는 터럭만큼도 없는 구박이로다. 쓸모없다. 부질없다. 아아,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절로 와 닿는구나. 그렇지 않느냐, 제자 놈아?”

기나긴 말을 내뱉은 사부는 몹시도 무게를 잡으며 입에 가져간 술병을 기울였다. 버릇없는 제자를 돌보는 사부에 대한 애환이, 느껴질까 보냐.
나는 눈에 힘을 주고 사부를 바라보았다.
“어디까지 씻긴 겁니까. 뭐? 구석구서억?”
“무, 무슨 마, 말이냐! 어디까지나 가, 간호에서였다. 미끈한 건 중요한 게 아니야.”
난 소림의 제자니라, 라고 외쳐 대도 이미 그전에 당신은 땡중이라고 인정했잖아!
거기다 말까지 더듬거리는 것이다.
물론 사부가 정말 흑심 같은 걸 품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니 조금은 들지만, 경우는 있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내 여동생을 내가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에 괜히 분했다. 물론 멋대로 기절한 건 나니까 변명할 여지는 없다만.
사부는 억울하다며 얼굴까지 벌개져서는 고래고래 변명을 하며 내 욕을 하다 술을 먹다, 고기를 대령하고 싶다는 괴상망측한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소림을 지키는 수호신승일까. 소림을 과연 제대로 지켜 주기는 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라고는 해도 아는 사람은 극소수기 때문에 믿음도 극소수다.
수호신승. 그 이름의 무게에 대해서는 어제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