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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전 1권(15화)
第七章 수호신승의 보구(2)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는 방장 스님을 찾았다. 내 사부의 이름을 밝히자 손쉽게 만나 뵐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방장 스님은 문파의 제자라 하더라도 쉽게 뵐 수 있지 않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사부의 이름을 대고 방장 스님을 뵐 수 있었고, 수호신승이란 무엇인지 여쭤 보았다.
“사부는 대답해 주지 않아서요.”
어째서인지 사부는 그 부분에 대해서 말하기를 대단히 꺼려 했다. 궁금하면 스스로 알아보라는 말뿐이었다.
“그럴 만도 하네. 사제가 제 입으로 말하기는 힘들겠지.”
난 침을 삼키며 방장 스님의 말을 경청했다. 방장 스님의 표정은 어두웠다. 야심 한 밤까진 아니어도 한밤중에 찾아온 사질을 반갑게 맞아 주었던 그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꽁꽁 숨겨 두었던 매화주를 꺼내 한 모금 마시며 방장 스님이 입을 열었다.
“스스로 발에 족쇄를 차고 형벌 아닌 형벌을 견뎌야 하는 것이지. 세상 누구보다 강한 힘을 얻었으나, 숭산을 한 발도 떠날 수 없으며 그 어떤 외부일에도 간섭할 수 없네. 관여할 수 있는 것은 본인에 엮인 일이거나 ‘고서’에 대한 것뿐. 그것이 규칙이야.”
그 뒤로도 여러 궁금한 점을 여쭈었고 방장 스님은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내가 들은 이야기는 절대 평온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

수호신승. 그것이 사부의 위치였다.
사부가 항상 떠벌리듯 ‘나는 고독한 은거기인이야.’라고 하는 말도, 또 어디 가지도 않는데 옷이며 신이며 사들이고 한 번도 쓰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가고 납득이 갔다.
그리고 미령이를 구하는데 어째서 신원을 확인해야 했는지도.
세상 누구보다 강한 최강의 고서를 지녔으나 소림 밖으로는 일절 나갈 수 없으며 무림의 일에 관여할 수도 없다.
“그런데 사부. 사부가 지닌 고서는 어떤 거예요?”
“알 것 없다.”
“왜요? 좀 보여 주세요.”
“알 것 없다지 않느냐!”
깜짝이야. 갑자기 왜 소리는 치고 난리람. 사부는 자신이 소리를 친 것이 조금 과했다 생각했는지 사과와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하구나.”
사부는 그 뒤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갑자기 분위기가 무겁게 바뀌니 나도 더 이상 보여 달라고 조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사부가 소리칠 때 보였던 얼굴에 어린 표정. 그 눈빛.
그것은 증오와 후회였다.
어째서일까. 고서의 주인이 되어서 한평생을 소림에서 갇혀 지내는 것 때문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감정이 짙은 것이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어쩐지 사부가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사부는 지쳐서 엎드려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몸을 홱 일으키며 날 똑바로 바라보고 이렇게 말했기에 깜짝 놀랐다.
“너. 지금 이 사부를 불쌍하다고 생각했지?”
“독심술이라도 익힌 겁니까.”
그쯤은 별일도 아니라며 사부가 말했다. 어느새 조금 전에 보였던 침울함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제자야. 그거 아느냐? 너는 내 제자다.”
“그런데요?”
사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건 분명 사악했다.
“다음 대 수호신승은 네놈이 될 거란 소리지.”
……뭐? 진심으로 화들짝 놀라 버렸다.
“잠시만요! 누구 마음대로!”
“사부의 유지는 제자가 잇는다― 라는 관례에 따라서지. 어쩌지 제자야. 이제는 네가 불쌍해 보이는구나.”
우는 시늉까지 하는 사부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마구니로 보였음은 당연하다.
그보다 작금 당면한 사태를 타파하는 것이 최우선인 것이다. 사부의 말대로 나는 사부의 제자다. 그리고 사부는 소림의 수호신승. 숭산에 갇혀 사는, 가련한 새장 속의 새. 내가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하니 갑자기 암담해졌다.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할 것 없느니라. 오히려 좋은 기회일 수도 있어. 천하제일인이 될 수도 있고, 게다가 봉급도 제법 세거든.”
“진지하게 설득하지 말아 주실래요.”
퉁명스런 내 말에 사부는 낄낄거리며 술을 마셨다. 그리고 보니 이곳에서 생활하는 데에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사부는 가끔이지만 고급주를 마실 수 있었고, 나에게 용돈까지 쥐어 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령이 상태가 저러한데 소림에 묶여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현명한 다른 이의 도움을 빌리면 된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까, 하고 생각할 찰나였다.
“그건 안 돼.”
지금껏 조용히 있던 미령이, 아니, 란이 입을 열었다.
여전히 목각인형처럼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손을 들어 나를 가리킨다.
그리고 ‘고서’는 말했다.
“내가 선택할 거다.”

***

“고서여. 인간의 탈을 점령하는 쯤에서 욕심을 거두어라. 내 제자는 건들지 마.”
사부는 호기롭게 말했으나 고서, 란은 고개도 젓지 않고 부정했다.
“싫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포기하는 게 좋을 게다. 요놈은 내 제자거든. 사부와 제자의 끈끈한 관계에 대하여 일전에 말했었지? 그걸 생각한다면 내 제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당연하지 않겠느냐.”
“모른다.”
“말이 짧은 게 심히 거슬리는구나. 인간의 몸으로 있다면 응당 사람을 대함에 있어 예를 지켜야 하는 거다. 그리고 포기해!”
“…….”
란은, 이제는 한마디 말도 안 하는 것으로 부정을 드러내는 묘한 상황을 연출했다. 정말 확실하여 알기 좋다만, 사부는 알기 싫은 듯 보였다.
이쯤에서 사부가 “이 망할 고서가아!”하면서 열을 내었기에 나는 제자 된 도리 따위 무시하고서 구경해 주었다. 재밌네. 사부가 폭주하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잠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사부가 숨을 고르며 날 바라보았다.
“안 말리냐?”
“더해 보시죠. 보기 좋은데요.”
항상 선택이라는 폭이 극히 좁았던 나였기에, 나를 두고 벌어지는 지금의 상황은 즐기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사부가 황소처럼 씩씩대는 모습이 재밌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정말 수호신승이나 달마역근경,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아니다. 수호신승이 되어서 소림에 묶여 있기는 싫고, 달마역근경을 선택한다 해도 똑같지 않을까. 내 품에 꼭 안겨 있는 미령이의 혼이 들어 있는 달마역근경. 나에게는 이것만이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즐겁게 웃고는 있지만 오히려 이 웃음은 어딘가 그늘져 있는 것이다.
미령이를 되돌릴 방법은 아직 모른다.
방장 스님을 찾아뵈었을 때에도 그 부분은 알아보고 있다고만 하였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를 위해 원로원이 총동원하여 옛 문서 등을 살펴보고 있다는 말에 한없이 송구하며 감사했다. 물론 내 사부에게선 바랄 수가 없겠다.
어떤 방안이라도 나온다면, 설혹 그것이 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일지언정, 나는 망설이지 않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이제 사부는 씩씩거리며 란을 매섭게 노려보는 것을 그만두고는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자야, 뭐 좋은 방법 없을까?”
“음. 접근 방법을 바꿔 보심이 어떨까요.”
“그거 좋구나. 뭐가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사부는 제자의 조언을 적극 받아들이는 혁신적인 노력을 선보였다.
“잘 들어라. 요놈이 말이야, 머리도 나쁘고 근골도 썩 훌륭하지 않아. 거기다 어찌나 게으른지. 봐라, 사부인 내가 술병을 쥐고 있는데 안주를 대령할 생각이 없어.”
본격적으로 제자를 비하하고 나선 것이다.
거기다 어째 그 관계는 사부와 제자가 아니라 주인과 하인 같잖아.
어이가 없어 사부를 바라보자니 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미령이의 몸으로, 미령의 목소리로, 딱딱하게 말하고 있었다.
“선택을 하는 것에 성실함도 근골도 명석함도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교감. 저 인간과 나는, 교감이 되었다. 알고 있을 텐데.”
사부는 끙, 하며 이마를 구겼다. 아무튼 신기한 일이었다.
난 해 본 적도 없는 교감이 되었다는 말에 과연 그 교감이란 것이 뭘까 하고 생각해보았으나 모르겠다. 설마 남녀가 나눈다는 그런 교감은 아닐 테니까.
란은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제법 사람을 바라보며 말할 줄도 안다는 게 씁쓸했다.
“일전에 내 ‘의지’가 전달된 것이 그 증명이다.”
생각났다. 그때, 꺼내 달라는 음성을 최초로 들었던 그날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확실히 귀로 들린 음성은 아니었으니 ‘의지의 전달’ 이라고 말하여도 손색이 없다만. 어쩐지 궁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딱히 대체할 다른 말도 모르기에 그냥 들었다고 가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왜 난 들을 수 있던 거야?”
“모른다.”
아아. 시원스러운 대답에 멍청히 있자, 잠시 가만히 있던 란은 덧붙이듯 보충했다.
“아마 이 소녀와 네가 남매라는 것에서 이유가 발생했을지도.”
과연, 나는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항상 미령이 생각을 하듯, 미령이 또한 항상 이 오라버니를 생각했을 터였다. 그렇게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튼 못 준다! 안 줘! 수호신승 때려치고 강호 유람 갈 거라고!”
음침한 계략을 드러내는 사부였다.
그런 속셈이었던 겁니까. 비록 답답해 할 만도 하나 사부가 소림을 떠난다는 걸 생각하면, 세상에 민폐이기 때문에 안 된다. 그래도 괘씸해서 무어라고 말할 때였다.
방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시오.”

***

익숙하여 오히려 불안한 목소리였다.
이윽고 문을 연 나는 깜짝 놀랐다.
“지, 집법당주님!”
방문 밖에는 소림사에서 가장 무섭다는 집법당주님이 무거운 얼굴로 서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부는 마치 파국에서 벗어날 기막힌 방도가 떠올랐다는 듯 벌떡 일어나 집법당주님을 가리켰다.
“옳거니! 저놈을 네게 주겠다!”
인권에 대한 존중은 터럭만큼도 없는 과감한 결단이다. 가히 사부답다 할 수 있었다. 다만 일의 전후를 모르는 집법당주님의 얼굴이 울긋불긋해졌기에 나는 사부 대신 집법당주님께 사과를 해야 했다.
“지금 사부가 과음해서 제정신이 아닙니다, 당주님. 부디 분기를 거두어 주십시오. 사부도 그만 좀 해요.”
그리고 사부를 돌아보자 그곳은 이미 열띤 토론의 장, 아니, 설득의 열기로 후끈거리고 있었다.
“저놈이 지금은 저래 보여도 나름 괜찮은 놈이라고. 성격이 글러먹어서 그렇지 근골도 썩 훌륭해.”
“싫다.”
“아 그렇지. 교감이라고 했더냐. 자, 그럼 잘 봐라. 저놈 나이가 들었지만 꽤 잘생기지 않았느냐? 젊을 땐 제법 인기도 좋았다고. 거기다 동정이다.”
이보세요. 대체 어디까지 후끈거리실 겁니까.
전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는 비키거라.”
소림의 율법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집법당주님은 날 밀치고는 신을 가지런히 벗고 방에 들어섰다.
그리고 여전히 란과 말도 안 되는 것들로 옥신각신하는 사부에게 뭔가를 척 내민 것이었다.
“소림 법령 제이십삼조 이항에 의거, 판결을 내렸소.”
사부는 란과 다투던 걸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그건 사형 생각이고. 숭산의 절경을 훼손한 것이 죄목이고 벌금형이오. 그 정도 선에서 그친 걸 감사히 여기시오.”
백보신권을 시전했던 그날 돌산을 부순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하긴, 별다른 피해가 없다 하여도 그저 넘어갈 만한 사건은 아니다. 산사태를 유발하였으니까.
사부는 돈이라면 있다는 태도로 거만하게 말했다.
“얼만데?”
“황금 일만 냥. 봉급에서 제할 것이오.”
뭐어!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방금, 제대로 들은 것 맞지? 황금 일만 냥이라면 어마어마한 금액이잖아. 궁전을 사고도 남을 돈일 터. 사부가 낼 수 있는 액수가 아닌 것이다.
사부 역시 믿기지 않는 다는 듯이 재차 물었다.
“잘못 들어서 그런데, ‘은자’ 일만 냥이라고?”
“‘황금’이오.”
사태 파악이 되었는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사부는 손가락을 들어,
“사실 저놈이 범인이다.”
나에게 뒤집어씌웠다.
역시 사부는 임기응변의 달인이다, 라고 감탄할 때가 아니잖아. 방금 전까지 그렇게 읊어대던 사부와 제자의 끈끈한 관계란 이런 거였냐!
하지만 현명하신 집법당주님은 헛소리 말라며 죄목과 벌금이 적힌 문서를 사부의 품에 안겨 주어 사부를 공황 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역시 소림의 율법을 관리하는 집법당주님은 참으로 지혜로운 분이시다. 몸을 돌려 나가시는 뒷모습에서 후광이 비추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