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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전 1권(16화)
第七章 수호신승의 보구(3)


문득 방을 나가시던 집법당주님이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제자 일원은 나를 따라오거라.”
난 무슨 일인지 몰라 눈만 끔뻑거리며 사부를 바라보았지만 도움을 받기엔 글렀다.
“아아아아……. 아아아아…….”
사부는 바닥에 주저앉아 입으로 영혼이 빠져나가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 안쓰러워 보였다. 아무리 봉급이 세다 해도 황금 일만 냥이면 무지하게 오래 일하라는 것이 아닌가.
어, 잠깐. 봉급이라고? 일을 해 주는 대가로 받는 금전적 대가가 봉급이다. 그런데 소림의 제자가, 소림에서 봉급을 받는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곧 납득했다.
말이 좋아 ‘수호신승’이지, 사부는 소림에 갇혀 있다. 자유롭지 못하다. ‘고서’에 관련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선 일절 관여해서는 아니 된다. 때문에 소림은 최소한의 자비로, 수호신승에게 돈을 주는 것일 테다. 부족함 없이 지내라면서. 물론 사부는 그 부분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돈을 쥐어 주며 세상일은 관심 끄고 갇혀 살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기분일까.
잠시 생각하던 나는 순간 엄청난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사부. 벌금 다 갚으려면 절대 수호신승 그만둘 수 없겠네요? 아니 죽을 때까지 해도 불가능할걸요.”
그 뒤로 사부가 얼굴을 감싸며 비명을 내지른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

나는 집법당주님을 쫓아 산속을 걷는 중이었다.
무엇 때문에 보자고 했는지 궁금하였지만, 저 무시무시한 등에 대고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아 조용히 따라갔다.
어딘가 낯이 익은 길이었다. 내가 잘 아는 곳으로 향하는 듯 익숙하다 못해, 예감이 적중해 버렸다.
내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연화봉의 정상에 지어진 연봉정 앞이었다.
일전에 사부가 백보신권을 펼쳐 바위산을 격파한 그곳, 그 자리에서 법의 대명사 집법당주님을 마주하는 것은 꽤 곤란한 일이었다. 설마 그 일의 책임을 나에게도 물으시려는 건 아니겠지?
연봉정에 도착한 집법당주님이 내게 말했다.
“봉을 가져와라.”
참 신기하게도 연봉정 앞에는 기다란 나무 봉이 준비되어 있었다. 정자 주제에 준비가 철저한 놈이라는 헛생각을 품고 당주님께 공손히 봉을 드렸다.
봉을 건네받은 집법당주님은 다짜고짜 말씀하셨다.
“덤벼라.”
“……네?”
“네 실력을 봐야겠다. 삼초식을 양보할 테니 사양 말고 덤비거라.”
비무를 하자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 같다. 그런데 비무 치고는 집법당주님의 표정이 무섭기 짝이 없다. 딱딱하게 굳어 있잖아. 뭔가, 집법당주님께 잘못을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금세 떠올릴 수 있었다.
“저…… 혹시 당주님. 일전에 제가 오대세가 녀석들을 때린 것 때문에 그렇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때는 저도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만…….”
“그런 거라면 오히려 그 녀석들을 혼냈을 거다. 그놈들이 널 괴롭히지 않았느냐?”
“……어? 알고 계셨어요?”
“방장 스님과 이사형이 묵인하라 하여 묵인했다. 하지만 난 그 원인을 제공한 너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놈들이 더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지만. 어쨌든 시작하거라.”
역시 원흉은 사부였다― 라는 말로 끝날 것이 아니었다. 방장 스님마저 알고 계셨으면서 왜 묵인하라 하였을까.
어른들의 생각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난 자세를 잡았다. 다리를 벌리고 무릎을 살짝 굽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 가겠습니다.”
말 그대로 난 가기는 갔다. 하지만 한 번도 주먹에 뭔가 닿는 느낌은 없었다.
삼초식이 허황되게 날아갔다. 난 열심히 주먹을 휘두르고 각법도 써 봤으나 집법당주님을 스치지도 못했다. 삼초식이 끝나자 집법당주님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제 내가 가마.”
말 그대로 오셔서 날 호되게 두드려 패 주었다. 낭창낭창 휘어지는 봉 맛은 정말 매웠다.
역시, 내가 잘못한 게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할 순 없다.
“이얍!”
기회를 엿보다 날렵하게 뛰어들며 맹렬하게 주먹을 뻗었다.
딱!
해냈다. 드디어 주먹에서 느낌이 온 것이다. 그건 지극히도 강렬한 통증. 주먹이 찌릿찌릿거린다. 집법당주님은 봉만 간단하게 움직여 내 주먹을 막아 낸 것이다.
“그렇게 솔직한 공격에 맞아 줄 적은 이 세상에 없다. 넌 적에게도 예를 차리며 공격할 셈인가?”
“다, 다시 갑니다.”
그리고 몇 번 더 공격을 하였으나 모두가 막혔다. 아니, 막았다기 보다는 봉으로 내 주먹을 사정없이 후려갈긴 느낌이었다. 주먹이 퉁퉁 붓는 것 같다.
안 되겠는지 집법당주님은 봉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혀를 찼다.
“한심하군. 사형은 대체 뭘 가르쳤단 말인가.”
술 상 차리는 법과 아침 운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라고 대답하기는 성의 없어 보일 까 봐 참았다. 그래도 조금 오기가 나는 것이다.
혀를 차는 집법당주님의 자세는 상당히 풀어져 있었다. 마치 나와의 비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아니, 나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듯한 자세다. 이때다. 나는 갑자기 홱 달려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집법당주님의 명치로 주먹을 휘둘렀으나 슬쩍 내민 손바닥에 막혔다. 하지만, 이걸 노린 거다.
“이야아아압!”
텅―
주먹 끝에서 작은 충격이 일어났다. 백보신권은 백 보 밖까지 권세가 뻗쳐 나가는 절세의 무공이다. 기를 배출하는 것은 내 십 년짜리 내공으로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아니야.
손바닥으로 막고 있던 집법당주님의 몸이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뒤로 훌쩍 물러났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진정 노린 수는 이것이었다.
나는 더 깊이 파고들었다.
집법당주님의 처음으로 놀란 얼굴을 보니 자신감이 더욱 붙었다.
상대가 빈틈이 없다면 그 틈을 만들어 그때를 노린다. 언제고 사부가 내게 해 준 말이었다.
틈은 만들어졌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어. 오의심공의 구결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온몸이 뜨거워졌다.
쿵.
묵직한 진각을 밟고, 그대로 주먹을 뻗는다.
“백보신권!”
쩌엉―!
내 주먹 끝에 걸린 허공이 쪼개진 것처럼 보였다.
마치 일전에 사부가 펼쳤던 그때처럼.

***

소음이 크게 울리고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나는 속에서 뭔가 울컥 튀어나올 것 같아 헛구역질을 했다. 정말 말 그대로 필사적으로 참아 냈다. 먹먹했던 귀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먼지도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집법당주님을 볼 수 있었다.
집법당주님은 쌍장을 앞으로 내민 상태였다. 땀도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실패였나, 하고 있을 때 난 무언가를 보았다.
천천히 손을 내리는 집법당주님의 소매는 잔뜩 뜯겨 나가 그 두터운 팔뚝까지 보이고 있었다. 어떤 만족감이 내 안에서 퍼져 나갔다.
“이 연환 공격은 쓸만하구나.”
“감사합니다!”
소매가 찢겨나간 것 외엔 별일 없다는 듯 서 있는 집법당주님은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옷값은 별도 청구하겠다고 하셨기에 기운이 빠졌다.
그래도 칭찬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에게 저런 말을 들으니, 기분은 참 좋았다.
나는 흐트러진 자세를 정리하고 정중히 읍을 해 보였다.
“오늘 가르침, 깊이 새기겠습니다.”
나는 비무를 해 본 것이 처음이었다. 생각해 보니 무공을 배운 것도 혼자 익히는 것 외에는 없었다.
‘경험이 곧 실력이다’라는 말이 있다. 때문에 이 비무가 나에게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주었는지는 말 안 해도 알겠다.
“그런데 당주님. 질문이 있습니다.”
착실한 학생처럼 말하자, 집법당주님이 고개를 끄덕였기에 나는 말을 이었다.
“사부에게 내린 벌금형이 과한 것 같습니다. 조금 면제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뭐, 그래도 난 사부의 제자고 사부가 좋다. 그런 사부에게 조금 가혹한 벌 같아 정정을 요구했으나 들려오는 말은 앙금이 깊었다.
“나는 네 사부가 싫다.”
물론 사부는 소림이 금기시한 대부분의 법을 어기고 다니기 때문에, 법을 주관하는 집법당주님께서 싫어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보기에 지나치게 이를 악물고 계신 것이다.
“정확히는 네 사부의 위치가 싫다. 수호신승. 말이 좋지만 그 위치 때문에, 고서 때문에.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 당면한 소림의 위기를 너는 아느냐?”
과거란 말이 거슬렸지만 더 캐물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들’. 고서의 회수를 목적으로 하는 ‘고서의 주인’들이 소림에 오고 있다는 건 역시 집법당주님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그렇다면 오늘 나에게 비무를 통해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신 건, 적들로부터 나 스스로를 보호하게 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아닌 척하지만 집법당주님도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져 고마웠다. 그런데 말로 해 줬으면 더 좋겠다. 이런 식은 무서우니까.
집법당주님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얼굴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젓고는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벌금형은 내 결정이 아니다. 소림법 제이십삼조 이항은 방장의 절대명령권이니까.”
“네? 큰 사백님이 왜 그런 결정을…….”
“방장 스님은 네가 소림을 떠날 것을 바라고 계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나는 생각해 보았다.
방장 스님은 미령이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찾는 중이다. 그런데 일부러 사부에게 큰 벌금형을 과부해 수호신승의 역할을 계속하게 만드셨다. 나에게 승계되지 못하게. 그리고 내가 소림에서 떠나길 바란다.
그렇다면……?
갑자기 가슴이 벅차올랐다.
“방법을 찾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