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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마도 1권 (22화)


또한 귀살각의 추격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직접 마차를 몰았을 것이다. 천마총으로 가는 길은 외인에게 알릴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세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자 교일지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차 바깥으로 몸을 뺀 다음 마부의 옆자리에 앉았다.
마부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는 교일지의 목소리가 말발굽 사이에 묻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마도 이제 자신이 마차를 몰겠다고 마부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구양운의 시선이 정려군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교일지가 마차를 몰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구양운이 정려군과 긴밀히 나눠야 할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곧 헤어지겠군.”
구양운의 말에 정려군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러자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렇겠지요. 저 역시 천마총 안까지 따라갈 생각은 없으니 말이에요.”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덜커덩.
그때 마침 마차가 잠시 멈춰서며 마부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마차가 출발하려는 찰나였다.
“두 분, 백년해로(百年偕老) 하십시오!”
마부가 이쪽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마도 정말 혼례단이라고 생각한 마부는 축하의 말을 건넨 것이다. 그렇게 마차를 끄는 말들은 다시 부지런히 달리기 시작했다.
정려군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술이 없다는 게 안타깝군요.”
정려군은 실제로 아직 혼례도 올리지 않은 처녀였다.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게 참으로 쑥스러웠다.
그 모습에 구양운의 입가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그래도 한동안 술 마시는 걸 자제하도록 해. 목표는 나지만 혹시 당신도 표적이 될 수 있으니…….”
“후훗, 제 걱정을 해 주시는 건가요? 이래 봬도 개방의 당주입니다. 목숨이 질기니 걱정 마세요.”
그 말에 왠지 구양운은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다.
구양운은 귀살각을 따돌릴 길을 이미 생각해 두었으나 정려군과는 곧 헤어지게 되니 걱정이 안 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정려군은 구양운에게 필요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구양운이 전음으로 정려군에게 말을 건넸다.
정려군의 눈에 비친 구양운의 눈빛은 진지했다.
“무엇인가요?”
“천마총에서 나오고 난 뒤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군.”
“마교의 비호(庇護)를 받고 있는 소협께서 제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려군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구양운을 쳐다보았다. 정려군이 구양운과 함께 동행을 한 것은 수상쩍은 사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내는 역시나 크나큰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천마총.
그것은 결코 가벼운 이름이 아니었다.
아마 다시 복귀해서 이 사실을 알린다면 특급 기밀로 분류되어 회의를 거칠 것이다.
“제가 언젠가 소협에게 말을 한 적이 있죠. 제가 바라보는 지금의 시기는 폭풍전야라고요.”
구양운과 동행한 지 얼마되지 않아 그가 무림의 정세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정려군 자신의 견해를 말하기를 폭풍전야라고 표현했었다.
구양운도 그 기억이 나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는 천하제일의 검공이라는 구유수라마검이 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왜지?”
“이 검공으로 인해 정사의 균형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요.”
구양운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정려군이 그 표정에 뾰로통하게 대꾸했다.
“왜 웃어요? 제 말이 재밌어요?”
“아니,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어. 나는 구유수라마검을 마교에 가져다 줄 생각이 없으니.”
정려군 눈동자가 커졌다.
구양운의 진중한 목소리가 다시 정려군의 귓가에 울렸다.
“그래서 당신이 필요해.”
“생각했던 것보다도 소협은 더 위험한 사내군요.”
정려군은 이내 실소를 짓더니 소매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구양운에게 내밀었다.
구양운이 한 손을 내밀자 그 안에 있는 것은 하나의 동전이었다.
“어디서든 이것을 거지에게 적선(積善)한다면 절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구양운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것을 품 안에 넣었다.
정려군이 결정할 만한 사안은 아니었으나 자신도 구미가 당기는 거래였기 때문에 우선은 응한 것이다.
서로의 생각을 확인한 이상 다시 연락할 방법이 필요했다.
“이제 정말 작별을 해야겠군요.”
서로 전하고자 하는 말이 끝났다고 생각한 정려군은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그렇게 됐군.”
구양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챠르륵.
정려군은 머리를 틀어 올린 혼례 장신구를 벗어 버렸다.
크고 작은 구슬들이 가득한 장신구들이 없어지니 윤기 나는 흑발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지금까지처럼 꾸미지 않는 정려군의 모습이었다.
마차를 모는 교일지도 안에서 하는 대화를 듣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워워.”
교일지가 마차를 세우자 정려군이 마차 바깥으로 내렸다.
구양운도 따라 나온 뒤 정려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지?”
“안전을 위해 정파의 기점인 사천으로 갈까 해요.”
말을 하면서 정려군은 마차를 끌던 말을 하나 빼내었다. 그리고 익숙하게 그 위로 올라탔다.
한 마리의 새처럼 날렵한 동작이었다.
정려군이 말 위에 올라타서 구양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정려군은 싱그럽게 웃음을 지었다.
“그럼 보중(保重)하세요.”
양손으로 가볍게 포권을 지으며 정려군이 말했다. 구양운도 정려군의 작별 인사에 똑같이 포권을 지으며 인사를 받았다.
“이럇!”
정려군의 짧은 기합 소리를 내며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달그락달그락.
말은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정려군의 입고 있는 하늘하늘한 붉은색의 혼례복이 칠흑 같은 머리카락과 함께 바람에 휘날렸다.
구양운은 잠시 서서 정려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마차를 끌던 다른 말들을 풀어서 고삐를 쥐었다.
“우리도 말로 갈아타고 움직이지.”
“마차를 버리면 냄새를 숨길 수 없을 텐데 괜찮겠어요?”
교일지는 질문을 하면서도 빠른 몸놀림으로 말 위로 몸을 띄웠다.
“어차피 지금쯤이면 눈치챘을 테지. 만만한 놈들이 아니니…… 좀 더 속도를 내어서 가자.”
구양운도 순식간에 말을 타고 가볍게 발로 찼다.
히이잉.
교일지와 구양운을 태운 말이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두 사람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천마총을 향해 내달렸다.
앞을 보며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교일지의 시선은 구양운의 등으로 가득 채워졌다.
왜인지 갑자기 가슴속이 먹먹해져 옴을 느꼈다.
이제는 잊어 버릴 법한 가물가물해져 버린 어렸을 적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한때는 이렇게 말을 타고 이 사내와 함께 달리는 것이 바로 자신의 꿈이었다.
순간 교일지가 구양운을 쳐다보는 눈빛이 어느 순간 미묘하게 변했다.

“일지야, 그리 살수가 되고 싶으냐?”

자신이 아주 어렸던 어느 날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아비인 암영대주 교단생에게 살수가 되겠다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그때 아비는 아주 침중한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꼭 아비가 살수라고 너까지 그리 되라는 법은 없다. 아니, 오히려 넌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당시 아버지의 따뜻하고 커다란 손이 자신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교단생의 따뜻한 눈빛이 바로 코앞에 아른거렸다.
‘아비는 말이다. 네가 평범한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구나. 여인이니 사랑하는 사내를 만나서 아이를 갖고 한평생을 사랑받으면서 사는 그런 삶 말이다.’
귀에서 들리는 교단생의 따스한 목소리는 녹아들 만큼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절절히 느끼게 해줬다.
교일지는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아이였다.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하던 교일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애초부터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의 원하는 삶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아버지 저는 살수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암영대에 들어가는 게 소원이에요.’
‘왜 그리 생각하는 것이냐? 살수는 사람을 죽인 만큼의 업보를 짊어지고 가는 길이다. 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구나.’
추궁하는 듯한 아비의 질문에 교일지는 더더욱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은 얼마 전에 한 사내를 보았다. 호기심에 암영대의 훈련을 훔쳐본 것이 발단이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그 사내가 하는 결투를 보게 됐다.
그것은 그저 비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도 치열한 현장이었다. 살과 피가 튀기는 그곳에 그 사내는 독보적이었다.
어느 순간 자신은 그 사내의 강함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저곳에 자신도 당당하게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 사내와 같은 곳을 향해 달리며 싸우고 싶었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열망이었다.
하지만 이런 솔직한 마음을 꺼내기가 쑥스러웠다. 그것도 그 사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비의 앞이면 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묻지 마시고 제 청을 들어주세요. 암영대의 기술을…… 저에게도 전수해 주세요, 아버지.’
그 당시 어린 자신에게 그것은 아주 중대한 결심이었다.
잠시 과거를 회상한 교일지는 구양운의 뒷모습을 다시 빤히 쳐다보았다.
어린 교일지의 눈에는 이 사내만큼 커다란 등을 가진 자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한때나마 이렇게 뒷모습을 바라보며 달리는 것은 바로 자신의 꿈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얼마 못 가 깨어졌다.
천마총으로 간 자신의 아비가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오직 한 사람 그 사내라는 사실도 듣게 되었다.
화가 치솟았다.
자신이 사랑했던 아비가 죽고 암영대 모두가 전멸했는데 혼자서만 살아 돌아온 그 사내가 미치도록 미웠다.
동경했던 마음은 미움이 되고 다시 증오로 변한 지 이미 오래였다.
벌써 십 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다시 교일지의 눈앞에 나타난 그 사내는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회상에 빠진 교일지의 귓가에 다시금 사공악의 그림자 일영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그를 죽여라.’
교일지의 눈동자가 어두운 색깔을 띠었다.
명령을 어길 생각 따윈 없다.
어차피 십 년 전에 자신의 아비와 함께 묻혔어야 했다. 지금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말이 힘차게 땅을 짚고 나아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서두르라고.”
갑자기 구양운의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리며 그가 교일지를 향해 뒤돌아봤다.
구양운의 모습 뒤로는 해가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그림 한 폭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해가 떠오르자 한순간 하늘이 핏빛을 머금은 듯 붉게 변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덩달아 붉게 물든 구양운의 얼굴색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교일지는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과 반대로 툴툴대는 말투로 대꾸했다.
“재촉하지 마요, 바짝 쫓아가고 있으니 말이에요.”
퉁명스러운 교일지의 말에 구양운도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말을 모는 것에 전념했다.
교일지는 손에 쥐고 있는 말고삐를 더 강하게 움켜쥘 뿐이었다.
구양운의 시야에는 드디어 푸르른 강이 들어왔다.
이 강만 건너면 천마총이다.
천마총의 입구를 아는 자는 많지 않다. 이곳만 건너면 안전했다.
구양운은 말을 바삐 몰면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금화객잔에서 점소이에게 시킨 마지막 안배가 이 부근 강가에 배를 준비해달라는 것이었다.
마침 구양운의 눈에 한 노인이 들어왔다.
그 노인은 작은 배 한 척 위에 몸을 싣고 있었다. 바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얼마 남지 않은 거리이기에 구양운은 힘차게 말을 재촉했다. 밤새도록 달려온 말은 지쳐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목적지가 코앞이다.
속도를 낸 구양운은 금세 노인의 앞에 도착했다.
서둘러 말에서 내린 구양운은 노인을 보며 말을 건넸다.
“제가 배를 타기로 한 사람입니다.”
배를 탄 채로 구부정하게 앉아 있던 노인은 구양운과 바로 옆에 서 있는 교일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서 타쇼. 미리 언질 받았으니 원하는 곳까지 모셔다 드립죠.”
“사공은 필요치 않습니다. 이 배만 사죠.”
구양운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품에서 다시 한 번 전낭을 꺼내 노인 앞으로 건넸다.
꺼림칙한 표정으로 전낭을 받은 노인은 대놓고 그 앞에서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바로 노인의 표정은 경악스럽게 바뀌었다.
이 배는 허름할 뿐더러 아주 조그맣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