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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마도 1권 (23화)


그런 배에 값어치에 비해 구양운이 건네 준 돈은 당치도 않을 만큼 큰돈이었다.
노인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편한 대로 하쇼. 하지만 나중에 다시 물러달라고 해도 소용없는 거요.”
노인은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거래라면 대환영이다.
구양운은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배에 몸을 실었다.
교일지도 말없이 구양운을 따라 배에 탔다.
평생 사공으로만 근근이 생활한 노인이 이런 거액을 쉽게 만지기란 어렵다. 금세 표정이 밝아진 노인은 얼른 배에서 내린 뒤 배가 강으로 빨리 나갈 수 있게끔 밀어 줬다.
구양운은 자신이 타고 온 말 두 필을 보더니 노인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타고 온 말 또한 노인장께 드리죠.”
구양운에게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주고 가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해서 꺼낸 말이었다.
그 말에 감격한 노인은 눈물까지 맺힐 지경이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노인은 횡재한 날이라고 생각하며 너무 기쁜 나머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구양운의 배가 강 안쪽으로 들어서자 노인은 물가에서 나와 말 두 필의 고삐를 양손에 쥐고 어딘가로 총총히 사라졌다.
구양운은 노를 저었다. 어느 정도 저으니 배를 띄운 부두와는 제법 거리가 멀어졌다.
교일지는 구양운을 힐끔 쳐다보았다.
교일지도 암영대주의 딸이었기에 천마총에 대해 남들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그곳에 직접 들어갔다 온 구양운만큼은 아니었다.
천마총의 입구라는 것도 기밀 중에도 기밀이었기 때문에 교일지 역시 지레짐작할 뿐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했다.
교일지가 천마총에 대해 구양운에게 말을 건네려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구양운은 갑자기 배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구양운의 예민한 감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그의 귀가 꿈틀거렸다.
순식간에 여러 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구양운은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귀살각이 추격해 온 것이다.
어차피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는 그들로서는 기척을 감출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오히려 귀살각의 아홉 명은 자신의 기척을 드러내며 다가왔다.
짐승들이 먹이를 사냥하듯 구양운이 절망에 빠지기를 바라며 그것을 즐기려고 하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구양운은 서 있는 곳은 이미 안전했다.
땅에서부터 구양운에게까지 무려 십여 장 정도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아무리 절세고수라 할지라도 이 먼 거리를 도약해 구양운에게 공격을 가할 수는 없다.
아홉 개의 기척이 강의 건너편에 드러났다. 그리고 아홉 개의 그림자는 모두 순식간에 사람의 형상으로 갖추어졌다.
배 위에 몸을 세운 구양운의 옷자락은 바람으로 인해 휘날렸다.
귀살각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구양운의 입꼬리가 세로로 올라갔다.
누가 봐도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일발귀견수라는 도일맹도 이제 한물갔나 보군.”
내공을 담아 외친 구양운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강가에 진동했다.
“닥쳐라!”
그 말에 울컥한 율금무는 날카롭게 외쳤다.
구양운의 시선은 귀살각의 아홉 명 하나하나를 훑고 지나갔다.
아마 엄청난 속도로 자신을 쫓아왔을 것이다.
모든 게 자신의 계획대로 됐을 때 귀살각이 가장 빠르게 추격을 한다면 이렇게 마주칠 지도 모른다는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이 이렇게 적중한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번에는 구양운의 승리였다.
하지만 도일맹은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구양운을 향해 말했다.
“한 번 나를 따돌렸다고 해서 평생 도망갈 수 있으리라 여기는가?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겨라.”
도일맹의 새하얀 눈동자가 독사처럼 표독스럽게 빛이 났다.
누가 본다고 해도 소름이 돋을 만큼 지독한 눈동자였다.
절대 구양운을 놔주지 않겠다는 그의 일념이 강하게 담겨 있었다.
“귀살각의 일인을 죽였다는 것 이것은 기필코 네놈의 피로써 갚아야 된다는 것을 명심해라. 기다려라, 넌 우리가 죽인다.”
도일맹이 구양운에게 명백한 경고를 날린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구양운의 표정은 일말의 변화조차 없었다.
“다시 보자고 하는 놈이 말이 많군. 그동안 날 쫓느라 고생했다.”
오히려 구양운은 여유로운 말투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참다못한 귀살각 중 한 명이 강으로 뛰어들려고 하자 도일맹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진정해라.”
도일맹은 장님이라고는 하나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구양운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결코 도약만으로는 다가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막내 초련운을 죽인 범인을 이렇게 놓치는 것은 분통 터지는 일이었다.
율금무가 구양운을 향해 노기를 터뜨렸다.
“살고 싶다면 천마총에서 나오지 마라. 무저갱에서 목숨을 연명한 것처럼 평생을 어둠 속에 숨어 지내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게 나을게다.”
그리고 율금무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귀살각 그들의 경고는 사실이다. 평생을 추격해 온다면 아무리 구양운이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맞닥뜨리게 되어 있었다.
“웃기는 소리!”
구양운의 안광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폭사되어 쏟아져 나왔다.
“너희들이야말로 나를 건드린 것을 평생 후회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구양운의 성난 목소리가 귀살각 모두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 이글거리는 듯한 눈동자를 마주한 귀살각 모두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구양운의 전신에서 쏘아지는 살기가 섬뜩하리만큼 가슴으로 느껴졌다.
분명 구양운 혼자서는 자신들 아홉 명을 상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오싹한 한기는 등골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금세 정신을 차린 율금무는 잠시나마 구양운에게 겁을 먹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했다.
율금무의 신형이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져 갔다.
“형니임!”
다른 귀살각의 아우들이 다급하게 율금무의 뒤를 쫓았다. 강가로 들어온 그들은 순식간에 허리춤까지 물에 잠겼다.
“으아아아! 구양운, 죽여 버리겠다!”
감히 자신을 향해 이를 드러낸 구양운을 향해 율금무는 노성을 토해 냈다.
율금무의 강렬한 외침과 함께 그의 검이 구양운을 향해 한일(一)자로 쏘아져 나갔다.
율금무는 이대로 구양운을 보낼 수가 없었다.
구양운의 사지 중 하나라도 가져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검이 움직였다.
정확히 구양운이라는 목표물을 향해 순식간에 나아갔다. 눈으로 쫓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구양운의 손에는 어느 샌가 장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채애앵!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검이 사정권 안에 들어오자 가차 없이 쳐 냈다.
그것에 맞아 줄 만큼 구양운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목표물을 잃은 율금무의 검은 힘없이 물속으로 빠졌다.
“그럼 또 보지.”
구양운은 오히려 귀살각을 쳐다보며 웃었다.
멀어져 가는 구양운을 바라보며 귀살각은 망연자실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처음에 구양운을 죽이려 했던 것은 교주의 명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구양운을 놔줄 생각이 없었다.
도일맹의 귀신같이 하얀 눈동자가 허공을 향하며 나지막이 말을 했다.
“이번이 끝이 아니니 상심치 말거라. 어차피 놈이 갈 곳은 정해져 있지 않느냐.”
치솟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아우들을 보며 도일맹이 말을 건넸다.
“당장이라도 배를 구해서 쫓읍시다. 큰형님”
동조를 구하듯 모두의 시선이 도일맹에게 몰렸다. 하지만 도일맹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 시간에 배를 구할 수도 없을 뿐더러 지금 쫓는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말을 하며 도일맹은 강가에서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 뒤를 귀살각 모두가 따라 걸었다.
“내일 아침 배를 구해 천마총으로 간다.”
두 번이다.
무려 두 번이나 구양운을 놓쳤다. 그리고 막내인 초련운까지 목숨을 잃었다.
이번엔 놓치지 않는다.
‘천마총…… 그곳이 바로 네 무덤이 될 것이다.’





九.귀수(鬼手)를 얻다



끼이익.
배가 땅에 닿으며 마찰음을 토해 냈다. 구양운을 태운 배가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다.
구양운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배에서 내렸다.
구양운의 앞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빼곡한 푸르른 녹림이 펼쳐져 있었다.
구양운의 발이 다시 이곳의 바닥을 밟다니 무언가 감회가 새롭게 느껴졌다.
‘……다시 돌아오게 됐군.’
구양운은 묵묵히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 뒤를 교일지가 조용히 따라왔다. 구양운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쫓아올 셈이냐?”
“당연한 질문을 왜 하는 거죠? 천마총 안까지 따라갈 거예요.”
“크크큭.”
교일지의 말에 구양운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에 발끈한 교일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웃는 거죠?”
“넌 천마총의 관문들을 통과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군요. 지금의 전 모든 면에서 오라버니보다 뛰어나요.”
그 말에 구양운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구양운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교일지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치자 교일지는 순간 움찔했다.
구양운의 단호한 눈동자 때문이었다.
“네 실력으론 못 가.”
“직접 들어가 보면 알겠죠.”
그 말에 교일지는 오히려 오기가 피어올랐다.
그런 교일지의 표정을 보며 구양운은 바람 빠지듯이 피식 웃어 버렸다.
“마음대로.”
두 사람이 어느 정도 걷자 그들의 앞에 커다란 동굴의 모습을 드러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동굴 안은 온통 새카맸다.
분명 해가 떠있는 시간이었음에도 동굴 안에 들어서는 순간 한 치 앞을 구별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 어두운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바람이 교일지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왠지 모르게 스산한 느낌을 받은 교일지는 털이 쭈뼛 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스스로도 이런 감정을 느끼기는 처음이다.
교일지가 주춤거리는 사이 구양운은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 질세라 교일지도 서둘러 따라 걸었다.
동굴 안은 방금 전까지 느꼈던 감정이 허무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천연 동굴이었기 때문에 이 안의 깊이를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건 전무했다.
그때 구양운의 진중한 목소리가 흘렀다.
“내 발자국만 보고 바로 쫓아와. 틀리면 황천행이니 알아서 조심하도록 해.”
구양운이 앞에서 먼저 한 걸음을 떼었다.
그때였다.
슈우웅.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듯 갑작스러운 불기운이 사방에서 치솟았다. 그제서야 교일지의 눈이 동굴의 벽면으로 향했다.
동굴의 사방은 시커멓게 그을려져 있었다. 모두 불로 인해 생긴 것이다.
그제야 교일지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천마총에 들어섰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어떻게 이런 장치를 설치했는지 평범해 보이는 동굴은 두 사람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불기둥이 사방에서 불규칙적으로 튀어나왔다.
너무 신기한 광경에 처음에는 진으로 만들어진 환각이 아닌가도 싶었지만 벽면까지 그을려진 것을 보아하니 이것은 허상이 아니다.
동굴 사방에서 불기운이 들쑥날쑥 쏘아졌다.
까딱하다간 제대로 들어서기도 전에 통구이가 될 것 같았다.
“이, 이걸 피해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리에요?”
교일지는 오히려 방금 전 구양운이 자신의 발자국만 따라오라던 그 말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구양운은 허리띠를 풀어서 자신의 눈을 가렸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교일지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오라버니 제정신이에요?!”
“시끄럽군. 내가 시간을 잊어 버리지 않았기만 기도하라고.”
구양운은 허리띠를 머리 뒤로 꼼꼼히 묶은 뒤 불기둥 앞에 마주섰다.
화아아.
구양운의 바로 한 치 앞에서 불기둥이 솟아났다.
‘하나, 둘…….’
구양운은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그리고 구양운의 발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뎌졌다.
믿지 못한다는 듯이 투덜거렸던 교일지였지만 얼른 구양운을 따라 바짝 쫓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