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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전 1권(18화)
第七章 수호신승의 보구(5)


사부는 마치 한 조각 남은 고기를 마주했을 때의 나와 같은 시선으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흠흠. 그런데 말이다. 꼭 봐야겠느냐?”
“사부가 보여 주겠다면서요?”
“그랬던가?”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와서 ‘그런 건 없다’라는 말은 안 통합니다.”
“그런 기막힌 방법이 있었구나. 그런 거 없다.”
“왜 내가 고서의 주인이 되면 아니 되죠?”
“그렇지. 고서를 보여 주마.”
수상해. 정말 말하기 곤란한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하다.
사부가 구석에 앉아 물끄러미 잡동사니의 산을 바라보고 있는 란에게 말했다.
“가져오너라.”
“왜 제 여동생의 몸은 굴리려고 그럽니까. 사부가 가져오세요.”
“안 굴러가면 망가진다. 얼른얼른 써먹어야지.”
어디까지 써먹을지는 모르겠으나, 안 굴러가는 거라면 이미 망가져 있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고서는 고서를 알아본다는 금대호의 말에 의하면 란은 고서를 알아볼 테니, 사부의 방에 가서 가져올 터였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것만 같이 부자연스럽게 일어서더니 뒤뚱뒤뚱 란은 옆방으로 움직였다. 나는 사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딘가 초조해 하는 것 같은 못마땅함이 얼굴 가득 피어 있다.
“언제는 저에게 수호신승 넘겨주신다면서요? 고서도 인계해 줄 생각 아니었습니까?”
“제자야 그런 말 아느냐? 그건 그거 이건 이거. 나는 만 냥이 필요해.”
말하는 사부가 몹시도 위험하게 보였다. 진심으로 소림의 고서를 처분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기필코 방장 스님에게 고하기로 다짐하는 사이, 란이 ‘그것’을 질질 끌고 왔다.
사부가 퍼떡 몸을 일으켰다.
“훌륭하다! 운송철학의 획기적인 방도야!”
무엇에 대한 감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미령이가 한 손에 들고 바닥에 질질 끌고 오는 ‘그것’에 집중했다.
아. 저거였구나. 이제야 난 고서의 정체를 알아챘다.
소림의 제자라고는 전혀 여겨지지 않는 사부의 방에, ‘스님이 머무는 방입니다.’라고 알려주는 단 하나의 물건.
염주였다.
설명을 하자면 조금 특이하게 생겼다. 특색 있는 모양새를 갖춘 것은 아니지만 염주알이 굉장히 컸다. 거의 어른 주먹만 하다. 그것이 아홉 개. 알 수 없는 문자가 새겨져 있는 염주 알들은 낡은 줄에 꿰어 지금은 란의 손에 의해, 사부의 지시에 의해, 잡동사니의 산에 버려졌다.
“그…… ‘고서’라면 좀 조심히 다뤄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팔 때 가격이라도 내려가면 곤란하니까.”
그런 뜻이 아니다. 아무튼 사부는 그 커다란 염주를 몹시도 어려워하는 듯 보였다. 자기 물건임에도 손 한 번 못 대고 있는 것이다.
잡동사니의 산 위에 올려놓은 염주를 사부는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제자야. 혹시 말이다. 네 눈에 저 녀석, 기분이 나빠 보이거나 하지 않니? 어쩐지 색이 탁한 것이 몹시도 불쾌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든가 말이다.”
염주에 먼지가 꼈다고 불쾌해 하는 것처럼 보일 리가 없다.
그렇게 보이는 건 사부일 테다.
사부가 끝까지 고민하는 척 내 눈치를 살필 것 같기에 내가 갑작스레 염주를 들어 사부에게 던졌다.
얼결에 염주를 받아든 사부는 이내 “흐에에엑.”거리며 볼썽사나운 소리를 질렀기에 웃어 주었다. 대체 저 먼지 잔뜩 쌓인 특대 크기의 염주가 뭐가 무섭단 말인가.
하지만 난 실망을 하고 만 것이다.
“아무 일도 없네요?”
“그, 그러게. 요놈이 웬일인지 조용하네.”
사부는 얌전히 손에 들린 염주를 놓고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돌연 헛기침을 하며 무게를 잡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 얼굴 가득한 비웃음을 보았나 보다.
“존엄한 인간으로 태어나 한낱 미물을 두려워하면 아니 되느니라. 이 사부처럼 당당해야 해.”
“놀랍도록 당당하셨죠.”
흐에에엑이었나? 생각하니 또 피식거리는 웃음이 나왔다. 사부는 몹시도 민망한지 헛기침을 몇 차례 하였다. 나도 더 웃다가는 지독히도 고통스럽게 이마를 맞을 것 같아 참기로 했다.
속으로 웃어야지, 키득키득.
딱!
아야!
사부는 어떻게 내 속마음을 알았는지 내 이마를 거침없이 후리시고는 말씀하셨다.
“잘 보았다니 다행이구나. 그러니 이제 그만 원래대로 갖다 두기로 할까.”
그렇게 둘 내가 아니다. 이마를 쓱쓱 문지르며 냉큼 물어보았다.
“그거 어떻게 사용해요? 뭐 어떤 힘이 있는 거죠? 그렇게 큰데 번거롭게 들고 다니나요? 사부 뭐라도 좀 보여줘 봐요. 현존하는 최강의 고서라는데.”
“이놈! 오냐오냐 해 줬더니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사부가 나무 타는 원숭이로 보이더냐!”
“고서의 주인이고 위대하며 존경받아 마땅한 소림의 수호신승으로 보입니다.”
사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어깨에 힘을 주며 끄덕이셨다.
“잘 알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그럼 먼저…… 끙.”
나는 낄낄거리며 배를 잡고 웃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지 사부가 나에게 걸려든 것이다. 항상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되니, 기분이 색다르고 남다르며 즐거웠다.
사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착용법이다. 들고 다니거나 어깨에 걸치면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이 사부는 혁대로 사용하는 방식을 택했지.”
“어떻게요?”
“허리에 찬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혁대처럼 말이다.”
“으음, 제자는 모르겠습니다. 시범을 보여 주시지요.”
이놈의 제자가 이제는 사부를 손바닥 위에서 굴리려고 한다며 성을 바락바락 내는 사부를,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바라봐 주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잘 모르겠지만, 제자 이기는 사부 없다는 말은 안다. 제자를 끔찍이 귀여워하는 사부는 절대로 이 술법을 벗어날 방도가 없을 테다.
잠시 나와 시선을 교류하던 사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알았다. 보여 줄 테니 그렇게 보지 말거라. 토할 것 같아.”
다른 의미로 전달된 것 같았다.
아무튼 사부는 숨을 길게 들이쉬고는, 그 커다란 염주를 목에 걸고 우물쭈물하다가 아래로 내려 허리에 쏙 찼다.
그리고 사부는 꾸에에엑거리며 가축 멱 따는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부여잡고 한참을 뒹굴거리다 고서를 벗어던진 것이다.
바닥에 축 늘어진 사부는 아직 써 보지도 못한 허리가 죽었다며 눈물 어린 통증을 호소했기에 난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진짜 쓰려고 하면 파문은 고사하고 사지근맥이 절단당할지도 모를 걸.
그래도 나는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화가 날 만도 해. 이해한다.”
란이었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 같지만 누군지 몰랐기에 물었다.
“누가?”
“저 고서.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아무 소리도 못들었는데?”
“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니까.”
나는 음, 하고 자뭇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사부 흉내를 내 보였다.
“그렇군. 그럼 이제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해 봐.”
란은 다시 사부의 고서인 염주에 시선을 돌렸다. 소림의 보물이자 현존하는 최강의 고서라는 그 염주는, 먼지구덩이 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쩐지 불쌍하게 보였다.
“의지를 읽는 건 가능하다. 해석하자면, ‘쓰레기 같은 집구석에 있어 줬더니, 이제 날 쓰레기 더미에 버려? 어디 네 허리를 작살내서 다시는 기루에…….’”
“그만. 거기까지 해 둬.”
더 이상 들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은 사부의 은밀한 비밀이었기에 난 란을 말렸다. 란은 곧바로 입을 닫고 다시 조용해졌다.
새삼 사부가 세상에 나가면 소림에 엄청난 민폐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제자도 모르게 몰래 밖에 나가 그렇고 그런…… 하아. 더 상상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 그만뒀다.
아무튼 이제야 난 사부가 고서를 피한 이유를 알게 된 것이었다. 정말,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성격의 고서임이 확실했다. 그러고 보니 달마역근경인 란은 어째 아무런 성격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이는 사부는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염주를 발로 밀었다.
“이제 이놈 갖다 둬라.”
사부의 은밀하고도 괘씸한 비밀의 문턱을 엿본 제자로서, 그만둘 수 없겠다.
“어떤 힘이 있는지는 아직 못 봤는데요?”
“봤잖느냐?”
뻔뻔하게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마치 진짜 자신은 보여 주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제자가 우둔하여 무엇을 보여 주셨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시 보여 줘요.”
“돈 없다.”
“갑자기 왜 돈 타령이에요?”
한숨을 푸욱 내쉬며 사부가 힘없이 말했다.
“그때 돌산을 부순 게 저놈이란 말이다. 두 번 했다가는 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죽어서까지 수호신승 짓을 해야 할 거야.”
“아…… 네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닿는 건 뭐든지 파괴하는 괴팍한 녀석이지, 라는 사부의 말이 귓등으로 스쳐 갔다.
사부의 말을 종합해 보면 돌산을 부순 것은 백보신권이 아니라 고서인 염주. 그러면서 자신의 백보신권으로 벌어진 일인 양 그렇게 으스댔다, 라는 이야기.
……엄청나잖아. 이 사기꾼. 물어내라 내 동심! 스님이 고기가 주식이고 술이 물이며, 스님이 야밤에 기루에…… 거기다 제자의 꿈과 희망을 철저히 농락했단 말이지?
사부를 바라보는 제자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는지 사부가 변명했다.
“이 사부는 제자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 주고 싶었느니라.”
“부서져 버린 내 꿈과 희망 앞에 당장 사죄하시죠.”
만약 올해의 꿈과 희망 종결자라는 상이 있다면 내 사부에게로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나는 그 충격적인 장면을 다시금 떠올려 보았다. 사부의 백보신권에 의한 위력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분명 엄청난 괴력이었다. 국가가 소지하고 있는 화탄을 쏟아부은 듯 했으니까.
나는 실로 감탄했다.
“대단하네요. 말로만 듣던 벽력탄 같아요. 이 아홉 알로 그 정도라니.”
과연 현존하는 최강의 고서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사부는 뭔가 틀렸다는 듯 지적을 해 주고 나섰다.
“바위산을 부순 건 한 알이야.”
아홉 개를 다 쓰면 숭산의 절반이 날아갈 거라는 뒷말이 농담으로 들리지가 않았다.



第八章 고서의 주인이란(1)


고서 란이 미령이의 몸에 들어간 뒤부터 나에게는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잠을 자기 전에 머리맡에 낡은 책, 달마역근경을 놓고 바보처럼 말을 거는 것이다.
“오늘은 좀 힘든 하루였어, 미령아. 사부도 정신이 좀 나간 것 같고. 집법당주님은 날 사질로 대하는 것 같지 않아. 하긴 나라도 자신의 사형이 내 사부 같으면, 그리고 당주님 같은 위치에 있다 보면 좋아할 순 없을 거야. 그래도 조금 섭섭한 거 있지. 있잖아, 사부는 이제 큰일났거든? 황금 일만 냥을 내지 못하면 평생 소림에 묶여 있어야 할 거야.”
사부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도 있으나 방장 스님이 나쁜 뜻으로 내린 명이 아님을 알기에 웃음이 나왔다. 진짜 일만 냥을 받아내려는 생각은 분명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순진하고 어리숙한 내 사부라면, 진심이라 생각하고 절망하여 있겠지. 나는 절대 사부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 동안 당한 것도 있으니까.
웃다가 고개를 돌리니 창을 타고 넘어온 달빛에 비춰진 란이 보였다. 란은 저쪽 구석에 앉아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꽤 무서웠다. 하얀 얼굴에 파란 달빛이 비춰지니 귀신 같기도 하다. 아니, 혼이 씌인 거니까 귀신이 맞지.
미령이의 몸을 앞에 두고, 낡은 책에게 말하는 내 모습이 꽤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없는 책을 바라보다 문득 한숨이 새어 나왔다.
금대호가 제시한 제안이 떠오른 것이다.
미령이의, 고서의, 몸이나 혼. 둘 중 하나를 내놓지 않는다면 피치 못할 충돌이 이루어질 것이란 말은 나에게는 큰 고민거리였다.
다시 말하지만 냉엄한 현실 앞에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면 아니 된다. 나는 생각했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누군가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 좋다. 때문에 나보다는 지혜로울 사부에게 털어놓았으나 적당한 해결 방안을 듣지는 못했다.
나는 달마역근경인 란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란이 말했다. 하지만 사부는 반대한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정 방도가 없다면 나는 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난 다시 손을 뻗어 낡은 책을 어루만졌다. 내 가련한 여동생이 잠들어 있는 책은, 온기가 있는 듯 따스했다. 물론 착각이겠지.
어쩐지 어두운 방 안에 놓인 책이 슬픔에 잠긴 것처럼 보였기에 잠을 자기로 했다. 졸리니 이상하게 감성적이 된다.
나는 잠을 자기 전에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걱정 마, 미령아. 무슨 일이 있어도 널 구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