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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11화)
부피도 무게도 얼마 안 나가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는 게 불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혹시라도 누군가 앞에서 무심결에 가방을 열었을 때 전투복이 흘러나온다면.
그건 정말 소름 끼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 소름 끼치는 상황에 다시 한 번 몸서리치며 사람들 눈에 안 띄는 장소를 찾아 계속해서 골목 여기저기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마음에 드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음, 짓다 만 빌라라. 아주 좋아.”
사실 변신 과정이 엄청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닌 탓에 히어로들 중에는 적당히 사람들 시선만 피하고, 바로 변신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그게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DBA0607 전투복 활성.”
푸화화학!
내 가슴과 발바닥에서부터 시작된 불이 어둡던 주변을 새하얗게 밝히면서 내 몸을 집어삼키며 머리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와 동시에 답답한 조임이 몸을 휘감는 느낌과 함께 허공중에 분자로 흩어져 있던 전투복이 형상을 이루면서 내 몸을 덮어 왔다.
가슴팍에 노랗고 동그란 판 한 개가 달린 아주 새까맣고 심플한 전투복은 정말 멋대가리 없었지만 나의 변신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파아아앗!
그저 새까맣기만 하던 전투복은 블랙홀마냥 내 주변의 불꽃을 마구 흡수하면서 점차 울퉁불퉁한 굴곡을 보이기 시작했고, 손에는 팔목을 덮는 새하얀 장갑이, 발에는 정강이를 살짝 감싸는 긴 부츠가 생겨났다.
그리고.
화르르르륵!
가슴에 달린 동그란 판은 끝없이 불꽃을 먹어 치우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그 판을 중심으로 새빨간, 그리고 노란 선이 수도 없이 뻗어 나오면서 전투복 전체를 감싸며 전투복 위로 순식간에 문양을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온몸에 멋들어진 무늬를 새긴 줄기는 아직 아무것도 감싸여 있지 않은 목을 타고 올라와 턱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더니 곧 내 얼굴을 감싸며 붉은빛이 감도는 헬멧으로 형태가 변했다.
턱에서부터 솟구친 빛 탓에 잠시 눈을 감았던 나는 삐빗 하는 기계음에 천천히 눈을 떴다.
마치 아이언X 헬맷 속 화면이 연상되는 듯한 홀로그램들이 눈앞에 자리해 있었고 그곳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떠올랐다.
[전투복 코드 : DBA0607]
[이용자 : 신태일(D+)]
[코스튬 모델 명 : 미정]
[신체 정보 : 혈당(정상), 간 수치(정상), 혈압(정상)…….]
그 외에도 수많은 창들이 떠올랐지만 나는 눈짓으로 눈앞에 떠오른 영상을 모두 꺼 버렸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나의 변신 과정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5초.
다른 히어로들의 변신에 비해 상당히 빠른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반드시 이런 장소를 찾는 것은 이 미칠 듯한 화려함에 있었다.
칵테일 바, 중화요리 전문점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불줄기,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몽땅 태우고도 남는 뜨거운 불길, 변신 후에도 주변을 너울거리며 날아다니는 불꽃, 이 모든 것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119에 전화를 하고 말 것이다.
처음 이 분자화된 전투복을 지급받았을 때는 얼마나 당황했던가.
사실 그전까지 내 변신은 크게 화려하진 않았다.
전투복이 지금처럼 자동 착용이 아니던 시절은 입는 게 불편해서 그렇지 그냥 까만 전투복을 입고 가운데 둥그런 판을 누르면 안에서부터 내 힘을 받아들여 나에게 맞는 형태로 변하는 것이었는데, 분자화된 전투복은 내 몸에 입혀지기 전부터 먼저 내 힘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때문에 내 불꽃이 주변에 방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전투복은 방출된 불꽃을 빨아들이는 과정을 거치고 방금과 같은 변신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입고서 무늬랑 헬멧만 번쩍하고 생기는 식이라서 아무 건물 화장실에서나 가능했는데. 이젠 화장실에서 하면 화재경보기가 울리니…….’
최첨단 기술 덕분에 분명 기동성이나 변신 과정에 있어 여러 이득을 보기는 했지만 나같이 유달리 변신이 화려한 사람들은 변신할 장소를 찾는 데 있어 손해를 보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건의를 해 봤지만 분자가 물질로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답변과 관련 기술을 개발 중이라는 말을 일 년 넘게 듣고 있었다.
무슨 가전제품 AS센터도 아니고.
이런 처사에 불만이긴 했지만 사실 회사로서도 은밀함이 떨어지는 변신 탓에 꽤나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이상 추궁하기엔 내 등급이 너무 떨어진다는 점도 있어 그냥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뭐, 멋있긴 하니까…….’
본인밖에 감상할 수 없다는 점이 함정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불편하고 멋없는 것보다 나으니까’라고 합리화하자.
“그럼 출발해 볼까?”
나는 조금 전부터 눈앞 액정에 나타난 주변 지도와 그 위에 빨갛게 찍혀 있는 여러 개의 점들을 보면서 경로를 탐색했다.
‘멀지 않은 곳이군. 위치도 적당해서 굳이 안 보이는 곳으로 유인할 필요가 없겠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적당한 곳에 적당한 사냥감들 몇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평소와는 달리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구석진 곳에 모여 있어 굳이 사람들 눈을 피해 유인해 갈 필요도 없어 보였다.
평소라면 저렇게 많은 수의 나이트메어를 몰아오려면 한참을 고생했을 것이다.
‘A급 이상 히어로들은 주변에 결계 같은 걸 만드는 장치를 지급해 준다던데…….’
매번 적들을 유인해 가며 사냥하는 것을 떠올리면 그런 장치를 보급 안 해 준다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A급쯤 되면 주먹 한 번 잘못 놀리면 주변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 주변을 위해서 있는 게 좋겠지. 그리고 공간과 관련한 능력이나 장치는 우리 쪽에서도 흔치 않은 기술이라고 했으니.’
언젠가 이선영 본부장이 설명하길 각종 이능력을 지닌 히어로들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것은 공간을 다루는 능력자라고 했다.
그들이 최고인 이유는 능력자 수 자체가 굉장히 적을 것은 둘째, 그 능력의 효용이 무궁무진하다는 데 있었다.
전투는 물론이고 방어, 서포트, 그리고 각종 기술 개발까지.
그야말로 만능이라고 할 수 있는 탓에 귀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진 텔레포트 능력도 굉장한 거라나 뭐라나 물론 내 전공이 아니니 만큼 나에게 있어 ‘중요한’ 기술은 아니지만 내 생각해도 텔레포트는 굉장히 ‘유용한’ 기술임에 틀림없었다.
‘뭐, 어쨌든 지금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
나는 이런저런 잡 생각을 지우고 목표로 삼은 적의 위치와 경로를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그러자 내 정신과 연결되어 있는 헬멧은 자동으로 현재 가장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으면서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적에게 당도할 수 있는 경로를 알아서 눈앞에 띄워 주기 시작했다.
“좋아. 거리를 보니 금방 도착하겠네. 가 볼까?”
화르르륵!
내가 정신을 집중한 순간 다시 한 번 주변에 불꽃이 타올라 마찬가지로 내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불꽃이 지나간 그곳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화르르륵!
정신을 모으기 위해 잠시 감았던 눈을 다시 뜨는 순간. 나는 목표로 했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아파트 옥상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 평소라면 이곳까지 뭐 빠지게 뛰어왔을 테지만 다행히 이곳은 한 번 와 봤던 곳이라 어렵지 않게 텔레포트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 텔레포트 능력이 반드시 한 번 가 본 곳에만 적용되는 줄 알겠지만 실상은 그저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해 가 본 곳으로만 이동하는 것이다.
텔레포트는 분명 편리하고 빠른 이동을 보장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기술이기도 했다.
내가 펼치는 텔레포트는 마법사 히어로들이 사용하는 텔레포트와 달리 몸을 자연의 원소화하는 식으로 이동을 한다.
마법도 마찬가지지만 나의 경우 내 도착 장소에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위험은 나의 위험이 아니라 주변의 위험이었다.
마법을 통한 텔레포트는 텔레포트 위치에 다른 물질이 존재하면 그 공간 위에 시전자를 덮어씌운다.
그런 탓에 좌표 설정이 어긋나면 몸이 벽과 융합될 수도 있고 신체의 일부, 혹은 자리가 안 좋음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었다.
반면, 내가 사용하는 원소화 텔레포트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것을 무시한다.
아니, 엄밀히 말해 지워 버린다고 할 수 있다.
내가 텔레포트 장소에 도착하면서 쏟아 내는 불꽃은 내가 의지를 갖기 전에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그냥 보기에만 화려한 불꽃에 불과하다.
하지만 도착 지점에 위험이 존재하고 있어서 내가 이를 인지하게 되는 순간 불꽃은 나를, 그리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태양에 버금가는 열기를 내뿜으며 주변을 말 그대로 녹여 버린다.
처음엔 나도 이런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기에 처음 각성한 이후엔 자주 텔레포트를 이용했지만 이를 자각한 이후로는 확실한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함부로 텔레포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저기 보이는군.”
텔레포트의 불꽃이 바람에 흩날려 사라질 때쯤 건물 그림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며칠 전에도 봤던 나이트메어들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키, 구부정한 등에 기형적으로 긴 팔, 그리고 날카로운 손발과 툭 튀어나온 부리와 같이 생긴 입술이 그들이 인간이 아님을 알려 주고 있었다.
사실 비현실적으로 까만 몸만 봐도 인간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와 동시에 내 시야에 적이 포착되자 헬멧이 적과 나와의 거리를 분석하며 여러 경고창 등을 눈앞에 띄웠다. 나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곧장 그곳을 향해 뛰어내렸다.
파앗!
아파트이니만큼 살고 있는 사람이 잔뜩 있을 테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데는 다름 아닌 이 동네가 전형적인 베드타운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나이트메어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 자주 와 봤는데 관찰 결과 평일이라면 12시가 지나는 순간 불이 켜진 곳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진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이 아파트를 비롯해 주변에 불 켜진 곳이 없었다.
이렇게 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은 이곳에는 사람의 꿈을 먹고 그곳에 악의(惡意)를 심는 나이트메어들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이트메어들의 활동 영역은 굉장히 좁은 편이었다.
요즘 현대의 도심은 너무나 밝고 제 시간에 잠을 자는 사람이 드문 탓에 꿈을 먹어야만 하는 나이트메어로서는 어쩔 수 없이 이러한 베드타운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곧 활동 영역의 고착화, 그리고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쉽게 풀자면 단순히 RPG 게임의 사냥터같이 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잡아도 같은 장소에 리젠되는 느낌?
그뿐 아니라 이들의 활동 시간 또한 짧다. 이건 다른 이유라기보다는 이름처럼 밤에만 활동하는 나이트메어들은 해가 뜨는 하절기에는 활동 시간이 짧아진다.
그렇기에 더욱 많은 잠을 자는 사람이 모여 있는 이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파샤샷―
최대한 몸을 곧게 펴 활강 속도를 최대로 끌어올린 결과 눈 깜짝할 사이에 지면에 다다른 나는 재빨리 몸을 말아 깔끔한 낙법으로 착지하며 근처 나무 사이로 몸을 숨겼다.
‘일곱 마리? 딱 적당하군.’
가까이서 보니 확실하게 적의 수도 알 수 있었다. 수준도 평소 내가 잡고 다니던 나이트메어임에 틀림없었다.
지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감이 용솟음쳤다.
‘슬슬 나서 볼까?’
충만하게 차오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몸을 드러내려던 나는 그 순간 모여 있던 자리에서 넓게 포진하는 나이트메어들을 보고 다시 몸을 숨겼다.
‘뭐지?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데?’
사실 나이트메어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 모습조차 이번이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저 꿈을 먹는 것이 생의 최대 목표인 나이트메어들은 상대를 세 가지 부류로 나눈다.
바로 꿈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그리고 적.
이렇게 셋.
꿈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잠을 자는 사람이었고 먹을 수 없는 것은 깨어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과 같은 나이트메어였다.
그들은 서로 간에 동료 내지는 동족이라는 의식 자체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분류는 이렇게 세 가지뿐이었고 그렇기에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게 그간 내가 알고 있던 나이트메어에 대한 상식, 교육받은 내용이었는데 지금은…….
파아앗!
그 순간, 나이트메어들이 모여 있던 곳의 한가운데로부터 검은색의 줄기가 주변을 뒤덮으며 솟구쳐 올랐다.
‘마법진?’
그 검은 줄기가 솟구친 자리에는 마찬가지로 검은 색의 선들로 이루어진 정체불명의 진이 그려져 있었다. 지금 누가 봐도 지금의 괴현상은 저 진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