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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12화)
‘뭔지는 몰라도 분명 좋은 건 아닐 텐데. 보아하니 효과가 무엇이든 아직 완전히 발동된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뛰어들어서 뭉개 놓을까?’
내가 잠깐 고민을 하는 사이 검은색의 진은 영역을 넓혀 주변에 포진하고 있던 나이트메어들의 발치까지 다가왔다.
오싹!
그걸 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음을 깨달았다.
파앗―!
“하아압!”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간 나는 우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나이트메어부터 순서대로 단박에 때려눕혔다.
다급한 마음에 기습의 의미도 없이 기합 소리까지 냈지만. 아직 나이트메어들은 나의 존재를 눈치 못 챘는지, 넓어지는 마법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퍼억―!
“키에엑!”
나이트메어의 배에 틀어박힌 오른손을 거칠게 휘둘러 떼어 냈다.
‘하나!’
빠악!
목표를 갱신, 그와 동시에 바로 옆에 있던 녀석에게 곧장 발차기를 먹여 줬다.
“키긱!”
‘둘!’
발에 채인 녀석이 반으로 접혀 바닥을 뒹구는 것을 끝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두 마리의 나이트메어들을 처리했지만 진의 변화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이트메어들 또한 지금 쓰러진 두 마리에 대해서 신경도 쓰지 않는 듯 그저 진의 중앙에서 뻗어 나온 검은 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럴 리가? 보통 나이트메어들은 주변에 싸움을 인식하면 달려들기 바쁜데?’
평소와는 달리 자리에서 미동도 않고 진의 한가운데만을 바라보는 나이트메어들의 모습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나는 조금 전보다 빠른 속도로 몸을 날려 나이트메어들을 제압해 갔다.
퍼억― 빡! 빠박!
‘셋, 넷, 다섯!’
순식간에 셋을 더 제압했지만 그사이 진은 더 이상 커지지 않는 대신 가운데서 나오던 줄기가 더욱 굵어지기만 한다.
그리고 내 불안감 역시 더욱 커져만 갔다.
‘젠장! 멈춰야 해!’
조금 소란이 일더라도 반드시 지금 이 상황을 끝내야만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 방. 단 한 방에 여기를 정리한다!
전신에 퍼져 있던 힘이 말아 쥔 양 주먹으로 몰려들자 하얀 장갑이 불길로 뒤덮였다.
‘아직! 조금 더!’
평소 기술을 쓰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불꽃이었지만 내 본능은 절대 이정도로는 눈앞에 진을 파괴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푸화확!
손에서 솟구치는 불길은 한층 거세어져서 불길이 팔을 덮고 어깨 위로 치솟는 순간.
“끼긱! 끼기긱!”
내가 진에 대해 적의를 품는 것을 느꼈는지 아무 관심도 표하지 않던 나이트메어 둘이 몸을 돌려 나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조금 더!’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불길을 모았다.
어차피 이게 모이는 순간 저 정도 나이트메어는 수십 마리가 몰려와도 문제가 없으리라는 확신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양손에서 청색의 불길이 타올랐다.
“가라아아앗!”
이미 이곳이 아파트 단지임을 잊은 나에게 거칠 것이 없었다.
양손에서 쏘아진 푸른 불줄기는 거대한 송곳의 형상을 이루면서 푸른색의 창이 되어 진의 한가운데를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슈르르륵!
검은 줄기가 한데 모이며 마치 알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난 그 짧은 순간 볼 수 있었다.
얼기설기 얽혀 만들어진 검은 줄기의 알 속에서 나를 지켜보는 새빨간 눈동자를.
푸확!
내가 쏘아 보낸 청색의 창이 그 한가운데를 파고 든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화르르르륵!
검은 알은 순식간에 파괴되며 깨져 나갔다.
그리고 청색의 불꽃은 사방으로 흩어져 알의 잔재와 진을 이루고 있던 검은 선을 집어삼켜 버린다.
그리고 잠시 뒤.
세상은 다시 고요해져 방금 전의 일은 거짓말인 것마냥 조금 전까지 불타고 있던 마법진과 알의 잔해들은커녕 그을음 하나 없이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이트메어들은 도망친 것인지 그들 역시 사라져 있었다.
삐빅.
‘없군.’
혹시나 싶어서 헬멧에 있는 탐지기를 사용해 봤지만 주변에 잡히는 나이트메어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단순히 이 주변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예 이 지역에서 나이트메어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알을 없애는 순간 주변에 존재하던 모든 나이트메어들이 소멸하며 이 지역에 퍼져 있던 모든 나이트메어들이 전부 사라져 버렸다.
이런 현상은 들어 본 적도 없고 내가 활동한 수 년 간의 경험으로도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 붉은 눈동자…….’
그것은 단순히 우연찮게 눈이 마주친 것이 아니었다.
분명 노려보는 눈빛.
그건 보통의 나이트메어들과 달리 의지가 들어가 있는 눈이었다. 마치 이성이…….
그때 근처의 아파트에서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파트 베란다 창문이 방금 싸운 곳을 향해 있는 집들이었다.
‘이건 나중에 조사해 봐야겠군.’
나는 침착하게 정신을 모아 기술을 사용했다.
화르르륵.
다시 한 번 불꽃이 휘날리고, 그 자리에는 더 이상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시각, 경기지원 본부 히어로 상태 관리실.
이선영 본부장의 컴퓨터 모니터 위로 한 히어로의 능력이 자동 갱신되어 올라왔다.
“응? 뭐지?”
히어로가 추가로 능력을 각성하거나 깨달음을 얻어 한 단계 높은 능력을 지니게 되었을 때만 나타는 창으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보는 탓에 이선영은 누가 또 월급을 더 타 먹게 되었나 싶어 모니터에 얼굴을 가까이했다.
“……응?”
더 가까이했다.
“어?”
좀 더 가까이했다.
“이게 무슨…….”
그렇게 그녀의 코가 거의 모니터와 맞닿을 때 즈음 그녀의 입에서 한줄기 신음성과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A+이라고?”
그리고 그녀가 본 A+.
옆에는 S급 추정이라는 말이 함께 나타나 있었다.
5 A+
안절부절.
경기 지원 본부 히어로 상태 관리실.
지금 이선영 본부장은 속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몇 시간 전 그녀가 봤던 히어로 능력 갱신 알림.
흔치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봤다가, 대수로운 일이 돼 버린 일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A+라고? 대체 어떻게?’
오늘 새벽 갱신된 알람은 일상적인 내용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자그마치 A+란다.
D를 시작으로 SSS까지 나열되는 히어로 등급이기에 위에서부터 세어 보면 중간밖에 위치하지 못하는 A등급이지만 그건 결코 A등급의 히어로가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아니, 사실 엄청 강한 거다.
D급의 히어로들도 정규 훈련을 받은 한 개 소대 급 사병을 상대로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
C급은 중대급의 병력을 압도 할 수 있으며 B급부터는 단순히 전투력을 따지는 게 아니라 능력의 효율을 따지기 시작해서 전투력 면에서는 C급 비슷하거나 조금 더 강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A급 히어로부터는 다르다.
A급은 단순히 무력만으로 봐도 총기로 무장한 연대급 병력을 찜쪄 먹을 수 있을 정도며, A급 이상부터 사용하게 되는 이른바 필살기는 최소 A급 이상의 히어로가 아니면 막아 낼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A급 히어로들은 무력으로 정의하기 힘든 초능력을 지닌 경우가 다수이기에 그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생각하면 그 이하 급들과는 애당초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A급 히어로들은 그 수도 그리 많지 않고 회사에서도 특별한 대우를 받는 급수이며 현역 시절 B+급이던 이선영 본부장보다 높은 수준의 히어로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본부장 직위를 가진 만큼 상사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녀 역시도 A급 히어로는 단순히 부하로 보지 않고 최소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생각을 해 왔었다.
그런데 그런 A급 히어로가 아니, 그 특별한 인간들 중에서도 A+급의 히어로가 느닷없이 탄생한 것이다.
물론 A급 히어로의 탄생은 회사 입장에서 굉장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게다가 A+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
하지만 문제는…….
“D+급의 히어로가 느닷없이 A급의 능력자로 둔갑했다는 것이지.”
이건 정말 큰 문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태껏 이런 경우 자체가 없었고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당연시 되어 왔다.
그 이유는 히어로가 능력을 가지게 되는 형태를 먼저 이해해야만 했다.
히어로 능력의 각성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바로 선천적인 능력과 후천적인 능력.
후천적 능력은 대게 어떠한 정신적인 충격 등을 통해 발현되는가 하면, 선천적인 능력은 말 그대로 날 때부터 지닌 것이다.
그리고 여태껏 당연한 공식으로서 성립하고 있던 내용은 후천적으로 생겨나는 능력은 결코 선천적 능력을 따라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후천적 능력자 중에 A급 능력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이런 극단적인 공식이 당연시되는 이유는 히어로의 능력의 기원은 바로 정신에서 온다는 데 있었다.
히어로의 정신력이 강하면 능력은 강해지고 정신력이 약하면 곧 약해진다.
이는 나이든 히어로들이 능력의 퇴화를 겪게 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는데 정신이란 것은 강한 몸에 기반을 두는 만큼 나이를 먹음에 따라 몸이 약해지면 정신 역시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개중에는 나이를 먹음에 따라 새로운 정신 도약을 이루어 강력한 능력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이들은 대게 체력이 능력을 뒷받침하지 못해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뭐, 이런 내용이야 각설하고 본론을 말하자면.
선천적으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은 어릴 적부터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여 자신의 정신이 능력으로 발현 될 수 있는 비중을 키워 나간다.
흔히 알고 있는 무협지를 예로 들자.
히어로의 능력은 자신의 정신을 내공삼아 발동된다.
그리고 이 정신 에너지는 능력이 깨어남과 동시에 천천히 성장하는데 대게 십대 초반에 성장치의 최대치를 찍고 천천히 떨어져 보통 스무 살 중반이 되면 정신 에너지는 잘 성장하지 않는다.
이는 나이를 먹음에 따라 정신세계가 변화하는 탓인데, 마찬가지로 무협지를 예로 들면 나이를 먹음에 따라 몸에 탁기가 쌓여 내공 쌓기가 힘들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본인의 머릿속에 새로운 생각이 들어차면서 정신 에너지가 들어올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게 왜 후천 능력자 중에는 A등급이 존재 할 수 없는가를 증명하는 것이냐면 히어로의 등급을 나누는 것은 특수한 몇 가지 능력을 제외하곤 정신 에너지의 총량과 여러 가지 복합적인 능력에 대한 평가를 하게 되는데 이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정신 에너지의 총량이었다.
사실 정신 에너지만 많은 게 무슨 소용이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정신 에너지의 총량만 따져 보더라도 태일처럼 20대가 되어서야 능력을 각성한 사람 같은 경우 정신 에너지가 50이 평균인 데 반해 선천적 능력자의 경우 100을 상회하는 게 정설이었다.
물론 이런 단순 수치만으로 히어로의 강약을 따지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만약 똑같은 능력을 지녔다면 기술을 두 배는 더 많이 쓸 수 있는 것이니 전투력 면에서 두 배는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이 차이를 무시하기 힘든 이유는 그 능력을 다뤄 온 시간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정신 에너지 총량은 능력을 사용해 온 시간과 비례한다.
같은 나이의, 같은 능력이라면 선천 능력자의 경우 날 때부터 사용해 온 탓에 이미 숙달된 능력과 더욱 많은 정신 에너지를 지니지만, 후천능력자는 각성 후부터 성장한 정신 에너지와 상대적으로 덜 숙달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 후천 능력자는 A급이 존재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A급에 포진해 있는 선천 능력자와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에 그들이 A급에 진입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