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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13화)


뭐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A급에 근접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근접만 할 뿐, 시간이 지날수록 퇴화하는 정신 에너지 탓에 여태껏 후천적 능력자 중 A급의 히어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태일이의 승급은 기정사실화된 것이었지만…….’
본래 태일은 승급 대상 후보에 이미 올라 있는 상태였다.
그의 업무 해결 순위는 뒤에서 세는 것이 빠를 정도.
거기다 그가 지닌 기술들이 잡다하고 위력에 대해서 아직 명확하게 데이터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분명 전투에 유용한 기술들이 다수고 육체의 경우 지속적인 성장을 해 왔기에 앞으로도 일정 수준 이상 더 성장할 것을 고려하여 승급 대상이 된 것이었다.
‘하지만 A급. 그것도 A+급은 아니라고.’
그녀는 그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A+ 평가를 받게된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는 상태였다.
그것은 능력의 성장.
히어로가 지닌 능력의 성장 형태는 두 가지.
능력 자체의 성장, 능력을 활용한 기술의 성장과 변화로 나눌 수 있었다.
먼저 첫 번째 성장의 경우는 능력 자체가 진화하여 더욱 강력해지는 경우인데 경우로 예를 들어 불을 쏘아 내는 능력의 경우 불 자체가 더욱 고열을 내게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응용의 문제이다.
이는 조금 전과 같이 불을 쏘아 내는 능력이 단순히 불을 쏘는 것에서 능력자의 컨트롤로 뭉쳐 파이어 볼 마법 같은 효과를 내는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성장의 경우 앞에 말한 성장을 겪은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분명 이는 능력 자체가 진화한 것이 아니니 만큼 성장에 있어 다른 분류를 하고 있었다.
이보다 이해하기 쉬운 예로는 해적들이 판치는 만화의 고무 인간이 자신의 탄성을 이용해 몸에 힘을 축적해 싸우는 종류의 기술 등을 예로 들 수 있었다.
이 경우 능력은 그저 본래의 고무 몸뚱아리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것뿐이지만 사용 방법을 바꿔 더욱 강력한 형태로 이용한다는 점이 두 번째와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고무 인간의 강도가 노란 고무줄을 벗어나 타이어 고무 같은 강도를 지니게 된다거나 하는 따위의 옵션이 붙는다면 그건 첫 번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태일을 A급으로 평가하게 한 것은 바로 첫 번째일 확률이 압도적이었다.
만약 그런 게 아니라면 그가 자신의 능력으로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엄청난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인데…….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물론 위의 두 가지가 합쳐진 복합적인 성장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능력이 성장하면 성장한 능력이 곧장 본인의 능력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능력이 진화한다면 그것을 컨트롤하기 위한 많은 숙달의 과정이 필요한 법이고 두 번째라면 숙달은 기본, 창의적인 생각과 수많은 실험을 해야만 가능한 성장이었다.
애당초 우연히 만들어지기 힘든 것이 고급 기술이니만큼 그래서 태일의 A+ 평가에 대해 첫 번째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 녀석이 A+급의 평가를 받을 만한 창조적인 생각을 했다고 보기엔…….’
무시하는 것인 아니지만 그녀가 본 태일의 평소 이미지대로라면 굉장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태일이 사용하는 능력은 불, 발화의 능력이다.
불과 관련한 능력은 분명 범용성이 넓지만 그만큼 히어로들의 능력 중 상당히 흔한 능력이었다.
그런만큼 관련 기술도 엄청나게 많고 불과 관련한 능력으로 A+라고 부를 정도라면 정말 차원이 다른 기술이어야만 했다.
절레절레―
다시 한 번 태일의 모습을―정확히는 며칠 전 햄버거 앞에 고개를 숙이던 모습을―떠올린 그녀는 자신의 방금 한 터무니없는 생각에 대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이야 어쨌든 그녀는 더 이상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태일을 만나 봐야 할 때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그가 진짜 A+의 히어로 등급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만약 잘못된 것이라면 정정하여 보고할 필요가 있었다.
그게 경기 지원 본부 본부장 이선영이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전투복의 측정 장치 오류이길 바라지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은 몹시 낮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계속해서 만약을 떠올리며 오류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상태 관리실을 나섰다.
‘제발…….’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그 후 몰아칠 후폭풍은 감당하기 힘들지도 몰랐다.
그녀에게든 그에게든 말이다.

* * *

‘이번 주 강의만 다 들으면 방학이니까…….’
지금은 6월 초. 대부분의 대학들이 슬슬 방학 준비를 해 나가는 시기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다음 주에도 강의가 있긴 하지만 그건 시험이 끝나고 갖는 시간이라 딱히 수업을 하지 않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런 방학에 맞춰 나를 강화시킬 방법들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내 능력의 특성상 여기저기 불을 붙이며 연습을 할 수는 없으니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바로 신체 능력의 강화였다.
사실 내 주된 공격 수단은 불이 아니라 몸뚱아리 아니던가?
‘불을 사용하는 게 위력이나 효율 면에서 좋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불을 사용하면 오늘 새벽과 같은 일이 발생하니까.’
오늘 새벽의 일.
처음으로 대면한 괴현상과 위험한 대상으로 보이던 검은 줄기와 알, 그리고 그 붉은 눈.
분명 쉽게 잊지 못할 일이긴 하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그 정체불명의 대상이 아니었다.
급하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몇 배는 강한 힘을 사용한 덕에 아파트 주민들의 잠을 깨우고 말았다.
뭐, 그 정체불명의 알을 방치하는 것보다는 나았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누가 뭐래도 눈에 띄는 것은 사양이었다.
‘애당초 밤에만 활동을 하는 입장에서 불을 다루는 능력이라는 것은 큰 페널티란 말이지.’
불을 사용한 능력은 단순히 눈에 띄는 것만을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니었다.
불이란 녀석은 워낙에 천방지축이라 아무리 잘 다뤄도 불씨가 날리고 흐트러지기 마련이었다.
그런 와중에 주택가 밀집지나 온갖 골목골목에서 싸울 수밖에 없으니 화재의 위험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것 역시 내가 만들어 낸 불이라 내 정신 에너지의 영향권 내에서는 피해 없이 사라지긴 할 테지만 열심히 싸우는 와중에 신경이 분산되는 것도 그렇고 격렬한 전투 후 일일이 떨어진 불씨를 확인하는 것은 이쪽에서 사양이었다.
‘그래서 불을 웬만하면 안 쓰고 싸우는 거지.’
내가 불을 활용한 기술을 쓰는 경우는 단 몇 가지로 한정이 된다.
빠른 기동력을 원할 때, 맨몸으로 싸우는 것 이상의 공격력을 원할 때, 그리고 빠른 탈출!
바로 어제와 같은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우우웅.
그때 강의실에 들어오기 전 진동으로 바꿔 둔 핸드폰이 낮게 울리기 시작했다.
‘응? 전화 올 사람이 없는데?’
아직 강의 시작 전이라 부담 없이 꺼내 본 핸드폰 액정의 번호는 나의 심장에 많은 부담감을 주기에 충분한 번호였다.
‘뭐지 아침부터? 갑자기 본부장이 전화를 하다니. 혹시 어제 그 일 때문인가?’
정말 상상만 해도 오싹한 상황이긴 하지만 만약에 어제의 전투를 목격한 목격자나 정말 운 좋게 그 상황을 찍은 사람이 있다면?
일일 웹 사이트 검색어 1위는 따 놓은 당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감봉 포함, 올해 말 파견 자원봉사 결정이리라.
‘아니야, 분명 아파트 전체 불이 모두 꺼져 있는 거 확인했고 카메라 렌즈든 혹은 사람의 시선이든 무엇인가가 나를 향했는데 내 감각이 발동하지 않을 리 없어.’
하지만. 정말, 정말 만약에라도 그런 일이 있다면?
다시금 불안감이 몰아쳤지만 지금 이 전화를 안 받을 수는 없었다.
누가 뭐래도 히어로들의 생활 패턴과 동선까지 몽땅 파악하고 있는 그녀였다. 전화가 가능한 시간이 아니라면 애당초 전화를 걸지 않는, 히어로를 배려할 줄 아는 여자이니 말이다.
꿀꺽.
‘아니야, 어차피 어제의 현상에 대해 물어볼 일도 있고 하니, 잘된 거 아니야? 내가 전화 하는 것보다야 전화가 왔을 때 물어보는 게 훨씬 낫겠지.’
그러고 보니 나도 그녀에게 할 말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전화가 그것에 대해 묻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삑.
“여보세요?”
“야, 이 XX야!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어?”
“아, 그, 그게 지금 학교라서…….”
“아직 강의 시작 안 한 거 다 알고 있거든? 어디서 약을 팔아?”
“…….”
어차피 안 먹힐 변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빨리 학교 앞으로 나와.”
“네?”
“빨리! 나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다!”
“자, 잠깐만요!”
뚝.
뚜뚜…….
나는 일견 멍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지금의 상황을 찬찬히 돌아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불려 나가는 이유와 그녀가 자신을 회사로 부른 것도 아니고 친히 여기까지 왔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정말 막무가내라니까…….”
하지만 안 갈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지금 학교 앞까지 와 있다는데 무언가 급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때.
덥석!
“오빠!”
“으왓!”
생각에 빠져 있는 이 순간 갑자기 어깨를 잡아 오는 손길에 화들짝 놀란 나는 전력을 다해 몸을 틀었고 반사적으로 반격의 준비를…… 하려다 말았다.
“휴, 뭐야. 너였어?”
“푸흡! 뭐야, 오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그렇게 놀래?”
나를 보며 깔깔깔 웃는 은빛을 보며 깊은 한숨과 함께 대답해 주었다.
“어휴, 별일 아니야. 나 잠깐 나가 봐야 할 일이 있어서 나가 볼게.”
“에?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학교 앞에. 누가 좀 와서 잠깐 보고 오려고 금방 오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아니, 그리고 넌 어떻게 내 강의 시간까지 알고 있는 거야?”
“후후, 오빠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게…… 무. 엇. 이. 있. 을. 까?”
쓰으윽―!
오싹!
말과 함께 나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부터 위로 쭈욱 훑어보는 그녀의 시선에 최근 자주 느끼게 된 오싹함 속에 나는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어, 어쨌든 금방 올 거니까 너도 여기 있지 말고 빨리 네 강의 들으러 가. 알았지?”
“알았어!”
재빨리 가방을 챙겨 나서는 나를 향해 붕붕 소리가 나도록 손을 흔들어 주던 은빛은 잠시 뒤 입가에 묘한 미소를 떠올렸다.
“후후, 오빠의 지인이라. 누구든지 알아 두는 게 좋겠지? 여러모로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그녀 역시 종종걸음으로 태일이 사라진 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휴, 예쁘고 다 좋은데. 가끔 좀 무서운 여자란 말이지…….”
은빛에 대한 나의 솔직한 평가였다.
얼굴 예쁘고, 몸매 예쁘고, 성격도…… 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쁜 여자는 아닌 게 확실한데 가끔 그녀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 오싹오싹해진다.
그런 애틋한 시선만 마주하면 앞으로 그녀를 어떻게 나로부터 떼어 놓아야 할지 걱정이 앞서곤 했다.
“뭐, 그거야 그거고 일단 먼저 해결할 일이 있으니…….”
학교 캠퍼스 크기가 큰 편이고 문도 정문 외에도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있는 터라 이선영 본부장을 찾으려면 좀 헤매야 할 것 같았다.
“알려 주려면 학교 앞이 아니라 어느 출입구라든지, 정문이라든지. 그렇게 알려 줘야…….”
저 멀리 보이는 새카만 밴 한 대.
차량 유리까지 짙게 썬팅을 한 탓에 내 시력으로도 그 속이 비춰 보이지 않았다.
물론 마음먹고 본다면야 못 볼 건 없지만 다만 그것보다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웅성웅성.
등교하는 학생이 많은 시간 때라 입구가 소란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오늘의 웅성임은……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평소라면 여학우들의 깔깔거리는 낭창낭창한 목소리가 주된 소란이었다면 지금의 웅성임은 낮고 굵은 중저음들의 향연이었으니 말이다.
개중에는 여학우들의 목소리도 간간이 들려오는데 보통은 누군가를 다그치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이런 현상을 불러낼 수 있는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남들 눈에 띄지 말라고 해 놓고 본인은 현역 전투병이 아니라고 막하는구만.”
본인이 앞에 있다면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이었지만 뭐 어떤가, 없을 땐 나라님도 욕한다는데.
나는 최대한 큰 걸음으로 소란의 진원지를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