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14화)



“어머, 이 인기하고는, 아직도 잘 먹힌다니까 나는.”
새카만 밴에 기대어 오다가 산 거 같은 생과일주스를 쪽쪽 빨아먹으며 헛소리를 내뱉는 그녀는 오늘 새벽 지원 본부를 출발했던 이선영 본부장이었다.
주변 반응을 보면 헛소리라고 치부하기는 모자란 감이 있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만한 청각 테러가 없었다.
“흠흠…….”
“어? 왔어?”
갑자기 늘어지는 그림자에 고개를 돌린 그녀는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떡대를 볼 수 있었다.
그녀를 발견함과 동시에 순식간에 다가온 태일이 그녀의 헛소리를 듣고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그보다 더 할 말을 잃게 한 것은 그녀의 복장이었다.
“……지금 그 꼴로 남에 학교에 온 겁니까?”
“뭐? 꼴?”
“아니, 그 복장으로요…….”
금방 꼬리를 말긴 했지만 태일로서는 그녀의 복장이 상당히 불만이었다.
엉덩이 밑을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짧은 핫팬츠, 그에 따라 잘빠진 각선미를 뽐내는 맨다리와 구겨 신은 단화, 거기에 아울러 그녀의 새하얀 피부와 대비되는 까만 민소매 티는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와 어우러져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남들 눈에 띄면 안 된다면서요.”
“그래서 선글라스 썼잖아.”
“…….”
‘그럼 같이 있는 나는? 찾아올 때 나를 만날 생각을 하고 온 거 아니었어?’
질문이 목구멍을 타고 혀끝을 맴돌았지만 태일은 이를 내뱉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하아……. 어쨌든 무슨 일로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셨나요?”
분위기를 보아 하니 자신이 혼날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한결 마음을 놓은 태일의 질문에 이선영 본부장이 표정을 바꾸며 그를 잡아끌었다.
“그래, 너 말 잘했다. 빨리 들어와.”
덥석!
드르륵.
“어? 어?”
자신의 질문에 정색하더니 순식간에 손목을 잡아채고 밴으로 끌고 들어가는 그녀의 박력에 태일은 그저 어? 어? 하는 외마디 외침만 남기고 밴에 탑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선…….
“오…… 빠?”
새로운 오해가 시작되고 있었다.

털썩!
이선영 본부장에 손에 이끌려 자리에 주저앉은 나는 황당함에 물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확인하시는 겁니다. 태일 군.”
“네?”
그러더니 그녀는 다짜고짜 나에게 표적지처럼 생긴 분홍색 쿠션과 까만 장갑을 건네더니 본인은 드X곤볼에 나오는 스카우터―구슬 모으면 용이 소원 들어 주는 만화의 무력 측정기―같은 것을 쓰고는 말했다.
“써 봐.”
“네?”
“오늘 새벽에 한 거 해 보라고.”
“네에?”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말에 네? 하는 소리만 반복하자 그녀는 답답했는지 설명을 해 줬다.
“오늘 새벽에 니가 썼던 공격 기술!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써 보라고. 불 갖고 하는 기술 아니야?”
“아, 그거요?”
잠시 고민을 한 끝에 도출해 낸 답을 떠올리면서 왜 갑자기 이런 일을 시키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불만은 표하지는 않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 줄 것이지 하며 속으로 구시렁대는 정도는 했지만.
어쨌든 시키는 대로 전투복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듯한 장갑을 손에 착용했다.
그러자.
화르르륵!
장갑을 낀 틈새로 불꽃이 치솟아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장갑의 색이 새빨갛게 변했다.
‘역시 직접 착용하는 형식이라 틈새로 잠시 불꽃이 방출되는 것 외에는 큰 변화가 없군.’
어제의 변신 과정과 비교하면 지금의 이펙트는 정말 간소한 불장난에 불과했다.
“음?”
그때 장갑의 손등 부분에 천천히 문양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형상을 이루었다.
“C?”
“C라고?”
내 말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이선영 본부장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열심히 이런저런 조작을 하던 만화에서 나오는 무력 측정기를 벗어 던지고 내 손등에 나타난 C라는 글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게…… 무슨?”
“저기, 무슨 상황인 거죠 이게?”
그녀의 황망한 목소리에 분위기가 묘해짐을 느끼며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을 해 줄 생각이 없는 듯 나에게 다음 미션을 주었다.
“너, 빨리 이 쿠션. 어제 쓴 기술로 때려 봐.”
“네? 이걸요? 어제 그걸 쓰면 타 버릴 거 같은데?”
“원래 측정용으로 만든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해 보라고.”
“네. 근데 이런 곳에서 하면 차 내부가…….”
딸각―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선영 본부장이 어떤 단추를 눌렀고 그와 동시에 갑자기 우리가 앉아 있는 공간이 무섭게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거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본 거 같은데.
“됐지?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있는 밴이야. 저기 거치대에 그 쿠션 놓고 어제 한 것처럼 해 봐.”
어느새 서서 한바탕 난리를 펴도 될 만한 공간으로 변해 버린 밴 내부에서 나는 이 엄청난 하이 테크놀로지에 놀랄 시간도 없이 그녀가 시키는 대로 쿠션을 놓고 손에 힘을 모았다.
‘근데. 어쨌든 여기는 차 안이잖아? 그럼 불을 쓰는 건 위험한 거 아닌가?’
내가 사용하는 불꽃이 초능력에 의해 만들어진 불꽃이긴 하지만 이런 밀폐되고 한정된 공간에서 아무렇게나 막 써도 될 만큼 약한 불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도 그냥 불을 뿜는 수준이 아니라 기술을 사용한다면 많은 애로사항이 꽃필 것이다.
‘보아하니 어제 새로 생긴 기술을 평가하는 것 같은데……. 그럼 기술만 보여 주면 되는 거겠지? 굳이 청염(靑炎)을 사용해서 여기 태워 먹을 필요는 없는 거 아냐.’

어제 검은 줄기를 태울 때 썼던 청염은 화력도 세고 출력도 강력했다.
나 역시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는 만큼 청염은 이런 곳에서 사용하기엔 부적합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기술을 평가하는 것이니까 굳이 위력을 높일 필요는 없는 거겠지?’
나의 생각 속에서 기술의 효용과 기술의 위력은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던 탓에 기술의 위력이 곧 효용과도 직결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니, 무엇보다 기술의 위력을 평가하는데 이런 조그마한 곳에서 이렇게 불편한 모습으로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나보다 센 사람이면 누구나 이정도 공간 깨부수는 건 일도 아닌데 그걸 아는 사람들이 겨우 요만한 공간에서 내 기술 위력을 시험하려 드는 거겠어?’
물론 그걸 아는 사람들이 없을 수도 있었지만 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어쨌든 생각을 마친 나는 장갑을 낀 손 위로 불꽃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모인 불꽃은 내 양팔을 뒤덮었고 그 상태로 불꽃이 날카롭게 다듬어지는 순간.
푸화화확!
손에서 쏘아져 나간 불꽃의 창은 쿠션 정중앙을 정통으로 때렸다.
퍼펑!
나는 불꽃 창에 맞는 순간 쿠션이 폭발하면서 주변으로 불붙은 내용물을 휘날릴 거란 생각에 날아들 불씨들을 주시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엥? 멀쩡하네?”
“말했잖아. 측정용으로 특별히 만든 거라고. 겨우 그 정도로 문제가 있을 거 같아?”
측정기를 착용한 채 나를 주시하고 있던 이선영 본부장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받았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정말 ‘겨우 이 정도 밖에는’ 안 되는 기술이었다는 건데…….’
그녀가 쓰고 있는 X래곤볼 측정기 안쪽에는 방금 태일이 기술을 사용하기 전, 그리고 사용하면서 발사된 불꽃의 위력과 충돌 시 공격력이 복잡한 숫자로 나열되어 있었다.
‘불꽃을 모을 때 C, 불꽃이 창으로 변해 쏘아질 때 C+에서 B 근접으로 나왔어. 그리고 결과적으로 충돌 데미지는 C+. 어떻게 이 기술이 A급 평가가 나온 거지? 그것도 S급 추정으로?’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지금 그녀가 여기까지 직접 나선 이유는 새로운 A급 히어로에 대한 확인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그녀는 A급 평가를 만들어 낸 기술을 봤다.
‘대체 어떤 면에서?’
지금 그녀가 본 기술은 불을 사용하는 히어로들 중 섬세하게 불을 다루는 이들이라면 다들 사용하는 그런 기술이었다.
불의 창, 이만큼이나 흔해 빠진 기술도 없었다.
기술이 이토록 흔한데 A+급이 나왔다면 그 위력이 압도해야 만했다. 하지만…….
‘그런 기미는 전혀 없었어. 물론 지금 D+의 단계를 완전히 뛰어넘은 위력이긴 하지만. C+라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 영역이고. 아주 잠깐 출력이 B급에 근접한 것 외에는 그 어떤 특이점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점차 심각하게 변해 가는 그녀의 표정에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대체 무슨 일인 거죠?”
내 질문에 심각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내 얼굴을 쳐다보던 그녀는 이내 침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
그렇게 듣게 된 이야기는 놀라운 내용이었다.
‘내가 A+라니?’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간단한 기술이 A+판정을 받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S급 추정?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분명 기계 오류거나 좀 전의 C+평가가 A+로 잘못 표기된 것일 수도 있었다.
나의 그런 생각을 전하니 곧장 면박이 날아왔다.
“이 바보야! C+가 어떻게 하면 A+로 잘못 표기되겠냐? 기계 오류는……. 가능성은 있지만 정말 희박한 일이라고, 그런 거!”
하지만 말하는 그녀로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 문제였다.
지금의 차이는 적은 차이가 아니었다. 무려 C+와 A+의 차이였으니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부족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 대체 뭘까?’
“저기……. 기술이 평가 될 때는 효율도 같이 평가 되지 않나요?”
“응? 그렇지. 그거야 당연한 거고.”
“그럼 나무 괴물한테 불 기술을 쓴 거면 그 효율이 기술 평가에 반영이 되는 건가요?”
“그렇지 않을…… 까?”
나는 이 기회에 물어볼 것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어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줬다.
“어제 나이트메어를 잡으러 갔는데 나이트메어들이 묘한 행동을 하더군요. 평소와 달리 뭉쳐 있을 뿐 아니라 대화로 추정되는 말들을 하고 있었고 가운데에 정체불명의 마법진을 놓고 거기서 나오는 검은 줄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그렇게 어제의 내 무용담을 늘어놓으면서 어제의 적과 괴현상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때 딱 보니 그 검은 줄기는 식물의 덩굴이나 가지 같기도 한 게, 제가 방금 쓴 기술을 쓰니까 한 방에 몽땅 재로 변하지 뭡니까.”
그렇게 나의 무용담을 듣는 이선영 본부장의 표정은 그야말로 묘한 표정이 되었다.
나무로 된 적에게 불을 붙이는 기술을 썼더니 효과가 엄―청 좋아서 위력 면에서는 C급 기술이 A급 기술로 둔갑했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도 그것 외에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A급 평가를 납득할 수 없었다.
내가 A급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리고 실제 듣기로도 기술의 평가는 그 효율이 상당히 반영된다고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내가 처치한 녀석 같은 경우 불에 순식간에 타 들어가는 것으로 봐선 분명 불이 천적이었고 하필 상대한 게 나라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물을 다루는 히어로였다면 굉장히 고전했을 상대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엄청 센 녀석을 한방에 잡은 거니 A+급 평가가 된 걸 수도 있지.’
무엇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그 기술, 정말이지 기술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그런 것이었다.
이 계통의 히어로라면 불은 물론이고 물, 바람, 전기 등등 모든 것을 활용해서 나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는데 이런 흔한 기술이 A급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걸 나조차 납득하기 어려웠다.
내가 그렇게 혼자서 끄덕거리고 있는 사이 이선영의 고민은 깊어 갔다.
‘그래. 분명 기술의 평가 기준에는 효율 역시 상당히 비중을 차지하긴 했지. 정말로 이 녀석 말대로 적이 불에 극도로 약한 타입이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상황이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사실 그녀의 본부장으로서의 경력은 그리 길지 않았다.
예전에도 말했듯 그녀는 약 일 년 전 불의의 사고로 능력을 모두 소진해 버렸고 전투력을 상실해 버렸다.
하지만 그간의 공로와 현장 경험, 그리고 다른 히어로들로부터 많은 지지가 있어 본부장 자리에 앉을 수 있던 것이지, 그녀가 이런 행정 업무와 관련한 전문 교육을 이수하진 않았을 뿐더러 그녀가 받은 교육은 오직 본부장직에 한정된 교육이었다.
기술의 효율이 기술의 평가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않느냐.
그녀가 알고 있는 교육 자료와 매뉴얼대로라면 분명 들어가지만, 그게 A+까지 평가를 끌어올릴 수 있을 정도인가에 관해서는 분명 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