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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16화)


무슨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 먼저 입을 연 것은 모니터 속의 남자였다.
“A+라고?”
“예.”
“설마 벌써…….”
“……?”
“아니, 아니다. 그래, 공식 보고된 부분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녀석에 대해 많이 알려질 테고. 그럼 골치 아픈데 말이야.”
모니터 밖의 남성은 잠시 모니터 속 남자가 하는 말을 듣고 곧 말을 이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보고된 것은 아닙니다. 현재는 경기 지원 본부 서버 데이터베이스에만 등록이 되어 있는 상태고 보고가 집계되는 시간까지 아직 한 시간 가량 남았으니 지금이라면 이선영 본부장 말고는 알지 못할 겁니다.”
“그런가? 하긴, 보고가 되었다면 지금 사무실이 이렇게 조용할 수 없겠지.”
“혹시 불편하신 내용이라면 미리 조작을 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좋겠지만, 이선영 본부장이 걸리는군.”
“입 하나만 막으면 되는 일입니다. 시켜만 주십쇼.”
“아냐, 그 행동이 악수가 될 수 있어, 지금은 아무 힘도 없지만 아직도 미소의 천사라는 닉네임 하나에 모여들 놈들이 수두룩하니까. 위험을 자초할 필욘 없겠지.”
“그렇다면?”
“그냥 수정해. 그리고 오류였다고 해.”
단호한 명령에 모니터 밖의 남성은 잠시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다시 한 번 물었다.
“그걸로 괜찮을까요?”
나름 그의 상사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역정이었다.
“자네가 언제부터 내 결정에 토를 달 수 있게 된 거지? 내가 자네의 반론을 허락하는 순간은 내 결정이 확정되지 않았을 때뿐이야.”
“죄송합니다.”
“그래, 알아들었으면 바로 실행해.”
“예. 그럼, C급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원래 등급이나 그 이하가 되어 버리면 그것도 문제가 있으니 그 정도가 적당하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잘 해 두도록.”
피잇.
남자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모니터는 빛을 잃고 어둠에 침식되어 들어갔다.
그리고 모니터를 향해 약간 상체를 숙이고 있던 남성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신태일이라……. 정말 골치 아픈 녀석이군.”
그는 품속에서 꺼내든 기계장치에 태일의 히어로 정보를 열람하며 중얼거렸다.
“A+. 경계와 감시 등급을 올려 두는게 좋겠군.”
그 말과 함께 그가 몇 번의 기계조작을 하자 곧 태일의 정보가 변경되기 시작했다.
삐빗.
[A+등급 → C+등급]
[강등하시겠습니까?]

삑.

[강등 처리 되었습니다.]

“뭐, 지금 보고가 불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최대한 근접하라고 해 두는 게 좋겠지.”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손에 들린 기계 장치를 몇 번 조작하여 익명 메시지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한 통의 메시지가 민간에는 공개되지 않은 통신 전파를 타고 전해졌다.

* * *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지치곤 한다.
직장에서의 업무, 각종 금전적인 이유,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그리고 육체적인 피로. 그리고 그 외의 이유가 있다면 그냥.
“오늘은 정말 한 것도 없이 지치는군.”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학교를, 정확히는 박은빛 그녀의 곁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무거운 몸으로 가방을 바닥에 내렸다.
“곧 알바를 가야 할 시간이네.”
현재 시간은 다섯 시.
예정대로라면 이보다 한두 시간 전에 도착해야 맞지만 오늘따라, 물론 실제로 만난 건 며칠 안 되지만 유달리 들이대던 은빛 탓에 함께 식사를 하러가자는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한 탓이 컸다.
이렇게 말하면 내 몸이 지친 이유를 위에 말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녀와의 식사는 단순한 스트레스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었다.
오늘 먹으러 간 음식이 맛있던 탓도 있고 박은빛, 그녀가 유달리 많이 들이댄 건 사실이나 오늘 아침 잔뜩 울린 게 생각나 사과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탓에 그녀가 먼저 제의한 식사가 나름 반가웠다고 할 수 있었다.
뭐 그녀의 말에 어울려 주느라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달랠 방법에 대해 고민한 것에 비하면 이정도 선에서 무마된 게 다행일 지경이었다.
‘사실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침에 펑펑 눈물을 쏟던 그녀를 생각하면 왠지 내가 잘못한 것 같달까?
어찌 되었든 헤어지기 전에 만족한 웃음을 짓던 그녀를 보면 기분이 풀어진 것은 확실해 보였기에 마음이 놓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피곤한 이유는 정말 그냥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런 몸을 이끌고 그 피크타임을 견뎌 내야 한다는 거지?”
그 지옥도와 같던 편의점의 풍경을 떠올리자니 지금이 알바를 하는 게 정말 최선인가 고민이 되었다.
‘그렇다고 신용불량자가 될 수는 없으니.’
뭐 다음 달 월급을 정상적으로 받는다면 그런 문제야 없겠지만 누누이 말하는데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다.
오늘 아침의 일은 물론이고 내가 지금 시간에야 도착한 것도 예상 밖의 일 아니던가?
그런 만큼 7월 1일 6시에도 내가 사냥한 나이트메어의 수가 49마리가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절대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털썩.
적당히 개어진 이불 위에 엉덩일 붙인 나는 남은 시간은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바를 일찍 가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다고 한 시간이나 일찍 가서 일을 해 줄 이유도 없었고 지금으로선 그 편의점을 조금이라도 덜 보는 게 마음이 편했다.
‘되도록이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좋겠지.’
밖에 나가면 돈을 쓰게 된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
가장 기본적인 학교를 가는 행동만으로도 차비가 들고, 공부를 함에 있어서도 돈은 반드시 들기 마련이며 사람을 만나는 행위에 금전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종류나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금액이 달라지긴 할 테지만 개인적으론 지금 학교를 가는 데 드는 차비조차 아까운 상황.
사실 오늘 아침에는 텔레포트로 학교에 갈까도 했지만 시험 기간의 대학교라는 곳은 결코 사람이 적은 곳이 아니었다.
아침 일찍부터 도서관에 자리 잡고 앉아 공부를 하는 사람부터 이미 며칠 전부터 학교에 눌러 앉아 먹고 자고, 씻지는 않으면서 공부를 하는 이들로 넘쳐 나는 곳이 대학교다.
그런 곳에서, 아무리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사용할 것이라곤 하지만 텔레포트와 같은 기술을 사용했다가는 단숨에 국내를 넘어 해외 신문의 일면을 장식하는데 부족함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 있었다.
오히려 요즘 같은 시기에 나처럼 곧장 집으로 가는 경우가 드물다고나 할까?
물론 개중에는 집에서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그 이유가 나처럼 알바인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것도 시험주간 한가운데에서 새로 알바를 구하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뭐 그래도 병행해서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겠지만.’
난 보통의 일반적인, 평범한 대학생을 기준으로 말한 것이니 예외 규격에 드는 경우는 빼도록 하자.
이런 생각이야 어찌 되었든 지금의 나는 한 시간이 못 되는 이 시간을 알차게 활용할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봐야만 했다.
하지만.
‘운동을 할까? 하지만 내 운동 방식은 장시간 운동으로 몸이 지칠 때까지 하는 거잖아?’
게다가 이미 몸은 지친 상태이고.
‘게임은 어떨까?’
생각해 보니 게임이란 걸 안 해 본 지도 굉장히 오래되었다.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쉽게 끄기 어렵다는 것을 옛날에 몸소 겪어 본 바 별로 끌리지는 않았다. 실제로 딱히 하고 싶은 게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인터넷 뉴스? 하지만 그런 거야 등하교 길에 핸드폰으로 충분히 봤을 뿐 아니라 히어로는 사회 문화적 지식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 발행되는 사내 신문이 매일 메일로 보내지기 때문에 정 뉴스를 보고 싶다면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오늘 분은 이미 읽었지.’
그렇다면 뭐가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한참을 고민한 결과 나에게 꼭 알고 싶은 내용이 있었음을 기억해 냈다.
“결국 내가 직접 이 번호에 전화를 걸게 되는군.”
오늘 아침의 일로 전화할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니 결과에 대해 물어보려면 내가 전화를 해야만 했다.
물론 큰일이라면 이선영 본부장이 먼저 전화를 줄 것이다. 만약 별것 아니라면 절대로 먼저 전화할 리 없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뚜르르르.
꿀꺽.
그저 신호음만 가고 있을 뿐인데 왜 이리 긴장이 되는지.
그 짧은 시간 동안 한숨과 마른침을 몇 번을 삼켰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내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본부장님. 저 신태일입니다.”
“아, 마침 연락하려고 했어. 오늘 아침에 일 때문에 그런 거지?”
하나도 급하지 않은 목소리로 마침 연락하려고 했다는 부분에서 잠시 진정성이 의심되었지만 그런 것에 태클을 걸 만한 용기는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네.”
“그래, 내가 알아낸 대로 알려 주자면. 그건…….”
“그건……?”
“그건……!”
“그건?”
앵무새마냥 그녀의 말을 따라 하며 그녀가 한참을 끄는 대답을 재촉했지만 그녀는 호락호락 대답을 주지는 않았다.
이 끝없는 싸움의 승패 판정에 대해 계속해서 말을 끄는 그녀의 말을 따라하는 내가 패자인 건지 아니면 그녀의 말을 따라함으로서 그녀에게 대답을 듣고자 재촉하여 그녀의 입에서 자꾸 대답을 지연시키는 말이 나오게 하는 내가 승리자인가와 더불어 이 끝없는 싸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나 본인조차 별 관심이 없는 이 승패에 관해서는 이내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나도 몰라.”
이 대답을 끝으로 말이다.
“……모르신다니요?”
“뭐가 ‘모르신다니요?’야. 그냥 모른다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모든 자료를 찾아봤지만 네가 봤다는 그런 괴현상과 관련해서는 단 한 조각의 정보도 못 찾았어. 지원 본부의 본부장으로서 찾아볼 수 있는 모든 부분은 다 찾아봤는데도 알 수 없다는 것은 나보다 상위 권한의 자료열람 권한을 통하여 조금 더 기밀에 가까운 내용을 찾아본다든지 혹은 알고 있을 만한 사람에게 의뢰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그리고 난 그 두 가지를 모두 다했고 그 결과를 알려면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으니 지금의 나는 모른다고 대답하는 게 정확하겠지.”
“네?”
너무나도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가는 말의 소나기 속에서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파악하긴 했지만 그녀가 취했다는 후속조치에 관해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쉽게 말하자면 나보다 윗사람 중에서 그것에 관해 알 만한 사람한테 의뢰했다, 이거야.”
“그, 그렇군요.”
“그런 거지. 아, 그리고 또 다른 오늘 아침에 일에 관해서 말인데.”
“오늘 아침 일이요?”
순간 머릿속으로 스치고 지나간 건 펑펑 눈물을 쏟던 은빛의 모습이었다.
“그래, 오늘 아침에…….”
“말씀드렸습니다. 은빛이와 저는 아직 아무런 사이도 아닐 뿐더러 등록을 하는 것은 절대반대라고요.”
등록.
이 단어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굳이 국어사전, 한자사전을 뒤지지 않아도 세상 모두가 아는 단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히어로들 사이에 있어 등록이란 것은 그 이면에 또 다른 뜻을 가진다.
지금 말하려는 것의 정확한 명칭은 ‘예비 배우자 등록’.
히어로가 이성을 사랑하기로 마음먹고 서로가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면 하게 되는 등록으로서 이곳에 이름이 올라가게 되면 연인이 민간인일 경우 공식적으로 회사의 비호를 받게 된다.
그 비호의 범위는 육체적인 보호를 비롯하여 사회적인 범위까지 끌어안는다.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히어로가 연인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본인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여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이외에도 히어로는 등록된 이와 가정을 꾸리게 될 경우, 회사에서 정부의 이름으로 각종 지원과 혜택을 주며 히어로 본인은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됨을 배려해 급여 혜택은 물론, 생존에 도움이 되는 각종 장비가 보급된다.
물론 이 갖은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업무에 성실했다는 의미의 높은 실적이 필요하지만 최소한 등록을 하는 것만으로도 얻는 혜택이 많기 때문에 많은 히어로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와 함께, 혹은 상대 모르게 등록을 했다.
물론 등록은 ‘예비 배우자 등록’이니만큼 반드시 상대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은 없다.
하지만 히어로 본인만의 의사로 등록을 취소하는 행위를 하면 그 기록이 남게 되는 탓에 보통은 굉장히 신중하게 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