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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18화)


그리고 그 순간.
딸랑―
그 시간이 도래했다.
“으자차차차! 오늘도 끝났다.”
오늘도 무사히 피크 타임을 견뎌 내고 일을 마무리하던 나는 문득 피크 타임이 시작된 이래로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일만 하고 있는 상원이 떠올랐다.
“상원 씨. 물건 진열 그만하시고 잠시 여기 와서 정산 한 번 같이 하세요. 인계하려면 잔돈 확인하셔야죠.”
“……네.”
“……?”
왠지 힘이 빠져 보이는 상원이었지만 나는 피크 타임의 후유증으로 치부했다.
사실 나만 해도 민간인의 범주를 벗어난 체력 덕분에 이렇게 버티는 것이지 사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저 정도의 반응이 정상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상원의 축 처진 어깨와 늘어진 양팔, 그리고 약간 날카롭게 보이는 눈빛에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처진 어깨와 팔은 그렇다 치고. 눈빛은 왜 저래? 많이 피곤한가?’
어제 함께 일했던 김진성을 떠올려 보니 일이 끝날 무렵엔 눈이 퀭하게 변해 있던 것이 떠올랐다.
‘뭐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거겠지. 피곤하면 눈꼬리가 올라갈 수도 있지 않겠어?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런 걸 수도 있는 거고 말이야.’
그렇게 시작과는 다르게 변한 상원의 모습에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덧붙이면서 옆에 다가온 그와 함께 정산을 했다.
땡그랑, 땡그랑.
“오십 원짜리가 오천오백 원! 딱 맞네요.”
“네, 그렇네요…….”
일이 끝났다는 기쁨에 한껏 업되어 있는 나와 달리 여전히 처져 있는 상원을 보면서 나는 씨익 웃어 보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이 일도 차차 익숙해지겠죠. 저도 오늘 알바 오기 전까지만 해도 오늘을 또 어떻게 견디나 이 생각밖에 없었는데 아까 상원 씨가 말했던 것처럼 일에 몰두하고 보니 어느새 끝나 있더라고요. 오늘 아무런 실수 없이 이 일을 마치신 것만 해도 충분히 재능 있는걸요.”
사실 알바 이틀 차인 내가 할 말도 아니고 실제로 편의점 알바를 나보다 오래했을 그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재능이 있다고 하는 것도 실례일 수 있지만 그런 것을 따지기엔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런가요?”
“그래요!”
내 말에 힘을 얻은 건지 왠지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을 하는 모습이, 뭐랄까 사람 얼굴이 이런 표현을 쓰기는 좀 그렇지만 그로테스크?
그런 느낌이었지만 나름 웃으려고 노력하는 얼굴인지라 차마 말을 할 수 없었기에 ‘그래요.’ 한마디로 상황을 벗어났다.
딸랑.
그리고 그사이 도착한 다음 알바생과 함께 다시 한 번 잔돈을 세어 보면서 나는 오늘의 일을 마무리했다.
오늘은 여러모로 피로가 누적된 몸이라 집에 돌아가자마자 푹 쉴 생각이다.

알바를 마치고 나오는 길 상원은 태일과 헤어져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모두 보인다고? 그리고 그렇게 몽땅 다 맞춰 놓고도 태연한 척 연기를 해?’
그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아니, 태일의 자연스러운 말 돌리기와 우연인 척 조롱하는 태도에서 이미 발각되었음을 눈치챘다.
‘젠장! 눈썰미만 좋아 가지고는! 여태껏 임무에 들어가면 내 존재조차 알아채는 녀석이 드물었는데, 이게 다 오늘 아침에 갑자기 바뀐 임무 내용 때문에 그런 거야!’
금이 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오늘 아침 갑자기 변경되어 하달 된 임무 탓을 해 보기도 했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일을 진행한 건 그 자신이었다.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하길래 너무 방심했어. 오늘 이사를 와서 오늘 처음 본 편의점에서 그날 우연히 그만둔 편의점 알바생을 대신해 자리를 꿰차다니 의심스럽기 짝이 없잖아! 게다가 그렇게 허술하게 몸을 숨기다니. 큰 옷을 입긴 했지만 그 탓에 목 주변이 많이 드러나서 승모근 관찰에 유리한 모습이 되어 버렸잖아.’
그는 자신의 패인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그를 보완할 방법을 떠올렸지만 특별한 대책은 없었다.
‘이미 밝혀진 것이야. 이제 와서 모습을 바꾼다면 오히려 큰 의심만 사겠지. 아니, 이미 의심을 사고 있어, 아니, 정확히 나를 알아보고 있어!’
실제 벌어진 상황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피해망상에 가까운 생각이었지만 그의 입장에서 오늘의 일은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빠드득.
“바뀐 임무에 돌입한지 하루 만에 실패라니! 그건 내 자존심이 용납 못하지!”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지금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대놓고 녀석에 대해 정보를 캐낼 생각이다.
“어차피 녀석도 대외적으로는 민간인. 그리고 나 역시 평범한 대학생이야. 결코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그걸 역으로 이용해 주마!”
‘두고 보라고 나를 기만한 대가를 똑똑히 치르게 해 주지! 요일별로 입는 속옷 색깔에 여성 취향까지 알아내 주마!’
본명 장원삼. 등급 B+. 특기는 잠입, 미행을 비롯한 요인 암살과 기밀 정보 취재 등!
능력은 마인드 컨트롤과 존재감 지우기.
이러한 능력의 특수성과 업무 특성 탓에 정식 히어로로 등록되지 못한 비운의 능력자!
하지만 본인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10여 년을 먹고살아 온 남자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는 태일을 향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같은 시각 태일은.
“흐음, 마침 오늘 폐기가 있을 줄이야. 워낙에 물건 순환이 좋아서 폐기 같은 건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안 팔리는 건 어쩔 수 없나 보군. 게다가 이번에 새로운 알바생도 마음에 들어. 이런 걸 그렇게 쉽게 양보하다니. 알바하는 걸 보니 하나라도 아쉬울 게 빤한데. 다음번에 나온 건 꼭 상원 씨 줘야겠다.”
……오늘 나온 폐기를 양보받았음에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6 적과 아군



이튿날 태일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의 자취집.
장원삼은 큰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일단 목표는 녀석에 대한 모든 것. 가진 속옷의 개수부터 알 수 있다면 모공 개수까지 세 버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실제로 그의 능력이라면 민간인의 경우 본인이 지닌 마인드 컨트롤 능력과 존재감을 지우는 능력으로 위의 내용을 실제로 실천할 수 있지만 지금 그가 감시하는 대상은 민간인의 범주를 넘어선 인물이었다.
‘애당초 히어로 감시 임무는 처음이니까.’
10년간 그가 해 온 일은 언제나 이런 일이었다.
어딘가에 숨어들고 그곳에서 정보를 캐고, 그리고 능력이 된다면 요인을 암살하고 결코 히어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행동들이었다.
그런 탓에 그는 B+의 높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공식 문건 상, 사무직 요원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그도 이해하는 바였다.
애당초 자신의 능력이 전투에는 부적합했다.
지금이야 피나는 훈련 끝에 굉장한 신체 능력을 지니게 되었지만 처음에 능력이 생겨났을 땐 그야말로 닭 모가지 비틀 힘조차 없는 비실비실한 몸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에 와서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녔다고는 하지만 이 신체 능력도 민간인의 기준에서 엄청난 것이지 실제 전투 요원들과 비교를 한다면 보잘것없다.
아마 그의 신체 능력에 등급을 매긴다면 D급의 전투 병력 수준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오랜 경험과 그가 지닌 능력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일대일 전투를 벌인다면 쉽게 지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이긴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수준.
왜냐?
애당초 전투력을 보고 받은 등급이 아니니까.
어찌 되었든 그가 이번에 받게 된 임무는 히어로의 감시 임무.
그것도 내부의 첩자를 감시하라는 중요한 명령이었다.
물론 그가 받은 명령 내용에는 상대가 첩자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혐의가 높으니 확인하라는 정도. 하지만 처음 만난 뒤로 그의 머릿속에서 태일은 이미 첩자였다.
아니, 첩자일 수밖에 없었다.
어제 자존심을 구긴 일로 인한 보복성 판단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일이 그가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줬다.
‘애당초 D급, 아니, 이제 갓 C급에 올라온 전투 요원이 그만한 눈썰미를 가지고 있다고? 업무 경력이 햇수로 3년 밖에 안 된 녀석이?’
그는 이 임무에 투입되기 전 태일에 관련한 모든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그중 몇 가지 눈에 띄는 것은 D급치고는 잡다한 여러 종류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과 경력이 그야말로 햇병아리 수준이라는 것.
업무 경력이 2년, 햇수로는 3년. 그 탓에 햇병아리로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 업무 내용을 훑어보면 평가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히어로가 된 이래로 저번 달 단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나이트메어만 50마리씩 꼬박꼬박 잡아 왔어. 그 외의 다른 어떤 적도 상대하지 않고 말이야.’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태일의 업무 내용은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저렇게 일을 하고도 여태껏 경고를 받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물론 이번에 49마리를 잡은 것에 대해 이선영 본부장이 경고를 준 것이 확인되었지만 그동안 적으로서는 최하 등급인 나이트메어만을 50마리씩 잡으면서 연명해 왔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보통 전투 요원의 경우 실무 경력이 1년이 넘으면 조금씩 업무 기준치가 늘며 2년가량 일을 했다면 그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에서는 자동으로 100마리 이상의 할당량이 배분이 되도록 되어 있고 그 이후로도 업무 성과에 따라 조금씩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나이트메어만을 잡아서는 결코 할당을 채울 수 없게 된다.
그런 탓에 단 한 마리만 잡아도 많은 할당을 채워 주는 높은 수준의 괴수와 적을 상대로 일을 한다.
물론 그렇게 한다면 그 성과가 점수에 반영되어 다시 할당이 증가하지만 단 한 마리로 적게는 열 마리, 많게는 수십 마리분의 할당을 채워 주는 괴수를 사냥하는 것이니 크게 할당량에 있어서는 부담되지 않으며, 이런 식으로 숙달한 히어로들은 점점 성장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태일. 그의 업무 내용은 달랐다.
매달 50마리.
2년여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내용에, 그것에 관해서 어떠한 제한도 없다.
히어로의 업무 할당은 그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히어로의 수준에 맞춰 할당을 주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태일은 D-로 시작하여 D+가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할당량의 변화를 겪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가 모르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태일이 그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사고를 쳤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이선영 본부장이 큰 징계를 막아 주는 대신 위의 결정에 따라 징계를 겸하여 업무량을 증가시키지도 않고 월급을 늘려 주지도 않았다는 점이었다.
원래대로면 이런 징계 내용에 관해 보고가 되었어야 했음에도 기록이 없는 이유는 당시 본부장 취임 초기였던 이선영 본부장이 소속 부하를 배려한다는 의미에서 과도한 일처리로 이래저래 손을 쓴 탓이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내용은 결정한 이들과 이선영 본부장, 그리고 태일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었고 이 부분은 당연하게도 장원삼이 받은 자료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의 고민은 이어졌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경우는 오직 한 가지.’
히어로를 관리하는 서버에 직접 열외 명령을 내놓는 것.
오직 그 방법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게 가능한 것은 오직 두 부류, 서버에 간섭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회사 내의 인물과 민간에 알려지지 않은 엄청난 하이 테크놀로지도 무력화할 수 있을 정도의 해커.
그의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태일의 경우 이 두 가지 모두가 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
사실 회사 내에 첩자가 그 한 명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 회사가 오래된 만큼 많은 첩자들이 잠입을 해 왔고 보통은 고위직에 오르기 전에 걸러지지만 개중에는 걸리지 않고 통과된 인물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누군지 모를 조력자가 서버에 간섭하여 조작했을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이 경우 내역을 수정한 사람에 대한 기록이 남기에 고위직에 있는 첩자라면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만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최소 그 정도의 고위직이 아니면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니만큼 거침없이 했을 수도 있다는 게 그의 견해였다.
실제로 서버에 간섭할 정도의 간부라면 그 정도 일은 뻔뻔하게 벌려도 누가 함부로 터치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다른 한 부류인 해커.
사실 그로서는 이 부분은 위에 설명한 것에 비해 비중을 낮게 잡고 있었다.
이 히어로를 관리하는 서버란 것은 단순히 우리네 주변에 존재하는 컴퓨터나 슈퍼컴퓨터 수준을 넘어서는 진정한 하이 테크놀로지의 결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