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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22화)


전화 내용 중 서로간에 사랑을 속삭였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잠깐의 만남 동안 두 남녀가…….
‘아니, 아니지.’
잠시 이상한 쪽으로 빠지려던 생각의 방향을 급수정한 장원삼은 그 외에도 이선영이 경기 지원 본부장이라는 급이 높은 본부장 직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회사 내 인맥이 상당하다는 점, 그리고 솔로라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태일의 업무에 관해 어떠한 제지도 없었던 점 등을 들어 태일이 이선영 본부장을 노리고 있거나 이미 넘어간 상태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일을 떠올려 보건대 결코 그런 기색은 아니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선영 본부장과 오늘 찾아온 그녀 둘 모두를 노리고 양다리를 걸치려 한다고 생각 할 수도 있었지만 만약 그럴 경우 첩자인 태일에게 있어 그녀들은 하나하나가 시한폭탄이자 건드리면 자멸로 이끌 법한 핵폭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첩자로서 교육을 받았다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리가 없지.’
물론 이 상황에서 조금 비약을 더한다면 이미 이선영 본부장은 돌아선 상태로 태일에게 도움을 주고 있고 태일은 무언가 또 다른 노림수를 가지고 민간인 여자를 사귀고자 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그의 경험이 녹아든 직감은 그런 건 결코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물론 이 부분도 완전히 혐의를 벗을 수 없으니 기억해 두는 게 좋겠지만.’
어쨌든 오늘 태일의 행동은 분명 첩자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많았고 첩자가 아니라고 하기엔 그의 능력이 너무 비범했다.
‘정말 혼란스럽군.’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필요한 것은 확실한 조사였고 오늘의 일을 통해 그나마 건진 정보인 알바 후 있는 ‘그 일’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태일을 미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 지금 하려는 게 뭔지 정확히 안다면 이 상황을 정리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될 테지.’
그 생각을 끝으로 장원삼은 더욱 깊은 골목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태일을 쫓아 어둠에 몸을 적셨다.

‘음? 기척이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일정 거리를 두고 꾸준히 따라오던 기척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편의점을 나선 순간부터 계속해서 따라오는 정체 모를 기척에 일도 못하고 주변을 맴돈 게 벌써 삼십 분이 지났다.
변신할 자리는 이틀 전에 봐 뒀던 빌라 공사 현장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지금 뒤에 따라오고 있는 게 누군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자신의 능력을 공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런 경험이 없어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행동을 보건대 분명 이 분야에 있어 프로가 틀림없었다.
‘이런 쪽의 프로가 무슨 이유로?’
의문이 들었지만 찾아가서 물어볼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상대가 적인지 아군인지도 확실히 알 수도 없을 뿐더러 행동을 보건대 아무래도 아군일 가능성보다는 적일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그리고 혹여 나보다 강할 경우가 있으니 아무래도 맞붙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지금 이 순간 기척은 사라졌지만 난 결코 정체불명의 상대가 이 주변을 떠났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 날 따라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저 주위를 빙빙 돈 내 행동이 그의 경계를 풀거나 목적을 이루게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말이다.
‘삼십 분 동안 계속해서 눈에 안 띄는 장소를 돌아다녔지만 모습을 드러내거나 나를 위협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미행이나 감시. 그런 게 목적인 것 같은데.’
만약 그런 게 목적이라면 결코 내 곁을 떠났을 리 없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의문점이 생긴다.
‘누가? 왜?’
나는 최근 있었던 일 중 내가 미행 혹은 감시의 대상이 될 만한 행동이 있었는지에 대해 찬찬히 떠올려 보기 시작했다.
‘최근에 특별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은빛이를 알게 된 것, 건수를 만들어서 이선영 본부장을 대면한 것, 등급이 오른 것…….’
그 외에도 잡다하게 과제를 한 것, 과제는 잘 해 갔는데 발표를 망친 것 등이 떠올랐지만 그 어떤 것도 이런 상황을 만들 만한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더 오래전의 일은?’
그런 생각 속에 시간을 거슬러 거슬러 최근 2년간의 모든 일을 떠올려 봤지만 누군가에게 원수를 산다던지 감시를 받아야 할 일을 저지른 기억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뭐, 나로 인해 일이 터지면 이선영 본부장이 ‘야 이 웬수야!’하고 전화로 소리 지른 적은 있었지만 그 일들은 전부 전화를 통해 해결을 했으니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오래된 일들로 이제 와서 감시가 붙었을 리도 없고 말이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지금 저런 게 붙었다면 아무래도 최근의 일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근 몇 달간은 정말 조용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지냈기에 문제가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일 중 하나라는 것인데…….
‘은빛이가 의뢰를 했나?’
의뢰.
사실 이 회사는 단순히 국가 지원금만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었다.
외부에는 나름 이름 있는 회사로 위장되어 있었기에 거기서 나오는 히어로들의 월급이나 개발비 등을 지원했으며 또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의뢰를 해결해 주는 식으로도 자금을 조달하고 있었다.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는 회사가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오면서 세상에는 히어로의 존재에 관해 알게 된 이들이 극소수 존재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국가 지원 업무를 하는 공무원들이었다.
우리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당 업무를 하는 인원 일부에게 비밀을 조금 공개하는 수밖에 없었고 국비를 소모하는 일이니만큼 관련한 몇 가지 절차가 필요했으며 이에 따라 추가로 비밀을 알게 된 이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렇게 알게 된 이들이 바로 의뢰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의뢰주들.
이들의 경우 비밀 서약을 하고 국가 지원을 받는데 도움을 준 대가로 일정 금액을 내고 히어로의 능력을 활용한 의뢰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물론 히어로의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기에 부당한 일은 절대로 해 주지 않았고 결코 비밀이 알려지지 않는 선에서만 일을 처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의뢰하는 사람은 꾸준히 있었다.
그리고 그 의뢰 내용은 보통 신변 보호가 많다. 이는 의뢰자 본인의 신변 보호 외에도 가족이나 연인 등의 사람에게도 적용이 가능한 것이라 특히 의뢰가 많이 들어왔다.
그렇다면 지금 나를 따라오던 누군가가 그런 의뢰를 받은 히어로일 가능성이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녀가 이런 의뢰를 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우선 의뢰자의 까다로운 자격부터 문제다.
보통 의뢰자가 되기 위한 조건에 들기 위해서는 정부에 신뢰받는 고위 공직자 중에서도 극히 일부라는 기준에 들어야만 했으며 의뢰에 필요한 무지막지한 금액을 지니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녀의 집안은 듣기로는 나름 잘나가는 회사의 회장님 집안이라고는 했지만 결코 나 정도를 감시하거나 보호하는데 그만한 거금을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우리 회사에선 설령 의뢰자의 조건에 충족이 되더라도 의뢰자의 직계나 가까운 친인척이 아닌 남의 신변을 보호하거나 감시하거나 하는 일은 쉽게 맡아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회의 이권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이렇게 비리비리하게 먹고살고 있기는 하지만 실상 히어로의 능력은 그야말로 놀랍고도 강력한 힘인지라 이런 우리 중 최말단 한 명이라도 사회 이권에 맘 잡고 뛰어들면 그야말로 치트키를 사용한 효과가 벌어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회사에 소속된 히어로들은 처음 입사할 때 미리 마법이 깃든 계약서에 서약을 해야만 한다.
어쨌거나 이러한 이유들로 은빛이 나에 대해 의뢰를 했다는 것은 정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지 않는 이상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선영 본부장이 시킨 건가?’
사실 이게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었다.
이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바로 이선영 본부장이 말 그대로 ‘본부장’이기 때문.
그녀의 지위는 이곳 경기 지원 본부 내에서 최고로 A급 히어로들조차 직급상 그녀의 부하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관이 부하에게 명령을 한다면 어떨까?
A급들이야 모르겠지만 그 밑으로는 까라면 까는 수밖에 없다.
그녀의 목적이야 어쨌든 만약 이선영 본부장이 휘하의 히어로 중 아무나 붙잡고 나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린다면 그 히어로는 최우선 적으로 직속상관인 그녀의 말을 따라야만 했다.
이런 식으로 명령을 내린다면 위에 한참을 설명한 복잡한 의뢰 같은 건 필요도 없고 오직 본부장 직함 한 가지만 있으면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의문이 남는다.
‘왜?’
왜 그녀가 나를 감시할까?
물론 내가 몇 년 사이에 건수를 몇 건―그렇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없이 지내는 히어로들에 비해 한참 많은 횟수지만―일으키긴 했지만 어떻게든 전부 무마가 되었고 그에 따른 징계들도 작게나마 모두 받은 상태였다.
게다가 최근에 건수에 관해서는 결코 작지만은 않은 징계도 받지 않았던가?
‘시행은 반년 후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로 인해 반년 뒤에는 목숨을 건 싸움터에 가게 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그로 인해 나는 호감을 갖게 된 여자조차 물려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은빛이를 그렇게 만나게 될 줄 알았다면 사인하는 게 아니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선영 본부장이 일요일 아침에 찾아오는 열의를 보이지만 않았다면 서명을 안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왜냐하면 그날 오후에 박은빛을 만났으니까.
‘생각해 보면 좀 억울하단 말이지.’
분위기에 휩쓸려, 그날따라 싱숭생숭하던 마음에 휩쓸려 위험한 싸움터에 간다는 판단을 하고서도 서명을 해 버렸다.
물론 어떻게 보면 그 결과로 막무가내로 달리다 그녀를 마주친 것이긴 하지만 박은빛의 성격을 보건대 아마 그날 마주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학교에서 반드시 마주쳐 오늘과 같은 상황을 빚어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조금 후회가 되는군.’
지난 세월 동안 여인이라고는 모르고 산 나에게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여성이 나타났는데 시원스럽게 마음을 열지도 못하다니,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강하고, 내 힘에 더 자신감이 있었다면 괜찮을까?’
사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위험한 싸움터에서 죽거나 혹은 불구가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강한자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내가 A급의 히어로였다면?
파견자 목록의 마지막 줄이 아니라 맨 위 아니면 그 아랫줄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그렇다면 나는 그녀의 이런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받아 줄 수 있었을까?
“…….”
하지만 지금에 와서 고민해 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
지금의 나는 C급 비록 전보다 높은 등급과 강한 힘을 인정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당장에 그 이상의 등급을 판정받을 수 있는 것도 그보다 강한 힘을 내는 것도 불가능하니 말이다.
지금은 내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생각이야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오면 이선영 본부장 역시 나를 딱히 감시하거나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등급이 올라간 히어로가 며칠간 의무적으로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잘 생각해 보면 승급 대상자 혹은 승급한 히어로가 해당 계급에 걸맞는 행동을 하는지 등을 감시하기 위해 그러한 절차가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 정말 그런 절차가 있었다면 본부장인 이선영이 그걸 가르쳐 주지 않았을 리 없고 나 또한 그러한 규정은 들어 본 바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왜?
‘이럴 땐 아무래도 직접 물어보는 게 좋겠지?’
조금 전 갑자기 기척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 때는 깜짝 놀랐지만 나 역시 힘을 돋워 감각의 범위와 위력을 높이니 멀지 않은 골목의 그림자 속에서 방금 전까지 나를 따라오던 기척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상대의 능력 탓인지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를 찾아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건데 만약 전투가 벌어진다면 여긴 너무 눈에 띄어.’
내가 비록 조용하고, 어둡고, 사람이 없는 비좁은 골목만을 찾아다녔다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아직 주택가 주변의 골목길 사이.
그런 최악의 경우 상대와 전투 시 나보다 강한 탓에 내가 전력을 다할 경우, 장담컨대 이 주변 반경 수백 미터 내에 잠자는 사람 모두를 깨울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만약 본격적으로 부딪혀 폭음이 울린다면 킬로미터 단위도 가능할 게 빤했다.
물론, 지금까지의 조용한 모습이나 상황으로 보건대 상대가 지금 당장은 적의가 없는 탓에 마주친다고 바로 전투를 벌일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애당초 미행을 하던 사람과 미행을 당하던 사람이 만나는 자리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내 감각에 걸리는 낮은 수준의 은신술을 지닌 상대가 능력에 있어 약할지는 모르지만 그게 전투 능력 모두를 대변하지는 않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