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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1권(10화)
제4화 황실 풍운(2)


결심을 굳혔다는 뜻이었을까?
아르테미르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아르테미르가 마침내 황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들 모두를 죽일 수밖에요.”
이런 아르테미르의 말에 딜란과 황제가 공히 인상을 찌푸렸다. 아르테미르를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 누가 그것을 모르는가?’
하지만 그들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이 문제였다.
순간 딜란이 아르테미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무슨 힘으로? 대체 어떤 방법으로?’라고 아르테미르를 향해 묻고 있는 것이었다.
황제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설마 하니 경은 지금 어쌔신이라도 보내자는 뜻이오?”
황제가 어쌔신을 언급하자 아르테미르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그럴 리가요. 그것은 실패할 경우 돌아올 피해가 너무나 큽니다.”
딜란 역시 이런 아르테미르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대신을 죽이기 위해 어쌔신을 투입한다, 그리고 그 어쌔신이 실패한다, 그것은 오히려 그들에게 또 하나의 명분을 주는 셈이 되는 것이었다.
딜란이 다시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허면 경은 지금 황실의 힘으로 그들을 토벌할 수 있다고 보시는가?”
아르테미르가 이 역시 부인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힘들겠지요. 지금의 전력으로 그들 전부를 상대하기란.”
아르테미르의 대답에 딜란이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허허. 이 사람, 답답하구먼.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들을 죽이겠다는 것인가? 뜸 들이지 말고 어서 속 시원히 이야기라도 해 보게.”
딜란의 말에 아르테미르가 다시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아르테미르의 모호한 태도에 결국 노마법사의 인내심마저 한계에 다다랐다.
참다못한 딜란이 아르테미르를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무례하구나, 아르테미르 공작. 지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그따위 태도를 보이는가?”
딜란의 호통에 아르테미르가 다소 위축된 듯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위축된 것이 아님을 황제도 딜란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확실히 난감한 상황이지요. 황제가 대신을 죽이기 위해 어쌔신을 보네기도, 그렇다고 힘으로 그들을 누를 수도 없으니.”
아르테미르가 또다시 난감한 표정을 짓자 다시금 두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지금의 전력으로 그들 전부를 상대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들 하나하나라면 어떻겠습니까?”
아르테미르의 말에 한순간 딜란의 눈빛이 번뜩였다.
“결국 저들을 각개격파를 하자는 말인가? 그러나 이미 똘똘 뭉쳐 있는 저들을 어찌 분산시킬 수 있다는 것인가?”
아르테미르가 피식 미소를 지으면서 황제를 바라보았다.
“적과의 동침은 어떻습니까?”
아르테미르가 뜬금없이 자신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자 황제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적과의 동침?”
그러자 아르테미르가 다소 짓궂은 미소를 머금었다.
“폐하께서도 이제 친정을 하시게 되셨으니 혼례를 서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르테미르가 이렇게 갑작스레 결혼 이야기를 언급하자 황제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지금 제국의 상황이 이렇듯 엉망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그까짓 결혼이 무엇이 그렇게 급하다는 것이오?”
이런 황제의 말을 아르테미르가 반박하듯 말했다.
“아니지요, 아니지요. 이럴 때일수록 우선 황가가 안정을 찾아야 하는 법입니다. 어서 결혼을 하시고 서둘러 2세를 생산하셔야지요.”
아르테미르의 말에 딜란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그도 중요한 일이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를 않은가?”
딜란의 말에 아르테미르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생각건대 지금이 폐하께서 반드시 결혼을 하셔야 할 최적기입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아르테미르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자 딜란이 아르테미르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혹시, 자네가 말했던 적과의 동침이?”
딜란의 말에 아르테미르가 그의 추측이 맞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폐하께서는 10개의 공작 가문 중 위글 가와 알렌 가, 이 두 가문의 두 명의 여인과 반드시 결혼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아르테미르의 말에 비로소 모두가 그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르테미르를 향해 말했다.
“그런가, 그녀들과의 결혼을 통해서 그들을 황실의 편으로 끌어들이자는 것인가?”
이렇게 말하는 황제의 얼굴이 다소 붉어졌다.
“결국 그대가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정략결혼이란 말이오.”
이렇게 황제가 아르테미르를 추궁함에도 아르테미르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일국의 황제는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항상 대의를 생각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폐하께서 딱히 맘에 두고 있는 처녀도 없지 않습니까? 설마 제가 모르는 사이 마음에 둔 처녀가 있는 것입니까?”
아르테미르의 말에 황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르테미르가 계속해서 황제에게 자세한 계획을 설명했다.
“위글 공작의 나이 이제 25세, 다행히도 그에게 28살의 젊고(?) 어여쁜 누이가 하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것은 위글 공작에게는 그녀 이외에 다른 혈육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상대가 아니겠습니까?”
아르테미르가 말한 젊고 어여쁜 위글 공작의 누이는 28세, 황제보다도 무려 13살이나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황제가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아르테미르를 향해 물었다.
“왜 하필 위글 공작의 누이인가?”
황제의 물음에 아르테미르의 시선이 딜란에게 향했다.
“그것은 노마법사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아르테미르의 말에 황제의 시선이 딜란에게 향했고, 딜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아르테미르가 차분한 어조로 딜란에게 말했다.
“지난번 친정 의례 때의 그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런 아르테미르의 말에 딜란이 무언가가 떠오른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군.”
딜란이 이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황제의 안색이 굳어졌다.
‘13살이나 많은 여자란 말인가? 13살이나.’
황제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아르테미르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당시 가장 먼저 그 자리를 뜬 사람은 위글 공작입니다. 또한 그런 그의 뒤를 두 명의 젊은 공작들이 함께했지요.”
딜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르테미르의 말에 화답했다.
“확실히 그랬지.”
딜란은 이렇게 말함과 동시에 당시 아르테미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자네가 재미있다고 말했던가?”
딜란의 말에 아르테미르가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그런 말을 했던가요?”
딜란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아르테미르에게 물었다.
“허면? 그들이…….”
딜란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르테미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당시 그들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기에 친정 의례가 끝나고 제가 따로 그들에 대해서 몇 가지를 조사를 해 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명의 공작 중 젊은 두 명의 공작들이 그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황실의 편으로 돌아선다면 아마도 그를 따르는 두 명의 공작들 역시 황실의 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의 누이와의 혼사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르테미르의 자세한 설명에 딜란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두 사람의 의견이 합쳐지자 황제가 마지못해 다소 꺼림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경들의 뜻은 그녀를 황후로 맞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오?”
황제의 물음에 아르테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그렇습니다. 우선 그녀를 제2황후로 맞아들이자는 것이지요.”
이런 아르테미르의 말에 황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2황후?”
아르테미르가 다시금 자신의 말을 확인시키려는 듯 힘주어 말했다.
“그렇습니다. 제2황후.”
딜란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르테미르를 바라보았다.
“제2황후라니, 그렇다면 황후가 둘이라도 된다는 뜻인가?”
딜란의 말에 아르테미르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안 됩니까?”
능청스러운 아르테미르의 태도에 딜란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보시게, 아르테미르 공작. 황실에는 법도라는 것이 있네, 황후가 두 명이라니. 설사 2명과 결혼을 할지라도 당연히 한 명은 후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르테미르가 이를 부정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지요. 지금은 비상시국입니다. 황실의 법도에 두 명의 황후가 존재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제 말은 시국에 따라서 적절한 시책을 사용하자는 것이지요.”
딜란이 이런 아르테미르의 말에 반박하듯 말했다.
“하지만 법도가…….”
순간 딜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르테미르가 그의 말을 막았다.
“지금은 반드시 2명의 황후를 맞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르테미르가 이렇게 말하자 딜란이 그런 아르테미르를 다그치듯 말했다.
“어디 한번 들어나 보세, 대체 그 이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르테미르가 재빨리 그런 딜란을 향해 말했다.
“그들의 세력을 조금 더 분산시키기 위해서지요. 그리고 그들의 분산된 세력들 간에 또 다른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지요.”
아르테미르의 재빠르고 자신감에 찬 대답에 딜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견제와 균형이라.”
아르테미르가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확신에 찬 어조로 재빨리 말했다.
“그렇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우리가 제1황후로 맞아들여야 할 처녀는 비록 나이는 위글 공작의 누이보다 조금 어리지만 알렌 공작의 20살 난 딸이 적합합니다. 하늘의 돌보심인지 알렌 공작 역시 이 딸 하나밖에는 후사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딸을 고작 후궁으로 주려고 하겠습니까? 위글 공작 역시도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누이를 고작 후궁으로 주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아르테미르의 말에 딜란이 그제야 수긍이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명은 알렌 공작의 딸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말하면서 딜란은 또다시 얼마 전 친정 의례가 끝나던 당시를 떠올렸다.
알렌 공작의 뒤를 따르던 장년층의 두 공작들, 그렇다면 아르테미르가 굳이 알렌 공작을 지목한 이유는 명백했다.
연이어 계속되는 아르테미르의 설명 역시 그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아르테미르의 설명이 끝나자 딜란이 아르테미르를 향해 말했다.
“허면 결국 6명의 공작이 황실의 편으로 돌아서게 되는 셈인가?”
딜란의 말에 아르테미르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그런 아르테미르를 향해 황제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왜 하필 알렌 공작의 여식을 제1황후라 칭하는 것이오. 나이로 본다면 의당 위글 공작의 누이가 제1황후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소?”
황제가 이 점을 언급하자 딜란 역시 조금 의아한 듯 황제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테미르가 그런 두 사람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우리에게 1이든 2든 숫자가 무엇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이런 아르테미르의 말에 두 사람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딜란이 아르테미르를 향해 말했다.
“중요하지 않다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지를 않은가?”
아르테미르가 이를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리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굳이 그 점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우선은 1이라는 숫자로 알렌 공작의 체면을 세워 주자는 것이지요. 나이가 많을수록 외부에 비춰지는 체면을 중시하는 편이니까요. 또한 폐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바로 그 나이의 문제지요. 두 황후 사이의 균형을 위해서는 오히려 다소 어린 황후에게 1자를 붙여 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제1황후라고는 하지만 나이가 어리니 감히 제2황후를 그리 쉽게는 대하지 못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마지막으로 순서의 문제지요. 이번 혼사의 성사를 위해서는 먼저 알렌 공작의 여식과 혼약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르테미르의 말에 딜란이 다시 물었다.
“굳이 알렌 공작의 여식을 먼저 받아들여야 할 이유라도 있는가?”
딜란의 물음에 아르테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있지요, 있고말고요. 지금 10명의 공작들의 내부 사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딜란이 궁금증 어린 표정으로 아르테미르를 향해 말했다.
“10명의 공작들의 내부 사정이라…… 어서 자세히 설명해 보시게.”
아르테미르가 이런 딜란을 향해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애초에 그들이 하나로 뭉친 것은 아린 공작의 폭정 때문이었습니다. 일단은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들 모두가 순수한 의도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조사에 따르면 10명의 공작들 중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은 페드로 공작입니다. 그리고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아들 빅터를 황위에 올릴 목적으로 아린 공작의 폭정을 막자는 명분하에 일을 시작한 것이지요.”
아르테미르의 설명에 딜란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음, 진정 역모의 의도가 있었다는 것인가?”
아르테미르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페드로 공작은 알렌 공작을 먼저 끌어들였습니다. 더불어 알렌 공작에게는 2인자의 자리를, 그의 딸인 빅토리아에게는 황후의 자리를 주기로 약속했지요.”
계속되는 아르테미르의 설명에 황제와 딜란의 표정이 더욱더 심각해졌다. 그런 두 사람에게 아르테미르의 설명이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