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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1권(21화)
제6화 출정 준비(2)


문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군율

1. 탈영자는 참한다.
2. 훈련을 게을리하는 자는 참한다.
3. 내부에 분란을 일으킨 자는 참한다.
4. 상관의 명령을 어긴 자는 참한다.

공고

1. 참여한 병사 모두의 신분은 평민으로 동일하다.
2.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의 절반은 각자가 차지한다.
3.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자는 신분에 관계없이 적당한 작위를 하사한다.
4. 전쟁에서 얻은 영지는 훗날 하사된 작위에 따라 배분한다.

문서를 읽은 기사들이 하나둘씩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도무지 문서의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아르테미르를 향해 나서며 말했다.
“전하, 전리품을 개인에게 준다면 약탈이 만연할 것입니다. 이는 설사 우리가 전쟁을 승리한다 할지라도 민심을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사방에서 적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아르테미르가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자네는 누구인가?”
그러자 그 기사가 공손히 대답했다.
“신은 카르골 백작의 영지에서 온 기사 쇼트닝 남작입니다.”
얼핏 보아도 50을 훌쩍 넘긴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검을 잡는 손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서 보이는 나이와는 달리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지금까지 한시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더구나 첫 대면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상관에게, 그것도 공작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그의 모습이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실은 자이 백작 역시 쇼트닝 남작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에는 꾸밈이 없으며, 그가 하는 행동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었다.
한마디로 쇼트닝 남작은 원칙주의자였다.
그러나 모난 돌이 정을 맞고, 지나치게 곧으면 부러지기 마련이었다.
쇼트닝 남작은 지나치게 원리 원칙을 따랐고, 때때로 상관에게 따지고 드는 그의 올곧은 성품이 오히려 그에게 화를 불렀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상관의 눈에 거슬리는 인물이 되었고, 이곳까지 오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확실히 그의 영지에서는 불필요한 성가신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 사정이 달랐다.
그리고 비록 전부는 아니었지만 이곳에 온 기사들 중 몇몇에는, 아르테미르에게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런 인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쇼트닝 남작을 바라보는 아르테미르의 눈빛이 번뜩였다.
확실히 그가 이번 전쟁을 수행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인물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쇼트닝 남작이라고 했는가?”
쇼트닝 남작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아르테미르가 그런 그를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자네가 자이 백작을 도와 이것을 병사들에게 알리고 자이 백작과 함께 병사들을 관리 감독하도록 하게.”
말인즉, 자이 백작의 다음의 지휘권을 그에게 준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쇼트닝 남작은 여전히 불만에 찬 표정으로 아르테미르를 향해 말했다.
“하오나 전하…….”
순간 아르테미르가 근엄한 표정으로 그를 제지했다.
“쇼트닝 남작.”
아르테미르가 이렇게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을 부르자 쇼트닝 남작이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전하. 말씀하시지요.”
아르테미르가 계속해서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가 보기에 연병장의 병사들이 과연 전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것은 조금 전 쇼트닝 남작 자신이 자이 백작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당연히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아르테미르가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어떤가? 밖에서 빈둥거리는 범죄자들과 노예들도 이 정도 조건이라면 한번쯤 목숨을 걸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쇼트닝 남작 자신이 이끌고 온 병사들 역시 대부분 범죄자와 노예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자신들이 죽으러 간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때문에 이들에게는 어떠한 희망도, 의욕도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르테미르가 내건 조건이라면 사정은 달랐다.
일단 모두가 평민이라는 이야기는 범죄자에게는 죄를 묻지 않는다는 의미였으며, 노예들에게는 신분의 해방을 의미했다.
그리고 전쟁에서 약탈한 재물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거기에 더해 작위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그들에게 지금껏 생각할 수도 없었던 신분의 상승을 의미했다. 거기에 영지마저 받을 수 있다면 그들은 떳떳한 한 지방의 귀족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솔직히 이 이상의 동기부여는 없을 정도였다.
쇼트닝 남작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아르테미르를 향해 반박하듯 말했다.
“하오나, 전하. 그렇게 우리가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민심을 잃는다면 우리 군은 결국 사방에서 적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아르테미르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그렇겠지.”
그리고 쇼트닝 남작에게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단 승리하고 난 뒤의 일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승산이 있기는 한 것인가?”
아르테미르가 나지막이 말하자 아르테미르의 말을 듣기 위해 조금 소란스러웠던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계속해서 아르테미르가 나지막이 하지만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몇 번의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과연 저들 중 얼마나 많은 숫자의 병사들이 살아남아 있을 것 같은가?”
아르테미르의 말에 쇼트닝 남작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승리 이후의 문제는 차후에 의논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네. 그러나 일단 전쟁을 시작하기는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아르테미르의 설명이 끝나자 비로소 쇼트닝 남작을 비롯한 몇몇 기사들이 어느 정도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확실히 아르테미르의 말처럼 지금은 승리는커녕 전쟁을 시작할 수 있을지조차도 의문스런 상황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말을 끝마친 아르테미르가 천천히 자신의 검을 빼어 들었다.
“오…….”
아르테미르의 검을 확인한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전체가 아스릴로 덮인 검은 이들로서는 처음 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르테미르가 검을 뽑자 기다렸다는 듯 밖에서 대기 중이던 두 명의 병사들이 갑옷을 씌운 목각 인형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기사들이 다소 흥분된 시선으로 검을 든 아르테미르를 바라보았다.
아르테미르가 자신들에게 그의 검술을 선보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기사들의 기대에 찬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르테미르는 주저 없이 검을 휘둘렀다. 아르테미르가 휘두른 검은 목각 인형이 입은 갑옷의 목과 어깨의 이음새를 정확히 통과해 지나갔다.
이내 목각 인형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확실히 정확한 일격이었지만 멋진 검술을 기대했던 기사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단순한 동작이었다. 그렇게 실망한 기사들을 향해 아르테미르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귀관들은 오늘부터 오로지 이 한 동작만을 병사들에게 숙지시키시오.”
아르테미르의 말에 자이 백작마저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아르테미르가 선보인 동작은 한 치의 군더더기도 없이 깔끔하게 적을 죽이는 기술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전쟁을 치를 수는 없어 보였다. 때문에 자이 백작이 아르테미르를 향해 말했다.
“하오나, 전하. 다른 기술들 역시 어느 정도는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이 백작의 말에 아르테미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우리는 앞으로 일주일 후면 출병할 것이오, 시간이 촉박하니 다른 기술을 가르칠 시간적 여유가 없소.”
아르테미르가 이렇듯 출병을 언급하자 비로소 다가올 전쟁이 실감되는 듯 몇몇 기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반면 쇼트닝 남작 등 몇몇의 얼굴에는 두려움보다는 불만이 가득했다.
그런 이들을 대표해서 역시 쇼트닝 남작이 나서서 말했다.
“허면 전하, 훈련도 되지 않은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을 시작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르테미르가 이렇게 묻는 쇼트닝 남작을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말했다.
“지금 이곳이 어디라고 생각하시오.”
이런 아르테미르의 말에 쇼트닝 남작이 불쾌한 듯 얼굴을 붉혔다.
언제나 자신의 상관인 카르골 백작이 자신에게 말했던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너 따위가 감히 끼어드느냐.’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겠지.’
쇼트닝 남작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불만에 찬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쇼트닝 남작이 불만에 찬 표정으로 아르테미르를 바라보자 아르테미르가 씁쓸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은 나도 병사들을 좀 더 훈련시키고 싶소, 하지만 이곳은 황궁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오. 과연 황실에서 언제까지 이곳에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것 같소이까?”
아르테미르의 말에 쇼트닝 남작이 다시 얼굴을 붉혔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것은 잠시나마 과거의 상관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아르테미르의 말을 오해한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아르테미르의 말은 지극히 합당했다.
자신들은 황실의 금군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국가가 조직한 군대도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르테미르가 소집한 사병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것도 2만 5천에 달하는 병력이었다.
이것은 결코 작은 병력이라고 말할 수 없는 숫자였다.
그런 병력이 바로 황궁의 턱밑에서 훈련하는 것을 허락해 줄 황실은 아마 이 오메가하임 대륙의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쇼트닝 남작은 물론 모두가 이에 수긍하자 아르테미르가 힘주어 말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일일이 모든 것을 가르칠 시간은 없소, 하지만 적어도 병사들이 적병의 목을 따는 방법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몸에 익혀 출병하고 싶은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오. 그대들은 나의 이런 뜻을 헤아려 주기를 바라오. 시간이 촉박하니 이만 모두 물러들 가시오.”
아르테미르의 말이 모두 끝났음에도 기사들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인지 웅성거림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자이 백작이 이런 기사들을 잘 다독거려서 각자의 위치로 돌려보냈고, 쇼트닝 남작이 그런 자이 백작을 보좌하고 있었다.
아르테미르는 자이 백작이 모두를 돌려보내고 마지막으로 그가 회의실을 벗어날 때까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병사들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들 중에는 처음으로 검을 잡는 병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르테미르의 약속 때문인지 일단 그들의 의욕만은 대단했다.
그러나 단순한 한 가지 동작의 반복은 금방 지루함을 가져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점차 이런 훈련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과연 이딴 걸로 사람을 죽일 수나 있을까?’
적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가만히 목을 내밀고 있을 리 만무했다.
심지어 훈련을 시키는 기사들마저도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3일이 지나자 쇼트닝 남작처럼 몇몇 고지식한 기사들과 그 휘하의 병사들만 죽어라고 검을 휘두르고 있을 뿐, 대부분의 기사와 병사들은 그저 형식적으로 훈련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병사들의 훈련 상황을 지켜보던 아르테미르가 병사들이 훈련 중인 연병장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단순한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아르테미르가 연병장으로 향하는 바로 그 순간, 때마침 한 필의 말과 한 대의 마차가 연병장을 지나쳐 저택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렇게 저택을 향해 이동하던 말과 마차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마차를 모는 마부는 언뜻 보아도 족히 100킬로는 넘어 보였다.
반면에 마차는 그런 그의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아담한 크기였다. 마차를 세운 마부는 앞서 말을 타고 있는 기사를 향해 물었다.
“저자가 아르테미르인가?”
놀랍게도 마부는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더구나 지금까지 아르테미르를 한 번도 보지 못했음에도 연병장으로 향하는 아르테미르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묻고 있었다. 말을 탄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분이 아르테미르 공작 전하이십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공히 아르테미르를 향해 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