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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1권(23화)
제6화 출정 준비(4)
아르테미르가 밀실로 들어서자 그곳에 있던 4명의 사람들이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자이 백작과 그린 후작, 그리고 마차를 몰던 마부와 마차에 타고 있던 검은 망토를 걸친 마법사였다.
아르테미르는 마부와 마법사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르테미르라고 합니다.”
아르테미르는 이렇게 인사말을 건네면서 재빨리 두 사람을 살폈다.
한눈에 보기에도 두 사람은 완벽하게 상반된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마부는 뚱뚱하지만 다소 활달해 보였고, 마법사는 날씬했지만 음산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아르테미르는 마법사가 아닌 마부를 향해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했다.
아르테미르의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누던 마부의 얼굴에서 다소 놀라는 기색이 엿보였다.
‘어떻게?’
그런 마부를 향해 아르테미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킹죠 님이 아니십니까?”
마부가, 아니 킹죠가 이를 시인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역시 전하를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렇게 인사를 건넨 킹죠는 단도직입적으로 아르테미르에게 물었다.
“어떻게 제가 킹죠라는 것을 아셨습니까?”
아르테미르가 킹죠의 손을 놓고 자리에 앉으면서 킹죠에게도 앉으라는 듯 손을 내밀어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글쎄요, 단순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상인에게는 언제나 돈 냄새가 나는 법이니까요. 특히 마부조차 고용하기를 아까워하시는 분에게서는…….”
킹죠는 자신의 육중한 몸을 의자에 올리면서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의자가 그런 킹죠의 몸에 화답하듯 삐그덕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킹죠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확실히 듣던 대로 느낌이 좋으신 분이군요. 코도 아주 예민하시고요.”
이런 킹죠의 말에 아르테미르 역시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두 사람의 시선이 묘하게 교차했다.
다소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표현들 사이로 오가는 화기애애한 미소들, 그 속에서 서로는 서로가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르테미르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킹죠를 향해 말했다.
“아무튼 마부도 없이 직접 이곳까지 마차를 몰고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러자 돌연 킹죠가 웃음을 멈췄다.
“전하께서는 제가 오는 것을 보고 계셨군요.”
아르테미르는 굳이 이를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그린 후작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아르테미르를 바라보았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내가 온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기다리게 했는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조금 전 아르테미르가 손님들이라며 복수를 지칭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과연 어떻게 알았을까?’
그린 후작은 내심 이렇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아르테미르는 조콜 남작의 화려한 검을 대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차를 확인함은 물론, 마차 안에 사람이 타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확인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린 후작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린 후작은 처음부터 이를 모른 척, 손님을 기다리게 했다면 끝까지 모른 척했어야만 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린 후작은 아르테미르에게 이 점을 말하려 했다. 순간 아르테미르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들은 그만 나가서 일들 보게.”
그렇게 말하는 아르테미르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이었고, 그린 후작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이 백작 역시 그린 후작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이며 일어났고, 두 사람이 함께 밀실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이렇게 두 사람이 움직이는 순간, 그린 후작의 예상처럼 킹죠가 짐짓 불쾌한 표정으로 아르테미르를 향해 따지듯 물었다.
“그것을 아셨다면 어째서 바로 저희를 찾지 않으셨습니까?”
밖으로 나가던 그린 후작의 발걸음이 움찔거렸다.
솔직히 그린 후작 역시도 아르테미르에게 묻고 싶은 말이었다.
분명 답답한 것은 우리 쪽이었고, 손님을 청한 것도 우리 쪽이었다. 그리고 아르테미르가 자신에게 말했듯이 이들은 힘들게 모신 귀중한 손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어쩌서 아르테미르는 자신이 찾아올 때까지 연병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아르테미르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글쎄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아르테미르는 이렇게 그 행동을 단지 느낌 때문이었다고 표현했다.
이에 문을 나서는 그린 후작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단순한 느낌 때문이라니, 지금 그것을 말이라고 하는 건가?’
그린 후작은 도무지 이렇게 말하는 아르테미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린 후작의 생각으로도 확실히 좋은 핑계가 있었다.
아니, 그것은 단순한 핑계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군의 사기를 위해서 그 순간 어쩔 수 없이 병사들과 함께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고 말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린 후작은 지금 아르테미르의 말을 듣고 있는 손님의 기분이 어떨지를 생각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확실히 불쾌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그린 후작의 몫이 아니었기에 공손히 밀실의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그린 후작이 밖으로 나가자 오히려 킹죠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마치 칭찬하듯 아르테미르를 향해 말했다.
“확실히 느낌이 좋은 분이시군요.”
아르테미르 역시 이런 느낌 타령이 나름 재미가 있는지 연방 얼굴에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제가 좀 그렇다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시선을 마법사 쪽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헌데 저분은?”
킹죠가 마법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를 경호하는 마법사입니다. 항상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대동을 하지요.”
이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망토를 뒤집어쓴 인물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순간 아르테미르의 눈동자가 가볍게 일렁였다.
검은 안개와 같은 것이 지금 마법사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 검은 안개 때문에 심지어 아르테미르조차도 그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확실하게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자신의 코앞에서 본연의 모습을 숨길 수 있는 존재라니, 아르테미르는 다소 놀라기도 했으며 조금 껄끄러운 감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 아르테미르의 시선을 의식한 듯 마법사가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흑마법사 타냐라고 합니다.”
이름을 보건대 여자였다.
하지만 목소리 역시도 여자인지 남자인지 쉽게 구별할 수 없었다.
아르테미르와 타냐, 두 사람의 시선이 묘하게 교차했다.
그런 와중에 킹죠가 아르테미르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관찰하고 있었다.
돈 냄새를 확인하는 전형적인 상인의 눈이라고 해야 할까?
만약 그런 눈이 있다면 아마도 지금 아르테미르를 바라보는 킹죠의 눈빛이 바로 그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킹죠의 눈빛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아르테미르를 향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과연 제가 공작님께 군수물자들을 지원해 드릴 것 같습니까?”
킹죠는 이렇게 단순한 군량이 아니라 군수물자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이런 킹죠의 물음에 아르테미르는 비로소 마법사에게서 시선을 떼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테미르의 얼굴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킹죠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대체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아르테미르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번졌다.
“느낌이 그렇군요.”
이런 아르테미르의 느낌 타령에 킹죠의 얼굴에서 더 이상의 미소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킹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이번에는 아르테미르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기 시작했다. 순간, 킹죠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음.”
그 순간 누군가가 밀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노크 소리에 세 사람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밀실의 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그린 후작이 난감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린입니다. 전하.”
지금은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었다. 하필 그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방해를 받자 아르테미르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지금 손님과 대화 중이지 않은가?”
다소 짜증 섞인 아르테미르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린 후작이 문 안으로 들어와서 아르테미르의 옆으로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너무나 뜻밖의 손님이 찾아오신지라.”
아르테미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뜻밖의 손님이라?”
이런 아르테미르의 반응은 마치 그 손님의 정체를 어느 정도 예상한 것처럼 보였다.
그린 후작이 조심스레 그런 아르테미르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아르테미르는 별일 아니라는 듯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자네가 그들을 귀빈실로 모시고 차를 대접하게, 내 그리 늦지는 않을 것이네.”
그린 후작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아르테미르가 다소 멋쩍은 표정으로 킹죠를 향해 말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많군요.”
이런 아르테미르의 말에 킹죠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페드로 공작님이라도 찾아오신 모양입니다.”
아르테미르의 얼굴에 잠깐 놀라는 기색이 스치듯 지나갔다.
‘페드로와도 줄을 대고 있었던가?’
이런 생각을 했지만 굳이 그것을 언급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자 킹죠가 다시 아르테미르를 향해 힘주어 말했다.
“저는 상인입니다.”
아르테미르는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킹죠가 계속해서 차분하지만 힘이 실린 어조로 말했다.
“저는 불확실한 모험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덕분에 일전에 피해를 좀 입기도 했고요.”
이런 킹죠의 말에 아르테미르가 살짝 입술을 실룩였다.
‘욕심쟁이 늙은이 같으니라고.’
‘덕분에’라는 킹죠의 말의 뉘앙스는 실로 묘했다.
자신의 불확실한 모험 탓에 피해를 입었다는 뜻인지, 아니면 아르테미르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뜻인지가 확실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르테미르는 방금 킹죠가 언급한 일전의 피해가 바로 아린 공작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아르테미르는 그린 후작을 통해 아린 공작과 킹죠와의 관계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당시 아린 공작은 본격적으로 병력을 모으기도 전에 무너져 버렸다. 덕분에 킹죠는 아린 공작에게 그다지 많은 돈을 투자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그가 가져간 대가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5개 광산의 채굴권, 그것만으로도 족히 5배의 이문을 남긴 장사였다.
분명 실보다는 득이 많았던 거래였다. 하지만 킹죠는 그것조차도 피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기대했던 만큼의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는 뜻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한 듯했다.
아르테미르는 이것 역시도 굳이 따지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표정으로 킹죠를 향해 말했다.
“제가 그렇게 뜻하지 않은 손실을 입혀 드렸다니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몇 배의 이문을 남기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것은 제가 보증하지요.”
킹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그것이 어찌 공작님의 탓이겠습니까? 모두 제 모자람 때문인 것을요, 헌데 공작님께서는 제대로 훈련조차 되지 않은 병사들을 이끌고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킹죠는 이렇게 전쟁의 승리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었다.
몇 번의 전투를 승리할 자신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또한 이것은 킹죠가 아르테미르에게 일종의 확실한 담보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르테미르는 대답 대신 탁자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호손 제국의 지도였다.
지도를 펼친 아르테미르는 천천히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공께서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지원해 주신다면, 이곳에서 발생하는 전리품의 절반을 공에게 드리겠소.”
이런 아르테미르의 말에 지금까지 그토록 침착함을 유지했던 킹죠마저도 화들짝 놀라면서 아르테미르를 향해 말했다.
“로랜 성. 설마, 이곳을 먼저 공략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르테미르는 이번에도 대답 대신 하나의 문서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이것이 현재 저에게 필요한 목록입니다. 이대로 준비해 주신다면 9할 이상의 승리를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아르테미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결정을 하자면 생각할 시간을 드려야겠지요. 마침 다른 손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그곳에 잠깐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럼 잠시 후에 다시 뵙지요.”
킹죠는 의자에 앉은 채로 일어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르테미르를 뚫어지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르테미르는 그런 킹죠에게 양해를 구하듯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밀실 밖으로 나갔다.
밀실의 밖에서는 자이 백작이 노심초사 아르테미르를 기다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온 아르테미르가 그런 자이 백작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가지.”
아르테미르의 말에 자이 백작이 허리를 숙이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뒤따르는 자이 백작은 협상의 결과가 몹시 궁금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아르테미르에게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저 답답함을 참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아르테미르가 밖으로 나가자 밀실에 남아 있던 킹죠가 눈을 깜빡였다. 일련의 아르테미르의 행동이 어찌 된 일인지 킹죠에게는 단순한 허세로 생각되지 않았다.
“9할이라니, 정말 자신이 있다는 뜻인가? 하지만 설마 로랜 성이라니.”
흑마법사 타냐가 그런 킹죠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다소 부정적인 시선으로 믿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로랜 성, 그곳은 과거 올란 제국 제1의 상업 도시였다.
그리고 지금도 인구 3만이 살고 있는 호손 제국 제1의 상업 도시이기도 했다.
또한 로랜 성주의 영지인 로랜 성 주변의 15개의 마을을 합치면 그 인구가 5만에 달하는 상업권이기도 했다. 견고한 성도 성이려니와 그곳에 주둔한 호손 제국의 1만의 병사들은 그야말로 정예 중의 정예병들이었다.
장사꾼인 킹죠는 이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지금 올란 제국과 호손 제국의 접경 지역 중에서 가장 거대한 성이기도 했다.
아르테미르가 사라진 후 킹죠와 타냐는 계속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으로 보아 이 둘의 관계가 단순한 주인과 경호원의 주종 관계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