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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영웅 폴 1(7화)
2장. 사냥꾼이 용병이 된 까닭(4)


한참 동안 그것을 살펴보던 녀석은 잠시 뒤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입을 열었다.
“좋다! 내 너의 성의를 봐서 이번 출정 시 너를 용병단 단장으로 임명해 주도록 하마. 거기에 만일 이번 전쟁이 끝난다면 영주님의 사병이 될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해 주마.”
‘얼씨구리?’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수확도 동시였다. 영주의 사병이라니.
영주의 사병이라면 일정한 급료를 받을 수 있는, 누가 뭐라 해도 명실상부한 최고의 직장이 아닐 수 없었다.
‘가죽이 어지간히도 맘에 들었나 보군.’
하지만 녀석이 알려나 모르겠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조끼가 저 오우거의 것보다 몇 배는 더 비쌀 거라는 사실을.
아무튼 연막은 여기까지, 지금부터가 진짜다.
나는 왜 나가지 않고 아직도 거기 죽치고 있냐는 듯 바라보는 쿠시오스를 향해 어딘지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집행관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궁금한 거라니? 한번 말해 보거라.”
“네. 이번 우리 하인스의 출정 말입니다, 혹시 바르데인 산맥을 넘어 얀 제국의 영지로 직접 공격하는 것입니까?”
“허, 어디서 그런 큰일 날 소리를! 우리는 로이어 제국의 메틴성으로 가 그곳을 돕기로 되어 있다.”
메틴성이라. 그곳이라면 여기에서 그다지 먼 거리에 있는 성은 아니었다. 바르데인 산맥이 끝나는 곳에 우리 하인스와 로이어 얀 제국의 국경이 마주 보고 있는데 그 국경의 성이 바로 메틴성이었다.
말을 타고 달린다면 대략 닷새 정도의 거리였다.
“이상한데?”
홀로 중얼거리는 것치고는 꽤 큰 목소리에 쿠시오스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냐?”
“그게 말입니다, 실은 제가 근래에 바르데인 산맥 근처에서 의뢰를 해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데 그 주변에 얀 제국의 병사들이 나타나는 게 아닙니까? 로이어와 전쟁을 벌이는 얀 제국의 병사가 하인스에 있는 게 수상스러워서 한번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산맥 너머에 웬 진지가 떡하니 들어서 있는 게 아닙니까? 저는 그래서 당연히 이번 출정이 그곳을 치러 가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적당히 거짓을 붙여 내가 보았던 사실을 이야기 했다.
“크흠, 얀 제국의 진지라……. 너는 그 말이 사실이렷다?”
고심하는 표정으로 뭔가를 중얼거리던 녀석은 확인하듯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그에 물론 볼 것도 없다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한참을 말이 없던 쿠시오스는 이윽고 쥐 같은 면상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또 누가 알고 있느냐?”
“저야 당연히 다른 사람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 여태 아무에게도 말을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파커슨 아저씨가 알고 있었지만 나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뭐랄까, 사냥꾼의 직감이 분위기가 좋지 않음을 경고했다. 자신이 관리하는 영지 바로 밑에 얀 제국의 대규모 진지가 있다고 분명 이야기를 했음에도 크게 당황하는 기색조차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날 바라보는 눈초리가 조금 전의 오우거 가죽을 받고 기뻐하던 사람인지조차 의심스러울 만큼 싸늘하게 바뀌었다.
“그렇단 말이지. 알았다. 내 조치를 취할 것이니 너는 물러가 있어라.”
좀 더 명확한 대답이 없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일단 말은 전했기에 그걸로 안위를 삼으며 나는 저택을 빠져나왔다.

전쟁에 나갈 용병들은 따로 관리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마을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채 용병들과 섞여 지내야만 했다. 나 역시 거칠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용병들만은 못했기 때문에 그 무리에서 나는 대번에 애송이로 낙인찍혀 사사건건 시비를 당해야만 했다.
물론 시비에 응해 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일단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던 터라 뭐라고 짓든 말든 가만히 있었다. 덕분에 하루가 멀다 하고 나에게 와 껄렁거리던 무리들도 더 이상 내게 접근하지 않았다.
하긴 무슨 반응이 있어야 재미라도 있지. 나 같아도 벌써 포기했다.
‘제발 이번 파병이 취소되어야 할 텐데.’
그것이 나도 살고 여기 있는 모두가 사는 길이었다. 나는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불안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자, 여기 주목!”
이틀 뒤, 용병 모집을 담당했던 기사가 다가와 모여 있던 용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용병들의 이름이 기록된 서류 같은 것을 갖고 있었는데 한참 그것을 뒤적인 후에야 뭔가를 찾았는지 이어 입을 열었다.
“폴은 앞으로 나오도록.”
갑자기 호명된 내 이름에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의 앞으로 나갔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의문을 풀어 주듯 기사의 말은 이어졌다.
“이 앞에 있는 자가 바로 앞으로 너희들을 이끌 임시 단장이다. 명령은 단장을 통해 전달될 터이니 그에 반함은 용서치 않을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저런 애송이가!”
기사의 말에 대번 용병들 사이에서는 이래저래 말이 많아졌다. 하긴 그들에게는 꽤 충격이겠지. 무시했던 애송이가 단장이 되었는데. 사실 나 같아도 가만히 안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기사의 서슬에 그런 불만도 싹 사라졌다.
“지금 내 결정에 불만이 있는 자들은 나와라. 비록 네 녀석들이 용병이기는 하나 돈으로 고용된 지금은 영주님의 병사나 마찬가지다.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몸소 체험시켜 주겠다.”
“…….”
대번 싸늘해진 분위기가 마음에 든 것인지 그는 한차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출정은 내일 아침 9시이니 단장은 인솔에 문제가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상.”
더는 할 말이 없는 듯 돌아서는 기사의 모습에 나는 순간 공황 상태에 빠져야 했다.
‘뭐야? 출정이 취소된 게 아니었어?’
깜짝 놀란 나는 다급히 걸어가는 기사를 붙잡았다.
“뭐지?”
자신을 붙잡은 날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기사였지만, 나는 지금 그런 것을 헤아릴 정신이 아니었다.
“추, 출정이 취소되지 않은 것이오?”
“무슨 헛소리인가, 출정이 취소되다니.”
짜증스럽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농담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미친 새끼.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나는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도 모를 욕설을 속으로 내뱉으며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은 채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그렇다면 혹시 이 주변 마을에 대피령이 내려지거나 하지는 않았소?”
“남의 나라 파병인데 무슨 대피령인가. 그런 명령은 없었다.”
멍.
나는 마치 둔기로 머리를 내려친 듯한 충격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맥이 탁 빠졌다.
쿠시오스를 바라보며 느꼈던 불안감. 그게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기사는 그런 내 모습에 작게 미친놈이라며 혀를 찼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는 아무런 말도 입력되지가 않았다.
모든 게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그토록 모두를 위해 보고자 발버둥을 쳐 봤지만 헛수고였다.
아니, 이제는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당장 나 자신이 개죽음 당할 판이었다. 그것도 전쟁이라고는 겪어 보지 않은 주제에 용병들의 단장씩이나 되어서 말이지.
‘아버지, 전 역시 장가가기는 힘든 팔자인가 봅니다.’
정말이지 빌어먹을 놈의 인생이었다.



3장.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1)


“아하하하.”
나는 그냥 웃었다. 이유? 뭐,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을 뿐이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원흉에 대한 분노, 허탈함, 그 모든 것들보다는 웃음이 먼저였다. 어쩌면 이 웃음은 자포자기라고도 볼 수 있겠다.
‘난 끝났어.’
도무지 이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전쟁에 나가고, 그리고 죽는다. 그게 내 앞에 펼쳐질 미래였다.
‘이대로 도망칠까?’
뭐,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좋든 싫든 용병이 된 몸으로서 의뢰 도중에 이렇게 도망을 친다는 것은 대륙 내 모든 용병들로부터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과 똑같았다.
어디를 가든 그들에게 쫓길 것이며 밥 한 끼 제대로 먹지도 못할 것이다. 그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고통.
그래서 결정한 거다. 그냥 이대로 죽자고.
개죽음이 두렵긴 하지만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면 죽는 게 낫지.
그렇게 나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밤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 달이 지면 이제 도살장 가는 소처럼 끌려가겠지.’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아차!’
이곳이 어디인지 뒤늦게 깨달은 나는 추한 꼴을 들킬세라 황급히 눈물을 닦았지만 아쉽게도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여, 애송이! 왜, 막상 전쟁이라고 생각하니 엄마 품이 그립나 보지?”
나는 내 앞으로 다가와 시비를 거는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앉아서 고개를 든 것만으로는 그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때서야 자세히 사내를 살핀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 뭐냐, 이 덩치는!’
무슨 놈의 팔뚝이 내 몸통만 했다. 정확히 재 보지는 않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어림잡아도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듯했다.
가만히 내려다보는 모습이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게 했지만 나는 위축되기는커녕 도리어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괜히 나서서 맞지 말고 그냥 가만히 쭈그리고 있어라. 이 형님이 지금 기분이 몹시 안 좋거든?”
“하아?”
기가 막힌 듯 괴상한 소리를 내뱉는 녀석의 뒤로 동료로 보이는 용병들의 야유가 들려왔다.
“이런, 이런! 우리의 미친 오우거 에르손도 이제 갈 데까지 다 갔군. 크크큭.”
“그러게 말이야. 저런 애송이한테 한 방 제대로 먹었네. 하하하하하.”
보아하니 녀석들은 전부터 나에게 시비를 걸던 놈들이었다. 가뜩이나 기분이 안 좋은 상태에서 이렇듯 기름까지 부어 주니 아주 고마울 따름이다.
‘오늘 다 죽었어.’
지금까지 내가 저들이 무서워 여태껏 시비를 피했다면 큰 오산이다. 좀 전까지는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기에 일부러 무시한 것일 뿐, 본래 내 성격은 걸어오는 시비는 곱으로 갚아 주자는 주의다.
아, 물론 거기에도 규칙이 하나 존재했는데 상대가 강하다면 굳이 시비에 맞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미 깨어져 버린 꿈이기는 했지만 죽기 전에 장가 한번 가 보는 게 소원인 나로서는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미 눈에 뵈는 게 없는 데다 이 녀석들의 실력까지 염두에 둔 채였다. 덩치가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나머지는 도토리 키 재기였다.
비록 내가 용병으로서는 애송이였지만 이미 사냥꾼으로서는 베테랑인 실력이다. 그들이 생과 사를 오가는 전투로 실력을 다졌듯 나 역시 온갖 맹수들 틈에서 갖은 위험을 감수하며 실력을 쌓아 왔다.
B급 용병패를 거짓으로 받기는 했지만 실은 그에 준하는 실력을 가졌다고 나름 자부하고 있었다.
“미친 오우거인지 나발인지 저리 좀 비켜 주지? 몸에서 나는 오우거 냄새 때문에 머리가 다 지끈거리는군.”
나는 정말로 냄새가 난다는 듯 코를 부여잡았다. 순간 그런 내 목소리에 싸늘하게 가라앉는 분위기. 그 틈을 비집고 에르손이라는 덩치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이런. 애송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간덩이는 크군. 하지만 그 간덩이만큼 실력이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
“그건 지금 단장인 나와 한판 붙어 보자는 얘기?”
“단장? 웃기는군. 네 녀석이 저택에서 나왔다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
“…….”
살짝 단장인 걸 내세워 기를 좀 죽여 보고자 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역시 용병이라 정보 하나는 빠르군. 쳇.
내심 뜨끔한 속을 달래며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휘우! 이렇게 마주 서 보니 더욱더 대단하구만.’
나는 속으로 휘파람을 내뱉으며 에르손의 덩치에 감탄해야 했다. 이 정도면 오우거까지는 미치지 못해도 트롤 정도는 되겠다.
“나한테 까분 대가가 어떤 건지는 몸소 체험하도록 해 주지.”
자신의 어깨 즈음에도 오지 못하는 내 덩치를 깔보는 눈동자. 은근히 살기까지 섞인 목소리에 나는 상큼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반사.”
“이 자식!”
간단한 도발에도 참지 못하고 무식하게 커다란 주먹을 휘두르는 에르손.
부웅!
바람 가르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지만 대비하고 있던 나는 곧바로 몸을 낮춰 녀석의 주먹을 피한 뒤, 뒤로 물러나기 전 가볍게 녀석의 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비록 가볍게 날린 것이지만 그야말로 제대로 들어간 클린 샷. 아마 일반인이었다면 이 한 방에 다리가 풀렸을 테지만 녀석은 덩치에 맞게 꿈쩍도 안 했다.
“흐으음.”
그래도 제법이었다는 듯 턱을 쓰다듬는 폼이 내가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님을 느낀 모양이다.
‘이거 생각보다 어렵게 됐는데, 쳇!’
생긴 건 무식하게 생겼으면서 역시 잔뼈 굵은 용병이라, 이건가. 언제 흥분했냐는 듯 흥분을 가라앉힌 녀석은 금방 진지해진 눈을 하고서는 날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훅! 훅!
마치 내가 어디로 피할 것인지를 보려는 듯 가볍게 주먹을 날리는 녀석. 비록 녀석에게는 가벼운 것이겠지만 나한테는 그 한 방으로도 골로 갈 수 있는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