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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영웅 폴 1(13화)
4장. 함정에 빠진 사냥꾼(3)
총지휘관이라는 작자의 어처구니없는 설레발로 인해 별동대에 합류하게 되어 버린 나는 그날 밤 적들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메틴성을 빠져나갔다.
별동대의 규모는 총 500여 명. 100명을 기본으로 한 5개 조로 운영되었는데 1조는 중앙군 소속 기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나머지 조는 나를 비롯한 용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투가 한창일 때는 몰랐지만 막상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고 보니 내가 여태 살아 있는 걸 하늘에 감사하게 되었다. 처음 용병단의 병력 2천에서 어느새 줄어들어 400여 명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다.
물론 남은 천육백이 다 죽었다는 건 아니고, 그중 반이 부상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 부상자 명단에 끼지 않았다는 것만도 천운이었다……라고 얼마 전까지는 생각했다. 하지만 별동대가 구성되고 이렇게 몰래 밤이슬 밟고 움직이려니 차라리 부상자 명단에 끼어 침대에 누워 있는 편이 더 좋을 뻔했다.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듯 옆에 있던 에르손은 쉴 새 없이 뭔가를 중얼거렸다.
“젠장, 그때 그냥 그 화살 한 방 맞을걸.”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에효.’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나는 행여나 선두와 떨어질세라 움직이지 않으려는 발걸음을 애써 옮겨야 했다.
우리가 적 보급을 끊기 위해 매복하기로 결정한 지점은 메틴성에서 하루 정도 떨어져 있는 바르데인 산맥 초입에 위치한 야트막한 협곡이었다. 사실 협곡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얕은 계곡이지만 그래도 매복을 위해서는 그곳만 한 지형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만일 적이 매복의 위험을 걱정한다면 바르데인 산맥을 삥 돌아서 가는 수밖에 없으나 사실 이 상황에서 누가 이곳에 매복할 것이라 생각하겠는가. 한창 전투가 벌어지는 중반이거나 그전이라면 또 모르겠다.
하여간 십중팔구는 이쪽으로 온다는 가정하에 우리는 계곡 양옆을 끼고 몸을 숨겼다.
내가 속한 3조는 1조와 같은 쪽에 매복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 1조가 또 크리스 총지휘관이 있는 쪽이었다. 괜한 고생시키는 지휘관이 곱게 보일 리가 없는 나였기에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열심히 뒤통수를 노려보며 이를 갈 뿐이었다.
매복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밤에 불도 못 피우고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계속 쭈그려 앉아 있으려니 슬슬 허리도 아파 왔고 발도 저렸다.
‘아, 도대체 보급 부대는 오긴 오는 거야?’
혼자서 끙끙 앓으며 기다리고 있으려니 때마침 저 멀리 정찰을 나갔던 기사 한 명이 다급히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가볍게 군례를 올리고는 크리스 총지휘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적 보급 부대입니다.”
“거리는?”
“이동 속도로 볼 때 한 시간 후쯤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규모는 어떻던가?”
“마차는 20여 대 정도였고, 호위 규모도 500은 넘지 않은 듯했습니다.”
“수고했다.”
크리스 총지휘관은 그 말과 함께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도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병력의 숫자가 비슷비슷해서 만일 정면으로 충돌했으면 이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숫자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쪽은 매복을 해서 기습 공격을 가하는 입장이니 잘만 하면 한 사람의 사상자 없이 이길 수도 있을 듯했다.
“적들이 협곡에 완전히 들어오면 5조는 즉시 흩어져 양쪽 입구를 막고 나머지는 내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대기하다 5조가 준비되는 대로 공격을 시작한다. 섣불리 공격하면 적들이 눈치 채고 도망갈 수도 있으니 반드시 명령에 따라 행동해야 할 것이다.”
크리스 총지휘관은 상념에서 벗어나 각 조장들을 향해 그렇게 주지시켰다. 곧 그 명령은 모두를 향해 전달되었고, 나 역시 드디어 적들이 다가옴을 피부로 느끼며 가벼운 흥분에 휩싸였다.
“온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슬슬 올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할 즈음 나지막한 크리스 총지휘관의 말이 들려왔다. 모두는 그 말에 더욱더 몸을 낮추며 놈들에게 행여나 들킬세라 숨조차 크게 내쉬지 않았다.
달그락, 달그락.
조용한 협곡 아래로 말발굽 소리와 녹슨 마차 바퀴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꽤 지루한 여정이었던 듯 지나가는 적 병사들의 얼굴에는 따분함만이 가득했다. 선두에 서 있는 기사의 입이 쩍쩍 벌어지며 하품을 하는 것만 봐도 규율이 어떠한지는 보지 않아도 알 만했다.
아무리 태평해도 협곡을 지남에 있어서는 만의 하나라도 생각하여 정찰을 보내는 게 정석이었건만 그런 것도 없었다. 하긴 그들 입장에서는 다 끝나 가는 전투였으니 이런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괜스레 뒤통수를 후려갈기려니 조금 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난데없을까?
‘하지만 날 원망하지는 마라.’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를 사람들. 하지만 적으로 만난 이상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5조가 준비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양 협곡을 막기로 되어 있던 5조가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화끈한 죽음을 선사해 주는 일뿐이었다.
크리스 총지휘관은 들고 있던 검을 뽑으며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공격하라!”
“우아아아아!”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양 협곡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서며 그 즉시 협곡 아래로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해 화살을 다룰 줄 아는 몇몇 용병은 아군이 도착할 때까지 쉴 새 없이 화살을 쏘아 댔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전투와는 다르게 마구잡이로 날리는 화살은 아니었다.
“적의 기습이다! 진영을 정비하라!”
나는 어떻게든 병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기사를 목표로 힘껏 화살을 발사했다.
다년간 사냥꾼으로 살면서 이젠 눈감고도 목표를 맞힐 수 있을 정도의 명사수인 내 솜씨였다.
퍼억!
“……!”
정확히 눈을 꿰뚫은 내 화살에 적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타고 있던 말 위에서 떨어졌다.
나는 그렇게 몇 번이고 적의 상급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노리고 화살을 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이내 아군과 적군이 엉키면서 난전이 펼쳐지자, 나 역시 들고 있던 활을 버리고 협곡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크아아아악!”
“사, 살려 줘!”
내 검에 일절 자비란 없었다.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적들을 나는 가차 없이 죽였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전투였다.
“후, 후퇴하라!”
상황이 그리되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적들 중 누군가가 후퇴를 외쳤고, 적들은 그때서야 양쪽으로 갈라져 협곡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협곡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입구를 막기로 했던 5조가 이미 대기하여 후퇴하는 적들을 차례차례 없애 나갔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고 채 20여 분도 지나지 않아 적 보급 병력은 모두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우리 쪽은 사망 10명, 그 외 경상을 입은 자가 50여 명으로, 죽은 사람들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그야말로 이쪽의 완벽한 승리였다.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기도 잠시, 곧 모두를 진정시키듯 크리스 총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들이 이 사실을 알고 몰려올지 모르니 마차는 불태워 없애고 서둘러 협곡을 빠져나간다.”
우리는 크리스 총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적들이 가져온 보급 물품을 태우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기름을 붓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던 중 나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어라?”
그야말로 무심결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곡물 포대에 박혀 있던 화살을 뽑아 든 나는 순간 곡물 포대에서 아무런 것도 쏟아져 나오지 않자 다급히 포대를 찢고 그 안을 확인해 보았다.
“이, 이럴 수가!”
나는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내 반응에 그 목소리를 들은 에르손이 황급히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런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곡물 포대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이것 봐. 안에 아무것도 없어.”
내가 찢어 버린 포대 안은 솜으로 가득 차 있었을 뿐, 밀이라고는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야?”
“어디, 어디!”
그런 내 말에 여기저기서 다급히 마차에 실려 있던 포대를 꺼내 그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연 다른 곳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도 비었어!”
“여기도!”
마차 20여 대 전부를 열어 봤지만 포대 안엔 그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화살이라 생각했던 것은 단지 나뭇가지였고, 검이라 생각했던 것 역시 알맹이는 없고 검집뿐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나를 비롯한 모두의 얼굴에는 당황이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비단 우리들뿐만이 아니었다. 크리스 총지휘관을 비롯한 기사들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마 적들이 우리가 공격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건가?’
하지만 어떻게?
여러 가지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지만, 그 무엇 하나 지금 이 상황을 속 시원히 설명해 줄 만한 것은 없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적들이 걸려들었다! 모두 공격하라!”
어디선가 협곡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날아오는 화살들.
화살은 미처 어떻게 손써 볼 틈도 없이 멍하니 있던 이쪽을 그대로 강타했다.
파바바바박!
“크아아아악!”
“크헉!”
갑작스러운 화살 세례에 여기저기서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마다 화살이 맞은 곳을 부여잡으며 쓰러져 가는 사람들. 너무나 정신없는 와중이라 기사고 용병이고 할 것 없이 무자비하게 날아드는 화살에 그대로 제물이 되어 갔다.
나 역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할 뿐, 갑작스레 닥친 위기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던 중 나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을 목격하게 되었다.
슈우우우욱!
어디선가 날아든 한 개의 화살. 그 화살은 마찬가지로 당황하고 있던 에르손을 향해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내 몸 역시 깊은 물속에 들어온 듯 한없이 느리기만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다. 화살을 막지는 못해도 비껴가게라도 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하지만 이것도 운명이라는 걸까?
순간 느려졌던 세상이 갑자기 원래대로 돌아왔고, 화살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내 손을 비켜 지나갔다.
푸욱!
“크헉!”
고통스러운 신음성과 함께 가슴을 부여잡고 그대로 허물어지는 에르손.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던 에르손이었지만 그 덩치도 지금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적들의 맛있는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화살 하나에 너무나도 속수무책으로 몸을 내주고야 말았다.
너무나도 현실감이 없어 한편의 악몽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현실.
나는 마치 쓰러지듯 에르손의 곁에 주저앉았다. 언뜻 봐도 에르손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화살은 마치 일부러 노리고 쏘기라도 한 듯 정확히 에르손의 심장이 있는 부위를 꿰뚫고 있었다.
어느새 흘러나온 피로 물들어 가는 에르손의 옷자락.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에, 에르손…… 괘,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에르손은 그 와중에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
“크흐흐. 너, 너 같으면 괜찮겠……냐?”
“크흑!”
왜일까, 그런 에르손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만난 지 이제 한 달도 되지 않는 사이. 하지만 그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생사를 함께한 내 동료였다. 힘들 때 날 지탱해 준 형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우, 울지 마라…… 자식. 내, 내가 말한 거 기억나지?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죽음과 함께……한다고.”
“…….”
목이 메어 말은 못했지만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못할 리가 없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에르손이 해 준 그 말 때문이었다.
에르손은 고개를 저었다.
“잊어라……. 내가 너한테 헛소리를 지껄였다 생각하고…… 잊어…….”
“무, 무슨 소리야? 잊으라니!”
난데없는 말에 당황하여 소리치는 날 바라보며 에르손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었다. 고통 따위는 담겨 있지 않은 얼굴.
나는 알았다. 그것이 죽기 전의 마지막 불길이라는 사실을.
나는 나도 모르게 에르손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 잊어. 죽음과 함께한다고? 다 헛소리야. 결국 죽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걸. 그러니까 넌 꼭 살아야 한다. 살아서 용병 같은 거 집어치워. 나처럼…… 이렇게 허무하게…… 되지 않으려면…… 꼭…….”
그 말이 끝이었다. 에르손은 하고 싶은 말조차 끝맺지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렇게 숨을 멈췄다. 내 손에 쥐어 있던 그의 손 역시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크흐흐흐흑!”
참으려 했지만 계속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버지가 학살자 녀석에게 돌아가신 이후로 내가 친하게 지냈던 내 주위 인물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 이를 악물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쳤다.
‘꼭 살아야 한다고? 걱정하지 마.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테니까.’
날 걱정해 준 에르손의 마지막 유언. 비단 녀석의 유언이 아니더라도 난 여기서 결코 죽을 수 없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예쁘지는 않지만 날 사랑해 줄 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기 전까지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동정인 채로 죽으면 너무 억울하잖아. 씨팔!’
하지만 내가 새로이 각오를 다졌다 하여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화살은 빗발쳤고, 계속해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겨났다.
‘생각해라. 여기서 살 수 있는 방법!’
여태껏 제대로 써 본 적도 없는 내 머리였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주인의 위기를 인지했는지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귀는 사방으로 열렸고 눈은 전후좌우를 살폈다. 그러던 중 내 귀로 크리스 총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