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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영웅 폴 1(19화)
6장. 탈출하고 보니 이게 웬?(2)


난 잠시 크리스의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가 안 됐다.
“마나가…… 뭐지?”
“……!”
그런 내 말에 갑자기 괴물을 보듯 날 바라보는 크리스. 난 그런 녀석의 모습에 기분이 팍 상했다.
“뭐야, 그 눈빛은? 상당히 기분이 나쁜데? 모를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리 따져?”
“크흠흠, 미안하군. 잠시 그대가 사냥꾼이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하지만 녀석의 사과에도 난 쉽게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지금 날 무식하다고 놀리는 거지? 이 자식, 그래도 읽고 쓸 줄은 안다고.
“그래, 그 마나란 게 뭔데?”
“설명하자면 길지만 그대가 알아듣게 간단히 정의하자면 일종의 기운? 대충 그 정도로 보면 되겠군. 기사가 바위를 가르는 힘. 마법사가 손에서 불을 내뿜는 힘. 그 원동력이 바로 마나다.”
“오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난 절로 감탄성을 내뱉었다. 마나란 정말 신기하군. 사실 우리 같은 일반 평민들에게 기사나 마법사나 같은 인간으로 보일 리 없다. 몬스터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바로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힘이란 게 결국은 마나라는 것에서부터 오는 것이라 하니 그간 모르기 때문에 가졌던 두려움이 일순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난 또 다른 궁금증에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마나란 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건가?”
“적은 양이지만 일단 생명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위력을 낼 수 없지. 따라서 기사는 검술로, 마법사는 그들만의 명상법으로 마나를 임의로 몸 안에 끌어 모아 그것으로 힘을 내게 되지.”
나도 기사들처럼 엄청난 힘을 가질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크리스의 말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렇지. 기사나 마법사가 아무나 다 되는 거라면 그들이 존경받을 이유가 없지.’
내 인생이 뭐 이렇지.
난 실망감을 감추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결국 그렇단 말은 지금 네 몸에 있는 마나가 그 팔찌에 의해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전처럼 힘을 쓸 수 없다. 뭐, 그런 건가?”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납득했다는 것은 아니다.
“근데 그거랑 네 작업 속도가 빠른 거랑은 무슨 상관이람? 적어도 지금 힘은 내가 더 세잖아?”
피식.
“아앗! 또 비웃었다!”
난 입 꼬리를 말아 올리는 크리스의 모습에 발끈하며 소리쳤다. 이게 뭐 했다 하면 자꾸 비웃고 난리야!
그런 내 반응에 크리스는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며 말했다.
“크흠흠, 웃은 건 사과하지. 하지만 그대의 말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보니 그만.”
“뭐가 어처구니없다는 건데?”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비록 지금은 마나를 봉인당해 큰 힘을 쓸 수 없지만 그래도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검을 쥐어 온 나다. 지금은 검 대신 곡괭이를 쥐고 있지만 결국 검이나 곡괭이나 크게 다르지 않지.”
그러면서 곡괭이를 들어 바위를 내려치는 크리스.
“힘으로만 모든 걸 해결하려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지. 잘 봐라. 곡괭이나 검의 찌르기 등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과연 한 점에 얼마만큼의 힘을 집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 아무리 강한 힘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진다면 백번을 내려친다 한들 이렇게 두 번 정확하게 내려치는 것만도 못하게 되지. 그게 바로 그대와 나의 차이점이다.”
콰르르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려친 곡괭이에 의해 우수수 쏟아지는 돌덩이. 난 그 모습에 입을 쩍 벌렸다.
“너, 대단하구나.”
전에는 몰랐지만 지금만큼 녀석이 대단해 보일 수가 없었다. 잘났다는 듯 저 썩은 미소만 빼면 말이지.
“그래, 어차피 난 검술의 검 자도 모르는 사냥꾼이니까.”
괜한 자격지심에 난 투덜거리면서 마구 곡괭이를 내리쳤다.
깡! 깡! 깡!
하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바위는커녕 돌조각만 날렸다.
그런 내 모습에 크리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폴.”
“왜 불러?”
“검술, 배워 보지 않겠나?”
“…….”
난 곡괭이질을 멈추고는 의심스럽다는 듯 크리스를 쳐다봤다. 하지만 크리스의 눈빛에는 한 점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검술이 아무나 가르쳐 달라고 쉽게 가르쳐 주는 거였던가?”
내가 귀족들에 관해서 잘은 모르지만 무가로 이름을 날리는 가문은 그 가문 특유의 검술이 한 가지씩 존재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검술이란 게 함부로 남에게 가르쳐 줬다가는 자식이고 애비고 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도 이상할 게 없다고 했다.
솔직히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깟 검술 좀 가르쳐 준다는 게 뭐 대수이랴?’라고 생각했지만 크리스의 말을 듣고 보니 나 같아도 안 가르쳐 주겠다 싶었다. 검술이란 게 마나를 모으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되는 이상 괜히 그걸 가르쳐 줬다 행여 다른 사람들에게 퍼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가문은 그 순간 쪽박을 차게 되는 것이다.
혹시 얘가 버림받았다고 확 일 저지를 속셈인가.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크리스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확고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론 아무에게나 검술을 가르쳐 줘선 안 되겠지. 하지만 더 이상 그대는 나에게 아무나가 아니다. 일단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스승이기도 하고 더불어 그대와 난 일시적인, 어디까지나 일시적이지만 서로 도와야 할 관계가 아니던가.”
그 말에 난 속으로 생각했다.
‘자식, 그래도 남 생각할 줄도 아는군.’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난 또다시 얼굴을 있는 대로 구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고, 실상 내가 그대에게 검술을 가르치고자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속도로는 던전을 발견하기는커녕 여기서 꼼짝없이 죽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대를 보고 있자니 한심하고 답답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군. 설마 나 혼자 일을 시킬 속셈은 아니겠지?”
‘그럼 그렇지.’
난 속으로 혀를 찼다. 이놈과 나는 결코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는 관계인 듯. 어쩜 말 한마디 한마디를 저렇게 밉게 할까.
“아이고, 거 퍽이나 고맙네그랴. 근데 내가 누구의 스승이라고? 난 아무것도 가르쳐 준 기억이 없는데?”
난 크리스의 말을 되새기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러자 녀석은 아직도 부어 있는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사실 난 누구에게 이렇게 신나게 얻어맞아 본 적이 거의 없다. 있다면 공작님에게 검술을 사사 받을 때뿐이겠지. 뭐라고 할까? 색다른 기분이었다. 마나 봉인 팔찌만 아니었다면 내 한주먹도 안 되는 이에게 이토록 맞았다는 것은.”
잠시 여기서 흠칫한 나.
‘서, 설마 이 녀석, 맞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는……. 위, 위험한걸.’
내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크리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잘 안다. 그건 단지 변명일 뿐이라는 것을. 어느새 나는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일반인 한 명도 제대로 이길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해져 있었던 것이다. 힘이라는 달콤한 마약에 취해 제대로 나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오만함이 이런 화를 부른 것이겠지.”
난 그런 크리스를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쪽 계열이 아니라 다행이구나……가 아니라 나름 뉘우치는 것을 보니 아주 엇나간 놈은 아닌 듯 느껴졌다.
솔직히 나로서는 당시에 녀석을 죽도록 패 주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기에 그냥 죽자 살자 달려든 것뿐이었는데 그것에서 녀석이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니 뭐라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알았으면 됐다.”
괜히 머쓱해진 난 그렇게 툭 쏘아붙였다.
아무튼 여차 저차 해서 크리스로부터 검술을 배우기로 한 나는 그때부터 팔자에도 없는 공부란 것을 하게 되었다.
“본디 검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이라 할 수 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아무리 마나를 모은다고 할지라도 결국엔 검 몇 번 휘두르다 지치고 말 것이다. 나 역시 그대와의 싸움이 없었더라면 이 말의 중요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대는 이 부분에선 문제가 없겠지.”
“아아, 체력 하나라면 난 자신 있지.”
난 알통을 내보이며 자랑스럽다는 듯 씩 웃었다. 사냥꾼 하면 인내, 체력 아니겠는가.
크리스는 인정한다는 듯 한차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보통 검술이라 하면 단순히 적을 죽이기 위한 특유의 검로라 알고 있지만 실상 검술은 단순히 검로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검로라는 형도 중요하지만 그 형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검을 사용하는 기사든 마법사든 결국 큰 힘을 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마나다. 아까도 잠시 설명했지만 검술은 결국 마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모을 수 있느냐, 그리고 그렇게 모은 마나를 일정한 검로를 통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발현할 수 있느냐, 그것에 주안점을 두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검술이 마나를 어떻게 끌어들이는가에 대한 문제다. 폴, 그대는 마나가 어디를 통해 인체 내로 유입된다 생각하나?”
“그, 글쎄.”
난 갑작스런 크리스의 질문에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어야 대답을 하든 말든 하지.
하지만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크리스는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마법사의 그것이든 기사의 그것이든 결국 마나가 인체 내로 유입되는 통로는 똑같다. 바로 호흡. 호흡을 통해서다. 검술이 탄생하고 검로가 결정된 것은 결국 이 호흡에 의한 결과다. 검의 움직임에 맞춰 호흡을 내쉬고 들이쉬는 일련의 동작을 통해 마나를 몸에 쌓고, 그것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종의 정형화된 틀로 고착되어 오늘날 각자마다 검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오, 그렇군.”
일단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검술에서 중요한 건 호흡이다.
“하지만 호흡만을 갖고는 모든 검술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각 검술이 갖는 고유의 특색을 만드는 것은 빠름과 느림의 조화. 쉽게 말해서 음악에서 논하는 박자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쿵쿵 짝, 쿵쿵 짝짝. 뭐 이런 걸 이야기하는 건가?”
“그렇다. 호흡과 함께 매우 중요한 요소지. 결국 그 박자에 의해서 검술의 종류가 갈리게 된다. 박자 개념이 거의 없는 일순간의 호흡만을 이용한 발검을 중요시하는 검술도 있을 수 있고, 박자와 호흡을 빠르게 가져가는 쾌검, 또한 그와 반대되는 중검도 있다. 물론 빠른 박자는 좀 더 공격적인 성향을 띠게 되고 느린 박자는 수비적인 성향을 띠게 되지. 결국 검술이란 검이 움직이는 검로, 호흡, 박자. 이 세 가지의 조합이라 말할 수 있다.”
“거참, 난 검술이라 하면 무조건 검부터 휘두르고 보는 줄 알았더니만 겁나게 복잡하군그래.”
난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뭐랄까, 내 상상과는 억 만 광년은 떨어진 느낌이랄까? 이거, 이래 가지고 검술 하나 배우다 인생 종 치게 생겼다.
난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말이야, 우린 지금 사정이 급하다고. 일일이 이것저것 다 따져 가면서 할 여유가 없단 말이다.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물론 나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될수록 어려운 것은 생략하고 당장 그대에게 필요한 것부터 가르칠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크리스로부터 본격적으로 지도를 받게 된 것은 검술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호흡법과 곡괭이를 잡고 호흡에 맞춰 내리치는 것, 그러니까 박자에 관한 훈련이었다.
검 대신 곡괭이를 꼬나 쥔 내 옆에서 자세를 교정해 주며 크리스의 입에서는 설명이 끊이질 않았다.
“호흡은 코로 크게 들이마시며 짧게 나누어 여러 번 내쉰다 생각하고, 곡괭이는 숨을 내쉴 때 짧게 끊는 그 순간에 빠르게 내리치고 다시 거둔다.”
난 크리스의 말대로 크게 숨을 들이쉰 다음 호흡을 내뱉는 순간 곡괭이를 내리쳤다.
깡!
그리고 재빠르게 거두고 다음 호흡 때 또다시 곡괭이를 내리쳤다.
깡!
하지만 크리스가 했던 것처럼 돌덩이가 쪼개지기는커녕 흠집도 안 났다. 더욱이 내 마음대로 호흡을 하지 못하자 속이 답답했다.
“이거 제대로 하고 있는 것 맞아?”
괜한 의심에 그렇게 말해 보았지만 씨도 안 먹혔다.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이다. 자, 한 점에 집중한다 생각하고 될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한다.”
난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녀석의 지도하에 폴식 곡괭이 검술을 익혀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