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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영웅 폴 1(21화)
6장. 탈출하고 보니 이게 웬?(4)


“이게 뭐지?”
툭! 툭!
일단 그림보다는 처음 보는 금속에 호기심이 든 나는 손으로 금속을 두드려 보았다. 은빛이 나는 금속이라니. 도대체 이게 뭘까?
그런 나에게 크리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놀랄 만할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이 문 전체가 미스릴로 되어 있는 것 같군.”
“아, 미스릴……. 미스릴이라고!”
난 순간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쩍 벌렸다.
‘저, 정말 이게 미스릴이란 말이냐!’
미스릴이란 금속에 대해선 소문으로만 들어 봤다. 일반 강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신비의 금속. 부르는 게 값이라는 그 금속이 이렇게 통짜로 있다니!
‘이걸 가져다 팔면 얼마야!’
속으로 희희낙락하는 나에게 크리스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좋아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는데. 폴, 설마 우리의 처지를 잊은 건 아니겠지?”
“…….”
기뻐하는 나에게 제대로 찬물을 끼얹는 크리스. 정말로 얄미울 수가 없었지만 일단 그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안타깝다는 듯 미스릴 통짜 문을 바라보았다.
“하다못해 조금만 떼어다 팔 수 있다면, 크흑.”
하지만 미스릴이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는 건 나도 안다.
난 아쉬운 마음에 눈물로 미스릴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나저나 갑자기 이게 웬 거지?”
한참이 지나서야 미련을 접은 난 그때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졌다. 크리스는 여전히 그런 날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시선을 올려 문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 역시 그런 크리스를 따라 머쓱하게 웃으며 그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무식한 내가 본다고 한들 그게 뭔지 알 턱이 없었다. 난 손가락으로 그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핑핑 돌아가는 그림은 뭐냐?”
“마법진이다.”
그런 내 물음에 간단히 대답해 주는 크리스. 난 그런 크리스의 말에 입을 동그랗게 말며 소리쳤다.
“이게 그 마법진이라고? 대, 대단하군!”
난 그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미스릴 통짜 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놀라웠다. 내 생에 마법진을 볼 날이 올 줄이야.
다들 마법이 어렵다 어렵다 하던데 실상 그 이유를 몰랐던 나로서는 단편적으로나마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수학이니 마나니 하는 것을 떠나 난 죽어도 이런 그림 못 그린다.
“마법이란 건 역시 복잡한 것이군.”
그런 쓸데없는 내 감탄에 크리스는 순간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오히려 단순한 편에 속한다.”
“뭐? 이게 단순한 거라고?”
이게 단순한 거면 다른 건 얼마나 복잡하다는 거냐!
난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 소리쳤다. 하지만 크리스는 그런 날 쳐다보지도 않고 마법진을 주의 깊게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건 일반적으로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법진과는 다르다. 나 역시 마법에 대해서는 교양으로밖에 접하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일반적인 마법진은 이렇게 단순한 룬어의 배열만으로는 발동하지 않아. 마법진 하나를 그리기 위해서는 그 안에 여러 마법 수식에 관한 기호 역시 들어가야 한다. 이런 구조의 마법진은 나 역시 처음 본다.”
“그럼 이게 무슨 마법진인지 모른다는 거야?”
기왕이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마법진이라면 좋으련만. 무슨 마법진인지도 모르는 이상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었다.
조금은 실망스런 내 말에 크리스는 팔짱을 끼며 고민하듯 입을 열었다.
“그렇다. 이것이 이동 마법진인지, 혹은 공격을 위한 마법진인지 아직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여기가 아론 대마법사님의 던전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건 또 어째서?”
“솔직히 아론 대마법사님의 과거 행적에 관한 기록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분이 대륙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쉐인에 의해 한창 대륙이 혼란에 접어들 때였으니. 그분에 관한 기록이라고는 하이네스 제국을 세우고 그 뒤 모습을 감출 때까지 채 5년도 되지 않지. 하지만 그 짧은 기록에서 밝히기를 그분은 기존의 마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마법을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방식이 무엇인지 그 이름조차 전해지지는 않지만 단 한 줄로써 말하기를 그분의 마법은 기존의 마법진을 변형시킨 형태이며 기존의 마법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축약된 형태였다고 한다. 처음엔 나도 기록을 접하며 이것이 가능한 것인지, 과연 어떠한 형태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막상 이렇게 접하고 보니 그 말의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진정 지금도 작동되는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만일 작동된다면 이것이야말로 마법계의 혁명이라 불려도 무방할 것이다.”
“헤에…….”
난 장황한 크리스의 설명에 넋을 놓고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내 눈엔 그냥 어지러운 낙서처럼 보이는 이게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지?
하지만 대단하든 그렇지 않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게 뭔지 일단 밝혀내는 게 중요했다.
그때부터 크리스와 나는 그 미스릴 문 주위를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가득가득 쌓여 이제는 화석처럼 단단해진 먼지를 털어 내며 조사하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어라? 이게 뭐지?”
미스릴 문 한구석에 손바닥 모양으로 움푹 파인 곳을 발견한 나는 잠시 고민에 빠져야 했다.
“여기다 손을 대 보라는 건가?”
아무리 봐도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괜히 이곳에 이런 모양을 만들어 놓았을 리도 없을 테니.
“그럼 어디.”
난 망설이지 않고 내 양 손바닥을 미스릴 문에 가져갔다.
한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부우우우우.
내 손바닥이 닿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낮게 진동하기 시작하는 미스릴 문.
“헉! 뭐, 뭐야?”
“폴, 무슨 일인가!”
당황하는 내게로 크리스가 달려와 무슨 영문인지를 물었다. 하지만 나라고 어찌 된 영문인지 알 턱이 없었다.
“나, 나도 몰라. 그, 그냥 여기 손바닥 자국이 있기에 한번 대 보았을 뿐이라고.”
“그럼 손을 떼어 내면 될 게 아닌가.”
너무나 태평한 소리를 내뱉는 크리스를 향해 난 팍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안 떨어지는 걸 날더러 어쩌라고!”
그랬다. 손은 마치 접착제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미스릴 문에 붙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크리스가 달려와 안간힘을 써 봤지만 마치 뭔가가 날 잡아당기듯 내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어떻게 좀 해 봐!”
크리스라고 딱히 방도가 있을 리 없었지만 이대로 있다간 뭔가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느낌에 난 계속해서 녀석을 채근했다. 나만큼이나 당황했을 크리스지만 그래도 녀석은 재빠르게 정신을 수습하더니 이내 손바닥이 붙어 버린 내 주위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뭔가를 발견한 듯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크리스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먼지 알 수 없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뭐지?”
문에 새겨진 글자는 현 대륙 공용어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나로서는 당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 계속해서 무식이 탄로 나는군.’
난 어쩔 수 없이 크리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와는 달리 크리스는 그 글자를 한 번에 알아봐 날 더욱 비참하게 했다.
“이건 천 년 전의 대륙 공용어로군.”
“읽을 수 있어?”
“힘들지만 한번 해 보지.”
그러더니 크리스는 더듬더듬 글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이네스의 후인……이여, 자격을 확인……하라. 두 개의…… 열쇠를 가진 자만이…… 이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자격이 없는 자, 열쇠를 갖지 못한 자…… 돌아갈지어다. 쓸데없는 욕심은…… 모두를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니.”
“…….”
난 잠시 말을 잃어야 했다.
“이, 이거 위, 위험한 거 아니야? 파, 파멸이라니?”
자격? 그딴 거 내가 알 바 없다. 열쇠? 그딴 거 내가 갖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크리스와 나는 그저 망연히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 후 먼저 입을 연 것은 크리스였다.
“저세상에 가더라도 날 잊지는 말게나.”
“……누굴 죽은 사람 취급하는 거야! 그리고 나만 죽을 거 같아? 여기 모두라고 써 있는 거 안 보여?”
“…….”
크리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 다만 행동을 보일 뿐이었다. 녀석은 들고 있던 곡괭이를 높이 치켜 올리더니 무감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통은 잠시뿐이다.”
“……너, 너, 너, 이, 이게 무, 무, 무슨 짓이야!”
당황한 난 어떻게든 크리스를 말려 보려 필사적으로 소리쳐야 했다. 이런 지독한 놈. 저놈이 얼마 전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놈 맞아?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치사하게 이러기냐?”
“…….”
하지만 크리스는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힘껏 곡괭이를 내리칠 뿐.
‘아, 우리 사이의 친분이란 고작 이 정도였단 말인가.’
“으아아아악!”
난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모습에 도리어 크리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폴, 설마 정말로 내가 그대를 죽일 거라 생각했나?”
“크아아악!”
하지만 난 크리스의 말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갑작스럽게 닥쳐온 고통에 온몸을 비틀며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쿠구구구구.
더욱더 진동을 더해 가는 미스릴 문. 그때서야 크리스도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다급히 곡괭이를 치켜들고는 미스릴 문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뭔가 알 수 없는 힘에 눌려 저만치 나가떨어져야 했다.
‘제, 젠장! 이게 그 파멸이라는 건가.’
뭐라고 해야 할까? 갑자기 몸 안에서 뭔가가 쑤욱 하고 문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이 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단순히 느낌상으로는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한계라는 것을 알려 왔다. 마주 댄 손바닥은 이미 터져 나갈 듯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죽이려면 좀 곱게 죽이란 말이다!’
한데 바로 그 순간, 마지막 발악을 하듯 소리치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듯 진동하던 미스릴 문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우우우웅.
작은 공명음을 내뿜을 뿐,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해진 미스릴 문.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 몸에 가해지던 이상한 현상 역시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접착제를 발라 놓은 듯 떨어지지 않던 손바닥 역시 어느새 힘없이 떨어져 있었다.
난 무심코 뒤로 물러서 미스릴 문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변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법진이!”
내 놀라움을 대신 말로 표현해 주는 크리스. 녀석의 말대로 단순히 그림으로서만 존재하던 마법진이 작동을 시작한 듯 밝게 빛을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놀람보다는 어리둥절한 것이 먼저였다.
“폴,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이 필요하다.”
“몰라, 나도. 그러니까 나한테 묻지 마.”
어렴풋이 자격이란 말은 이해가 갔다. 아론이 말한 자격이란 건 아마도 하이네스 제국 사람인지를 묻는 듯했다. 하인스 왕국이 하이네스 제국을 잇는 나라이니 그것은 넘어간다 하더라도 역시나 열쇠에 대해서는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었다.
‘뭐야? 그럼 내가 그 열쇠란 걸 가지고 있었단 말이야?’
그렇지 않고선 이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난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로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해해 보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려야 했다.
하지만 정작 놀랄 만한 일은 그 다음부터였다.
슈우우욱!
갑자기 마법진 한가운데에서 빛이 쏘아지더니 내 가슴 언저리를 향해 비춰지는 게 아닌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걸고 있는 한 목걸이를 향해서였다.
난 셔츠 속에 숨겨 놓았던 목걸이를 재빨리 꺼냈다. 목걸이는 어느새 오색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아, 아니, 그 목걸이는!”
뭘까? 갑자기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크리스가 경악한 듯 소리쳤다.
난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이미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내가 손을 짚자마자 반응하는 문도 그랬고, 이미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내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목걸이를 알고 있는 듯한 크리스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 나에게 남겨 주신 유일한 유품이었다. 산에서 상처를 입고 쓰러져 계시던 어머니가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던 것이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나에게 전해진 것이었다.
뭐, 딱히 진귀한 것도 아니었다. 그 흔한 가짜 보석도 없이 투박한 검은색 바탕에 알 수 없는 도형과 지렁이 같은 글자가 조합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난 재빨리 빛나고 있는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누군가가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 듯한 충격을 받아야 했다.
‘비슷하다?’
물론 전체적인 모양은 크게 달랐지만 대략적인 구조, 그리고 특히 그 안에 새겨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글자가 상당히 유사했다.
난 더욱더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어째서 어머니는 이런 목걸이를 가지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쏴아아아아아.
마치 해일이 덮쳐 오듯 거대한 빛의 파도가 우리 둘을 덮쳐 왔던 것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
난 내 몸이 어딘가로 내동댕이쳐지는 듯한 기분과 함께 정신을 놓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