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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영웅 폴 1(22화)
7장. 세상을 구할 운명이라고?(1)


난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꿈이라고 다 같은 꿈이 아니었다. 개꿈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돼지꿈도 아니었다.
꿈속에서 내 스스로가 지금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인식한 것은 일전에 학살자 녀석을 잡은 이후로 벌써 두 번째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은 행위의 주체자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꿈에서의 나는 마치 세상을 관조하는 신처럼 내가 보고 있는 것에 아무런 관여도 할 수 없었고, 하다못해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도 걸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강요된 것처럼 한 사람에게만 시선이 맞춰진 채 그 사람을 위주로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처음에는 갓난아이였다. 아이는 창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여인은 자신이 낳은 아이의 아버지도 몰랐지만 자신의 가족이 생겼다는 것에 기뻐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창녀가 아이를 가진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돈벌이인 몸 파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때부터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몸을 혹사해 가며 힘든 일을 해야 했다.
이미 임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쫓겨난 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얼마 동안은 벌어 놓은 돈으로 연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점점 커 가면서 결국 가진 돈을 모두 다 써 버리자 그녀는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사실에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이었다. 결국 그녀는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숨을 거두었다. 그때부터 아이는 세상의 모진 바람을 맨몸으로 맞아야 했다.
어머니의 품을 떠나 아이는 구걸을 하며 겨우겨우 생을 연명했다. 어떨 때는 너무나도 배가 고파 저도 모르게 도둑질을 했다. 하지만 조그마한 아이가 도망가 봤자 얼마나 가겠는가. 그럴 때면 빵 한 조각 대신 모진 매를 맞아야 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아이는 그렇게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런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던 마법사였다. 어느 날 담벼락에 쪼그려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이에게 내밀어진 쪼글쪼글한 손.
마법사는 말했다.
날 따라가면 다시는 굶지 않게 해 주겠다고.
아이는 단지 그 말에 혹하여 마법사를 따라나섰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아이를 데려간 그 마법사는 당시 모든 마법사들의 수장인 마탑의 탑주였다. 아이가 있던 도시는 바로 마탑에 의해 운영되던 도시였던 것이다.
아이는 자신을 데려갔던 마법사 할아버지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때문에 그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열심히 했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알기 위해 언제나 노력했고, 그 노력 때문인지 날이 갈수록 마법사 할아버지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천재.
아이는 흔히 말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하나를 내리면 하나를 거두어 간다고 했던가. 언제까지나 밝은 미래만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아이의 삶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빛을 잃고 말았다.
마나불응지체.
아이의 몸은 찾아보기가 극히 드물다는 마나불응지체였던 것이다. 쉽게 말해서 몸 안에 마나를 모으지 못하는 몸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언제나 그에게 웃음을 지어 주었던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것은.
마법사로서 최악의 신체를 가진 아이에게는 더 이상 그 누구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다. 대신 그 즈음 새로이 들어온 다른 아이에게 모든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마탑 안에서 철저히 잊혀진 존재가 되어 갔다. 아이를 안쓰러워하며 돌봐 준 것은 마탑의 노예로서 일하던, 귀가 뾰족한 아름다운 사람들과 몸집이 작고 말투는 거칠지만 그 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마탑에 존재하던 다양한 이종족들만이 그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다.
할아버지에게, 마탑주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서글펐지만 아이는 그들이 있었기에 그리 슬프지 않았다. 단지 배고프지 않고 있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이는 만족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아이에게 친구가 생겼다. 그 아이는 먼저 온 아이 대신 마탑주의 기대를 받던 아이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아이를 자신이 지내던 방으로 데려온 할아버지의 표정이 일 년 전 자신을 버리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자신의 박복한 운명을 저주한다고. 어찌 이런 쓸모없는 것들만 자신의 제자가 되었냐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새로 온 아이 역시 마찬가지로 마나를 모을 수 없는 체질이었다 하였다. 마탑주가 탄식을 터뜨릴 만도 했다. 어렵게 얻은 제자 두 명 모두가 마법사로서는 최악의 신체를 타고났으니.
세월이 흘러 아이와 친구는 청년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이와 친구에게 쏟아지는 냉소는 여전했다. 그 둘은 마탑의 수치였다. 특히 그 둘을 제자로 거두던 마탑주가 결국 다른 제자를 더 두지 못하고 숨을 거두면서 그러한 냉소는 더욱더 거세졌다.
아이와 친구는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었다. 마나가 모이지 않는 이상 마법은 처음부터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학문이었던 것이다.
그런 시간이 지속될수록 아이의 친구는 급속도로 변해 갔다. 처음에는 아이의 말을 잘 따르던 마냥 순진하고 착한 아이였지만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비뚤어졌고 냉혹한 심성을 갖게 되었다.
아이는 그런 친구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그나마 여전히 자신의 말은 들어 준다는 것 하나로 만족해야 했다.
결국 아이의 나이 30살이 되던 해에 아이는 그 친구와 함께 스스로 마탑을 나오게 되었다. 더 이상 비난과 질시를 참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아이는 이 좁은 우물 안에만 있으면 언제가 되었든 이 문제를 풀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몇 년이 걸리든 몇십 년이 걸리든 반드시 자신들의 신체에 대한 문제를 극복해 보이겠다고 다짐하며 둘은 그렇게 세상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리고 아이는 나이를 먹고 하나 둘 얼굴에 주름살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열의만큼은 결코 퇴색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는 자신의 신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아니, 그것은 방법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시도라 해야 옳을 것이다. 기존의 마법 체계를 바꾸는 중대한 결과였다.
아이와 친구는 새로운 마법을 열심히 익혔다. 그 마법으로 뭔가를 해 보려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새로운 마법을 익혀 마탑의 사람들에게 보인다면 자신들을 인정해 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이와 친구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다고 생각하여 비로소 칩거를 깨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 둘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비록 인생의 끝자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세상이 자신들을 알아준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것은 있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기존의 것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한 마탑의 마법사들은 결코 그 둘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법의 이단이라며 그 둘을 공적으로 지목했고 암살자들을 파견하여 둘을 없애려 했다.
아이는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 극심한 절망을 맛보았다. 아이는 결심했다. 다시는,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뭐 하나 해 준 것 없는 세상.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면 자신 역시 세상을 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칩거를 결심한 아이에게 친구는 말했다.
“난 우리를 버린 이 세상을 결코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아이 역시 현실에 절망하고 있던 터라 결국 그 말과 함께 떠나가는 친구를 붙잡지 못했다.
친구마저 떠나가고 결국 홀로 남은 아이는 그때부터 오로지 마법만을 익히며 시간을 보냈다. 마법만이 그에게 친구였으며 가족이었다. 아이는 때때로 외로웠지만 불행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그로부터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잠시 머리라도 식힐 겸 모처럼 칩거하던 장소에서 벗어나 세상을 유람하던 그는 우연히 10년 전 사라졌던 친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친구는 더 이상 예전에 아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친구는 너무나도 많이 변해 있었다. 오로지 살육에만 미쳐 있었다. 그런 친구에 의해 대륙은 피로 물들었고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는 처음엔 그런 친구를 말리지 않았다.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안타까웠지만 세상을 향한 절망은 아이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던 아이의 눈에 들어온 건 마탑이 무너지면서 갈 곳을 잃은 노예들이었다. 당시 마탑에 의해 지배를 받던 수많은 이종족들은 인간에 의해서도 보호를 받지 못하여 결국 친구의 무자비한 살육에 희생되어 갔다.
어린 시절 버림받은 상처를 보듬어 주며 유일하게 그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던 가족이었다. 결국 아이는 그들을 지키기 위해 오랜 결심을 깨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흩어져 있던 사람들을 모으고 살육에 미쳐 있던 친구를 막아섰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친구는 말했다.
“왜! 나를 막는 거지?”
억울하고 원통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친구의 눈빛에 아이는 차마 그런 눈을 마주 바라보지 못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런 친구를 막아서는 아이 역시 가슴이 아팠다. 대신 아이는 그만 분노를 풀기를 권했다.
그러자 친구는 냉소했다. 친구가 세상에 쌓아 온 분노는 겨우 그런 말 한마디로 치유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는 어쩔 수 없이 피눈물을 흘리며 그런 친구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끊어야 했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던 분노를 푼 것이 잘못일까? 아니면 세상이 자신들을 버린 것이 잘못일까?
아무런 욕심도 없었다. 그저 인정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 알아주지 않던 세상이었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자신을 버렸던 세상을 위해 가장 소중하던 친구의 목숨을 앗아 갔다.
아이 역시 친구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러지 못했다.
그동안 자신만을 바라보며 희망을 찾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차마 아이는 그 사람들을 뿌리치지 못했다.
아이는 혼란을 수습하고 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아이가 원한 건 한 나라의 황제 자리가 아니었다. 아이는 그저 편히 쉬고 싶었다. 결국 아이는 황제의 자리를 자신을 따르던 한 청년에게 물려주고는 이종족들과 함께 바다를 건너 한 섬에 정착했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이대로 편히 죽기를 마지막으로 희망했다.
하지만 왜일까? 세상은 또다시 아이를 부르고 있었다. 아이는 보았다. 먼 훗날 닥칠 대륙의 위기를.
아이는 세상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남기기로 하였다. 이미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로서는 그것만이 최선의 길이었다.
모든 것을 끝마친 아이는 그저 쓸쓸히 지는 태양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느꼈다. 저 태양이 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목숨 또한 지게 될 것임을.
아픔을 간직한 눈동자는 지난 삶을 돌아보듯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한구석이 아려 왔다.
난 이 아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하이네스 제국을 세운 초대 황제이자 쉐인을 물리치고 대륙을 위기에서 구해 낸 대마법사 아론.
지금껏 내가 보고 들어 왔던 것은 아론의 삶이었던 것이다.
영웅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그의 인생이었다. 내가 아는 칭송받는 영웅의 삶이란 이런 게 아니었다.
“사람은 언제나 많은 것을 원한다네. 또한 그와 반대로 많은 것을 원치 않기도 하지. 하지만 삶이란 건 원한다고 다 가질 수도 없으며 원치 않는다고 피해 갈 수도 없다네. 운명이란 바로 그런 것이지.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결국은 해야만 하는 일. 하지만 무조건적인 강요는 있을 수 없겠지. 두 가지의 길이 존재한다네. 하나는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것이라네. 하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지. 결국 사람이란 이기적이어서 자신만을 돌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두 번째는 타인을 위하는 길일세. 나 자신을 희생해 모두가 원하는 길을 가는 것이지.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도 첫 번째 길을 택할지도 모르겠네. 두 번째 길은 너무나도 고단한 길이기 때문이지. 묻겠네. 자네는 이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겠는가.”
홀로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 나가던 아론의 시선이 곁에 있던 내 눈을 정확히 직시했다. 난 그런 아론의 모습에 깜짝 놀라야 했다.
‘이것은 꿈이 아닌 건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없었다. 아론은 대답을 요구하듯 그저 하염없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고민할 것도 없이 스스로 이기적이라 생각하는 난 아마도 알면서도 모른 체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큰일이 닥친다면 난 서슴없이 내 동료, 내 가족을 버릴 수 있을까?
‘희생.’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희생이란 단어는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이 나를 위해서 사용되는 것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껏 소중한 누군가가 내게 없었을 뿐, 만일 소중한 누군가가 내 앞에서 죽음에 처한다면 난 과연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아마 소중한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내 자신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난 고민 끝에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써는 그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네요. 전 굉장히 이기적인 놈이라 희생도 따져 가면서 할 녀석이거든요.”
“후후후후.”
그런 내 말에 아론은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라고 할까? 마치 귀여운 손자의 재롱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론은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아무래도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기에는 어려운 질문인지도 모르겠군. 답은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일을 겪고 나서 천천히 내리도록 하게나. 하지만 한 가지 인생의 선배로서 충고하자면 훗날 자네의 그 선택이 무엇이 되었든 후회하지는 말라는 것이네.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누구도 판단치 못하는 일. 자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지킬 수 있기를 바라네.”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론의 몸은 마치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져 갔다.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론의 말에 그저 멍하니 사라져 가는 그의 모습을 좇을 뿐이었다.
‘설마 나에게 대륙의 위기를 막으라는 그런 소리는 아니겠지?’
정말로 이번만큼은 설마가 사람 잡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