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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크 1권(4화)
3. 화려한 외출(2)


무얼 입고 갈까! 그래도 처음 받는 초대이고 귀족 여성과의 만남에 설레는 세스크였다. 자신이 만든 707특임대의 검은 작전복을 입었다. 그 위에 금색 로브를 걸치고 거울을 본다. 자신이 봐도 훌륭했다.
미남은 아니지만 180정도의 건강하고 늠름한 청년이 거울 속에 서 있었다. 육체 개조를 겪으며 피부가 깨끗해졌다. 덕분에 검은 머리에 갈색 눈동자이지만, 동서양의 하프처럼 보인다.
거울을 향해 씨익 웃어 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어느새 알버트가 마차와 기다리고 있었다.
세스크와 알버트를 태운 마차는 힘차게 노라 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편안한 마차의 쿠션에 몸을 맡긴 세스크에게 알버트가 말을 건다.
“한 시간 정도의 거리입니다.”
한 시간이면 30Km 정도의 거리이다.
“알버트, 상당히 서두르는 느낌인데 다른 이유라도 있소?”
싱글거리며 묻는 세스크에게 알버트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노라 성에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아름다운 성입니다. 제국이 평화로울 때라면 관계없지만, 지금은 모두 10년 전쟁 후의 피해 복구와 새로운 전쟁의 대비에 전력을 쏟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라 성은 아름답지만, 별장의 용도 외에는 아무런 전략적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10만 골드 정도의 거금을 이곳에 투자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상단주님도 시빌 님도 서두르고 계시지요. 저 또한 프라겔 공작가와는 좋은 인연이 있었는지라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세스크 님.”
“아니, 알버트를 탓할 생각은 없소.”
사과하는 알버트에게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세스크였다. 세스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차는 점점 내륙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느새 비릿한 바다 냄새가 사라지고 멀리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더 달렸을까. 마차는 완만한 경사를 올라가고 있었다.
좌우로는 노랗게 익은 벌판에 곡식을 추수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낮은 구릉 위로 그림 같은 성이 모습을 나타낸다.
“아!”
세스크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낮은 산자락에 기대어진 첨탑들이 아니었다면, 숲이라고 착각할 만한 넝쿨과 이끼로 단장한 성벽이 눈에 들어왔다. 성벽에 어울리는 성문을 지나자, 나타나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초록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초록의 세계 사이에 언뜻 보이는 건축물들은 숲과 조화를 이루어 있었다. 그렇게 10여 분을 더 달렸다. 마침내 시야가 확 트이더니, 넓은 초지 위에 동화 속의 공주님이 살 것 같은 커다란 저택이 나타났다.
현관에는 꼬장꼬장해 보이는 노인이, 깔끔한 복장으로 알버트와 세스크를 맞아 주었다.
말 안 해도 집사라는 포스를 팍팍 풍기는 노인을 따라, 현관을 들어서자 넓은 홀이 보인다.
2층의 계단에서 성장의 세 여인이 내려오고 있었다. 맨 앞의 녹색 드레스의 여인이 시빌 부인일 것이다. 서른 정도의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뒤의 흰색과 분홍색의 스물 정도 보이는 귀여운 아가씨들이 쌍둥이 딸일 것이다.
금발에 커다란 눈, 하얀 피부, 봉긋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등 미인의 요소는 전부 갖춘, 눈에 확 띄는 미모이다.
시빌 부인은 세스크와 알버트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인사한다.
“반갑습니다. 시빌 프라겔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예법에 살짝 당황하는 세스크였다.
“반갑습니다. 시빌 부인. 세스크 아시아입니다.”
가볍게 손에 키스하며 인사를 하는데 마나가 느껴진다. 이 여자 마법사이다. 살펴보니 심장에 네 개의 마나 고리가 느껴진다.
“엘레나 프라겔입니다.”
“세레나 프라겔 입니다. 환영합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인사하는 쌍둥이 자매에게도 2개의 마나 고리가 보인다.
“아름다운 레이디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세스크 아시아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느끼한 대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런, 너무 굶었어! 자책하는 세스크였다.
시빌 부인의 안내로 응접실에 자리하자 하녀가 차를 내온다. 세미녀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받으니 자신도 모르게 흥분된다.
5년 만에 맡는 달콤한 여인의 향기에 취해 몽롱해지는 것 같다. 이런 추태가! 정신 차려라! 세스크.
“아시아 님은 무척 젊어 보이시는데 성취가 대단하신가 봐요. 제가 알 수가 없군요?”
시빌 부인이 마나스캔을 해 보고는 고개를 흔들며 묻는다.
“세스크라고 불러 주십시오. 22살이고 5서클 마스터입니다.”
“예! 5서클 마스터라고요!”
“아!”
“아!”
“헉! 5서클 마스터!”
세스크의 대답에 경악과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바라크 제국에도 5서클의 마법사는 30명이 채 안 된다. 그것도 대부분이 50대 이상이다.
“대단하네요, 세스크. 어느 마탑 소속인가요?”
제일 먼저 공황에서 빠져나온 시빌 부인이 묻는다.
“자유마법사입니다. 스승님이 워낙 연구에만 몰두하셔서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난처한 질문이 시작되려는 순간, 늙은 집사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공작부인. 식사 준비가 되었습니다.”
세 미녀와의 식사는 즐거웠다. 음식의 맛은 둘째로 오랜만의 아름다운 여성들과의 식사는,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었다. 식사 후의 티타임을 갖는 자리에서 본연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결국 노라 성을 10만 골드에 인수하기로 하고 바로 계약을 마쳤다. 한 가지 알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시빌 부인과 두 쌍둥이 자매에게 가문을 부활시키겠다는 절실함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왜인지 노라 성을 팔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판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빌 부인과 두 딸은 같은 마법사라는 동질감에서인지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특히 두 딸은 아직 성 밖으로 나가 보지도 못해 타인과의 교류가 없었다.
작년에 성인식을 치른 17살이라는 점이 세스크를 놀라게 했다. 아직 사교계에 데뷔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시빌 부인! 갑작스럽게 계약이 이루어져, 이주 준비가 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저 또한 급작스러운 진행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준비가 될 때까지 이곳에 머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도 여유를 갖고 집사나 일할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앞으로 3년 정도는 이곳에서 지낼 형편이 되지 않으니 크게 불편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세스크는 시빌 부인에게 인심을 썼다.
“오! 세스크 님, 그래도 괜찮을까요? 사실 저도 갑자기 계약이 이루어져 무엇부터 해야 될지 당황스럽던 참이랍니다. 너무 염치없는 부탁이라 먼저 말씀드리기 어려웠는데 그렇게 말해 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시빌 부인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한다.
“아닙니다, 부인. 이 아름다운 성에서, 아름다운 세 분의 레이디와 지낼 수 있게 된 제가 오히려 영광이지요. 그럼 그렇게 알고 내일 뵙겠습니다.”
아쉬움을 간직한 채, 세 모녀와 작별을 취하고 노라 성을 나섰다. 여관에 도착하니 어느새 상인 길드장과의 약속 시간이 가까워졌다.
세스크는 제국 상단 쪽에 노라 성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군마 100필과, 종마 10필, 범선, 각종 곡식의 종자 2,000포대를 이면계약으로 요구하였다. 제국 상단은 2만 골드에 수락하여, 총 12만 골드에 노라 성을 인수하게 되었다.
알버트와 세부 계획을 통해 한 달 후, 하버릭에서 범선과 함께 인수하기로 합의하였다.
비슷한 보석 5개를 꺼내 알버트에게 환전을 부탁했다. 또, 10일간 식당의 모든 메뉴로 매일 1,000인 분의 도시락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고 나니 상인 길드장이 왔다.
프레드라는 길드장은 4, 50대의 말쑥한 중년 신사였다. 제국 3대 상단 중의 하나인 크로스 상단의 하버릭 지부장이기도 하였다.
프레드에게 건축자재와 기술자의 수배를 부탁하고 매달 20,000포대의 밀과, 보리 등의 잡곡 10,000포대, 소와 돼지, 양 등 가축의 구입을 의뢰하였다.
부두 근처의 창고 5개를 임대하여, 한 달 후에 인도받기로 하고 크로스 상단의 범선 1척을 구입할 수 있었다.
모든 계약을 마치고 나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프레드를 초대하여 식사를 하였다. 식사 중, 한 달 후에 있을 노예 경매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또 다른, 3대 상단의 하나인 펜타고 상단의 주력 업종이 노예와 군수품이라고 한다. 세스크가 관심을 보이자 소개해 주기로 약속했다.
프레드와 헤어지고 방으로 돌아온 세스크는 오늘의 쇼핑에 만족했다. 한 달 후에 있을 노예 경매만 마치면, 하버릭에서의 쇼핑은 끝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도시 구경에 나섰다.
하버릭은 찰스 칸 로가딕 후작이 다스리는 영지다. 후작령 중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로가딕 후작의 둘째 아들인 카이드 남작이 성주로 있었다.
거리는 활기차고 청결하였다. 무장한 용병과 뱃사람이 많이 모인 술집에서도 큰 소란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치안도 잘 유지되는 것 같다.
약간의 이벤트성 사건을 기대하고 들른 주점에서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조금은 실망한 마음으로 여관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니 알버트가 찾아와서 초청장을 건네주었다.
특별 경매에 참가하려면 1,000골드 이상의 예치금이 필요하며, 예치한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알버트는 세스크의 부탁대로 10,000골드를 예치했다.
점심 식사 후, 마차를 부탁해서 용병 길드로 향했다. 하버릭에서의 일을 마치면, 바라크 제국의 황도를 가 볼 예정이다. 아무래도 신분증이 필요할 것 같았기에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운 용병으로 등록할 생각이었다.
용병들에게 마법사는 아주 귀한 존재였다. 4서클 이상이면 S급 용병으로 대우받는다고 한다.
용병 길드에 도착해, 자유마법사 세스크란 이름으로 4서클의 마법을 사용해 테스트를 통과했다.
길드장의 극진한 접대 속에 S급 용병으로 등록을 마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알버트를 불러 계산과 함께 황도까지의 여정에 대해 물어보았다. 친절한 알버트의 대답으로 대략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한 달 후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알버트와 헤어졌다.

세스크는 화려한 성곽을 나서 수도로 향하는 관도를 걸었다. 말이나 마차를 이용하면 편하겠지만, 당분간은 아스트라 대륙을 알고 싶었다. 확실히 황도로 향하는 길이라 잘 정비되어 있었다.
아직은 로가딕 후작령이었다. 로가딕 후작은 비교적 괜찮은 영주인 것 같았다. 영지 민들의 영양 상태나 얼굴에 드리운 표정이 밝은 것을 보니 나름대로 만족한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세스크야 현대식 교육을 받았으니 평등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신분제 사회에서 영주민은, 영주에게는 가축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가축을 잘 키우려면 충분한 사료와 알맞은 운동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영주민들이 굶주리거나 가혹한 수탈을 당한다면, 저런 밝은 표정은 나오지 못할 것이다.
날이 저물어 노숙을 하게 되었다. 아공간에서 텐트를 꺼내 설치하였다. 코펠을 꺼내 간단한 식사 준비를 했다.
흰 쌀밥에 김치찌개를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직 벼도 발견하지 못했고, 배추는 더더욱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하기는 배추가 있어도 김치를 만들지 모르니 그림이 떡일 것이다. 오랜 외국생활로 이런 음식에도 익숙해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커피와 담배가 생각난다. 헤비 스모커인 세스크는 제일 먼저 담배 잎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등걸에 기대어 두 개의 달을 바라본다. 정들지 않는 모습이지만 이제는 정을 붙이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비록 여전히 혼자였지만, 드래곤 랜드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침낭을 꺼내 텐트 안으로 들어가며 야영을 하는 기분이 들어 즐겁기만 했다.
다음날 아침,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황도인 나크야를 향해 출발했다. 로가딕 영지를 떠나면, 로스 바르도 후작의 영지이다. 바라크 제국의 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실세이다.
바르도 후작의 영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처음 이 시대를 상상하며 생각했던, 생활에 찌들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불쌍하다거나 안타까운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아마 세스크가 아스트라 대륙의 철저한 이방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하얀 피부에 형형색색의 머리, 눈동자가 늘 보아 오던, 동양인의 모습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몰랐다.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보다 몬스터의 한 종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처음 왔던 백인도 이 느낌 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처음 흑인이나 황인종을 보았을 때,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고, 짐승이나 몬스터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니 거리낌이 없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바르도 후작의 직할 영지까지는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남았다. 이곳은 파스테논 자작의 영지이다. 바르도 후작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유능한 인물이라고 한다.
영주성이 있는 내성에 들어가 여관에 들었다. 이곳의 여관 역시 시설이 훌륭했다.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식사 시간이 지났는지 식당은 한산했다. 자리에 앉아 추천 메뉴를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꽤 고급 식당인지 사람들의 차림이 고급스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