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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크 1권(5화)
3. 화려한 외출(3)
한쪽에 십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한 쌍의 남녀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상인 차림의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 쌍의 남녀는 귀족의 자식으로 보인다. 건장한 사내들은 호위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쓸데없는 시비는 사양이라,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식당의 음식은 훌륭했다. 역시 전문가가 요리하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식당의 음식을 종류별로 10인분씩 도시락으로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식도락만큼 여행의 질을 높여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세스크는 드래곤 랜드에서 5년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 보지 못해, 더욱 집착하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는 마차를 구입하기로 했다. 걷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을 탈 줄 모르니 마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배울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귀찮은 생각에 포기했다.
마차도 신분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말이 정해져 있었다. 세스크는 두 필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마부를 고용했다. 40대의 토마스라는 마부는 요구하는 돈을 군소리 없이 선선히 주자, 성의껏 마차를 몰아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인간은 그리 선한 동물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마차가 인적이 없는 도로로 접어들자, 십여 명의 사내가 길을 막아섰다. 마부인 토마스와 한 패거리였다. 그들은 다짜고짜 마차를 공격해 왔다.
슈―욱!
팍, 퍽, 퍽.
화살이 날아들었다. 세스크는 마차 안에서 실드로 몸을 보호하며,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대략 이십여 발의 화살이 날아들어 마차에 박혔다.
이제는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화살이 멈추었다. 마차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다. 마차 문이 거칠게 열리고 놀란 얼굴의 사내와 토마스가 서 있었다.
“헉! 어, 어떻게…….”
“헉! 이, 이게…….”
너무도 멀쩡한 세스크의 모습에 당황한, 두 사내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는지 칼을 빼어 들고 달려든다.
“모두 공격하라!”
세스크는 달려드는 사내들을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들은 그저 몬스터의 한 종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을 살려 두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길 것이다.
리벌버를 꺼내 들고 멀리 있는 적부터 공격했다.
슉! 슉! 슉!
“윽! 으윽!”
“으악!”
소음기로 인해 바람을 가르는 파공성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십여 명의 강도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다. 두 발로 서 있는 건 토마스 하나였다. 토마스는 너무 놀라 말도 나오지 않는 듯했다.
“디그!”
땅을 파고 쓰러져 있는 강도들을 모두 묻었다. 토마스를 바라보니 오줌을 지렸는지 발밑이 흥건하다.
겁에 질려 떨고 있는 토마스를 향해 말한다.
“토마스! 마차를 몰아.”
토마스는 세스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말한다.
“마, 마법사님. 살려 주십시오. 늙은 어머니와 어린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세스크는 이런 식상한 대사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토마스, 마차를 몰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여주지.”
“사, 살려 주십시오. 마법사님!”
토마스는 애원하며 마부 석에 올랐다.
지구나 이 세상이나 사람 사는 것은 똑같은 것 같았다. 힘없고 나약해 보이면, 빼앗으려 들고 강한 것 같으면, 숙이고 애원하는 것을 보면,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성이 보인다. 세스크는 마차에서 내려, 토마스를 죽이고 땅에 묻었다. 사람을 죽이는 데, 거리끼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살려 줄 수는 없었다.
여러 가지 법적 장치가 있는 현대라면,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무법과 다름없는 세상에서는 살려 두면, 다른 피해자가 생기게 된다.
알량한 자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 또한 죄악이다. 성인군자가 아닌 바에야 상황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이것 또한 힘이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이다. 힘이 없으면, 당하는 쪽은 세스크일 것이다.
그동안 토마스가 마차를 모는 것을 지켜본 대로 하니, 어찌어찌 성까지 갈 수 있었다. 경비병에게 용병 패를 보이고 사정을 설명하니, 곧, 마부를 소개해 주었다.
여관에 도착하여 식당으로 갔다. 이제는 더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황도나 구경하고 이종족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현대의 발달된 문명 속에서 살다 낙후된 이 세상은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마치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놀러 간 기분이었다.
처음 며칠은 모두가 신기하고 좋지만, 곧, 시들해지고 불편해지지 않는가. 세스크는 더 이상의 흥미를 잃고 말았다.
낮선 위화감만이 깊어지는 것 같았다. 가장 큰 이유는 신분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이곳은 다른 세상이다.’라고 생각하지만, 40년을 넘게 지내온 습관은 그런 생각을 무시하곤 한다.
또, 소시민들은 돈 있고 빽 있다고 유세 떠는 인간들을 싫어하지 않는가. 이 세상의 귀족들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 그러니 원래 소시민인 세스크가 그런 것들이 좋아 보일 리가 없다. 더구나 지금은 힘을 지녔으니 말이다. 누가 시비만 걸면, 폭발할 것만 같았다. 다행이 아직 그런 일은 없었다.
식당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마땅한 자리가 없어 난처해하고 있었다. 종업원이 다가와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파스테논 자작령에서 본 한 쌍의 남녀였다.
종업원은 그들이 합석을 권했다고 말한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로 갔다. 남자 쪽이 일어나서 맞아 주며, 맞은편의 자리를 권한다.
“마법사인가? 나는 아이크 칸 레노마라고 하네. 이쪽은 내 아내인 캐서린일세.”
순간 울컥했으나 곧 실태를 깨달았다. 세스크는 자신의 모습도 20대 청년이라는 것을 곧잘 망각한다.
젊은 사내는 20후반의 금발에 곱상하게 생겼다. 미들네임에 칸이 붙는다는 것은 세습 영주라는 뜻이다.
“세스크 아시아라고 하오.”
순간 호위를 하던 인물들의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아이크라는 청년이 눈짓으로 제지한다.
다시 한 번 이곳은 귀족 사회라는 것을 상기했다. 세스크가 보기에는 새파란 핏덩어리지만, 세습 영주의 신분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귀족 중에서도 최상위 계층인 것이다. 영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한 지방의 왕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들을 로드라고 칭하지 않는가.
아무리 마법사의 지위가 향상되었다고 하나, 세스크의 행동은 즉결이 가능한 모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 어린 핏덩어리에게 존대를 하고 싶진 않았다. 이곳이 어떤 사회이든,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빈자리가 없네. 자, 앉지.”
“고맙소. 반갑습니다. 부인.”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호위하는 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지만 무시했다.
하오체를 듣고 있는 것도,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참고 있다는 것을 저들은 모를 것이다.
“어느 마탑의 소속인가? 젊어 보이는데 상당한 경지를 이룬 것 같군.”
“소속은 없소. 훌륭한 스승을 모신 덕에 약간의 성취를 이루었을 뿐이오.”
아이크의 물음에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호오, 대단한 스승인가 보군. 자네와 같이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다니. 사실은 지난번 파스테논 영지에서 자네를 처음 보았다네. 아! 내 아내도 마법사라네. 아내가 자네에게 호기심을 느껴, 나도 자네를 살펴보게 되었다네.”
아이크는 아내를 한 번 바라보고는 세스크에게 말한다.
“나도 기억나오.”
“그래, 다시 이곳에서 만나게 되어 인연이라 느껴 청했다네. 마침 자네도 곤란한 것 같았고.”
캐서린 부인을 스캔해 보니 4서클의 마법사이다. 20대의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4서클의 마법사라면, 상당한 신분의 여자일 것이다. 물론 뛰어난 자질도 있었겠지만 자질만으로 해결 될 일이 아닌 것이다.
“부인 역시 상당한 마법사이시군요.”
“아내는 백마탑 탑주의 딸이라네.”
아이크는 자랑스레 대답했다.
백마탑이라면, 대륙에서 제일가는 성세를 떨치는 곳이다. 역시 그 정도 신분이 되니, 여자의 몸으로 4서클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호호, 반가워요. 아시아 님. 하지만 아시아님은 저보다 훨씬 뛰어난 것 같군요.”
캐서린은 활짝 웃으며 세스크에게 인사를 건넨다.
“과찬이십니다. 레노마 부인. 스승님이 뛰어나신 분이었습니다.”
세스크도 웃으며 대답했다.
레노마 백작은 독립 전쟁으로 영지를 잃은 귀족이었다. 부친이 전쟁으로 죽자 세습한 경우로, 지금은 영지 없는 몰락한 귀족이라고 한다.
아이크는 비상을 꿈꾸고 있으나, 아직은 요원한 상태라고 한다. 능력 있는 처가를 둔 덕분에 비참한 상황은 벗어났지만, 권력에서 멀어진 가문을 부활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마탑은 철저히 정치와는 거리를 둔다.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처가 쪽에 부탁할 수도, 들어줄 수도 없는 사항이었다.
그래도 인재를 보면 인연을 이어 두고 싶은 아이크였던 것이다.
세스크는 아이크가 사심 없고 순수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아이크에게서 특권 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가문이 몰락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한 지방의 후계자가 마법사의 딸을 정식으로 본처로 맞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아이크와는 상성이 맞는 것 같았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식견이 훌륭했다.
“그럼, 아시아 경은 황도로 간단 말이오?”
“그렇소. 황도에 들러 엘프 왕국과 시센에 들러 볼 생각이오.”
아이크의 질문에 세스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잘됐네요, 아시아 님. 우리들도 황도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이 어때요? 당신도 찬성하지요?”
레노마 부인의 권유로 황도로 가는 길에 동행하게 되었다. 세스크는 이들 부부가 마음에 들었다.
레노마 부부와 동행하게 되었다. 과연 이들은 몰락 후, 대륙을 여행하는 것으로 소일하여 지리에 밝아, 노숙을 해야 하는 경우는 없었다.
레노마 백작의 저택으로 초대받아 부부와 함께 백작의 저택으로 향했다. 레노마 백작의 저택은 아름답고 훌륭했으나, 황도의 궁궐 같은 저택에 비하면 초라해 보였다.
권력과 멀어진 몰락 귀족의 단편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였다. 이들에게 무언가 보답하고 싶었으나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세스크는 이 부부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레노마 백작님, 다시 권력의 중심에 서고 싶습니까?”
아이크는 허허롭게 웃으며 대답한다.
“하하, 세스크 님. 지난 5년간 세상을 돌아다니다 보니, 권력이 얼마나 부질없음을 알게 되었지요. 이제 바람이 있다면, 가문이 사라져 버리지나 않았으면 합니다. 하하, 말이 이상하게 되었군요.”
세스크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대에서 가문이 사라져 버릴까, 그것이 염려되는 것뿐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어떨까요?”
세스크가 은근히 권유하자.
“하하, 그런 곳이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세스크에게 되묻는다.
레노마 백작은 세스크에게 묘한 분위기를 느낀다. 뭔가 초월자의 느낌이랄까.
세스크의 사물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에 당황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염세적이며 방관자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단지 능력 있는 젊은 마법사가 아니라, 전설의 드래곤이 무료함에 지쳐 인간 세상을 유희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자신이 함부로 하지 못할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 세상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런 세상을 찾으면 백작님에게 제일 먼저 알려 드리지요.”
“하하, 좋습니다. 아시아님이 그런 세상을 빨리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세스크는 이 젊은 부부가 좋아져 계획을 변경하고 백작의 저택에서 머물렀다.
하버릭의 노예 경매 일이 가까워졌다. 이종족 국가는 다음에 들르기로 하고, 하버릭으로 가기로 했다.
“레노마 백작님, 부인. 그동안의 환대에 감사합니다. 정해 둔 일이 있어 그만 떠나야 할 듯합니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세스크는 부부에게 통신구를 선물하였다. 부인이 마법사이니 사용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아쉬워하는 레노마 부부의 배웅을 받으며, 하버릭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