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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크 1권(6화)
3. 화려한 외출(4)
하버릭의 보석에 거처를 정하고, 노예 경매가 열리는 외성 밖의 평원으로 향했다. 외성 밖의 평원에는 수백 개의 천막이 펼쳐져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일반 경매는, 전쟁 포로나 범죄자 또는 각국에서 공물로 바쳐진 여인들이 대부분이다. 커다란 천막 사이사이에 설치된 원형의 우리에서,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장 인기가 좋은 노예는 기술을 가진 노예와 조세느 왕국의 여인들이었다.
조세느 왕국의 여인들은 비교적 외모가 아름답고 순종적이며 근면 성실하다고 한다. 그래서 건강한 성인 남자 노예가 5골드 정도에 거래되는데 비하여, 2, 3골드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경우는, 바라크 제국 각지에서 노예 상인과 구매자가 모인다. 3일간에 걸쳐서 총 20,000명의 노예가 거래된다고 한다. 조세느 왕국과 적성국인 브레 왕국의 상인과 귀족들도 참가한다고 한다.
세스크는 천천히 둘러보다 약속 시간에 맞추어 펜타고 상단의 천막이 있는 곳으로 갔다. 제일 커다란 천막 군을 이루고 있어 찾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경비원에게 안내되어 들어간 천막에는 이미 프레드가 와 있었다. 소개받은 카스트로라는 40대의 사내는, 날카로운 인상이 상인보다는 기사가 어울릴 듯한 인상이다.
실제로도 익스퍼트 중급의 뛰어난 검사로 3명의 부 단주 중의 한 명이라고 한다. 직설적인 성격인지 인사를 마치자마자 묻는다.
“많은 수의 노예를 구매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를 예상하시는지요.”
“조건에만 맞으면, 전부라도 살 의향이 있소.”
세스크는 여유롭게 대답하였다.
“그 조건을 들을 수 있습니까?”
“물론이오. 그전에 다른 상인들의 노예도 일괄적으로 의탁, 구매가 가능하겠소?”
한곳에서 전부 구입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일일이 쫓아다녀서는 효율이 떨어진다. 조금 돈을 더 들여서도 의탁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세스크의 질문에 카스트로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익이 보장되고 조건만 맞는다면, 펜타고 상단은 그 정도의 능력은 있습니다.”
“좋소, 펜타고 상단의 이름을 믿고 의뢰하겠소. 조건은 간단하오. 첫째, 종족 성별에 관계없이 15세 미만은 전부. 둘째, 기술을 가진 노예. 셋째, 조세느 왕국 출신은 전부. 넷째, 15세에서 50세 사이의 글을 아는 노예로, 모두 종족과 성별은 관계없소.”
조건을 들은 카스트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다른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데, 15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은 이해가 안 가는군요?”
“노예를 살 때, 용도와 이해를 구하며 사야 하오?”
불쾌한 듯한 세스크의 대답에 카스트로는 얼른 양해를 구하며 사과한다.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인 호기심이었습니다. 불쾌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상인은 상인인 듯, 즉시 사과를 해오는 카스트로였다.
쓸데없이 척을 질 일은 피하는 것이 좋으니까 웃는 얼굴로 말한다.
“하하하. 별 뜻이 없었다니 나도 개의치 않겠소. 그리고 크로스 상단의 프레드 님도 계시니 가능한 한, 많은 천막과 침구를 납품해 주시겠소? 2, 3일 안에 되도록, 서둘러 주시기 바라오.”
카스트로는 세스크의 요청에 흔쾌히 대답한다.
“내일까지 자료를 정리하여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천막과 침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크로스 상단과 상의하여 부족하지 않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오늘 특별 경매에는 정말 특별한 물건이 올라오니,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족한 결과를 얻기 바랍니다.”
카스트로는 안내인 한 사람을 붙여, 특별 경매장으로 안내하였다.
특별 경매는 커다란 천막 안에 독립된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5라는 숫자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 안은 고급스러운 소파와 테이블이 전부였다. 테이블 위에는 백색, 청색, 적색의 조그만 깃발이 놓여 있다. 백색은 5골드, 청색은 10골드, 적색은 100골드를 나타내는 신호라고 한다.
천막 안은 대체로 어두웠으나, 귀빈실의 방과 10m 정도 앞에 있는 원형의 무대는 조명으로 밝았다.
안내인에게 경매의 진행 방법과 요령에 대해 듣고 있는데, 드디어, 경매가 시작되는지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안내인이 오늘은 첫날이라 마지막의 메인을 제외하고는 평범하다고 한다. 이종족이나 인간 중에서도 특별한 것은, 마지막 날에 올라온다고 한다.
중앙 무대에 조명이 집중되고 사회자가 등장하여 경매의 시작을 알린다.
제일 먼저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팬츠 차림의 건장한 청년들이 등장했다. 10대에서 20대로 보이는 저 청년들은 호위병이라고 하는, 귀족 부인이나 영애들의 장난감이라고 한다.
몇 차례 청년들이 올라가고 다음은 여성 성노였다. 과연, 상당한 미모의 여성들이 속옷 차림으로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이상하게도 사람이 팔고 팔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분노나 동정심 같은 것이 생기지 않았다.
이성적으로는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감정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눈앞에서 벌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현대의 지구에서는 더욱 심한 일도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살아 있는 사람의 장기 매매나, 불과 몇 십 년 전의 우리나라도 국가 차원의 영아, 유아 수출을 하지 않았던가!
지구촌 구석 어디에는 현재도 노예가 존재하고 있다. 그것을 비인간적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멸시하는 사람들 중에는, 법과 금전을 이용하여 교묘한 방법으로, 또 다른 이름의 노예를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세스크는 드래곤의 능력을 이어받았고, 많은 재산을 가진 초월자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실재는 자각하지 못하고 마음속의 욕망에 휘둘리는 평범한 중년이었다.
세스크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영웅이나 성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생각도 없고 세계 평화를 위해 몸 바칠 생각도 없었다.
과거의 역사를 보고 현재를 살펴보면, 힘 있고 돈 있는 놈은 반드시라고 할 만큼, 정의롭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하다.
만일 힘 있는 놈이 정의로우면, 우리는 그를 ‘바보’라고 한다. 돈 있는 놈이 정의롭고 당당하다면, ‘병신’이라고 부른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는 것이다. 힘 있고 돈 많으려면, 비열하고 부당한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겉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스크가 가진 재산과 능력은 어느 날 갑자기 온 행운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능력과 재산을 갖추는데 피해를 본 사람은 없다.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던지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원래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베풀던지 베풀지 않던지, 그것은 온전히 자신 의지에 반해서일 뿐이다. 새로운 육신과 함께 새롭게 얻은 인생, 거칠 것 없이 살아 보자는 생각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중, 무대에는 드디어 엘프가 올라왔다. 소설 속의 묘사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표정 없는 얼굴과 구별하기 힘든 용모는 흡사 마네킹을 보는 듯하다. 별로 구매 의욕이 나지 않았다.
다음은 드워프 장인 5명이 올라왔다. 세스크는 안내인에게 구매 의사를 표시하고 경매에 참가하였다.
처음 개시 가격은 50골드로 시작해서, 100골드 전후에서 낙찰된다는 설명에, 5명 전부 200골드를 제시해서 낙찰을 받았다.
다음은 몇 명의 수인족이다. 하지만, 그들은 변신 능력을 제어했기에, 콜렉션 이외의 가치가 없어서 패스한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오늘의 경매는 마지막 순서를 남기고 모두 끝났다.
어느 정도 정보가 돌았는지 소란스러운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꺼져 있던 중앙 무대의 조명이 들어오는 순간, 장내에는 나직한 탄식이 터져 나온다.
세스크도 깜짝 놀랐다. 중앙 무대에는 속옷 차림의 18에서 20살가량의 아가씨가 서 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검은 생머리에 조명으로 핑크 빛이 나는 하얀 피부의 여인이었다. 커다란 눈망울의 170 정도의 늘씬한 모습의 아가씨는, 오연한 표정으로 한 점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서 있었다.
에메랄드빛이 깊은 눈동자를 보지 못했다면, 한국 여자라고 생각될 정도로 여인은 청순함과 요염함을 함께 지닌, 신비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사회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 아가씨는 조세느 왕국의 맹장 유진 칸 카이자 공작의 손녀였다.
카이자 공작가가 반역 혐의로 멸문당해,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처형당했다. 그리고 여성들은 노예로 팔려 나온 것이라고 한다.
조세느 왕국에서도 이 아름다운 아가씨, 유리아 칸 카이자를 원하는 귀족이 많았다. 하지만, 세간의 이목을 두려워한 왕실에서 바라크 제국에 판매를 의뢰하게 된 것이다.
페드로에 의하면 지금 경매석에는 비밀리에 참가한, 조세느 왕국의 왕족과 귀족이 꽤 된다고 한다.
세스크도 순수하게 욕심이 났다. 안내원에게 참가 의사를 표시하자, 옆에 있던 페드로가 무언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세스크를 바라본다.
“페드로 님. 내게 할 말이 있소?”
세스크가 페드로에게 묻자.
“아시아님. 유리아 공녀의 경매에는 조세느 왕국의 왕세자 측과 두 공작가가 참가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또, 하버릭의 성주인 카이드 남작도 참가 한다고 합니다. 혹여 그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우려됩니다.”
페드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세스크에게 말한다.
“걱정해 주어 고맙소. 하지만 그런 걱정이라면 염려 마시오. 나도 그리 약하지는 않소.”
하지만 페드로는 안심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세스크의 실력을 알 수 없는 그로서는, 20살 정도의 돈 많은 마법사로밖에 보이지 않을 터이다.
경매장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처음 개시가가 1,000골드였는데, 어느새 7,000골드까지 올라가 있었다.
“7,000골드. 7,000골드. 아! 1번 룸의 고객 8,000골드. 8,000골드 나왔습니다. 3번 룸 9,000골드, 9,000골드. 아! 2번 룸에서 10,000골드, 10,000골드 나왔습니다.”
1, 2, 3, 4번의 경쟁으로 좁혀진 경매는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20,000골드에서 1번과 4번 룸이 포기하고 2번과 3번 룸의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었다.
돌연 사회자의 경악에 찬 목소리에 장내가 조용해지고 처음으로 유리아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했다.
“15번 룸에서 10만, 10만 골드가 나왔습니다. 더 이상 없으면 이것으로 낙찰 하겠습니다. 10만, 10만, 1……. 아! 2번 룸, 2번 룸에서 20만이 나왔습니다. 아아! 15번 룸, 15번 룸에서 100만 골드, 100만 골드가 나왔습니다.”
장내는 또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눈이 마주친 유리아의 눈에는 짧은 순간 이채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100만 골드, 100만 골드, 100만 골드. 100만 골드에 15번 룸의 손님에게 경매 사상 최고액으로 낙찰 되었습니다. 2번 룸의 이의 제기로, 15번 룸의 지불 능력에 대한 확인이 있겠습니다.”
세스크는 안내인에게 경매 관계자와 감정사를 불러 줄 것을 요구했다. 잠시 후, 경매 관계자로 카스트로가 3명의 감정사와 들어왔다.
카스트로가 웃으며 말한다.
“아시아님. 대형 사고를 치셨군요!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노예 경매 사상 최고액입니다.”
“꼭 손에 넣고 싶었소. 종속의 인은 필요 없으니, 지불이 끝나는 대로 이곳으로 보내 주시오”
감사의 말과 함께 로브 안에서 커다란 보석을 10개 정도 꺼냈다. 보석을 보고 세 명의 감정사가 부들부들 떨며, 조심스레 보석을 살펴보았다.
“카스트로님. 모두 진품입니다. 오오! 이 정도 크기의 보석이 존재한다니…….”
“그래 평가액은?”
카스트로의 질책에 정신을 차린 감정사들이 말한다.
“이 가장 큰 다이아와 에메랄드는 저희가 평가할 수 없습니다. 이걸 제외한 나머지 8개의 가격만으로 180만 골드 이상입니다.”
세스크는 40만 골드 가치의 보석 2개를 집어넣었다.
“카스트로님. 이 보석들과 예치금이 있으니 계산 해 주고 드워프와 유리아를 이곳으로 보내 주시오.”
카스트로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세스크에게 말을 건넨다.
“알겠습니다. 아시아 님. 바로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조세느 왕국의 왕세자 측과 2대 공작가의 자제들이 노릴 것 입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별일 없을 것입니다.”
장내에서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금 15번 룸의 고객께서 전액 완납하였으므로 오늘의 경매를 모두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카스트로는 바로 유리아와 5명의 드워프를 보내 주었다. 막상 눈앞에 몽환적인 유리아를 보니, 확실히 요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세스크였다.
‘나는 왜 그녀를 100만 골드라는 거금을 투자하여 샀을까? 첫눈에 반한 것일까? 아니면 돈의 가치를 몰라서 한 충동구매일까? 아니면 이 여인이 안타까워서? ‘아니다. 상관없다.’
그때 가슴속에서부터 그녀를 원했다. 그거면 족한 거다. 어떤 이유라도 상관없는 것이다.
유리아와 드워프를 데리고 떠나는 세스크는, 적의에 찬 시선을 느꼈다. 조세느 왕국의 사람들이었다. 저들은 곧 위험한 선택을 할 것이다.
사실 지금 세스크는 상당히 위험한 상태이다. 철없는 아이에게 총을 건네 준, 형국인 것이다.
그동안 수련만 해, 자신이 가진 힘의 위력을 모른다. 어서 빨리 상대에게 실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이런 세스크를 건드리는 것은,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이다. 여관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무 일도 없었다.
드워프들에게 방을 정해, 식사를 하게 해 주었다. 유리아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유리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따라왔다.
“오늘부터 내 시중을 들도록.”
“…….”
유리아는 대답 없이 바닥만 쳐다본다.
“내게 할 말이 있나?”
그제야 세스크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내게 무얼 바라죠?”
“흠, 착각을 하고 있군. 나는 네가 마음에 들어 샀다. 그게 전부지.”
세스크의 덤덤한 말에 유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이 몸뚱이 하나 얻고자 100만 골드를 지불했다고요? 믿어지지 않는군요.”
“믿고 안 믿고는 네 문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호오? 그래요? 그럼 어째서 노예의 인을 새기지 않았죠?”
“내게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거냐? 나는 꼭두각시 인형을 산 게 아니다.”
세스크의 변함없는 무뚝뚝한 어투에 유리아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한숨을 내쉰다.
“휴우! 당신은 제정신이 아니거나, 그저 철없는 도련님이군요! 나를 산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는 있나요? 한 나라의 왕세자와 두 공작가와 척을 진거라고요? 이 몸뚱이 하나 얻기 위해서…….”
“걱정해 줘서 고맙군! 하지만 내 것을 빼앗길 만큼, 나는 약하지 않다. 나를 건드리면 제국의 황제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세스크가 당당히 말을 받는다.
“다, 당신 광오하군요.”
유리아는 황당하여 말을 더듬었다. 세스크는 더 이상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이 유리아에게 지시한다.
“피곤하군! 목욕 준비를 해 놓아라.”
유리아는 대답 없이 잠시 노려보다 한숨을 내쉬고 목욕실로 향했다.
유리아의 시중으로 목욕을 끝내고 식사를 주문하였다. 식사를 하는 내내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