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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크 1권(7화)
3. 화려한 외출(5)
세스크는 살아오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산 노예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기에 말을 걸 형편이 되지 못했다.
유리아는 세스크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 등으로 심란하여 말할 처지가 못 되었다. 둘은 침묵 속에 그저 식사에 집중했다.
식사를 마치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 중인 그녀를 바라본다. 이 여자는 과연 알까? 상냥하지 못한 자신의 행동이 관심의 표현이며, 자신이 벌써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자신의 마음이 혼란스러운 세스크였다. 지금 저 작고 가녀린 여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유리아의 생각이 궁금한 세스크였다.
세스크가 밖으로 나가는데도 유리아는 그대로 상념에 빠져 있었다. 별채 주위로 탐지 마법과 알람 마법을 설치하고, 방 주위로는 살상력 있는 결계를 설치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그대로였다.
생각에 잠겨 있는 유리아에게 말을 한다.
“유리아. 당분간 이 방에서 나가지 마라.”
“……아! 예?”
이제야 생각에서 벗어난 듯, 흠칫 놀란다.
“당분간은 이 방 외에는 위험하다는 말이다.”
“그게 무슨?”
세스크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유리아였다.
“네가 말하지 않았던가? 조세느 왕국과 척을 졌다고, 오늘 밤에 너를 간절히 원하는 쪽에서 찾아오겠지.”
오늘밤 틀림없이 올 것이다. 그게 남자의 마음이니까. 자신이 원하는 여자에게 타인의 손길이 닿는 것을 두고 볼 남자는 없다.
왕세자 측이던 두 공작 쪽이던, 어쩌면 양쪽 모두 오늘밤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 테니까.
“유리아. 이리로…….”
로브를 벗고 검정 특전복 차림의 세스크는, 침대에 몸을 누이며 유리아를 불렀다. 유리아는 각오를 했는지, 이외로 순순히 침대에 오른다.
침대에 기대어 앉게 하고, 무릎베개를 하고 누웠다. 달콤한 여인의 향기가 코를 통해 심장에 닿는다.
“유리아, 조세느 왕국에 대해 말해 봐라.”
각오를 했음에도 떨리는 것은 처녀 특유의 부끄러움이리라.
허벅지를 통해 잔 떨림이 느껴진다. 붉어진 얼굴로 눈을 맞추지 못한다. 심호흡을 한다.
“조세느 왕국은 바라크 제국의 성립과 떼어 놓을 수 없어요. 200년 전 대륙은 바라크 1세의 통일 전쟁이 한창이었죠. 그때는 쿠리 왕국이었지요. 왕국민은 전쟁에서는 물러섬을 모르는 강인한 전사이고, 평시에는 어진 아비이고, 오라비였지요. 비록 농작지보다 산이 많아, 식량이 풍족하지 못하지만, 부족하지도 않았죠. 산이 많아서 수렵에 능하고 궁술이 발전했지요. 바라크 제국의 팽창에 아직 많은 나라들이 대항하고 있을 때였지요. 쿠리 왕국은 저지하지 못하면, 왕국의 미래도 없다고 생각하고, 동대륙 북부의 왕국들과 연합하여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기로 결정했죠. 각 지방의 영주들과 중앙군을 모두 동원하여 20만의 군세를 일으켜, 리세키 칸 조세느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출정시켰어요. 그런데 총사령관인 조세느 공작이 바라크 제국과 밀약을 맺고, 회군하여 수도로 밀고 들어왔죠. 조세느 공작은 쿠리 왕가를 폐하고, 바라크 제국에 속국의 예를 취하며, 조세느 왕가를 열게 되었죠. 그 덕에 바라크 제국은 통일 전쟁에 전력을 다할 수 있었어요. 결국, 대륙의 70%를 정복하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죠. 조세느 공작은 반대 세력을 숙청하고 왕국을 안정시킬 때, 제국의 도움을 받아, 점점 더 제국에 의지하게 되었어요. 그 결과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간섭을 받게 되어, 지금은 새로운 왕을 제국에서 인정해야만, 정통성을 인정받을 정도예요. 당연히 왕실과 귀족들도 제국의 문물을 숭상하고, 왕국 고유의 것은 천시하게 되었죠. 20년 전의 대륙의 분리 독립 전쟁 때에도, 조세느 왕국만이 제국의 편이었죠. 엘란, 시센, 브레 왕국이 독립할 때, 조세느 왕국은 바라보고만 있었어요. 아니 오히려, 저의 아버지와 같이 왕국의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을 반역으로 처단했죠. 그 결과 외교적으로도 시센, 엘란, 브레 왕국은 조세느 왕국을 인정하지도 않고 있어요.”
유리아의 긴 이야기를 들은 세스크는 한국의 조선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화가 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민족 5000년 역사상 조선 500년이 가장 수치이며,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망친 시기라고 생각한다.
역사에 만일이라는 것은 없지만, 조선 500년을 지워 버리면, 지금의 한국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총체적으로 말아먹은 시기이며, 그 죄는 시조인 이성계를 시청 앞 광장에서 100번을 참수해도, 다 씻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정말 생각만으로도 화가 나는 세스크였다.
“유리아, 내가 무언가를 해 주었으면 하나?”
유리아를 올려 보며 말했다.
“휴우…… 아니에요.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나직이 한숨을 쉬는 유리아다.
“내가 아는 나라 중에도 그와 비슷한 나라가 있었지, 불행한 나라지. 현재도 고통 받겠지만, 그 미래가 결코 밝지 않은 것이 안타깝군! 하지만 역사는 정해져 있지 않은 것. 얼마든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 있지. 의지만 잃지 않으면 말이야.”
조용하지만 단호한 의지가 담긴 세스크의 말에 다시 생각에 잠기는 유리아였다.
무의식적인 손길이 세스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감미롭고 기분 좋은 그녀의 손길을 느끼고 있는데, ‘띠. 띠. 띠. 띠’ 알람 소리가 뇌리를 울린다.
“손님이 왔군!”
세스크가 일어나며 유리아를 보고 말했다.
“예?”
아무런 기척이 없으니 의아한 눈빛으로 세스크를 바라본다.
방 주위의 결계를 설치할 때, ‘싸이런트’를 걸어 두어 조용하였다. 하지만 ‘디텍트’로 살펴보니, 벌써, 20명 정도의 인원이 별채로 들어서 있었다.
“어쌔신이군! 목표는 나일 테고, 날 죽이고 납치할 생각이로군!”
세스크는 태연히 말했다. 그런 세스크를 바라보며 유리아도 조용히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요?”
세스크는 그러한 유리아의 태도에 흥미를 나타낸다.
“당황하지 않는군. 두렵지 않은가?”
“호호호, 글쎄요. 당신 말대로라면, 나를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요? 당신도 100만 골드를 그냥 버리지 않을 테고요. 어느 쪽이든 별로 상관없으니까,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당신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 같군요?”
역시 보통 여자는 아니다. 형세 판단도 빠르고 배짱도 있는 것이, 가련한 공주는 아닌 것 같다.
“글쎄? 방 안까지 들어올 실력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유리아는 너무도 여유로운 세스크의 태도에 의문을 나타낸다.
“당신은 누구죠? 정체가 뭐죠?”
“하아, 아직도 모르나? 너를 100만 골드에 산 네 주인이지. 이제 시작하려는 모양이군.”
세스크는 일어나 창문을 바라보며 권총을 겨누었다.
“창문에 다섯, 문 쪽에 다섯. 디스펠 싸이런트!”
세스크의 캐스팅이 신호라도 되는 듯, 창문과 문 쪽에서 빛이 번쩍이며, 억눌린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지직― 지지직―
“으윽!”
“아아악!”
문과 창문을 통해 진입을 시도하던, 4명의 어쌔신이 설치되어 있는 ‘체인라이트닝’에 의해 순식간에 숯덩이로 변했다. 살아남은 어쌔신들은 일시 공황 상태에 빠졌다.
“매스 슬립!”
창문 쪽의 남은 3명의 어쌔신을 마법으로 재우고 문 쪽을 향했다.
“홀드! 홀드! 홀드!”
문 쪽의 세 명을 구속한 후, 소음기를 장착한 리벌버를 겨누어, 마법에 몸이 굳은 어쌔신들을 향해 발사했다.
푸슝― 푸슝― 푸슝―
세 명의 어쌔신이 쓰러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별채는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마킹!”
창문 밖에 잠들어 있는 세 명에게 추적 마법의 일종인, 마킹을 걸어 두었다.
아직 10명 정도의 기척이 느껴지지만, 그들도 혼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듯 움직임이 없다. 하긴 공격 시작과 동시에 10명 전부가 쓰러졌으니, 진퇴를 결정하기 어려우리라.
잠시 후, 10명의 기척이 별채 밖으로 사라졌다. 발각된 상태에서 더 이상의 공격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려온다.
“디스펠!”
최소한 오늘은 더 이상의 공격은 없을 것이다. 세스크는 결계를 해제했다. 창문 밖으로 황급히 달려오는 알버트가 보인다.
방 안에는 유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린 채, 세스크를 보고 있다. 조금 전의 당당하고 여유로운 모습은 어디 갔는지 놀란 모습이 귀여웠다.
“아시아 님? 괜찮습니까? 알버트입니다.”
황급한 발소리와 알버트의 거친 노크 소리.
“별일 없네. 들어오게”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와 방 안을 둘러보며 말한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세스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건 내가 묻고 싶군. 저들이 누구인가 알 수 있겠나? 제국 상단을 무시하고 쳐들어 올 정도라면, 정체를 알 수 있으리라 믿겠네. 시체는 조용히 처리해 주게. 피곤하니 서둘러 주게.”
“아? 예!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시아님.”
알버트가 거듭 사과를 하고 나갔다.
“술 한잔할까?”
소파에 앉으며 말한다. 말없이 술과 술잔을 챙겨 옆에 않는 유리아. 그녀의 잔에 술을 채우고 세스크도 한 잔 따라 입에 털어 넣는다. 알싸한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넘어 뱃속을 후끈 달군다. 다시 술잔에 술을 채우며 유리아에게 말한다.
“나도 괴로워, 살인은.”
지금 일곱을 간단하게 죽인 사람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와서일까 대답이 없다.
“익숙해져야 할 거야. 너도 나도, 앞으로 내가 가는 길에는 많은 피가 흐르게 될 거야. 너도 내 인생에 엮여 들었으니 피하지 못할 거야. 후회해서도 자책할 필요도 없어. 마지막에 크게 웃는 순간까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야 할 거야.”
유리아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현대 지구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고, 아스트라 대륙에 세스크라는 자연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자신과의 약속인 것이다. 술잔의 술을 마저 털어 넣고, 유리아를 바라본다.
“지금부터 너를 가질 거야!”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한다. 떨고 있는 유리아, 그러나 눈을 피하지는 않는다.
입술이 닿는 순간 눈을 감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쉬움을 달래며 입술을 떼고 그녀를 바라본다.
빨개진 얼굴로 아직도 떨고 있다. 아직도 감고 있는 눈꺼풀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그녀를 안아 들고 침대로 향한다.
눈부신 햇살에 눈이 떠졌다. 부드러운 감촉에 옆을 바라보니, 유리아는 아직 자고 있었다. 거칠었던 밤의 흔적이 침대에 가득하다.
살인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그녀에게 풀어 버린 것 같다. 그녀 역시 힘들었을 텐데, 자괴감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불안한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콧잔등을 찡그리며 안겨 오는 부드러운 여체를 힘주어 안아 주었다. 남녀 관계라는 건 참 이상하다. 어제까지는 서로 타인이었던 사람이 하룻밤을 함께한 것만으로, 이렇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니.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일어나 샤워를 했다. 시원한 물줄기를 맞고 있으니 가슴이 상쾌해졌다. 살인에 대한 자책감이나 불쾌한 감정이, 밤사이 전부 날아간 듯하다. 물기를 털어 내고 밖으로 나오니 유리아가 일어나 있었다. 똑바로 세스크를 바라보지 못한다.
“샤워해라. 배고프다.”
“예, 주인님.”
후다닥 목욕실로 들어간다. ‘주인님’이라. 역시 현명한 여자이다. 자신의 위치를 정리한 것 같다. 메이드를 불러 식사를 준비시키고, 유리아가 입을 옷을 부탁했다.
세스크는 드워프를 불렀다. 남루한 옷차림이지만, 건강 상태는 좋은 것 같다. 이들은 ‘노예의 인’이 새겨져 있어 주인에게 복종한다.
보통 4서클의 마법사가 시술하고 제거하려면, 6서클 이상의 마도사가 필요하다.
드워프는 전사와 장인으로 나누어진다. 장인 계열도 건축과 대장장이로 나눌 수 있다. 다섯 중의 세 명이 건축 장인이고, 둘이 대장장이이다.
이들의 이름은 길고 부르기 어려워, 건축장인은 나이순으로 ‘대패1’, ‘대패2’, ‘대패3’으로, 대장장이는 ‘망치1, 2’로 부르기로 했다.
오후에는 이들과 유리아를 먼저, 드래곤 랜드에 데려 갈 생각이다. 카스트로가 자료를 보내왔다. 15세 미만이 200명, 글을 아는 노예가 500명, 조세느 왕국 출신의 노예가 2,000명, 기술을 가진 노예가 200명으로, 총 2,900명에 25,000골드에 달한다.
유리아가 자료를 보고 깜짝 놀라 눈물을 글썽거린다. 무언가 오해를 하는 듯하다. 아마 조세느 왕국의 노예를 구입하는 것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