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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크 1권(13화)
5. 블랙 애로우 용병단(2)
사건은 키프로스 영지에서 벌어졌다. 성문을 들어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반나절 거리의 숲에서 야영을 준비했다.
팀별로 지급 된 마법배낭에는 야전삽, 텐트와 침낭, 코펠 등이 들어 있어, 숙영지를 준비하고 식사를 준비하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계속되는 훈련으로 고단한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청춘들의 식사 시간은 늘 즐거웠다. 60명의 젊은 청춘들이 모닥불을 둘러싸고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을 때, 한 떼의 인마가 나타났다.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의 무리로, 그중 10여 명이 일행에게 다가와서는 외친다.
“우리는 로렌스 상단과 와이번 용병대이다.”
세스크는 고든을 바라보고 눈짓했다.
“그래서?”
고든의 까칠한 대답에 당황하던 용병들은 블랙 나이트를 한 번 둘러보더니, 곧, 안색을 회복한다. 여성 단원들을 징그러운 눈빛으로 훑어 내리며 위협한다.
“우리가 이곳을 사용할 테니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
원래 서로 다른 무리가 한곳에서 밤을 지내는 것은 위험하여 서로가 피한다.
먼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있을 경우는 지나치는 것이 상식인데, 저런 식으로 시비를 거는 것은 상단이나 용병대가, 실력이 있는 싸가지 없는 자들이거나, 블랙 애로우가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시비를 걸겠다는 것이군. 네가 책임자인가?”
피식 웃으며 고든이 시비를 거는 사내에게 말했다. 앞선 용병들의 뒤로 50여 대의 마차와 100여 명의 용병들이 나타나 은근히 일행을 포위하며 압박한다.
어느새 블랙 애로우 단원들도 식사를 멈추고 전투준비를 갖추고 대치하고 있다.
용병들을 헤치며 책임자인 듯한 인물이 나타나, 입맛을 다시며 여자 단원들을 쳐다본다.
“이거 원, 애들 장난도 아니고……. 상단주, 밤도 늦었으니 한쪽 구석을 내주는 것이 어떻소?”
앞으로 나선 40대의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상인 차림의 뚱뚱한 중년인을 바라보며, 인심 쓰듯이 말을 건넨다.
“글쎄요. 대장님이 그렇게 말씀 하신다면야……. 상관없겠지요. 하하하.”
뚱뚱한 사내는 음흉한 눈으로 여자 단원들을 훑으며 대답한다.
명백한 시비에 어이없는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고든은 상대방에게 경고하며 블랙 애로우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봐! 이봐! 당신들 실수하는 거야. 아직 늦지 않았어! 조용히 사라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무례는 용서할 테니, 그냥 사라져. 블랙 애로우, 전투준비!”
고든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각궁을 겨누는 블랙 애로우였다. 바라보던 와이번 용병대의 대장은 비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뒤에 있는 용병대를 쳐다본다.
“호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겠다! 얘들아! 아가씨들은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용병대장은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말 등을 박차고, 깔끔한 동작으로 고든을 향해 쇄도한다. 용병들 역시 방패로 앞세우고 달려든다.
“공격!”
고든은 짧은 명령과 함께, 용병대장을 맞아 간다.
슈―욱.
푸슈욱.
“아악―”
“으아악―”
바람을 가르는 화살에 두세 발의 화살을 꽂고, 30여 명의 용병이 쓰러졌다. 10여 미터 앞에서 직사로 쏘아진 화살을 조악한 나무 방패로는 막을 수 없었다.
여지없이 방패를 꿰뚫고 몸에 박히는 화살 공격에, 순식간에 60여 명의 용병이 쓰러지자 더 이상 달려들지 못했다.
고든과 맞선 용병대장은, 순식간에 무너지는 와이번 용병대에, 놀랄 사이도 없이 사로잡혔다.
용병대장을 무릎 꿇리고, 남은 용병대의 무장을 해제하였다. 상인들과 용병들을 묶어 두고, 상단주와 용병 대장을 데려오게 하였다.
상단주와 용병 대장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악당들의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우, 우리는 로렌스 상단이다. 우리를 건드리고 무사할 줄 아느냐!”
“와이번 용병대를 건드리다니! 너희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
상대할 가치도 없는 대사를 들으며, 아시아 왕국의 시빌 부인과 통신한다.
“시빌 부인, 별일 없습니까? 1시간 후에 포로를 보낼 테니, 노예의 인을 시술하시고 광산에서 노역을 시키세요. 말과 물품은 파웰에게 넘기면 알아서 할 겁니다. 이동 진을 준비해 주세요. 모두에게 안부 전해 주시고, 수고하세요.”
세스크는 전장 정리를 마치고 온, 고든에게 둘을 처리하라 지시를 내렸다.
“고든, 시체와 할 말 없으니 이 둘은 목을 베라. 이자들을 살려 두면, 또 다른 피해자만 생길 테니. 단원을 시켜 처리하게 해.”
이동 마법진을 그린 후 70여 명의 포로와 50여 대의 마차, 100여 필의 말을 아시아 왕국으로 이동시켰다.
단원들을 바라보니 모두 첫 살인의 충격으로 멍하니 있다. 세스크도 겪어 본, 기억이라 아공간에서 술을 꺼내 단원들과 함께했다.
말없이 술만 마시는 단원들에게 이야기한다.
“앞으로도 계속 겪게 될 일이다. 우리는 모두 지옥에 한발을 걸친 것이다. 하지만 내 나라와 내 부모, 내형제를 위해서라면, 지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리오. 우리는 당당히 걸어 갈 것이다.”
“자! 잔을 들어라. 블랙 애로우!”
고든의 선창에 잔을 든, 모두의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엿보여 안심이 된다.
아침을 맞아 야영지를 정리하고 식사 준비를 하는 단원들을 보았다. 어제의 좋지 않은 기억을 날려 버렸는지 밝은 표정이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식사를 마치고, 투리한 공작령으로 출발했다. 어제의 일도 있고 해서, 키프러스 백작령부터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하였다.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집단전을 익히고 검술을 가다듬었다. 세스크는 고든을 상대로, 기사와의 대결에 대비한 훈련을 하려 했다. 하지만,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까지는 한주먹 거리도 되지 않아 포기했다.
고든은 곧 최상급에 오를 것 같다고 유세를 떨려 했으나 막강한 마나를 사용한 1서클의 ‘라이트’와 3서클 마법인 ‘슬립’에 무너져 실의에 빠져 있다.
블랙 애로우단 전체와의 대련도 마찬가지였다. 8서클 마법사의 딜레이 없는 간단한 마법에, 검을 뽑을 사이도 없이 무너져 버렸다.
아직 소드 마스터를 본적이 없어서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다. 검사와의 대결은, 저 서클 마법의 연계로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물론 6써클 마법까지는 캐스팅 없이 사용 가능하고, 드래곤의 엄청난 마나를 지닌 자신이기에 가능하다. 우선, 라이트나 홀드, 슬로우, 디그 등의 저 서클 마법으로 급작스럽게 신체에 위화감을 주어, 당황한 순간 슬립이나 블링크로 마무리하면 될 것이다.
고든은 검사로서의 자존심이 상하는지 입을 삐죽이며 말한다.
“마스터, 소드 마스터에게는 안 통할 겁니다.”
고든은 항변하지만, 세스크는 통하리라 생각한다. 원래 몸으로 때우는 종자들은, 몸이 이상하면 당황하게 된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소드 마스터에게 저 서클의 기본 마법이 안 통할 것이다. 하지만, ‘흠칫’거리는 찰나의 순간만 있으면 가능하다.
뭐, 정말 안 통하면, 앱솔루트 배리어를 치고, 연사로 총을 갈기면 된다. 그래도 안 통하면, 텔레포트로 도망가서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되는 것이다.
방법은 많았다. 이런 생각을 고든에게 말하면, 검술 익히기 싫을 것이다.
투리한 공작 영지의 외성 밖에 공터에는 많은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20,000명을 모집한다고 하더니 일대 장관을 이룬다.
기사는 깡패고 용병은 양아치다. 만일 현대에 20,000명의 양아치가 득실거린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양아치들과 있고 싶지도 않았다. 여자가 많은 우리가 있으면 시비가 생긴다. 고든에게 특급 여관의 별채를 알아보라고 했다.
‘로얄하우스’라는 여관의 별채 두 개를 얻어, 여장을 풀고 팀장들을 소집했다.
마리와 미도리라는 여자 팀장에게, 시비를 거는 용병단이 있으면 이름만 적어 놓고, 시비를 피하라고 당부했다.
롱그시 산맥으로 이동해서 손을 봐 줄 생각이었다. 영지에서는 되도록 외출을 삼가고,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롱그시 산맥으로는 3일 후에 출발한다. 한 달에 걸쳐, 정해진 구역의 개체수를 줄이는 것이 이번 임무이다. 다행히 공작령의 기사들은 대부분 오크 대평원의 경계로 출동해서, 부딪치지 않게 되었다.
책임자는 공작령의 총관인 알란 자작이다.
등록하고 온 고든과 깡패 출신의 단원들을 데리고, 여관의 바로 갔다. 고급 여관이라 그런지 손님은 별로 없었다.
상인으로 보이는 몇몇과 용병 차림의 세 개의 그룹이 전부였다. 대형 용병대의 간부들일 것이다.
우리가 들어서자 일순 시선이 몰렸다.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잡고, 술을 시키고 여자를 불렀다.
“마, 마스터, 여자는 괜찮습니다.”
고든은 전혀 안 괜찮은 얼굴로 말한다.
“어! 그래. 그러면 자네 파트너는 돌려보내면 되지.”
“마스터는 잘 모르시나 본데, 한 번 부르면 돌려보낼 수 없는 게 룰입니다. 정 보내려면 전부 보내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는 부를 수 없는 게 상식입니다. 제가 희생하겠습니다.”
“희생 안 해도 돼. 그냥 우리끼리 마시지.”
“억! 마스터”
“단장님!”
단원들의 원망의 눈초리를 받고 쩔쩔맨다. 너구리 고든의 재롱에, 장단을 맞추며 놀고 있는데, 귀에 익은 이름이 옆자리에서 들려온다.
상인으로 보이는 자와 용병 다섯이 앉아 있는 자리인데, 상인으로 보이는 자가, 중앙의 험한 인상의 용병에게 따지듯이 말한다.
“그럼, 프랭크 부대장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이요?”
용병인 듯한 사내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허, 글쎄 그렇다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요. 와이번 용병대가 호위하는 데, 별 문제가 있겠소.”
“하! 그래도 이제 삼 일 후에는 롱그시 산맥으로 들어갈 텐데, 판매할 상품이 도착하지 않으니 답답하지 않소.”
“사람을 보냈으니 곧 소식을 알 수 있을 거요.”
세스크 일행이 처리한 놈들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만일, 사람의 외모나 분위기로 선악을 구분한다면, 저들은 틀림없는 악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교양 있는 자신이 시비 걸 수는 없었다. 어떻게 저들이 먼저 도발을 하게 만들까 고민하느라, 어느새 아가씨들이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너구리 고든은 세스크가 생각에 잠긴 틈을 이용하여, 자신의 곁에 그중에서 제일 예쁜 아가씨를 앉혀, 피아노를 타고 있었다. 모두들 검술은 보잘 것 없어도, 이쪽으로는 상당한 재능을 지닌 것 같다.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고 제법 시간이 흘렀다. 점점 흐트러져 가는 단원들을 보며, 남자들 노는 것은 시대와 차원을 막론하고, 한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친구들을 복수를 위해 십 년간 칼을 갈며 절치부심하는 우직한 인간들이라고 평가했었다. 자신의 형편없는 안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좌석의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아! 이 상황은 자신들이 악당이 되어 버린 것이다. 환경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용병은 양아치라는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어제의 기사들이 용병이 되자, 바로 양아치가 되어 버렸다. 목적을 달성한다고 해도, 이름은 팔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세스크였다.
와이번 용병대의 사람들이 성격이 제일 급한지, 한 놈이 일어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거 시비가 일면 다치지 않으려나?’
그래도 내 새끼들이라 걱정이 되어, 단원들의 눈을 보니 생각보다는 멀쩡한 것 같다.
‘혹시! 얘들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일부러 주접을 떠는 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 생각해 본다. 다가 온 사내가 제일 질퍽거리는 고든을 향해 다가가 말을 건다.
“형씨들! 어디 소속이요? 노는 분위기에 품위가 보이는 것이, 범상치 않은 신세인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합시다. 나는 와이번 용병대의 찰톤이요.”
하! 긴장한 자신이 혐오스러운 세스크였다. 개는 개를 알아본다고 했다. 이 간단한 진리를 잊고 있었다. 고든에게 강력한 텔레파시를 보낸다.
용병단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텔레파시였다. 고든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찰톤이라는 사내를 보며 입을 연다.
“나는 브…….”
뭘 기대하겠는가. 고든의 입에서 ‘브’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일어났다. 혼자 별채로 돌아오며, ‘과연 저들에게 등을 맡겨야 하나, 아니 맡길 수 있을까?’ 미뤄났던 마법 수련을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방에 들어 와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언뜻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지금 무념무상의 무아의 경지를 체험한 거 아냐?’
아니었다. 그냥 허탈이었다. 인생과 신의와 도리에 대해, 깊이 있는 고찰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취기가 몰려와 잠들어 버린 세스크였다.
늦잠을 잤는지 밖이 소란했다. 샤워를 하고 나니 기분이 새롭다.
‘그래! 사실 나도 한국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 더하면 더했지 얌전하진 안았잖아. 그래도 내 새끼들인데, 깨워서 속이나 풀자.’
열 마리의 강아지를 깨우러 옆방에 가 보았다. 아무도 없다. 다른 방도 텅 비어 있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단원들이 삼삼오오 수련을 하거나 병기 손질을 하고 있었다. 열 마리의 강아지를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마스터! 일어 나셨습니까?”
세스크를 발견하고 인사하는 단원들에게 말한다.
“어! 잘들 쉬었나? 식사는 하고?”
“예! 단장님과 같이 먹었습니다.”
“단장은?”
“식사 마치고, 형님들과 일 보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럴 수가! 식사를 했다! 일을 본다?’
오늘의 일과는 휴식이다. 내일 출발을 위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휴식이다. 그런데 일을 보러 나갔다. 너구리와 양아치들이!
쓰린 속을 부여잡고 식당에 가서 늦은 아침을 먹는데,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방으로 돌아와서 머릿속에 있는 9서클의 마법을 정리했다. 여태껏 필요하다는 생각을 안 해 봤는데, 오늘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