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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크 1권(18화)
7. 학센 영지(2)
아침이 밝았다. 이른 시간임에도 모두들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포로들은 아시아에서 분류하기로 하고 워프게이트가 설치되는 대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아시아와의 통신 중에 유리아는 학센 영지를 점령했다는 소식에 한참을 울었다. 이곳으로 오게 해 달라는 유리아를 달래는데 애를 먹었다.
지금 이곳에 와서는 안 된다. 이곳을 완전히 점령해서 기반으로 삼을 것이면 모르지만, 지금은 잠시의 점령일 뿐이다. 이곳의 영주민을 이동시키고, 반란군과 접촉할 전초 기지일 뿐이다.
학센 영지를 차지하자면 많은 병사가 필요하다. 몬스터 문제도 있고, 주변의 로벤 백작령은 조세느 왕국 제일의 강군이다. 브레 왕국과 접경하고 있어, 중앙군도 진주하고 있었다.
지금의 세스크에게는 여력이 없다. 무주공산인 이곳을 포기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1기생들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영주성을 떠나고, 세스크는 워프게이트를 설치하고 있다.
소령은 아까게와 아침 수련을 마치고 성을 둘러보고 있다.
학센 영지에는 20여 개의 크고 작은 마을이 있다. 그중 반수 이상이 사람이 살지 않거나, 반란군의 점령 하에 있다고 한다.
지금 반란군을 이끄는 사람은 다비드 자작으로, 카이자 공작의 가신 중에 유일하게 생존한 사람이다. 정식으로 자작이 된 것은 아니고 아버지가 카이자 공작과 함께 죽어 물려받은 작위이다.
다비드자작을 만나보고 포르토와 발도 영지를 공략할, 작전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성을 둘러보고 온 소령이 말한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예요. 전쟁으로 고통 받는 것은 힘없는 백성뿐이에요.”
“노력해야겠지!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없는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지.”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런 세상이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욕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요새의 병사 이천 명이 1기생 단원들과 돌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주변 마을사람들이 영주성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식량을 나누어 주어 식사를 할 수 있게 해 주고, 아시아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유리아 공녀가 살아 있으며, 자신들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전하자, 불안감을 떨치고 협조해 주었다. 단원들에게 영지 주변의 경계를 맡기고, 주민들의 이동에 전념했다.
반란군을 찾아간 단원들이 다비드 자작과 반란군 오백여 명과 돌아왔다. 다비드 자작은 이제 막, 20살이 된 앳된 청년이었다.
“다비드 폰 글로우입니다.”
“반갑네. 세스크 칸 아시아라고 하네. 유리아 칸 카이자가 내 여자이지.”
다비드는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어려운 가운데 잘 이끌어 주어 고맙군. 유리아가 기뻐할 거야.”
“…….”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도울 일이 있다면 도와주겠네.”
다비드 자작은 당황했다. 영주성을 점령했으니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함께하자고 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주도권을 잡을 생각만 하고 왔는데, 갑자기 그동안 애썼고 고생했다고 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도와 줄 테니, 잘 해 보라는 듯이 얘기하고 있으니 당황스러운 것이다.
세스크는 어린놈이라 얼굴에 표정을 감추는 것이 서툰 다비를 보며, 다시 한 번 걱정 해 주었다.
“우리가 학센을 점령했다는 소식이 주변 영지에 알려지면, 포르토의 헤인세 백작이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네.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거야. 그의 영지 사정이 어렵다고 하던데,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야.”
세스크의 말에 다비드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런……! 그럼 당신들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세스크의 행보를 묻는 다비드에게 태연히 대답한다.
“응, 우리? 우리는 포르토를 칠 생각이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헤인세 백작은 일만이 넘는 정병과 오십 명의 기사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센 영지와는 다릅니다!”
다비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음… 그렇지. 하지만 내게도 생각이 있네. 그것보다 자네들이 문제야. 걱정이 되서 말이지……. 유리아를 보기에도 그렇고 말이야.”
다비드는 입을 다문다.
“…….”
“자네들의 병력은 얼마나 되지?”
“…….”
다비드는 대답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네. 자네들을 두고 간다는 건 편치 않지만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어. 자네들 유리아에게 가지 않겠나?”
“공녀님은 무사하십니까? 상의할 시간을 주십시오.”
다비드자작은 똘망똘망한 것이 머리가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 자신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게. 헤인세 백작이 포르토를 출발하기 전에 결정해야 할 것이야.”
지금 아시아에는 학센 영지에서 보내진, 삼만여 명의 이주민으로 복잡할 것이다. 이미 로스차일드의 경험이 있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만, 주택의 사정은 좋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아시아는 백만의 인구가 살 수 있도록 조성될 것이다. 아직 왕궁의 뼈대도 올리지 않았지만, 국민의 주택문제는 우선적으로 처리할 문제일 것이다.
파웰과 크리스티나, 망치1, 2, 3은 왕궁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세스크는 왕궁에 대한 욕심이 없다.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데, 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성군의 자질을 타고 났다고 생각하는 세스크다.
다비드 자작은 다음날 찾아왔다. 대답이 뻔한 것을 오래 끌어 봐야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어린 사람이 계산이 빠르고 결단력이 있는 것이, 나중에 크게 될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고생만 해서 인지, 고개를 숙일 줄도 알고 자존심을 굽힐 줄도 아는 게, 오리지널 귀족은 아닌 것 같다.
사고가 유연하다는 말이다. 데리고 다녀야 하겠다. 위험한 놈은 미리 처치하던지, 곤란할 경우 곁에 두고 보는 게 제일 낫다.
“사람을 보내 병사들과 주민들을 데려오게. 그리고 자네는 나와 함께 가도록 하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눈치를 보아하니 얼굴도 보지 못한, 유리아에게 가는 것보다 자신과 다니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찰을 보낸 단원의 보고에 의하면, 헤인세 백작이 곧 움직일 것 같다고 한다. 다비드와 고든을 불렀다.
“다비드, 자네는 서둘러서 병사와 주민들을 이동할 수 있게 해 주게. 고든, 자네는 단원들의 출병 준비를 해 주게. 우리는 헤인세 백작의 군대를 피해, 포르토 영지의 마을 주민들을 소개할 것이야. 준비에 만반을 다해 주게.”
세스크는 직접 헤인세 백작을 맞상대할 생각이 아니다. 언젠가는 대회전을 치루고 직접 부딪히는 전쟁을 하겠지만, 가능한 피하고 싶다.
황제가 되느니 대륙을 정복하느니 하지만, 자신은 전쟁을 치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 나가고, 몇 만 명이나 되는 대군이 전투를 치르는 것을 본 적도 없고, 잘 해낼 자신도 없다는 것이 본마음 이었다.
지금 자신이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
이번에도 최대한 많은 포르토영지의 주민을 아시아로 소개하는 정도로 만족할 생각이다.
사 일 후 일만 정도의 주민들과 이천 정도의 반란군 병사들이 다비드 자작과 돌아왔다. 이동 중에 다비드 자작에게 설명을 들었는지, 혼란 없이 아시아로 이동할 수 있었다.
세스크가 이동 중에 다비드에게 묻는다.
“다비드, 자네 서운하지 않은가?”
다비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사실 지금까지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마땅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제가 맡고는 있었지만, 제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큰 짐을 덜어 놓은 것 같아 마음이 편합니다.”
자리라는 것이 묘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책임감이 생긴다. 그래서 능력에 맞지 않는 자리는 과중한 부하가 걸려 사람을 지치게 하여 성장을 가로막게 된다.
다비드 자작도 그것을 느끼고 부담을 덜어 한결 편해진 것 같다.
주민들을 모두 아시아로 소개를 마치고, 우리는 포르토 영지로 향했다. 헤인세 백작의 동향에 신경 쓰며, 포르토 영지로 향했다.
백작은 이 기회에 학센 영지를 완전히 장악할 생각인지, 영지군 칠천 명을 이끌고 직접 출정했다.
최대한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포르토 영지와 학센 영지의 접경 마을부터 소개하는 방법이다.
칠천 명의 병사들과 행군해서, 학센 영지의 영주성까지 왕복하는 시간이, 세스크에게 주어진 시간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세스크는 우회하여 접경 마을 부근에서, 헤인세 백작의 군대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
헤인세 백작의 군대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느끼지만 ‘마법 배낭’과 ‘워프’ 의 위력을 통감한다.
이 시대의 치중이라는 것이 조악하기 그지없어, 병력의 운용에 커다란 장애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비좁은 도로와 운송 수단의 미비로 행군 속도나 보급품의 수송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느리다.
이 시대의 전쟁에서 기습은 비겁한 수단으로 여겨져,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전술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기습이 가능하기나 할지 모르겠다.
전투의 전술 중에서 기습이나 강습 외에는 아는 것이 없는 세스크로서는 한심할 따름이다. 헤인세 백작의 군대가 지나가고 반나절 정도 지난 후, 세스크는 움직였다.
다비드 자작으로 하여금 블랙 나이트 단원들과 마을에 먼저 들어 가, 영지민을 설득하여 준비하도록 했다.
영주가 바뀐 지 제법 되었으니, 헤이센 백작을 추종하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은 따로 제압 해 두기로 하였다. 마을 하나에 50명을 배정하여 설득 작업에 들어가게 하였다.
지금부터는 영주민들을 소개하며 백작성으로 향하는 데, 정보의 차단이 관건이다. 빠져나가는 자가 없도록 경계를 철저히 할 것을 당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협조하지 않는 자는 포박하여 감금시키고 하루에 두 개 마을씩 소개해 나갔다.
몬스터의 피해가 없었던 관계로 학센 영지보다는 인구가 많았다.
학센과 발도 영지로부터 몬스터를 피해 온, 유민들이 상당히 있기 때문이다. 이만에 달하는 영지민을 이동시키며, 영주성의 외성까지 왔다.
이곳에만 영지민이 5만여 명이 있어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성내에는 삼천 명의 병사와 몇 명의 기사가 있다. 단원들의 숫자가 오백. 방법을 찾지 않으면 힘들다.
세스크와 소령이 내성의 영주관으로 침입하기로 했다. 침입하여 대단위 수면 마법으로 영주관 전체를 잠재우고 혹시 마법에 걸리지 않은 자는 소령이 제압하기로 했다.
과연 삼천 명에 달하는 인원에게 수면 마법이 통할지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는 관계로 실행하여 실패할 경우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다행히 작전은 성공했다. 기사로 보이는 몇몇이 깊게 잠들지 않았지만, 소령이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성문의 병사들도 제압하고, 단원들이 성문을 경계하게 했다. 이제 저 성문은 영주민을 전부 이동시키기 전에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관리로 보이는 자들과 기사들의 마나를 봉인하고 노예의 인을 시술했다. 회유되는 자들에게 신뢰를 갖지 못하는 세스크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세스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카리스마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의 카리스마는 지위와 타인을 거느리는 경험에서 자연히 형성된다.
충성을 이끌어 내고 목숨을 바치게 할 만한 카리스마는 갖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무지한 일반 병사들은 기대하는 것이 단순하여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사나 관리들은 관점이 다르다. 그러니 회유하여 충성을 다하게 만드는 것은 세스크로서는 기대할 수 없었다.
반복적인 교육과, 집단 최면에 의한 주입으로 충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이었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선호하는 것이다. 반복적인 교육은 시간이 길면 길수록 자아가 생성되기 전이 가장 효과가 큰 것이다. 회유를 포기하고 노예로 삼은 자들과 병사들을 우선 아시아로 이동시켰다.
만일 단원들이 기사였다면, 이러한 세스크에게 불만을 가질 것이다. 전투다운 전투는 없이, 암습과 변칙적인 방법으로 제압하니 비겁하다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병과 교육에서 전략, 전술의 기본 개념을 배운 단원들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이와 같은 방법은 쓰고 싶어도, 능력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고급 기술이다.
왠지 작전 후에는, 단원들에게 변명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세스크 스스로도 비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단원들이 이제는 익숙하게 자신의 할 일을 알아서 하고 있다.
이곳 출신의 단원은 성내의 영지 민들을 설득하여 이동 준비를 시키고, 일부는 창고를 열어 식량과 재화들을 마법 배낭에 옮기고 있다.
다비드 자작이 백작의 식솔들을 잡아 왔다. 인질로서 가치가 있으니 포로로 잡아 놓자고 한다.
세스크의 생각은 다르다. 인질로 사용해 봐야, 잠재적인 적을 하나 늘릴 뿐이다. 어차피 자신과 헤인세 백작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헤인세 백작이 회군 중이라는 정보가 들어왔다. 기사단과 기병대를 이끌고 먼저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학센 영지의 영주성에 가서야 이곳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도 물건도 없는 곳에서 헤인세 백작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는 세스크였다. 아마 머리에서 김이 날 것이다.
이천의 기병대를 이끌고 오면, 이틀이면 이곳에 도착할 수 있다. 나머지 병력은 최소한 오 일은 걸린다. 영주민을 전부 이동시키려면 사 일이 필요하다. 이틀을 버텨야 한다는 계산이다.
공성 장비 없이 기사와 기병 이천으로는, 각궁으로 무장한 1기생 단원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기병만 줄여 놓으면 세스크에게 유리해진다.
월등한 기동력을 가진 단원들이, 나머지 마을의 영지민을 소개시키며 이동해도, 추적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세스크는 고든과 하인즈에게, 단원을 이끌고 수성 준비를 하게 하였다.
헤인세 백작의 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에 세스크는 성루로 올라갔다.
먼지 구름이 이는 게 장관이다. 이천 명이 저 정도인데, 몇 만 명, 몇 십만 명의 전투는 어떠할까 상상도 가지 않는다. 걱정이 되는지 소령도 나와 있다.
“오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오빠 부하들도 상당히 강하니까.”
소령은 이제 세스크를 오빠라고 부른다. 상공이라고 불렀는데, 세스크는 오빠 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래서 세스크는 지신이 살던 곳에서는 상공을 오빠라고 한다고 알려 주었던 것이다.
“응, 알고는 있지만 긴장되는걸. 어쨌든 정식으로 하는 전투는 처음이거든.”
먼지 구름이 오백 미터 정도 앞에 멈추었다. 잠시 후 백기를 든 세 명이 성으로 오고 있다. 세스크는 마리와 미도리에게 눈짓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