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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크 1권(24화)
9. 남부 침공(4)
“이놈! 네가 두려워 피하는 줄 아느냐? 오늘 너의 상대는 내가 아니다. 닥치고 기다리거라!”
고든이 돌아오자 소령이 가벼운 레더 아머 차림으로, 한쪽 허리에 칼을 차고 말을 달려 나갔다. 말없이 다가오는 소령을 바라보던 월터는 더욱 화가 났다.
“고든!! 이이익! 이 비겁한 놈아! 이제는 모욕까지 하는 것이냐!”
치욕에 못 이겨 부들부들 떠는 월터를 향해 소령이 날아들었다.
말안장을 박차고 도약하여, 5미터 정도의 거리를 순간에 좁혀 들었다. 공중에 뜬 소령의 허리춤에서 한줄기 섬광이 터졌다.
번쩍!
월터가 타고 있던 말의 목이 잘리고, 월터는 황급히 말에서 뛰어내린다.
소령은 가볍게 월터의 일장 앞에 내려서서, 월터를 보고 싱긋 웃는다. 무시할 수 없는 상대라고 느낀 듯, 월터의 바스타드 소드에 푸르스름한 마나가 어리기 시작한다.
소령은 천천히 도를 횡으로 가볍게 쓸어 간다.
쾅!
“으윽!”
소령의 도를 막은 월터는, 소령의 도에 실린 힘을 다 해소하지 못하고, 대여섯 걸음 물러난다.
소령은 가볍게 한 걸음 내어 디디며, 도를 내려 긋는다.
쾅!
“으윽!”
머리 위에서 소령의 도를 막은 월터는 주저앉고 말았다.
소령은 말없이 월터가 일어나는 것을 기다려 주었다. 장내는 침묵에 잠겼다. 백작 진영은 물론, 우리 병사들도 소령의 놀라운 무위에 숨죽여 바라보고만 있었다.
소령은 일어선 월터를 향해 걸음을 내딛으며, 도를 내려 긋는다.
쾅!
쾅!
쾅!
머리위로 가볍게 내려 긋는 소령의 단순한 칼질에, 막고 있는 월터의 무릎이 꺾여 간다.
내려 긋던 소령의 도가 다른 궤적을 그렸다.
“멈춰라!”
커다란 고함 소리와 함께 소령의 도를 향해, 한 자루의 대거가 날아들었다. 소령은 개의치 않고 그대로 도의 궤적을 그려 나갔다.
서걱!
서걱!
둥실.
월터의 목이 떠오른다. 소령의 도는, 월터와 소령의 도 사이로 날아든 대거와 함께, 월터의 목을 베어 버렸다.
“이, 이런, 멈추라고 했는데. 이년! 내말이 들리지 않더냐!”
은빛 플레이트 메일의 사나이가 살기를 띠며 소리 지른다. 그자의 기세는 백 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세스크가 느낄 정도였다. 세스크는 헤이트너 백작이라 느끼고 텔레포트 하려 했다.
소령의 기운이 변했다. 지금까지는 담담한 기운이었는데, 엄청난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세스크가 나갈 필요를 못 느꼈다.
자세히 듣지는 못했으나, 소령에게 욕을 했을 것이다. 저 상황에서 ‘레이디, 왜 우리 기사를 죽이셨나요.’ 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 육두문자나 반말이 날아갔을 것이다.
소령이 세스크가 아는 팽가의 사람이라면, 헤이트너 백작은 이미 죽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팽가의 사람은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폭급의 대명사로 묘사되고는 한다.
만일, 헤이트너 백작이 여중제일인이요, 도후라고 불리는, 십 년 후의 천하제일인이라는 소령에게 육두문자를 섞었다면, 용서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번쩍!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세의 도가 뿜어져 나왔다.
콰광! 콰광! 콰광!
“으윽!”
큰 걸음으로 대여섯 걸음을 물러나는 헤이트너 백작을 쫓으며, 소령이 입을 떼었다.
“네놈은 적이 멈추라면, 멈추나 보군! 자, 멈춰라!”
소령의 도에는 푸르스름한 기의 응집체가 맺혔다.
“맹호출격!”
“맹호단혼!”
“콰쾅!”
“콰과광!”
계속되는 소령의 공격을 막던, 백작의 바스타드 소드는 어느새 반 토막이 되었고, 백작의 몸은 도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소령의 압도적인 무위에 백작은 넋이 나간 듯하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반 토막이 되어 버린 소드를 바라보는 백작의 복부로, 소령의 앙증맞은 발이 날아간다.
퍽!
“으윽!”
플레이트 메일에 깊은 발자국이 새겨지며, 백작의 허리가 반으로 접혀 쓰러진다.
기절한 백작의 한쪽 다리를 잡고, 유유히 돌아오는 소령을 보며, 세스크는 진격 명령을 내렸다.
“전군! 돌격!”
진격 명령을 내리고, 성을 향해 날아갔다.
뒤로 근 일만에 가까운 병사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나를 따르라!”
부끄러운 소리가 세스크의 입에서도 튀어나온다. 하지만, 한 번 해 보고 싶었던 소리였다.
세스크를 선두로 하여 80명의 마법병단과 블랙 나이트, 골든 애로우가 뒤를 따른다.
백작성은 혼란에 빠진 듯하다. 하지만, 곧,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실드를 펼쳐 화살을 튕겨 내며 성문에 가까이 다가간, 세스크는 마법을 시전한다.
“파이어 블래스터!”
세스크의 영창에 맞추어, 마법병단도 마법을 시전한다.
“파이어 볼!”
십여 발의 파이어 볼이 성문을 향해 쏘아 나간다.
콰쾅!
커다란 폭음과 함께 분진이 솟아오른다.
마법병단은 성벽 위의 군사들을 향해 마법을 난사한다.
“파이어 볼!”
“매직 애로우!”
“아이스 스피어!”
분진이 가라앉은 자리는 성문의 흔적도 없다. 뻥 뚫린 성문으로 일만의 궁기병이 난입하자 곧, 성내는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거침없이 내성을 향하여 진격하는 블랙 나이트와 골든 애로우. 그 선두에는 고든과 에스터가 병사들을 독려하며 나아가고 있다.
그때, 내성에서 솟아오른 불길로, 세스크는 승리를 점칠 수 있었다. 거침없이 진격하여 내성에 당도하니 성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내성 곳곳에서는 솟아오르는 불길과 비명으로, 적은 대항할 의지를 잃었다.
“항복하라! 헤이트너 백작을 잡았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항복을 권하는 고든과 에스터의 외침으로, 전투가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전쟁은 전투 중일 때보다, 전장 정리를 할 때 더 참혹한 것 같다. 전투 중일 때에는 몰아의 상태에 접어드는 것 같다.
묘한 흥분과 광기에 젖는다. 참혹한 마음을 가질 여유가 없다고 해야 할것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황폐하게 한다. 땅이 그렇고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전쟁을 통해, 인간의 역사는 발전 해 왔다.
세스크는 일일이 챙기는 것을 싫어한다. 아니 귀찮아한다.
“소령, 헤이트너 백작은 왜 살려 두었지!”
“호호, 쉽게 죽일 수는 없잖아요.”
소령의 웃음이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살려 두면 골치 아픈데…….”
“사실은 오라버니에게는 쓸 만한 무장이 없잖아요. 저 정도면 조금 손보면, 쓸 만할 것 같아서요. 호호”
그게 그렇게 쉬울까! 세스크도 소드 마스터를 자신의 부하로 만드는 것은 찬성이다.
아무래도 한 손이 열 손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나이 오십인 사람을 때린다고 말을 들을 것인가. 또, 그렇게 해서 말을 듣는 다고해도, 그게 진심에서 우러나온 충성이 될까.
세스크는 아니라고 보는데, 소령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는데 말릴 수는 없었다. 백작의 가족을 포로로 대우하도록 명령했다.
영주관에 있는데, 고든과 에스터가 들어온다.
“마스터! 사천의 적을 베었고, 포로로 사천을 사로잡아 무장해제 하였습니다.”
“우리 병사의 손실은 블랙 나이트 124명과 골든 애로우 88명입니다. 전투를 치를 수 없는 병사가 블랙 나이트 21명, 골든 애로우 34명입니다.”
미리 침투해 있던 블랙 나이트의 희생이 상대적으로 컸다.
“중상자와 전사자의 시체를 아시아로 보낼 것이니 준비하도록. 포로를 보낼 때, 같이 보낼 수 있도록 하게.”
사천 명을 죽이고 사천 명을 포로로 잡은 성과에 비하면, 이백여 명의 전사는 별것 아니다.
“부대를 정비하고 블랙 나이트는 주변 영지의 정보 수집을, 골든 나이트는 호난 영지의 경계를 책임지도록 하게.”
고든에게 지시하고, 에스터에게 말한다.
“에스터 남작은 골든 애로우 2개 대대를 선발하여, 영지의 귀족과 관리인, 지주, 상인들을 연행하도록 하게.”
죽은 병사들에게는 안됐지만,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적절한 보상밖에 없었다.
“아까게, 다비드를 불러 와.”
호위대의 대장격인 아까게에게 다비드를 불러 오게 한 후, 에스터에게 말한다.
“에스터, 이곳은 유리아가 맡게 될 것이야. 앞으로는 모든 일을 유리아와 카이자 공작가의 이름으로 행해야 되는 것을 명심하게.”
“예! 마스터.”
다비드가 들어왔다.
“다비드, 이제부터 이곳이 새로운 카이자 공작 가문의 시작이 될 것이야. 유리아가 들어오는 대로 상의해서, 민심을 수습할 방안을 연구해 봐. 자금이 충분하니 별 문제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학센 영지가 아니니 최선을 다해야 할 거네. 아! 그리고 다이즈 공작에게 전령을 보내게. 코아즈 영지를 헤이트너 백작과의 교환 조건으로 걸어 봐. 성공 여부는 신경 쓸 거 없고, 헤이트너 백작에게는 넌지시 알리도록 해야 하네. 무슨 말인지 알겠지.”
계략은 부하가 생각하고 실행해야 하지, 군주가 계략을 짜내서 지시하면 안 된다. 하지만, 이 젊은 친구가 그런 생각을 해낼 리가 없으니, 세스크가 지시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제갈공명이라도 주워 와야지, 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시빌 부인에게 연락하여 조세느 왕국 출신의 행정관을 보내라고 하는 세스크였다.
우선 급한 대로 마법사들에게 시켜야겠는데, 이게 또 보통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국왕인 세스크가 그녀들을 어려워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궁금할 것이다.
사실 어려워한다는 것보다는, 꺼린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 일 것이다. 세스크는 패왕도 아니었고, 또, 여자들에게 억지로 무얼 시켜서, 좋은 결과를 얻기는 무척 힘들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자식과 사랑에 관한 일만 아니면, 가장 훌륭한 대화 상대가 여성이다. 대부분이 말로 해결되는데, 이 말이라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여성을 상대로 말을 할 때는, 신경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반어법과 은유에 의한 표현이 반 이상이 되니, 웬만한 머리로는 상대하기 어렵다.
또, 같은 상황이라도 연령별로 상대하는 기법이 바뀌지 않으면 낭패하기 쉽다.
소녀, 아가씨, 노처녀, 아줌마, 할머니가 다 같은 여자가 아니다. 제 각각의 종족이라 생각하고 상대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이러니 복잡한 걸 싫어하는 세스크가 여자 마법사들을 꺼리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세스크가 여자에게 약하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에이산 공작과 다이즈 공작을 만나겠다고 생각한다.
인적자원이 없는 세스크가 이런 식의 전투에 의한 침략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이 조그만 나라 하나에 시간을 잡아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두 공작은 노회한 정치꾼들로, 얼마든지 이해가 맞으면 협력자가 될 수 있다.
왕과 두 공작이 힘을 합치면 어려워지고, 세스크는 누군가와 손을 잡으면, 시간과 인력을 아낄 수 있게 된다.
보통의 국가에서는 내전을 치르다가도, 외적이 침입하면 우선 합심하여 외적을 물리친다.
그런데 이놈의 나라는 자신이 아는 어떤 나라와 비슷해서, 이 틈을 타서 자신의 세를 늘리려고만 한다.
세를 늘리는데 도움이 된다는 확신만 있으면, 호난 영지가 문제가 될 수 없다.
두 공작과 왕실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정보의 중요성을 백분 이해하고 있기에, 일찍부터 정보 조직을 만들려고 했으나, 커다란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대부분이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이곳에서, 낮선 사람이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구성원과의 접근조차도 용이하지 않을 정도의 폐쇄적인 사회 구조에는 세스크가 가진 인력으로는 무리한 일이었다.
결국 고급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는 세스크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에이산 공작은 지금 만나도 상관없고, 다이즈 공작의 경우는 한 번 더 눌러 놓아야 유리하다.
다이즈 공작의 토벌대를 한 번 더 박살내고, 두 공작을 만나겠다고 생각하는 세스크다.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켜야, 협상에 유리할 테니 말이다.
사천 명의 포로와 전사자, 중상자를 아시아로 보내고, 아시아에서는 유리아와 시빌 부인이 왔다.
유리아는 오랜만에 밟아 보는 고국의 땅에 감격스러웠다.
“유리아! 하루 종일 울고만 있을 거야.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잖아.”
“흐으으흑!”
보는 눈이 많은데서 안겨서 울다니, 창피하다는 생각이드는 세스크다.
다비드와 에스터를 유리아에게 붙여 주었다. 다비드는 유리아를 처음 보는데, 그 아름다움에 넋이 빠진듯하다.
에스터와 다비드에게 유리아를 앞세워, 카이자 공작가의 재건을 맡겼다. 이정도면 유리아에게 선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