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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8화)
Part 4.미라쥬 길드(2)
“내가 어디 일부러 그런 줄 알아? 미라쥬 길드에 볼일이 있어 안내해 달라니까 다짜고짜 담가 버리겠다며 흉기 들고 떼로 덤벼드니까 그렇지.”
“뭐야? 이런 멍청한 영감 같으니! 우리 길드로 안내해 준다고 꼬드겨 슬그머니 유인하고는 수면제를 탄 차라도 먹여 조금도 저항 못하게 만들 것이지. 그런 다음, 쥐도 새도 모르게 잘근잘근 사지를 썰어 토막을 낸 다음, 뼈는 땅에 파묻고 살은 훨훨 불타는 화로에 집어넣어 재도 안 남게 만들었어야지. 그래서 존재했다는 흔적 자체를 없애 버릴 것이지! 무식하게 다짜고짜 그 자리에서 담가 버린다고 일을 저지르다니!”
“…….”
눈에 핏발을 세우며 주절거리는 소리에 난 잠시 벙쪘고 란슬링도 기가 막히는지 쉬익쉬익거리면서 시퍼런 혀를 내둘렀다.
뭐, 쥐도 새도 모르게 유인해서 수면제를 먹인 다음 토막을 쳐서 토막난 부위들을 모두 불태워 없애 버려야 했다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예쁜데 하는 말은 완전히 마계에서 뚝 떨어진 대마녀네?
그녀는 입을 쩍 벌리고 황당해하는 날 째려보더니 슬그머니 물었다.
“그래, 도대체 누굴 찾고 있는 건데?”
“사실은 조카가 실종되어서 말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야 하거든.”
“조카라면 이름은?”
“…….”
그녀의 물음에 난 난감한 표정으로 쩝쩝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그녀는 짜증스레 날 노려보았다.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는데 왜 말을 안 하는 거지?”
“그게……. 이름이 좀 황당한데…….”
“황당하거나 말거나 이름도 안 알려 주면서 우리 길드에 사람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하려고 했다는 거야?”
“쩝……. 물론 말을 해 줘야 하는 게 당연한데. 좀 특이한 이름이라서.”
“시간 낭비할 생각 없으니까 빨리 말을 하든가 아니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든가 알아서 결정해!”
냉기를 풀풀 날리며 말하는 꼴이 내 태도에 따라서는 술집 주인장이 하지 못했던 ‘푹 담궈 버리고 잘근잘근 토막 내기’를 계속 진행할 수도 있다는 뜻이 분명했다.
별수 없이 나는 조카 재경이가 이 게임에서 만든 닉을 말했다.
“대빵 캡숑 울트라 전나세…….”
“…….”
그녀는 자신이 들어 본 가운데 가장 유치한 이름에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깍두기들도 어깨를 들썩이면서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젠장, 재경이 이노무 자식은 아무리 초딩이래도 그렇지, 뭔 놈의 이름을 고따구로 유치하게 지은 건지…….
나는 겸연쩍은 얼굴로 보충 설명을 해 주었다.
“마지막은 사실 그 녀석이 ‘존나 세!’라고 지었는데……. 이름에 비속어 금지 원칙 때문에 이 녀석이 전나세로 바꿨더라고. 뭐 존나세나 전나세나 거기서 거기지만. 근데 당신 NPC가 아니고 유저 맞지?”
내 말에 그녀는 대뜸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했다.
지금 하고 있는 꼴로 봐선 이 미라쥬 길드의 부마스터쯤 되어 보이는데 그런 직책을 NPC가 하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니까.
좌우간 재경이의 닉을 말하자 그녀 옆에 있던 깍두기 하나가 그녀의 귀에 대고 뭐라고 말을 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재경이의 닉을 들어 본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뭔가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아 나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그녀는 차가운 표정을 다시 지었다.
“당신 조카의 행적을 알아내는 것은 우리로선 불가능한 일은 아냐. 하지만 공짜는 있을 수 없으니 의뢰비를 지불해야겠지? 거기다가 우리 길드의 주점을 박살 낸 손해배상도 해야 할 테고 말이지.”
“그래? 하지만 의뢰비는 많이 낼 순 없고 손해배상할 돈은 아예 없는데? 가진 돈이 없어서 말이지.”
조 부장이 마련해 준 백 골드가 안주머니에 고스란히 있었지만 나는 배 째라는 투로 말했다.
의뢰비를 많이 요구하면 당장 개털이 될지도 모를 판이라 선수를 친 거였다.
당연히 방방 뛸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도리어 씨익 미소를 짓는 그녀였다.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우는 방법이 있지. 마침 우리 길드가 꼭 해결해야 할 일이 있거든? 그걸 당신이 해결해 주면 주점 손해배상은 없던 걸로 해 주고 조카라는 그 대빵캡숑울트라전나세의 행적도 알아봐 주지, 어때?”
난 잠시 고개를 숙이고 심각하게 생각…… 을 전혀 하지 않고 대답했다. 뭔 수를 쓰든 재경이를 찾아야 하는데 이것저것 따질 여유 같은 건 없었으니까.
“별수 없군.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무슨 의뢰인지 들어 볼까?”
“그러니까 무슨 의뢰인가 하면…….”
“뭐라고? 당신네 길드 마스터를 결혼시켜 달라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눈앞의 여자, 쥬리아라고 자기 이름을 밝힌 미라쥬 길드의 부마스터는 뭐가 잘못되었냐는 듯 태연했다.
“그래, 우리 길드 마스터는 이 게임 속에서 미라쥬 길드를 독보적인 최강의 도둑 길드로 만들어온 사람이거든.”
“근데?”
“이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글래스 캐슬이라는 성이 있어. 그 성주의 딸내미를 보고 한눈에 뻑 가서 그때부터 그녀 생각만 하면서 식음을 전폐하고, 미라쥬 길드의 일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어.”
“음……. 길드 마스터란 사람이 우연히 본 여자한테 반해서 길드 일은 전폐하고 있다는 말이로군.”
“응, 상사병에 걸려서 폐인 아닌 폐인 신세야. 이대로 가면 우리 미라쥬 길드의 위상이 흔들릴 지도 몰라. 비기닝 시티 최고의 도둑 길드 자리를 노리는 우리 밑의 길드들의 움직임이 벌써 심상치 않아. 길드원들도 불안해서 동요하고 있고.”
“끄응…….”
나는 신음을 흘렸다.
쥬리아의 말인즉슨 자기는 부길마로서 조직이 흔들릴지 모르는 상황을 막고자 길마를 장가보내 주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길마가 그렇게 원하는 그 성주 딸내미하고 결혼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그때부턴 제대로 길드 일을 돌보지 않겠어? 남자는 결혼하면 생활도 마음도 안정되어서 제대로 자기 일에 충실하게 되니까 말이야.”
글쎄올시다. 연애할 때는 엄청 뜨겁더니 정작 결혼한 다음에는 부인이 마음에 안 들어 꼬장 부리고 바람피우는 사람도 많더라만.
뭐 어쨌거나 이 게임 최고의 도둑 길드라길래 퀘스트 의뢰도 상당히 어렵고 피 냄새가 풍기는 처절한 것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핑크 빛 퀘스트라니.
“어쩔 거야? 어째 표정이 별로 탐탁치 않아 보이는데?”
“솔직히 좀 황당하스럽긴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별수 없군. 맡겠어. 언제까지 해결하면 되지?”
“기한은 보름. 방법은 전적으로 당신이 알아서 하면 돼. 난 전혀 간섭하지 않을 테니까. 결혼만 성사시켜 주면 말이지.”
띠리링!
내가 쥬리아의 퀘스트 요청을 수락하자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창이 떠올랐다.
- 미라쥬 길드의 길드 마스터를 결혼시켜라!-
미라쥬 도둑 길드의 길드 마스터 로저를 글래스 캐슬 성주의 딸과 결혼시켜 주어야 한다.
기한 : 보름
보상 1 : 미라쥬 도둑 길드에 끼친 손해 배상의 무효.
보상 2 : 조카의 행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충고 ― 도둑 길드의 퀘스트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밤길을 가다가 뒤통수가 오크 발바닥에 밟혀 깨진 수박 꼴이 되는 게 싫거든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다.
퀘스트 등급 : 4급
“…….”
보상이 두 개가 있는 퀘스트라고 하지만 첫 번째 보상은 사실상 별 의미가 없는 것인데도 등급은 4급으로 이제 갓 게임을 시작한 나에게는 만만치 않았다.
참고로 말하자면 퀘스트 등급은 난이도가 가장 높은 게 특급이고 그 다음이 1급, 다음이 2급이며 제일 쉬운 게 6급이었다.
충고가 재수 없는 게 좀 기분 나빴지만 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도둑 길드의 퀘스트 의뢰라지만 대륙 최강 제국의 황제가 쓰고 있는 왕관의 보석을 훔치라든가, 드래곤이 득시글거리는 레어에서 신급 아이템들 몇 개 들고 나오라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선남선녀를 결혼시켜 주는……. 아니지, 도둑 길드 대빵이니 별로 선남은 아니다만 좌우간 남 좋은 일 시켜 주고 나도 이득을 보는 일이니 발 벗고 뛰어 보지 뭐.
“휴, 달랑 하나 있는 무기가 어쩌다 이 꼴이 되었는지 모르겠네. 기가 막혀서…….”
“그래도 형상은 유지하고 있잖은가. 쉬익!”
“형상을 유지하면 뭘 하냐. 이게 숯덩이지 어떻게 메이스냐고!”
란슬링이 위로를 한다고 했으나 나는 퉁명스레 대꾸했다. 내 손에는 조 부장이 선심 쓰는 척하면서 주었던 메이스가 이제는 시꺼멓게 변한 흉물스런 모습으로 들려 있었다.
퀘스트 해결을 위해 미라쥬 도둑 길드를 나서는 나에게 쥬리아가 갑자기 길쭉한 모양의 숯덩이를 건네주었던 것이다.
“이거 당신이 쓰던 무기 맞지?”
“헉! 이게 무슨 헛소리야! 왜 갑자기 숯덩이를 내미는 거지? 나는 숯을 무기로 쓰는 취미는 없다! 하긴 숯을 무기로 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진 모르겠군. 유난히 깔끔을 떠는 고위 귀족이나 왕족 나부랭이와 싸울 때는 자기 옷에 숯 검댕이 묻을까 봐 싸우기도 전에 도망을 칠지도 모르니.”
나의 대꾸에 쥬리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말을 이었다.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받아. 이건 당신이 우리 길드 소속의 주점에서 사용했던 그 메이스야. 가게를 다 날려 버리는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더니 이 꼴이 되었단 말이야.”
“그으래? 이게 내가 쓰던 메이스라고? 흐음, 목적을 달성하고 장렬하게 산화한 흔적이라는 건가?”
손에 숯 검댕이 묻는 게 꺼림칙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 외에는 달리 무기도 없는지라 챙길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쥬리아와 헤어진 우리들은 길거리로 나왔다.
그런데 그놈의 숯덩이, 아니 메이스를 무기랍시고 옆구리에 차고 길거리를 걷고 있자니 은근히 비웃는 눈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은 게 문제였다.
고개를 돌리며 킥킥거리는 건 그래도 괜찮았다.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손가락으로 머리에 원을 그려 보이는 녀석들까지 있었으니…….
내 얼굴에 반해 쳐다보던 아가씨들도 허리에 찬 이놈의 숯덩이를 보고는 순식간에 표정이 경멸로 바뀌곤 했다.
“이거 난감하네. 계속 가지고 다니려니 쪽팔림을 감당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버리려니 달리 무기로 쓸 게 없고…….”
“뭘 그리 피곤하게 고민하는 거냐. 쉬익! 병기점에 가서 새 무기를 하나 사면 될 걸 가지고, 쉭. 쉬익!”
란슬링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긴 혀를 연신 날름거리며 하는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넌 참 파충류답게 머리 단순해서 좋겠다.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생각도 안 하고 날름 써 재낄 생각만 하고 자빠졌으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별다른 방법은 없었던지라 나는 근처에 있는 병기 판매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게임을 해 나가면서 쓸 돈이 빠듯하긴 했지만 기본적인 무기를 제대로 갖추는 일을 무시할 순 없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