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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9화)
Part 4.미라쥬 길드(4)


“어서 오십쇼. 무엇을 찾으십니까?”
“쓸 만한 무기 있습니까?”
“있구말굽쇼. 어떤 게 필요하신지? 숏 소드, 롱 소드, 롱 보우, 숏 보우, 핼버드, 스피어, 대거, 클럽, 투핸디드 소드, 무엇이든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요. 성능 빵빵한 마법 무기들도 다량으로 구비되어 있습죠. 언제든지 말만 하십쇼!”
머리가 시원스럽게 벗겨진 판매점 주인이 두 눈알을 번들거리면서 하는 말에 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 저렇게 눈알 돌리는 인간들치고 속이 시꺼멓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는데 말이지.
어라라, 근데 이 인간 갑자기 왜 내 허리의 숯덩이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거지?
게다가 침까지 걸쭉하게 흘리는 것이 영 해괴하네.
기분이 나빠서 찌릿 째려보자 주인은 찔끔하며 눈길을 피했다.
그러나 내가 가게의 물건들을 둘러보는 도중에도 주인은 힐끔힐끔 내 허리의 숯덩이, 아니 숯덩이처럼 타 버린 메이스에 눈길을 뗄 줄을 몰랐다.
“휴……. 없구만. 이왕이면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걸 고르고 싶은데 말이야. 쓸 만해 보이는 무기는 너무 비싸고 내 계산에 맞는 무기는 허접하기 짝이 없으니.”
“그러냐? 그래도 웬만하면 대충 골라서라도 무기를 갖추는 게 나을 텐데. 쉬익!”
란슬링이 걱정스레 말했으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탐나는 무기들의 가격이 지금 가진 돈으로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비쌌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크 몇 마리 때려잡고 나면 다 닳아서 더 이상 사용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 싸구려 무기를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일단 이 가게에서 무기를 고를 생각을 포기하고 문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러자 주인이 슬쩍 앞을 막아서더니 은근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손님.”
“왜요? 내가 원하는 만큼 무기 가격을 할인해 주시게요?”
“네? 헤헤. 그건 좀 곤란합니다만 손님이 원하시는 무기를 꼭 사고 싶으시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죠.”
주인이 실실 눈웃음을 치며 말하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어디 그 방법이란 걸 한번 들어 볼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그 허리에 차고 계신 그…….”
“숯덩이요?”
“아, 네 그렇죠. 그 숯덩이를 제게 주신다면 이 가게에서 손님이 원하시는 무기 하나를 그냥 드리겠습니다.”
“오잉?”
나는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설마……. 매직 아이템과 바꾸는 게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가능하고말고요.”
“그럼 혹시 레어 아이템과도 바꿀 수 있나요?”
“그럼요, 두 개와 바꿔 드리겠습니다.”
“유니크 아이템은요? 그것도 두 개와 바꿔 주실 수 있나요?”
“한 개……라면, 아니 두 개까지는 드리죠.”
좀 생각하는 척했으나 주인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래서 나는 큰맘 먹고 다시 물었다.
“전설급 아이템은요?”
“헤헤, 농담도 잘하셔. 전설급 아이템은 최고급 병기 판매점에 가서나 구경하는 게 가능할 겁니다. 우리 가게는 그런 레벨은 아니라서 말입니다. 즉 그런 물건은 설령 제가 드리고 싶어도 불가능하답니다.”
“그런가요? 근데 이 숯덩이가 도대체 뭔데 그리 탐을 내시는 거죠? 제가 볼 때는 뭐 특별한 게 없어 보이는데?”
“그것까진 말씀 드리기 곤란합니다만.”
“그런가요? 그럼 나도 팔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아니, 손님 그러지 마시고.”
나는 당황해하는 주인의 손길을 뿌리치고 가게를 나섰다. 저 정도로 집착하는 걸 보면 이 숯덩이에 뭔가 내력이 있는 게 틀림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걸 먼저 알아봐야지.
“이봐, 란슬링. 너 이곳에 여러 번 와 본 적이 있다니 알겠군. 혹시 숙달된 대장장이나 병기 만드는 장인 아는 사람 있냐? 이왕이면 병기나 무구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이면 좋겠는데.”
“있고말고. 쉬익! 고든이라고 하는 솜씨 좋은 드워프 대장장이가 있다. 쉬익!”
“그래? 안내 좀 해 줘.”

“으음…….”
고든의 작업장은 사방 벽에 병기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한눈에 봐도 고급품이 분명한 병기들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작업장 가운데 벽에는 커다란 대형 화로와 주물 등의 작업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고든은 내 숯덩이, 아니 메이스를 이리저리 만져 보더니 아깝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우영이라고 했나? 자네 이걸 어디서 구한 건가?”
“아는 사람한테서 선물받았습니다만, 뭐 특이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이건 레드 드래곤의 숨결이라는 이름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메이스라네. 폭발로 반쯤 망가진 상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금속 자체의 값어치가 사라진 건 아니지.”
“헉! 아니, 그게 레드 드래곤의 숨결이라는 말입니까. 쉬익!”
“엉? 아니, 란슬링, 너도 그 레드 드래곤의 숨결이란 걸 들어 본 거냐? 그게 어떤 금속인데?”
“쉬익! 레드 드래곤의 레어 주변에서만 발견된다는 금속이다. 쉬익! 굉장히 견고하고 내구성이 엄청 뛰어나서 병기의 재료로는 최고급이지. 거기다가 강력한 화염 속성이 깃들어 있다. 쉬익! 즉 그 금속으로 병기를 만들면 엄청나게 강력한 화염 공격을 쓸 수 있게 된다. 쉬익!”
“허억! 그래서…….”
나는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왜 이 메이스를 쓰면서 파이어볼이 엄청나게 폭발했던 건지.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내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화염 공격이 멋대로 구사되어 자폭해 버렸다는 건…….
“허허허, 그건 말일세. 아마 둘 중 하나일 거야. 이 메이스를 만든 장인의 솜씨가 서툴러서 잘못 만들었거나 아니면 자네가 가진 마나의 양이 적었기 때문일 거야. 메이스에 깃든 화염 속성을 제대로 구사하려면 일정한 마나를 사용해야 하니까.”
“확실히 제가 보유한 마나는 형편없습니다만……. 그럼, 마나가 부족한 저는 제대로 사용할 수 없으니 무용지물이군요. 쩝…….”
나는 아쉬운 눈빛으로 숯덩이, 아니 메이스를 바라보았다.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이건 너무도 훌륭한 마법 병기인데 이걸 쓰지 못하니…….
별수 없이 재료 값만 받고 누군가에게 팔아 버려야 하나? 그냥 아까 그 병기점 주인한테 가서 괜찮은 유니크 아이템 서너 개 달라고 해서 교환해 버려?
내가 그렇게 내심 갈등을 때리는 순간 고든이 미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니, 마나가 적은 사람이라고 해서 이 레드 드래곤의 숨결로 만든 무기를 쓸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쉽지 않은 조건이 필요하긴 하지만…….”
“조건요? 어떤 조건 말씀이십니까?”
“매우 솜씨가 좋은 장인이 어떤 특별한 용액을 이 금속에 버무려서 다시 담금질하고 제련하면 되네. 그러면 마나가 적은 자네라도 이 병기에 깃든 화염 속성을 쓸 수가 있네. 그리고 어차피 이 메이스는 반쯤 망가진 상태이니 누가 손을 봐도 다시 봐야 하는 상태이기도 하니까.”
으음……. 매우 솜씨가 좋은 장인과 특별한 용액이라…….
나는 가벼운 신음을 흘리며 고든을 바라보았다. 매우 솜씨가 좋은 장인은 보나마나 그 자신을 가리키는 말일 게 분명했다.
그 증거로 내가 던지는 의미심장한 시선에 고든은 빙긋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 특별한 용액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케파추아라의 눈물이라는 걸세. 참고로 말하면 케파추아라는 한때 대륙에서 악명이 자자했던 리치였다네. 그가 제조해 놓았던 용액이지. 매우 희귀하지만 이 용액이 있으면 마법 장비의 위력을 엄청나게 높일 수가 있기도 하지. 따라서 그 용액의 값도 엄청 비싸다네. 뭐, 우선 구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기도 하지만.”
“쩝, 그렇다면 초보인 내가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과 마찬가지네요.”
난 입맛을 쩝쩝 다셨다. 고레벨의 유저들도 손에 넣기 어려운 물건을 이제 이 게임을 갓 시작한 내가 뭔 수로 구하겠냔 말이다.
그러나 고든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대단히 귀한 것이니까 구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지만 어둠의 경로로 그 용액을 손에 넣으려 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있고 고관대작이나 거상들 중에서 케파추아라의 눈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풍문도 있네. 운이 닿으면 그 용액을 입수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다는 거지.”
뭔가 갖고 싶은 것을 바라는 심정이 가득한 눈으로 고든은 날 바라보았다.
이거 혹시 퀘스트 의뢰인가?
난 슬그머니 고든에게 물어보았다.
“제가 그 케파추아라의 눈물을 가져다주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왜 아니겠나? 이 메이스를 더 좋게 만드는 것 말고도 지금 내가 만드는 병기들에도 그 용액을 섞으면 온 세상이 탐을 내는 고급 아이템들을 만드는 게 가능하단 말이네. 어떤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닌가? 한번 해 보지 않겠나? 만약 케파추아라의 눈물을 구해다 준다면 이 메이스를 자네가 쓸 수 있게 고쳐 주는 것 말고도 좀체로 구하기 어려운 고급 마법 아이템을 하나 주겠네!”
“…….”
난 잠시 머리를 굴렸다.
란슬링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고든이란 드워프는 상당한 솜씨를 지닌 장인이 분명했다.
이 정도 장인이 만들어 준다는 마법 아이템이라면 레드 드래곤의 숨결로 제대로 만들어진 메이스 못지않게 값어치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야 모험을 해 볼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좋습니다. 한번 구해 보도록 하죠.”
“그래? 하하, 정말 고맙네. 자네라면 틀림없이 할 수 있을 걸세.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네!”
띠리링!
내가 고든의 요청을 승낙하자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 대장장이 드워프 고든에게 케파추아라의 눈물을!-
악명 높았던 리치 케파추아라가 만들었다고 하는 케파추아라의 눈물이라는 이름의 용액을 고든에게 구해 주어야 한다.
기한 : 딱히 정해지지 않음
보상 1 : 레드 드래곤의 숨결로 만들어진 메이스를 완벽하게 수리받을 수 있다.
보상 2 : 고든이 주는, 상당히 값어치 있는 마법 아이템 하나를 보너스로 받을 수 있다.
퀘스트 등급 : 5급

“휴우…….”
나는 슬그머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게임의 초반인데 퀘스트를 두 개씩이나 연거푸 받다니…….
내가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위안이라면 그나마 퀘스트 등급이 5급으로 난이도가 낮다는 거였다.
그러나 당장 쓸 만한 병기가 나에게 없다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인 게 마음에 걸렸다.
내가 요에다가 오줌 싸고 방금 깨어난 어린애 같은 표정을 짓자 고든은 내 고민을 짐작한 듯 씨익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당장 사용해야 할 병기가 없어 고민이겠군. 그래, 우선 이 메이스를 당분간 쓸 수 있도록 해 주지. 제멋대로 화염 공격이 발휘되는 문제는 그대로지만 최소한 더 망가지지는 않을 걸세.”
뭐? 이 숯덩이 메이스를 더 망가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대로 쓸 수 있게 해 준다고? 근데 기존의 문제점은 어쩔 수 없다고?
하긴 땡전 한 푼 내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라도 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건 틀림없긴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퀘스트를 의뢰했으면 보너스로 더 완벽하게 고쳐 주면 좋겠구만.
아니면 아예 쓸 만한 다른 마법 병기를 하나 주던가. 작업장에 널려 있는 게 탐나는 마법 병기들인데 말이지.
나는 주변에 널려 있는 삐까번쩍하는 무기들을 흑심 가득한 눈으로 둘러보았다.
그런 내 생각을 짐작했는지 고든은 얄미운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말했다.
“허허허, 사람은 자신이 상대에게 아직 해 주지도 않은 것 이상을 미리 바라서는 저얼대로 안 되는 법이지. 그런 싹수가 노란 놈들치고 잘되는 인간들을 못 봤으니 말일세. 난 우영 자네는 절대로 그런 싸가지 없는 인간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네. 그렇지 않은가?”
“네? 하하……. 뭐 그렇죠. 맞는 말씀입니다. 난 그런 싹수가 없고 싸가지까지 없는 녀석은 절대로 아니죠, 아니구 말구요! 움화하하하하!”
난감해진 나는 큰 웃음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때우려 했고, 란슬링은 피식 웃으며 연신 혀를 날름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