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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11화)
Part 5.딥 나잇 마켓(2)


“흠! 여기가 그랜드 윙인가? 바로 여기서 야시장이 열린단 말이지? 어, 근데 란슬링 넌 왜 그렇게 떨고 있냐?”
“우영, 지금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쉬익! 춥다, 추워. 정말 춥다. 쉬익!”
딥 나잇 마켓이 열린다는 초승달이 뜨는 금요일 밤 자정. 호리병 형태의 계곡 속에 위치한 그랜드 윙에서는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감돌았다.
차가운 새벽바람은 추위를 느낄 만했다. 하지만 란슬링 저 자식은 도마뱀이니 당근 변온동물일 텐데, 뭘 저렇게 춥다고 엄살인지 모르겠군.
“그러게 누가 얇게 입고 오랬냐? 그나저나 초승달이 왜 안 보이냐? 초승달이 허공에 걸려 있어야 딥 나잇 마켓이 시작된다고 세영이가 그랬는데…….”
“그렇다. 쉬익! 여기 그랜드 윙에서 그달의 세 번째 금요일 초승달이 뜨는 밤이라고 분명히 그랬다. 으, 춥다. 쉬익!”
“음, 그렇다면…….”
슬쩍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초승달이 있어야 할 하늘은 구름이 가리고 있었다.
“저, 구름 때문에 초승달이 가리워져서 아직 시작이 안 되는 건가?”
아니나 다를까.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구름이 천천히 이동했다. 그러자 서서히 초승달이 모습을 드러내며 달빛이 적막한 그랜드 윙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초승달이 완전히 구름에서 벗어나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파앗!
불꽃이 거세게 켜지는 듯한 음향과 더불어 사방이 흔들리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아릿한 현기증이 왔다가 사라졌다고 느껴진 순간이었다.
와글와글! 왁자지껄!
“웃! 이럴 수가!”
“아니, 저게 뭐냐. 쉬익!”
나는 물론이고 란슬링도 그 길다란 혓바닥을 연신 날름거리며 놀라워했다.
우리 눈앞에는 순식간에 좀전과 전혀 다른 정경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방에는 마차나 좌판에 팔 물건들을 가득히 늘어놓은 상인들과 그것을 구경하는 구경꾼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크게 소란스럽지는 않았지만 음산한 밤중인데도 제법 거래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기름으로 불을 밝힌 유등과 화톳불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구경을 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이거 황당하네.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이에 이런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니……. 이거 어떻게 된 거지?”
“쉬익! 아마 이 일대에 블라인드 마법이 걸려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저 초승달이 모습을 드러내면 불라인드 마법이 해제되는 거였단 말인가?”
“틀림없다. 쉬익! 그렇지 않아도 이 그랜드 윙은 실종 사건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는 곳이다. 쉬익!”
“딥 나잇 마켓이 열리는 곳이니 평범하진 않겠지. 어쨌거나 슬슬 구경을 한번 해 보실까?”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시장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물건을 파는 상인은 인간보다 몬스터들이 더 많았다.
미노타우로스, 오우거, 웨어울프, 다크 엘프 등등.
흉포한 몬스터들 중에서도 특히 성격 더러워 보이는 몬스터들이 좌판 앞에 앉아서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 기괴한 모습만 봐도 딥 나잇 마켓이 평범한 시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상인들은 물론이고 늘어놓은 물건들도 그랬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것들이 그득했다.
유등에 반사되어 푸른빛을 뿌리고 있는 블루 드래곤의 비늘, 길이가 2m에 달하는 다크 나이트의 전용 검, 그리고 던필이 갇혀서 꺼내 달라며 소리를 질러 대고 있는 울부짖는 초상화, 부모 드래곤들에게 당할 보복이 두렵지도 않은지 간 크게도 해츨링의 신선한 고기를 파는 이동 푸줏간 등등…….
그리고 일부 고색창연한 중대형 병기들은 흙이 가득 묻어 있었다. 무덤에서 도굴한 물건들이 분명해 보였다. 도굴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떳떳한 물건은 절대로 아니고 훔치거나 약탈한 장물일 게 틀림없었다.
아마 여러 번 소유주의 피를 묻힌 물건들도 제법 될 테지.
어쨌거나 눈요기하기에는 손색이 없구만.
섬뜩하지만 침을 꿀꺽 삼킬 만한 물건들이 잔뜩 널려 있으니까 말이지.
“놀랍네. 딥 나잇 마켓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우영, 지금 뭐하는 거냐. 쉬익! 구경만 하다가 시간 다 보낼 거냐. 쉬익!”
“응?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구경 좀 하자. 이렇게 좋은 눈요기를 할 기회가 또 언제 올지 모르잖아.”
쥬라이, 아니 세영이의 말에 따르면 딥 나잇 마켓이 열리는 장소는 달마다 바뀐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중에 또 딥 나잇 마켓을 구경할 기회가 생긴다는 보장은 없는 셈이다.
뭐 이번이야 퀘스트 의뢰 때문에 세영이가 장소와 시간을 알려 줘서 구경을 할 수 있는 거지만 나중에도 공짜로 알려 주진 않을 테니까.
그러니 이번 기회에 실컷 구경이나 해야…… 하겠지만 그러려니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게 문제군.
구경과 더불어 케파추아라의 눈물을 찾는 걸 서둘러야겠다. 오늘 밤 안으로 그걸 찾지 못하면 상당히 고달파지게 될 테니까.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우리가 야시장을 어슬렁거리면서 눈요기를 함과 동시에 케파추아라의 눈물을 찾던 중, 갑자기 란슬링이 걸음을 멈춘 것이다.
이 도마뱀 녀석은 사지를 부들부들 떨더니 혓바닥을 마치 여름철 부패한 음식만 늘어놓은 식당 주인이 파리채 휘두르듯 맹렬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헛! 아니, 저것은! 쉬익! 쉭쉭쉭쉭!”
“란슬링, 너 갑자기 왜 그러냐? 왜 그놈의 혓바닥을 평상시의 백 배쯤 되는 속도로 펌프질을 하고 자빠졌냐? 왜 그리 흥분하는 거냐고!”
“저기 저것 좀 봐라! 내가 흥분 안 하게 됐냐. 쉬익!”
란슬링은 한쪽의 좌판을 가리키며 펄펄 뛰어 댔다.
케파추아라의 눈물이라도 발견했나 싶어서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기름등잔 아래 푸르스름한 빛을 반사하는 것들이 널려 있었다.
“잉? 아니, 이게 뭐야…….”
“어서 오십쇼, 손님. 리자드맨들이 가장 많은 지역인 롱 테일 스왐에 서식하는 리자드맨을 내가 직접 잡아 가죽을 벗겨 만든 물건들입니다. 대륙 최고의 명품 리자드맨 가죽 핸드백들이죠. 치마 두른 아낙네들이라면 어린애부터 아가씨, 노파 할 거 없이 끔뻑 죽는 물건들입니다. 예쁜 애인이 있다면 하나 사서 선물해 보세요.”
넉살 좋게 떠들어 대는 하프 오우거가 팔고 있는 건 리자드맨 가죽으로 만든 핸드백과 여성용 부츠와 허리띠 등의 장신구였다.
동족의 껍질을 벗겨 만든 물건을 보고 란슬링이 울컥했나 보군.
하지만 당장 케파추아라의 눈물을 구하냐 못 구하냐로 초조한 판국에 그런 거에 신경 곤두세우면 어쩔 거냐.
그냥 가자고 란슬링에게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허억! 이것은. 쉬익!”
“엇! 란슬링, 왜 그래? 너 설마 그 핸드백이 그리도 탐나냐? 그러면 방금까지 흥분했던 건 니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한 기쁨에서 그랬던 거냐? 쯧, 동족의 시체로 만든 물건을 탐내다니 너 보기보다 상당히 심한 놈이구나.”
그러나 핸드백 중 하나를 붙잡고 흥분하던 란슬링은 내 농담이 들리지 않는 듯, 갑자기 하프 오우거의 멱살을 잡고 울화통을 터뜨렸다.
“이 핸드백의 본체인 리자드맨은 어디서 죽였냐? 이 껍질의 북두칠성 문신은 내 사촌 동생 토벨의 것이란 말이다. 쉬익!”
헉! 이게 무슨 소리야, 란슬링 사촌 동생의 시체로 만들어진 핸드백이라고?
이게 게임 속이고 란슬링이 NPC라고 해도 그렇지, 좀 깨는군.
흥분한 란슬링은 대거를 꺼내서 하프 오우거의 목에서 피가 배어나올 정도로 바싹 들이댔다.
하프 오우거는 떨면서도 고함을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냐! 딥 나잇 마켓에서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거 같으냐!”
“흥! 내가 사촌의 살해범을 가만 놔둘 거 같으냐. 쉬익! 어서 말해라, 내 사촌 동생 토벨을 어떻게 죽였는지를. 쉬익!”
“이봐, 란슬링. 흥분 좀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대화로 풀면 안 되겠냐?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을 생각해야지.”
“우영, 너 같으면 한 달 전에 만나 다정하게 부비부비한 사촌이 명품 핸드백이 되었는데 차분하게 대화를 할 수 있겠냐. 쉬익!”
이그, 돌았냐, 그걸 보고 차분하게 대화가 되게? 그 꼴을 보고 정상적인 대화가 나오면 그게 제정신이 아닌 놈인 거지.
잠깐! 근데 뭐? 사촌 동생하고 부비부비했다고?
이 자식, 이거 정말 호모 아냐?
아니, 뭐, 호모건 호밀빵이건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핸드백을 만들 목적으로 사촌 동생을 잡아 죽인 놈이니 대화고 나발이고 집어치우고 단번에 칼로 목을 따 버려야…….
아니, 지금 내가 무슨 생각하는 거람.
란슬링이 진짜로 저 하프 오우거의 목을 땄다간 여기서 케파추아라의 눈물을 구하는 일은 엉망이 될 텐데.
나도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란슬링의 대거는 하프 오우거의 목을 더 파고들고 있었다.
“내 사촌을 어떻게 죽였는지 빨리 말하란 말이다. 쉬익!”
“허억! 제발 살려다오! 나는 그저 리자드맨 사냥꾼한테서 사들인 가죽으로 핸드백을 만들었을 뿐이야!”
“흥, 웃기지 마라! 방금 네 입으로, 롱 테일 스왐에서 직접 리자드맨들을 잡아 죽였다고 했잖냐. 쉬익!”
“으아아아! 사람……. 아니, 하프 오우거 살려! 제발 누가 날 좀 살려 줘요!”
이제 란슬링의 대거는 하프 오우거의 목에 1/3쯤 틀어박혀서 적지 않은 피를 흘리게 하고 있었다.
그러자 주변의 상인들과 구경꾼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무장한 경비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바로 딥 나잇 마켓의 질서를 유지하는 가드들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외쳤다.
“경고한다. 당장 대거를 치우고 상인을 놓아주지 않으면 딥 나잇 마켓을 다스리는 마스터의 율법에 의거 처단하겠다!”
어둠의 물건들만을 취급하는 비밀 시장답게 이곳의 질서를 잡는 가드들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또 이들은 시장의 정상적인 거래를 방해하는 불온한 자들을 서슴없이 즉결 처분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우릴 포위한 열 명의 가드들은 유등의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바스타드 소드와 롱 소드를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란슬링은 전혀 기죽지 않고 끝장을 볼 태세였다.
“흥, 어디 해 볼 테면 해 봐라. 쉬익! 이놈을 죽이고 나도 죽으면 그만이니까. 쉬익!”
헉! 뭐가 어쩌고 어째?
이 머리 나쁜 파충류 녀석! 지금 나도 너와 함께 공범이 되어 버린 꼴이라는 건 안중에도 없나 보네.
이 도마뱀 대가리야. 여기서 하프 오우거 죽이고 너도 죽으면 난 최소 몇 개월을 이곳 감옥에서 푹 썩게 될 거라는 건 짐작해야 할 거 아냐!
나는 제멋대로 날뛰는 란슬링 때문에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속을 내색하지 않고 근엄하게 소리쳤다.
“이봐, 란슬링. 적당히 못하겠냐! 그쯤 했으면 그만두란 말이다. 물론 이 하프 오우거가 너의 힘없고 여리고 가냘프고 천진난만한 사촌을 감언이설로 꼬셔서 맛있는 거라며 약을 탄 쿠키를 먹여 정신을 잃게 하고, 천사처럼 잠든 사촌의 그 앙증맞은 팔과 다리, 그리고 탐스런 꼬리를 잔인하게 사지절단…… 아니, 꼬리까지 있으니 오지절단이군. 좌우간 능지처참을 해서 핸드백으로 만들어 버리고 반성은커녕 도리어 핸드백을 비싼 값에 팔아 돈을 챙기려는 잔악무도한 악질이며 천인공노할 살인마라서, 네가 너무도 억울하고 비통하고 격분해서 이러는 건 줄은 잘 알지만 말이다.”
“크으……. 불쌍한 토벨!”
내 말에 란슬링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새삼 사촌이 생각났나 보군.
우리를 구경하던 군중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토하며 수군거렸다.
란슬링을 동정하고 하프 오우거의 잔인함을 욕하는 말들이었다.
군중들이 술렁이자 가드들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로서는 시장에 온 손님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겠지.
그쯤 되자 란슬링의 대거에 꼼짝달싹 못하고 있던 하프 오우거가 얼굴을 붉히며 항의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리자드맨은 나보다 키가 더 크고 덩치도 두 배나 되었는데 귀엽고 앙증맞다니! 그리고 순진하고 천진난만하기는 개뿔! 눈썹 밑에서부터 입까지 길쭉하게 보기 흉한 칼자국이 나 있었다고! 한눈에 척 봐도 악질 양아치 비행 청소년, 아니 악질 양아치 리자드맨이었다니까! 그리고 내가 괜히 그 녀석을 죽인 줄 알아! 그 지역을 지나가는데, 가진 돈을 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회를 쳐서 오우거 찜을 만들어 먹어 버리겠다고 공갈을 쳤단 말이야. 그것도 길이가 내 키의 한 배 반이나 되는 핼버드를 다짜고짜 휘둘러 대서 난 간신히 죽다가 살아났……. 커억! 알았소. 아무 소리 안 하고 가만있을 테니 제발 그 대거를 내 목에 찔러 넣지 마시오!”
얼굴을 붉히며 항의하던 하프 오우거는 란슬링의 대거에 다시 움츠러들었다.
어쨌거나 그 토벨이라는 녀석 어지간한 인간 말종, 아니 리자드맨 말종이었나 보군. 뭐, 저 하프 오우거도 별로 선량한 상인은 아니겠지만.
그때 가드들의 우두머리, 즉 가드장으로 보이는,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지금까지 대략 하는 말들은 들었다. 그러나 딥 나잇 마켓에서는 판매를 위해 진열된 물건에 대한 어떤 항의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라!”
뭐, 명심하라? 아니, 이 작자가 어디서 반말이람.
도대체 나이를 몇 살이나 처먹었다고 대뜸 반말을…….
음……. 그러고 보니 저 희끗희끗한 백발하며 턱을 덮은 수염도 새하얗고……. 대충 오십은 넘은 것 같군.
그럼 말 놓는다고 새파란 내가 시비 거는 건 소용없으니 점잖게 말할 수밖에.
“그렇습니까? 근데 우린 그걸 몰랐거든요. 이 하프 오우거는 놔주고 이제부터는 조용히 구경만 하다가 필요한 거 있으면 사서 돌아가겠습니다. 야, 란슬링 너도 그렇게 할 거지?”
나는 아부성 미소를 그 백발 갑옷에게 지어 보인 다음 란슬링을 슬쩍 돌아보았다. 제발 말 좀 들으란 눈빛을 던지면서.
그러나 란슬링, 이 망할 도마뱀 녀석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흥! 웃기지 마라. 쉬익! 어떻게 이런 놈을 그냥 놔두냐. 쉬익!”
“뭐, 뭣! 야! 너 정말 돌았냐? 꼭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리겠냐? 너의 그 순진무구하고 귀여운 사촌이 저승에서 너더러 제발 살인하지 말라고 앙증맞은 두 손을 모아 애처롭게 기도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드냐?”
“그 녀석이 순진하고 귀엽다니 무슨 헛소리냐. 쉬익! 그 녀석은 기도 같은 거 하곤 담쌓고 산 양아치였고 집안에서도 내놓은 자식이었다. 쉬익! 나하고 칼부림한 것도 스무 번은 넘는다. 쉬익!”
뭐가 어째! 그럼 저 하프 오우거의 말이 다 사실이란 소리네?
그러면 그렇게 살벌한 사이였던 사촌이 죽었다고 여기서 이 난리를 필 이유도 없는 거 아니냐?
전혀 박자를 맞춰 주지 않는 란슬링의 대꾸에 나는 벙쪄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그때 백발 갑옷은 기다렸다는 듯 가드들을 향해 외쳤다.
“딥 나잇 마켓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상인의 판매를 방해한 죄로 이들을 당장 체포해서 구금하라!”
“아니, 이봐요, 백발 갑옷 아저씨. 우리 말을 더 들어 보지도 않고 이러면 어쩝니까?”
“할 말이 있으면 취조실에서 하라. 그리고 내 이름은 백발 갑옷이 아니고 다쓰팜스칼로프마이엘에트스트라프니까 정확히 그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라!”
“다쓰팜…… 뭐라구요?”
“다쓰팜스칼로프마이엘에트스트라프라고 했는데 뭘 들은 거냐! 거기서 한 자만 빠뜨리고 불렀다가는 나를 모욕하는 걸로 간주하고 결투를 신청하겠노라!”
젠장! 이름 한번 더럽게 기네. 그게 어떻게 한번 듣고 다 외워지냐!
그리고 한 자만 빠뜨리고 불러도 모욕으로 간주하고 결투를 신청하겠다고?
뭐 이런 황당한 인간이 있나 하고 내가 야리자 백발 갑옷도 눈을 치켜뜨고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러다 내 허리의 메이스를 본 순간 그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