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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13화)
Part 6.변태 팰러딘(2)
“…….”
지금 이 인간이 뭔 소리 하는 거야, 그게 별거 아닌 일이냐?
어이가 없어 한 30분 정도 말이 안 나올 지경이로군.
잘 다니는 직장에 사표 던지고 오늘 처음 본 나를 따라다닌다는 소리를 뒷간에 물 버리러 간다는 말 하듯 쉽게 하냐?
“아니, 도대체 왜 나를 따라다닌다는 겁니까?”
“응, 사실은 우리 부친께서 젤라즈니에게 구원받을 때 약속을 했어. 생명의 은인이니 직접 몸 바쳐 봉사하면서 은혜를 갚겠다고.”
“근데요?”
“그러나 젤라즈니는 거절했지. 자신의 여정에 동료는 불필요하다고. 그러자 부친께선 그렇다면 나중에라도 은혜를 갚겠으며 설령 그 메이스를 지닌 사람이기만 해도 젤라즈니로 생각하고 몸 바쳐 봉사하겠노라 맹세했지. 당신께서 못하면 자식들에게라도 은혜를 갚도록 시키겠다고 말이지. 그러니 아들인 나는 그 맹세를 지켜야 하는 거지. 젤라즈니의 메이스를 지닌 자네에게 말일세. 이래 뵈도 나는 팰러딘이니 특히 그런 맹세를 철저히 지켜야 할 의무가 있네.”
음, 그런 심오한 사연이 있었군.
팰러딘은 성기사들이고 주신 이르하임과 이르하임을 섬기는 성당에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이나 가족이 한 맹세를 지킬 의무가 있고 그것을 위배하는 것은 주신 이르하임을 거역하는 것으로 간주해서 파문당한다.
근데 팰러딘이 딥 나잇 마켓 같은 수상쩍고 야리꾸리한 곳의 가드장을 하고 있다니, 이것도 꽤 황당하네.
좌우간 백발 갑옷이 말을 마치자 경쾌한 음향과 함께 창이 떠올랐다.
딥 나잇 마켓의 가드장을 맡고 있는 팰러딘 다쓰팜스칼로프마이엘에트스트라프가 부친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당신의 파티에 합류할 것을 요청했다. 수락하겠는가? (Y/N)
수락하겠냐고?
두말하면 잔소리지. 일단 게임 초반인 지금으로는 파티원들을 한 명이라도 더 늘려야 유리하다. 더군다나 이 인간은 감정 기술까지 가지고 있으니 아이템을 입수할 경우, 감정료로 나갈 돈을 줄일 수 있다.
내가 먼저 합류를 요청하고 싶을 판이었지만 딥 나잇 마켓 가드 일을 수행하는 녀석이 일부러 나한테 올 리가 없어서 말을 못 꺼냈는데 자청해서 와 주겠다면 좋고말고.
그리고 이 백발 갑옷이 나한테 오는 걸 받아들여야 할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그중 하나는…….
나는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가득 지으며 Y를 눌러서 백발 갑옷의 요청을 수락했다.
내가 수락하자 백발 갑옷은 만족스러운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잘 되었구만. 자네는 앞으로 내게 큰 도움을 받게 될 것이고, 난 아버님이 하신 맹세를 지킬 수 있게 되어 팰러딘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야.”
“하하, 그런가? 근데 이봐, 백발 갑옷. 아니, 이제부터는 이름을 좀 줄여 다쓰라고 부르자고. 뭔 놈의 이름이 그렇게 긴지 한 번 부르는데 해가 질 판이니까.”
내가 멋대로 애칭으로 부르고 반말을 해 대자 백발 갑옷, 아니 다쓰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헛! 아니, 지금 자네 뭐라고 했나? 자네 멋대로 다쓰라고 날 부르겠다고? 내가 이름을 다 불러 주지 않으면 모욕으로 간주하겠다고 말했지 않은가? 더구나 나한테 반말을 하다니! 도대체 누가 나한테 말을 놓아도 좋다고 했는가?”
어쭈 이것 봐라? 이게 제법 방방 뜨네? 그것도 얼굴까지 붉혀가면서 말이지.
딥 나잇 마켓의 가드장과 질서 위반자였던 조금 전의 관계는 이제 사라지고, 파티의 장과 파티원이라는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걸 아직 모르겠다는 건가?
그리고 아무리 그걸 자각 못했어도 그렇지. 나이도 어린놈이 연장자에게 도리어 존대를 받겠다는 그 못돼 먹은 심뽀는 도대체 뭐냐? 팰러딘에다가 이곳 마켓의 가드장을 하고 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냐? 그 삐뚤어진 근성을 바로잡아 주마!
나는 이빨을 아드득 소리나게 물면서 말했다.
“이것 봐, 다쓰. 넌 스물하나랬지. 근데 난 올해로 스물넷이거든?”
“그, 그래서?”
“그러니 앞으론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고 깍듯이 존대하도록 해라! 난 위아래 모르는 인간을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싫어하니까 말이지. 그렇게 못하겠다면 나하고 같이 다니는 거 포기하고 여기서 계속 가드장이나 하고 처자빠져 있든지. 니가 나 안 따라다녀도 난 아쉬울 거 하나 없거든?”
“…….”
내 말에 백발 갑옷은 얼굴 가득 곤혹스런 표정을 짓더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후……. 이것 참. 알았다. 어쩔 수 없지. 나한테 말 놓는 것까진 특별히 봐주겠다. 하지만 널 형님이라고 부르고 존대하는 건 곤란하다.”
“어쩌구리! 뭐가 어째? 연상인 나를 알아 모시랬더니 도리어 내가 말 놓는 걸 봐주겠다고? 이거 아주 가관이구만. 넌 너 자신이 뭐 젤라즈니라도 되는 줄 착각하고 자빠졌나 본데 주제 파악을 좀 해야지. 좋아 그럼 관둬. 니가 나하고 같이 다니는 걸 내가 거부할 테니까. 니가 아무리 나하고 같이 있고 싶어도 내가 싫다! 난 싸가지 없는 놈은 절대 곁에 두지 못하는 성미니까 말이지. 넌 여기서 평생 이 짓이나 하고 있으라고. 자, 그럼 잘 있어라. 난 간다∼!”
“허억! 자, 잠깐만. 그렇게 하면 난 아버지의 맹세를 지키지 못하게 된단 말이야! 아…… 아, 알았다. 하겠다. 하겠다고! 하면 될 거 아닌가!”
“후후, 그래? 근데 그렇게 하겠다면서 여전히 반말 짓거리네. 어째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데. 너 진짜 팰러딘 맞기는 하냐? 무늬만 팰러딘인 거 아냐?”
“…….”
내가 얄밉게 유들거리며 빈정대자 백발 갑옷, 아니 다쓰는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서 이를 빠드득 물더니 마지못해 대답했다.
“아, 알았다……. 아니…… 알았습니다.”
“후후후, 이제야 겨우 존댓말이 나오는군. 근데 형님 자는 왜 안 붙이시나?”
“으……. 우영 형……니……임.”
이그, 녀석. 분해서 얼굴이 시뻘게 가지고 이를 빠드득 무는 꼴이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
거참, 나이도 어린놈이 쓸데없는 자존심 하난 엄청 강하네. 남들이 봤으면 진짜 백발노인 기사가 새파란 어린 녀석한테 공대를 하는 줄 알겠구만.
어쨌거나 다쓰를 파티원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 한 가지는 이제 달성되었다.
이 싸가지 없는 애송이 팰러딘이 나한테 형님이라고 부르며 존대하게 만들고 싶었던 게 그 이유였으니까 말이지.
자, 다쓰를 받아들여야 할 한 가지 이유가 충족되었으니 그럼 나머지 한 가지도 성공시켜야겠지?
나는 슬그머니 다쓰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짐짓 정겨운 태도로 말했다.
“이봐, 다쓰. 내가 이끄는 파티에 들어왔으니 너에게 중요한 첫 임무를 주겠다. 그건 니가 이곳에서 사표 쓰고 나가기 전에 성공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임무거든. 어때, 해낼 수 있겠지? 못한다는 말은 안 하겠지? 그렇지?
“그게 도대체 뭔데? 아니, 뭡……니……까…….”
“후후후후훗! 그게 뭐냐 하면 말이지.”
나는 한껏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왜 저를 부르셨는지요? 다쓰…… 다쓰팜스. 에……. 그러니까 왜 저를 부르셨냐구요. 네, 가드장님?”
해골하고 미이라를 짬뽕해서 버무린 듯한 얼굴의 리치, 바론이 퀭한 두 눈을 번쩍이며 물었다.
그것참. 그러니까 되게 무섭네. 해골바가지나 다름없는 텅 비다시피한 눈 부분으로 바라보며 주절거리니까 말이야.
하지만 다쓰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바론을 째려보았다.
나와 란슬링도 그의 옆에 서서 인상을 썼다.
마치 범죄 피의자 보듯 바론을 꼬나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훗! 이거참, 심하군. 내가 이곳 개장일에 말했을 텐데? 내 풀 네임을 제대로 다 불러 주지 않으면 모욕으로 간주하겠다고 말이지.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다쓰는 불려온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바론에게 위협하듯 말했다.
짜식! 저 리치 상인은 어림잡아도 백 살은 넘었을 텐데 조금도 거리낌 없이 반말이네.
겨우 세 살 위인 나한테 반말한 거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만.
어쨌거나 지금은 잘하고 있는 거지. 이 리치 상인을 강하게 압박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니까.
다쓰의 부하 가드인 것처럼 옆에 서 있던 나는 넌지시 거들었다.
“가드장님, 이거 곤란한데요. 이곳의 상거래 질서를 위반하면 입점 상인이라 해도 대가를 치르고 우리한테 배상을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도리어 내가 뭘 잘못했냐며 뻗대고 있으니 말이죠.”
서슬 퍼런 어조로 말을 마친 나는 옆에 서 있는 란슬링의 옆구리를 툭 쳤다. 공포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라는 신호였다.
그러자 란슬링도 그 길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언성을 높였다. 초록색 타액을 비 뿌리듯 우리 세 사람에게 마구 튀겨 대면서 말이지.
“그렇습니다. 쉬익! 우리 딥 나잇 마켓의 질서를 위협하는 입점 상인들은 가차 없이 체포하여 인두로 지지는 고문을 하고 능지처참에 전 재산 몰수, 그리고 가차 없이 삼족을 멸하라고 마스터께서 누차 강조하셨습니다. 쉬익! 그러니 이번에 이자를 시범 케이스로 한번…….”
허억!
인두 고문에다가 능지처참에 삼족을 멸해? 란슬링 이 자식이 돌았나. 딥 나잇 마켓 마스터가 무슨 대륙을 다스리는 황제라도 되는 줄 아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걸 도우랬지, 말도 안 되는 뻥을 마구 치랬냐?
란슬링의 오바에 당황한 다쓰는 황급히 바론에게 질문을 던져 화제를 바꾸었다.
“훗! 그건 말이 좀 과하군. 어쨌거나 바론 당신이 정상적인 상행위를 하지 않아 이곳 운영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오. 그것을 어떻게 보상할지 들어 보고 싶은데?”
“아니, 제가 여기 딥 나잇 마켓 운영에 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바론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의문을 표했다.
모르겠냐? 하긴 모르는 게 정상이고 알면 황당한 거지.
30분 전이었다.
난 다쓰에게 지시했다.
딥 나잇 마켓에서 물건 파는 상인들 중에 케파추아라의 눈물을 가진 자를 급히 수배하라고 말이지.
다쓰는 그 용액을 가진 상인이 리치 바론이라는 걸 알아내서 즉시 이곳에 불러온 거다.
즉, 우린 지금 바론으로 하여금, 자신이 가진 케파추아라의 눈물을 자진해서 헌납하도록 만들 작정인 거다. 그렇게 하려니 공갈 협박은 물론, 없는 죄라도 마구 만들어 뒤집어씌워야 할 판이다.
꼭 그래야 되냐고?
아니, 그러면 우리가 그냥 케파추아라의 눈물 주쇼, 그러면 순순히 내놓겠냐고.
그렇다고 그 비싼 걸 살 돈이 나한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근데 바론을 보고 있자니 좀 양심의 가책이 되긴 하네. 리치치고는 상당히 선량한, 아니 선량하다 못해 멍청하고 얼빵해 보이기까지 하는 저 표정 좀 보라지.
저런 순진한 사람……. 아니, 순진한 리치를 물 먹여야 하다니…….
그러나 미안해지려는 나와는 달리 다쓰는 책상을 탕탕 두드려 가며 사정없이 바론을 몰아붙였다.
“이것 참. 당신 말로 해선 안 되겠구만! 지금 당신이 여기서 팔고 있는 게 뭔지 말해 볼까? 엘프 사회에서 존경받는 여성 하이엘프 루아넬이 입었던 팬티 20점, 주신 이르하임을 섬기는 성황청 대주교의 정부인 비넷이 착용하고 다니던 브래지어가 14점, 스타킹이 30점, 그리고 대륙의 최고 미인 여섯 명 중 하나인 엘카니아 왕국의 셀라인이 즐겨 입던 비키니와 슬립, 거들 20점에다가…….”
음, 이것 참.
그러니까 이 리치 상인은 지위가 높고 미모를 자랑하는 여자들이 입던 속옷과 수영복, 스타킹등을 전문적으로 입수해서 팔아 왔구만.
이른바 미녀 속옷 전문 마니아들에게 말이지. 리치치고는 취미가 아주 고상하고 첨단을 달리네. 마구마구 존경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다쓰의 다그침에 바론은 퀭한 눈 부위를 껌벅거리면서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