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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14화)
Part 6.변태 팰러딘(3)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풍기 문란에 해당되나요? 하지만 저는 동일한 품목으로 이미 세 번째 딥 나잇 마켓에서 좌판을 개설한 건데요? 문제가 있다면 첫 번째 참여했을 때 저의 입점을 거부하셨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분명히 맞는 말이다.
사실 이 인간이……. 아니, 이 리치가 취급하는 품목은 바깥 세상에서 정상적으로 팔기에 문제가 되는 건 분명하다.
하이엘프라든가 성황청 대주교의 정부, 또는 엄청 팬이 많은 대륙 최고 미인의 한 명, 그것도 잘나가는 왕국의 공주가 입던 비키니와 속옷을 판매하는 건 심각한 후환을 초래할 가능성이 컸다.
그녀들이 지닌 권력도 겁나지만 연예인 떠받들 듯 그녀들에게 열광하는 사내놈들 숫자가 엄청나니까 말이지.
속옷 주인인 그녀들에게 보복당하기 전에 그녀들의 팬들한테 맞아 죽기 딱 좋다는 거지.
하지만 딥 나잇 마켓은 어차피 어둠의 시장이다. 온통 장물에 도굴품에 사회의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범죄성 상품들이 득시글거리며 거래되는 곳이다. 또 손님들도 그런 물건들을 노리고 오는 판이라 이 리치 상인의 엉큼한 아이템들만 새삼 문제 삼는 게 웃기는 소리긴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아, 그렇군! 우리가 실수한 것 같으니 나가서 계속 물건 파쇼!’하고 이 리치를 그냥 돌려보낼 순 없는 일이다.
돌려보내긴커녕 어떻게 해서라도 나쁜 놈으로 몰아붙여야 한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미안한 속마음을 누르며 나는 다쓰에게 ‘동정하지 말고 계속 밀어붙여!’라는 눈빛을 던졌다.
그러나 내가 일부러 눈짓할 필요도 없었다.
다쓰는 한심하고 가엾다는 듯 바론을 째려보더니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한 모금 피우더니 훅 연기를 내뿜었다.
얼굴에 담배 연기를 뒤집어쓴 바론의 두 눈이 안개 속의 등불처럼 황량하게 빛났다.
쩝, 역시 해골바가지는 섬뜩하다니깐.
“이봐, 바론. 당신 말은 언뜻 보기엔 맞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아냐!”
“전혀 아니라뇨?”
“당신의 입점을 허가했던 건 그 속옷과 비키니들의 주인들이 누군지 몰랐기 때문이야. 그냥 대충 잘나가는 여자들이 입던 물건인 줄만 알았단 얘기지.”
“잘나가는 여자들 맞는데요? 하이엘프라든가 대주교의 정부, 대륙 최고 미인인 셀라인 공주 등등…….”
“그러니까 바로 그 여자들이 문제란 거야! 그 여자들 중 한 사람은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이었어. 근데 그 여자가 입던 속옷을 내다 팔아? 당신은 거기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한 거야!”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될 여자라니, 그게 누굽니까?”
바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다쓰는 진짜로 몰라서 묻냐는 듯, 험악하게 인상을 쓰면서 째려보았다.
그 서슬에 해골바가지 바론도 움찔했다.
녀석, 협박할 때의 분위기를 아주 잘 잡는구먼. 저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팰러딘치곤 참 속이 시커먼 놈 같단 말이야.
어쨌거나 다쓰는 더 말할 가치도 없지만 인생이 불쌍해서 말해 준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후후훗! 그게 누구냐고? 당신이 팔던 속옷 주인들 중 한 여자가 밤의 제왕인 우리 딥 나잇 마켓 마스터의 여자라 그 말이야. 이젠 알겠나? 우리 마스터의 여자가 입던 속옷을 팔아서 돈 챙기는 놈이 있다는 게 우리 마스터의 귀에 들어가면 그 즉시 당신은 죽은 목숨이야!”
“헉! 그, 그럴 수가…….”
바론은 기겁을 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몸을 떨었다.
리치가 수줍은 십대 소녀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라니 거참, 안 어울리네.
“그건 정말 몰랐습니다. 정말입니다! 근데 도대체 제가 파는 속옷 임자 중에 도대체 누가 딥 나잇 마켓 마스터의 여자인 겁니까?”
“돌았나. 내가 그걸 말해 주게? 그거 알려 주면 당신은 그 가벼운 주둥이를 나불대며 이곳 상인들에게 발설할 테고 결국 온 세상에 소문이 다 날 거 아닌가? 그럼 그 여자는 딥 나잇 마켓 마스터의 숨겨 놓은 정부라는 소리에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탈모증에 걸려 대머리가 되거나 폭식증에 빠져 체중이 두 배로 증가해서 자살을 기도할지도 모를 일이지. 그렇게 되면 난 자네 목을 따서 책임을 물어야 할 걸세. 진짜로 그렇게 되고 싶은 건가?”
“…….”
다쓰의 말에 바론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거참, 멀쩡한 인간도 아니고 리치한테 이승을 하직하고 싶냐는 협박이 말이 되는 건지 모르겠네.
다쓰한테 들은 이야기지만 딥 나잇 마켓 마스터는 밤의 세계에서는 엄청난 거물이라고 했다. 딥 나잇 마켓의 성격상 뒤가 구린 물건, 장물, 도굴품은 물론 밀수와 노예거래에도 손을 대고 있고 암살 청부도 맡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니 그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은 죽으려고 마음먹은 다음에나 하는 게 좋다는 건 자명했다.
그리고 그런 밤의 세계의 거물과 애인 관계라는 게 알려진다면 아무리 권력이 있는 여자라도 치명적인 타격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게 사실은 순도 100%의 헛소문이라고 해도 말이지.
울상이 된 바론은 하소연하듯 항의했다.
“그럼 어쩌란 겁니까. 제 상품들을 모조리 폐기 처분하라구요? 그건 곤란합니다. 가진 자본을 모조리 털어서 구입한 거란 말입니다! 그냥 그 여자가 누군지만 알려 주세요. 그 여자분 속옷만 판매 물품에서 빼면 될 일 아닙니까?”
바론의 말에 다쓰는 고개를 갸웃하며 잠깐 고민하는 척했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렇긴 하군. 당신을 알거지로 만들어서 우리한테 딱히 득이 될 건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 대가 없이 달랑 그 속옷 주인의 이름을 알려 주고 그것만 압수하려니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고……. 이렇게 하면 어떻겠나?”
“뭘 어떻게 하는데요?”
“사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내가 꼭 필요한 게 있거든. 그러니 그걸 나한테 양도하게. 그러면 난 당신한테서 그 여자 속옷만 압수하고 더 이상 당신의 장사를 문제 삼지 않겠네. 즉, 우리가 서로 윈윈하게 되고 모두 다 해피해지는 거지. 어떤가, 내 생각이?”
그 말에 바론은 고민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가드장님께서 필요하신 게 뭔데요?”
“케파추아라의 눈물이라는 건데……. 가지고 있을 테지?”
“헉! 그건 곤란합니다. 제가 그걸 입수하느라고 얼마나 애를 먹었는데요. 구하기도 엄청 어려워서 그걸 드리기는 정말로 어렵습니다.”
“그으래? 절대로 안 된단 말인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오오오? 그럼, 이야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알면 되겠나? 내가 다시 언성을 높여야 말을 알아먹겠는가 말이야!”
바론의 완강한 태도에 다쓰가 다시 삭막한 표정으로 을러댔고 나와 란슬링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가드장님. 그냥 이 사람의 상품을 모두 압수하죠. 알거지가 되든 말든 우리하곤 상관없잖아요. 시간도 없는데 빨리 결정하시죠. 사정을 봐주겠다는데도 본인이 배 째라고 나오면 우린 그냥 원하는 대로 배 째 주면 되잖습니까. 아니지. 배는 우리 딥 나잇 마켓 마스터께서 파견하는 어쌔신들이 째 주면 되겠네요. 그 친구들 솜씨가 어찌나 깔끔한지 한 번 째면 영구히 봉합 불가능이라고 하던데……. 걸어 다닐 때마다 배에서 내장이 줄줄 흘러내리는 리치라……. 그것도 아주 인상적이겠는데요?”
“쉬익! 그럴 거 없이 그냥 능지처참에 삼족을 멸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쉬익!”
우리 셋이 마구 떠들며 악을 쓰자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바론은 차마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이번 장사를 망칠 순 없으니 케파추아라의 눈물을 드리죠. 그러니 딥 나잇 마켓 마스터의 여자라는 분을 알려 주십쇼. 그분의 속옷만 내어 드리겠습니다.”
결국 백기를 든 바론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품속에서 케파추아라의 눈물이 담긴 투명한 유리병을 내놓았다. 떨리는 손으로.
나는 날름 그 병을 집어 들었다.
“이건 제가 보관하겠습니다. 가드장님!”
“그렇게 하게.”
- 케파추아라의 눈물 -
대륙에 악명이 자자했던 리치 케파추아라가 제조했다고 전해지는 마법의 용액. 각종 무기와 아이템에 이 용액을 이용해서 보강해 주면 마법력을 크게 보강해 줄 수 있다 그 외에도 이 용액이 있으면 매우 특수하고 희귀한 포션을 만들 수 있다.
팡파르 비슷한 음향과 함께 설명 창이 떠올랐다.
드디어 케파추아라의 눈물을 구했다는 기쁨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물론 이거야 중간 과정에 불과하고 최종 목적은 조카 재경이를 찾아서 현실로 데려오는 거긴 하지만.
근데 갑자기 경쾌한 음향이 울리더니 다시 설명 창이 떴다.
어라? 이건 뭐지?
스토커 전용 스킬이 생성되었다.
공갈 협박 스킬 생성. 점수 5.
잔머리 스킬 생성. 점수 3.
공갈 협박 스킬은 신사적인 태도를 잠시 외출 보내 놓고 협박과 공갈로 목적을 달성하면 늘어난다. 점수가 너무 높아지면 깡패로 전직이 가능하다. 단, 이 스킬의 점수가 너무 높아지면 상점이나 식당에서 쫓겨나는 부작용이 있으니 적당히 올리는 게 좋을 거다. 물론 인생 막가고 싶다면 신경 쓸 거 없다.
자신이 직접 안 나서고 남을 움직여서 목적을 달성하면 잔머리 스킬이 늘어난다. 점수가 크게 높아지면 사기꾼으로 전직이 가능하다. 단, 이 스킬의 점수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성직자 계열의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일이 늘어날 거다. 신과 친하게 지내기 싫거든 신경 쓰지 말든지.
“으음…….”
내 입에서 비명 같은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스토커의 전용 스킬이 공갈 협박, 그리고 잔머리 스킬이라니.
현자 아리우스가 말한 게 이거였나?
치사하고 음침하고 기분 나쁜 직업인 스토커. 여러 직업들에서 기분 나쁘고 손가락질받는 장점들만 골고루 갖춘 직업이 스토커…….
이것도 스킬은 스킬이니 앞으로의 여정에 조금은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찝찝하군, 젠장할…….
“흐흐흐…….”
내가 그렇게 스토커라는 직업이 갖는 재수 없음에 치를 떨고 있는데, 다쓰 녀석이 실성한 듯 좋아 죽는 웃음을 흘렸다.
스윽 뒤를 돌아보니 바론은 이미 내놓을 거 다 내놓고 나간 뒤였다.
근데 다쓰 이 자식은 뭘 주워 들고 저리 좋아하는 거지? 아니, 저건…….
“다쓰!”
“흐흐흐흐흐흐.”
“야! 다쓰!”
“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다쓰, 너 죽을래? 일부러 안 들리는 척하는 거지?”
“뭣! 일개 가드 주제에 가드장에게 감히 반말을! 엇, 아니지. 우영 형님, 왜 그러십니까?”
좀 전에 연극하던 서로의 직위로 착각한 건지 두 눈을 부라리던 다쓰는 그제야 미소, 아니 썩소를 지어 보였다.
손에는 야시시한 핑크 빛 헝겊 쪼가리를 든 채로 말이다.
“너 손에 들고 있는 거 뭐냐?”
“뭐긴요. 엘카니아 왕국의 공주 셀라인 공주의 브래지어하고 스타킹이죠.”
“바론한테 딥 나잇 마켓 마스터의 숨겨 놓은 애인이 그 여자라고 구라치고 받아 냈구만. 근데 다른 여자가 아니고 왜 하필 셀라인 공주냐?”
“…….”
내 질문에 다쓰는 말없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그 핑크 빛 헝겊 쪼가리들을 소중하게 보듬어 안았다.
어절씨구리. 아주 두 볼까지 발갛게 복숭아처럼 물들이고 있네?
참 가관이로세. 백발에 하얀 턱수염을 단 걸로 봐선 육십 먹은 노인이라고 해도 어울릴 녀석이 10대 소년처럼 수줍어하는 꼴이라니.
“흐흐흐흐흐. 왜긴 왜겠습니까. 내가 그 여자를 흠모하기 때문이죠. 사실 그 여자 속옷을 구입하려고 저금까지 하고 있었는데 우영 형님 덕분에 공짜로 손에 넣게 되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얼씨구, 어째 그렇게 열심히 바론을 닦달하면서 협조를 잘하는지 의아했는데 흑심이 따로 있었구만.
하긴 속이 시커먼 녀석이 자진해서 그렇게 적극성을 띨 때는 뭔가 바라는 게 있어서였겠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나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그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