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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15화)
Part 6.변태 팰러딘(4)


뭐, 이해는 한다.
하지만 시뻘건 대낮에 남들 보는데서 여자 속옷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고따위로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건 좀 곤란하지.
생판 남이면 관계없지만 내 파티의 일원인 한은 말이다.
“다쓰 네가 셀라인 공주를 흠모하든, 그녀가 입던 스타킹과 브래지어를 흠모하든 그건 상관없는데 아무데서나 그 천 쪼가리 주물럭거리지 말고 집어넣어라. 괜히 변태라는 거 티 내지 말고.”
“뭐요? 변태! 아니, 제가 왜 변탭니까!”
“어쭈! 이게 두 눈을 부라리고 언성을 높이네? 날 깍듯이 형님으로 받들어 모시겠다고 약속한 건 까맣게 다 잊었냐? 너 그냥 여기서 계속 근무하는 게 좋겠다. 괜히 나 따라다닌다고 사표 쓰지 말고.”
“…….”
내 말에 다쓰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셀라인 공주의 속옷을 집어넣었다.
장사 잘하고 있는 상인의 물품을 협박으로 강탈한 거니 어서 이곳을 뜨는 게 그로서도 좋았으니까. 여기서 더 뭉거적거리다가 행여 이 일이 소문나서 딥 나잇 마켓의 상부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게 뻔하니까.
“알았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저더러 따라오지 말라느니 계속 여기서 천년만년 뭉개고 있으라느니 그런 말만은 하지 말아 주십쇼!”
“그런 말 듣기 싫으면 잘하든지.”
“쉬익! 근데 우영. 다쓰는 여자 브래지어하고 스타킹이라도 생겼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 주냐?”
란슬링이 우리들의 대화에 갑자기 끼어들며 불만을 토했다.
근데 란슬링 얘는 가만있다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람? 저놈의 녹색 파편, 아니 녹색 침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튕겨 대면서 말이지. 그나마 입 다물고 있을 때는 좀 살 것 같았는데.
“너도 여자 속옷이 탐나냐? 그렇게 안 봤는데 너도 다쓰하고 같은 과였냐?”
“쉬익! 뭐라고! 도대체 날 뭘로 보고 그러는 거냐! 내가 어딜 봐서 여자 속옷 따위를 원할 사람으로 보이냐! 난 그딴 건 줘도 안 가진단 말이다. 쉬익!”
“그래? 그럼 뭐가 필요한 건데?”
“여자 핸드백이 필요하다!”
“…….”
뭐 이런 자식이 다 있담. 뭔가 그럴 듯한 걸 요구할 것처럼 폼 잡더니만.
“그러냐? 여자 속옷보다는 아주 쬐끔 낫지만 여자 핸드백을 원하는 시점에서 너도 과히 노멀이라고 할 수는 없겠구나. 근데 나 지금 가진 돈 없으니 니가 알아서 구하든 말든 해라.”
“무슨 헛소리냐. 쉬익! 내 사촌 동생 시체를 찾게 해 달라는 거다. 고향인 롱 테일 스왐의 삼촌에게 넘겨 드려야 한단 말이다. 쉬익!”
엉?
아, 그러고 보니 하프 오우거한테 당해서 핸드백이 된 그 토벨이라는 사촌 말이로군.
하긴 핸드백으로 변신했을망정 시신이라도 수습해서 고향의 부모에게 전해 주는 게 사촌된 도리겠지.
가만있어 보자. 그러면 그 하프 오우거를 협박해서 핸드백을 내놓게 해야 하는데……. 핸드백을 사는데 쓸 돈은 없으니까…….
이것 참……. 별로 달갑지 않은 공갈 협박 스킬이 또 늘게 되겠구만.
그렇다고 단둘뿐인 파티원 중 한 명이 원하는 강력하고 절실한 요구를 묵살할 수도 없고.
쩝! 어쩔 수 없지.
내가 좀 망가지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챙겨주는 수밖에.
나는 다쓰와 란슬링을 데리고 하프 오우거의 좌판으로 향했다.



Part 7.막가는 파티원들(1)


“아함! 잘 잤다!”
난 두 눈을 비빈 다음 침대 옆에 놓여 있던 물컵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가상현실 게임 이케루스에서 실컷 돌아다니다가 로그아웃을 하고 나오자 너무 졸려서 세상 모르고 잤던 거다.
“가만있어 보자. 지금이 도대체 몇 시인 거지?”
흐릿한 눈으로 벽시계를 보니 큰 바늘이 10을 가리키고 있었다.
“허억! 벌써 10시? 덴장 늦었잖아!”
난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고는 이빨을 닦는둥 마는둥 한 다음 재빠르게 옷을 주워 입었다.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늦잠을 자다니.
대충 옷을 걸친 다음 머리에 빗질을 하고 부리나케 집을 나섰다.
거리에는 부산하게 오가는 차들의 소음이 요란했고, 해는 이미 충천에 걸려서 따가운 햇살을 거리에 뿌려 대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재촉해서 약속 장소인 카페로 들어섰다.
“이우영 씨, 여깁니다!”
“안녕하세요, 조 부장님. 제가 약속을 정해 놓고서 늦게 나와 죄송합니다.”
“뭐, 고작 20분 늦은 걸 가지고 그러세요. 괜찮습니다.”
왁슨 시스템의 조 부장은 대범하게 대꾸하며 음료수를 주문했고 우리는 그것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씨가 더워지네요. 철에 비해 더위가 빨리 오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제 초여름이니까요. 지구 온난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탓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번 여름 휴가로 하와이로 가서 실컷 놀고 올 생각입니다. 하하하.”
“그렇군요. 이렇게 지구에 이상 기온이 생길 정도로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데 조카 재경이는 아직도 게임 속에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 참…….”
“…….”
내가 재경이 이야기를 꺼내며 슬쩍 눈시울을 적시는 척하자 여유롭던 조 부장은 뜨끔해하는 기색이었다.
여유 있는 건 좋지만 너무 여유 있어 보여서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잖냐고.
누구는 조카를 구하려고 게임 속에서 발바닥에 땀나게 고생하고 있는데 하와이 휴가라고? 뭐, 솔직히 말하면 나도 게임을 즐기면서 하고 있긴 하지만…… 흠흠…….
“네, 거듭 드리는 말씀이지만 조카분 일은 우리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됐어요. 일부러 사과를 받으려고 조 부장님을 뵙자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럼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신 건지.”
내 말에 조 부장은 궁금한 표정이 되었다.
“다른 게 아니고 재경이에 관해서 왁슨 측에서 입수한 새로운 정보라든가 뭐 그런 게 없나 해서요. 그래서 뵙자고 한 겁니다.”
“네……. 송구하지만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전혀 없는데요.”
“그래요? 이케루스를 관리하는 왁슨 측 운영진이 천 명이 넘는다는데 그 인원으로도 별다른 정보가 없단 말입니까?”
나는 좀 퉁명스런 어조로 되물었다.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잘한 정보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케루스를 즐기는 유저가 백만 명 단위라서요. 천 명의 운영진 인원으로도 부족한 형편입니다. 게다가 이케루스를 구성하는 메인 컴퓨터의 인공지능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어서 우리 운영진이 제어할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많이 좁습니다. 그저 메인 컴퓨터가 폭주하지 않도록 하는 일에 급급하고 있다고 할까요?”
말을 마친 조 부장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당혹스러워하는 거 보니 거짓말은 아닌가 보네.
젠장, 그 큰 회사가 이리도 무능하다니.
“그럼, 결국 재경이를 찾는데 왁슨 측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도움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는 겁니까?”
“네……. 솔직히 말해서 그렇습니다.”
“어휴, 이것 참.”
기가 막혀서 한숨을 터뜨리자 조 부장은 황급히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이해해 주십쇼. 메인 컴퓨터나 운영진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케루스라는 가상현실 세계는 유저들에게 상당한 재미를 주고 있으니까요.”
조 부장의 말에 기분이 나빠진 나는 언성을 높였다.
“뭐라구요? 그러니까 이케루스에 유저들은 계속 몰리고 돈도 쏠쏠히 벌리고 있으니 재경이 일은 그다지 신경 쓰고 싶지 않다, 당신이 알아서 해라 그런 말씀입니까!”
“처……천만에요! 우리도 조카분의 행방에 대해 관심이 지대합니다. 특히 우리 회장님께서 각별한 관심을…….”
당황한 조 부장은 다급히 변명을 하려 했으나 나는 손을 내밀어 말을 막았다.
“됐습니다. 회장이라는 분이 아무리 관심을 보여 봐야 재경이를 찾는데 별 도움도 안 되는데 뭔 소용입니까? 차라리 저번에 조 부장님께서 황 과장님을 시켜서 메이스를 주신 거에 고마워하는 게 백 배는 낫겠죠.”
“네? 그 메이스가 왜요?”
내 말에 조 부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정말로 모르고 있었나?
“아, 저번에 주신 스토커의 메이스 말이죠. 그거 굉장히 빵빵한 아이템이던데요? 전설급 아이템이던데 게임 시작 단계에서 그런 물건을 손에 넣을 줄은 몰랐습니다. 덕분에 게임을 해 나가는데 꽤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것만은 조 부장님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난 진지하게 말했으나 조 부장은 상당히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전설급 아이템이라구요? 호, 혹시 그 무기 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설명 창 뜬 거 보니까 1,500골드로 되어 있던데요?”
“허억! 실수다!”
조 부장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비명을 질렀다.
덕분에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보았다.
조 부장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우영 씨. 대단히 죄송하지만 그 메이스는 돌려주셔야겠습니다.”
“뭐라구요? 아니, 지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메이스를 돌려 달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오우거 뒷다리 잘라 바비큐 해 먹는 말씀이세요?”
“황 과장이 내 지시를 받고 대충 적당히 쓸 만한 무기를 골라 드린다고 우영 씨께 드린 건데……. 그래서 감정도 되지 않은 잡템들 중에서 하나를 무작위로 드린다는 게 실수로 그만 그런 엄청난 걸 드린 모양입니다.”
“허, 참. 이보세요. 그쪽에서 몰랐건 알았건 이미 내가 잘 쓰고 있는 건데 이제 와서 도로 달라는 게 말이 됩니까? 지금 장난치시는 거냐구요!”
나는 의도적으로 언성을 높여 소리쳤다. 단단히 작심하고 메이스를 도로 빼앗으려 하는 것 같아서 나도 내 굳은 의지를 보여 주려고 한 거다.
내 완강한 태도에 당황한 조 부장은 설득조로 나왔다.
“우영 씨, 게임 회사의 운영진이 유저에게 임의로 좋은 아이템을 마구 빼돌리면 불공정 거래 행위로 간주되어 회사가 큰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적당히 좋은 아이템이면 무마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대박 아이템이면 문제가 다릅니다.”
물론 그건 나도 알지.
가상현실 게임이 국민 스포츠화될 정도로 인기를 끌자 아이템 거래도 폭발적으로 늘고 일부 회사에서는 운영진이 몰래 아이템을 빼돌려서 유저에게 팔다가 큰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일에 대한 유저들의 원성이 커지자 급기야 정부에서는 그런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제재를 엄격히 하기에 이른 것이다. 즉, 조 부장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내 입장은 다르다. 내가 어디 다른 유저하고 같은 입장이냔 말이다.
“조 부장님, 지금 하신 말씀, 왁슨이 정식으로 저한테 하는 요구라고 간주해도 됩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메이스를 돌려 드릴 테니 지금 당장 재경이를 게임 속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해 주시죠!”
“그, 그것은…….”
“왜요? 그렇게 못하시겠습니까? 그럼 저한테 그런 요구를 하시는 게 아니죠. 이보세요. 제가 지금 다른 유저들처럼 즐기려고 이 게임을 합니까? 왁슨이 제공하는 게임 서비스에 문제가 있어서 재경이가 현실로 못 돌아오는 사고가 생긴 거 아니냐구요! 그래서 내가 다니던 회사까지 쉬면서 애를 구하려고 게임을 하는 건데, 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뭐 메이스를 돌려 달라고? 지금 당장 언론사에 전화해서 이번 일이 다 알려지게 해 볼까요? 아마 상당히 볼만할 겁니다.”
내가 으르렁거리며 열변을 토하자 조 부장의 얼굴은 새파래졌다.
이게 소송 사건으로 비화되면 이케루스라는 게임의 결함 문제가 언론의 도마에 오르게 된다. 그러면 이 게임을 그만두는 유저의 숫자는 엄청날 거다. 어쩌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한 이케루스의 서비스가 중단될지도 모르지.
“아,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는데 제발 못 들은 걸로 해 주십쇼.”
조 부장은 연신 머리를 방아개비처럼 조아리며 사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좀 불쌍해져서 넌지시 말했다.
“됐으니 그쯤 하세요. 그럼 메이스 문제는 다시 거론하지 않으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럼요. 물론입니다.”
“이만 일어나야겠네요. 혹시라도 재경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시면 즉시 알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살펴가세요.”
“네, 그럼…….”
머리를 연신 조아리며 인사하는 조 부장을 뒤로 하고 나는 카페를 나섰다. 근데 어째 뒤통수가 따끔거리는 기분이라 찝찝하네.
그렇게 정중히 사죄했던 조 부장이 날 노려보고 있을 리도 없을 텐데. 쩝, 기분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