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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19화)
Part 8.스토커의 메이스를 수리하다(3)


“…….”
아무리 우겨 봐야 변태가 명태되는 건 아니라는 걸 란슬링이 확인해 주었다.
그러자 다쓰는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팬티 스타킹과 브래지어, T팬티 등을 모조리 꺼내서 들고 다니던 짐 꾸러미에 깊숙이 쑤셔 넣었다.
어이구, 이 인간아, 그런다고 세영이가 두 눈 똥그랗게 보고 있는 데서 그걸 다 끄집어내냐?
세영이는 기가 막히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휴……. 여자 속옷 마니아 팰러딘이시군요. 정말 어이가 없다니까. 보통 기사가 저래도 뒤집어 질 일인데 성기사인 팰러딘이 여자 속옷 마니아라니. 유유상종이라더니 우영 오빠의 파티원으로는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요.”
“아니, 세영아, 무슨 말이 그러냐? 내가 어딜 봐서 이런 변태하고 잘 어울린다는 거냐! 너 임마, 말이면 다 되는 줄 알아!”
내가 화가 나서 소리 지르자 다쓰도 언성을 높였다.
“우영 형님! 자꾸 저한테 변태 변태 하실 겁니까? 듣는 변태 기분이 나쁘니까 그만하시죠!”
어쩔씨구리, 이 자식이 기분 나쁘게 나를 야리면서 인상을 쓰네?
할 수 없군. 저러다가 투핸디드 소드 빼 들고 어디 한번 맞짱 떠 보자고 하면 곤란하니 그만 놀려야지.
“흠흠, 어쨌거나 아까 세영이 너한테 이야기한 대로 퀘스트에 본격 착수해야 하니 너한테 브리핑을 받아야겠구나.”
“알겠어요. 하지만 브리핑이고 뭐고 할 것도 없어요. 이곳에서 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글래스 캐슬이라는 성이 있는데 그 성주의 딸이 꽤 미인이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두 달 전에 우리 길마가 길드원 몇 명 데리고 그 성에 작업하려고 들어갔는데…….”
“잠깐! 작업이라니……. 어떤 종류의 작업을 말하는 거냐?”
“아, 오빠도 참! 우리 도둑들 본연의 작업을 말하는 거지. 뭐, 연애질하려고 그 성에 들어갔겠어요?”
피식!
도둑질을 도둑들 본연의 작업이라고 그럴싸하게 표현하는 말에 나는 가볍게 썩소를 날려 주었다.
그러는 나한테 세영이는 곱게 눈을 흘겼지만 곧 설명을 계속했다.
“성에 들어갔다가 식사를 하고 있는 성주의 딸을 우연히 보았는데 홀딱 반하고 말았어요. 그 다음부터 모든 일을 전폐하고 상사병에 걸려 앓고 있구요. 길마가 저 지경이면 우리 길드의 위상이 흔들리니까 이 퀘스트를 완수하느냐 아니냐가 우리 길드의 운명을 결정하는 거죠. 반드시 그녀와 결혼을 해야 우리 길마의 상사병이 낫고, 상사병이 나아야 우리 길드는 최강 도둑 길드로 우뚝 설 수 있다구욧!”
세영이는 말하다 흥분했는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덴장, 장가보내 주려고 이렇게 열심인 애도 있고……. 여기 길마는 참 행복하겠다.
가만있자, 말 나온 김에 길마를 한번 만나 봐야겠네.
“세영아, 그 소린 저번에도 들은 것 같으니 너희 길마 한번 만나 보자. 누군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장가보내 준다는 것도 황당하잖냐. 중매를 서든 보쌈을 해 오든 당사자를 보기는 해야 할 거 아니냐고.”
내 말에 세영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리를 길마가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길드 마스터, 전에 말한 분들을 모시고 왔어요.”
“오오…….”
세영이가 말을 끝내자마자 널찍한 방, 침대에서 끙끙 앓고 있던 거구의 사내가 벌떡 일어나 나를 덮쳐 왔다.
허걱!
기겁을 해서 피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내 섬섬옥수는 그 거한의 손에 완벽히 제압당한 뒤였으니까.
헉!
설마 이렇게 내 손을 봉쇄하고 문 뒤에 대기한 자객들로 나를 암습을…… 할 리야 없지.
아직 내가 그렇게 암습해서 죽여야 할 만큼 대단한 인물도 아니고.
난 긴장을 풀고 내 손을 잡은 미라쥬 길드 마스터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키가 1미터 90에 가깝고 팔다리가 전봇대를 방불케하는 거한이었다. 그리고 팔다리는 물론 가슴팍과 얼굴에도 송곳 같은 털이 가득했다.
동물원에 놀러 가면 무심결에 바나나를 던져 주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솟아나게 생긴 사람이구만.
“우영 님이라고 하셨죠? 꼭 부탁 드리겠습니다. 글래스 캐슬의 영애, 이사도라 양과 결혼하게 해 주시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미라쥬 길드 마스터의 명예를 걸고 약속합니다.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 꼬오오오옥 부탁합니다아아아아아!”
알았다!
알았으니까, 그 성성이 사촌 같은 팔로 날 붙잡고 흔들지 좀 마라.
아파 죽겠단 말이다.
게다가 꼴에 안 어울리게 울상을 지으며 애원하는 그 꼬라지는 뭐냐? 두 눈에 눈물까지 글썽거리는구먼.
“네, 잘 알겠습니다. 근데 팔 힘이 참 좋으시네요. 방금까지 침대에 누워서 죽네 사네 앓던 분 같지 않은데요?”
내가 팔을 어루만지며 말하자 로저는 비로소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미안합니다. 사실 그녀 생각만 하면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부하 도둑들을 지휘할 의욕도 안 생겨서요. 우영 님께서 이사도라 양과 저를 맺어 주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흥분해서…….”
“아, 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법이죠. 하하하하…….”
“이해해 주시니 기쁩니다.”
“근데 로저 님께서는 유저신가요?”
“그럼요. 당근 유저죠. 이런 큰 길드의 마스터를 어떻게 NPC들이 하겠어요? 이케루스의 메인 컴퓨터가 아무리 우수해도 NPC들의 인공지능은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NPC들은 아무래도 유저를 못 따라가죠. 새대가리들이 많다니까요.”
다쓰와 란슬링을 잠시 내보내고 단둘이 남자 던진 질문에 로저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바로는 찬성하기 어렵군.
“하지만 이 게임의 NPC들은 머리 굴리는 게 인간 뺨치던데요? 지금 내 파티원인 저 다쓰와 란슬링만 해도 NPC지만 얼마나 잔머리를 잘 굴리는지 제가 뒷골 땡겨 죽을 지경입니다.”
“그, 그래요? 하긴 이 게임이 워낙 급속하게 변화하는 게임이니……. 어쩌면 제가 상사병으로 앓아눕는 사이에 메인 컴퓨터가 더 진화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NPC들이 대폭 달라진 걸지도…….”
“어쨌거나 할수록 놀라운 게임입니다. 이 이케루스 만큼 잘 만든 가상현실 게임은 처음 보는 것 같으니 말이죠.”
“동감입니다. 그래서 저도 하루의 반을 이 게임하는 데만 보낸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하핫!”
로저는 고개를 젖히고 호탕하게 웃었다. 웃음소리에 방 안의 집기들까지 마구 진동을 했다.
이런 호탕한 인물이 여자 때문에 상사병에 걸리다니 참 안 어울리는구먼.
나는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근데 로저 님께서는 그렇게도 그 성주 따님이 마음에 드세요? 상사병에 걸려서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울 정도로요?”
“그럼요. 그런 미인은 제 평생 처음 보았…… 다고까지는 말 못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삶에서 제가 손을 뻗힐 수 있는 범위의 여자 중에서는 최곱니다. 그러니 제발 그녀와 잘되게 좀…….”
으음, 말을 들어 보니 뭔가 짚이는 게 있군.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현실에선 애인이 없으신가요?”
“제 외모를 보세요. 이 게임은 현실의 외모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게 되어 있는 거 아시죠?”
“…….”
나는 새삼 로저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에서도 이런 용모라면 당연히 애인이 있을 리가 없지. 이런 용모로 여자한테 인기 있다면 해외 토픽감이다. 동물원에 놀러 가면 고릴라 우리 쪽에서는 열렬한 반응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그래서 현실에서 불가능한 연애를 여기서 해 보고 싶은 거구만.
하긴 미리쥬 길드의 마스터라면 일개 성주의 딸내미를 노리는 게 터무니없는 일은 아니다. 비록 도둑 길드라고 해도 말이지.
그 정도로 미라쥬 길드의 명성은 높은 편이었다.
나는 로저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져 필요한 걸 모두 알아낸 다음 미라쥬 길드를 나섰다.
근데 길드 문을 나서는 순간 배웅하던 세영이가 눈을 찡긋하며 귓속말을 던졌다.
“오빠한테 쪽지 보낼 테니까 로그아웃한 다음에 만나요. 토요일에 시간 낼 수 있죠?”
뭐?
로그아웃한 다음에 만나자고?
지금이야 하는 게 게임뿐인 백수 상태긴 하니 시간이야 낼 수 있지만 세영이 왜 날 보자는 거지?
“뭐, 그러든지…….”
“알았어요. 그러면 토요일에 장소와 시간을 제가 정해서 쪽지 드릴게요. 그때 봬요!”
세영이는 우리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을 뿐이지만 다쓰는 걸어가다가 연신 뒤돌아보고 마주 손을 흔들며 얼굴이 발그스름해졌다.
웃기는 자슥! 세영이가 너한테 손 흔드는 줄 아냐?
그야말로 마음에 드는 여선생님한테 헤롱거리는 초딩 저학년 꼬마가 따로 없네.
이 자식, 이제 보니 쬐끔이라도 이쁜 여자들한테는 맥을 못 추는 놈이었구만.
넘볼 여자를 넘봐야지. NPC 주제에 유저인 여자가 가당키나 하겠냐.
하지만 유저인 미라쥬 길마 로저가 NPC인 성주 딸내미를 사모하는 거 보면 그렇게만 말할 일이 아닌지도…….
뭐 어쨌거나 재경이의 행적에 대한 정보를 미라쥬 길드로부터 확실히 제공받으려면 반드시 퀘스트를 성공시켜야만 한다.
그래서 레벨과 경험치, 스탯도 빨리 늘려야 하고. 그래야만 앞으로 게임을 해 나가는데 유리해질 테니까.
게임을 하는 게 유리해져야 재경이를 그만큼 빨리 찾아서 구할 확률도 높아질 거고 말이지.
그런고로 지금은 오로지 게임을 즐기자. 즉, 게임에 충실해야 한다 라고 난 마음속으로 재차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