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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20화)
Part 9.물방앗간과 마리사(1)


“저, 성인가?”
“흠……. 괜찮은 곳 같군요.”
“저게 글래스 캐슬인가 보다. 쉬익! 끝내주게 근사하다. 쉬익!”
나와 다쓰, 란슬링은 글래스 캐슬의 성주, 스트라스포드 백작이 다스리는 영지 안에 들어갔다.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한 글래스 캐슬은 우아한 미녀 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응? 성이면 성이지 뭔 놈의 성이 미녀같을 수가 있냐고?
아니, 정말이야.
온통 새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데다가 우아하고 날렵하게 첨탑들을 뽑아 올렸다고.
동화 속의 백설 공주가 살던 성은 아니래도 백설 공주 사촌 동생이 사는 성쯤은 되는 것 같다.
저런 성에 살고 있는 여자라면 당근 끝내주는 미인일 거라는 생각까지 든다.
우리는 한참을 성을 바라보다가 영지 내의 주점으로 들어갔다.
목도 축이고 이번 퀘스트를 어떻게 수행할지 의논도 할려고 말이지.
근데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다쓰란 자식이 거만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여기까지 오면서 먼지 좀 뒤집어썼더니 시원한 흑맥주가 마시고 싶어지는군요.”
“뭘 마시고 싶다고?”
“흑맥주 말입니다, 흑맥주! 이곳 특산품인데 보통 맥주보다 세 배는 비싸지만 아주 시원하고 맛이 끝내주거든요.”
“마셔! 마시라고. 안 말릴 테니까 아예 맥주통째로 들고 마셔도 된다. 미성년자도 아닌 놈이 그런 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내 퉁명스런 대답에 다쓰는 인상을 쓰며 불만스레 말했다.
“지금 나한테 한 푼도 없는 건 우영 형님도 아시잖습니까! 그리고 파티원들을 챙기는 건 파티장의 당연한 의무니 우영 형님이 사 주셔야죠!”
“이런 썩을! 이봐 다쓰, 너 나한테 돈 맡긴 거 있냐? 내가 왜 니가 먹을 술까지 내 돈 들여 사 줘야 하는데? 파티장이니까 파티원들을 챙겨야 한다는 뜻에서 사 줘야 한다고? 그게 무슨 효자손으로 오크 발바닥 긁다가 귀싸대기 맞고 코피 터지는 소리래냐? 내가 니들 부모냐, 직상 상사냐? 그저 파티장일 뿐이잖냐고! 말이 되는 요구를 해야 할 거 아냐! 그리고 사 주고 싶어도 지금 나한테는 땡전 한 푼 없으니까 니가 알아서 사서 처마셔!”
다쓰 녀석의 그동안의 건방짐+개김성+안하무인+뒷담화에 은근히 열 받았던 나는 총알처럼 마구 쏘아붙였다. 침까지 란슬링 뺨치게 마구 뿌려 대면서 말이지.
다쓰는 나의 격한 반응을 예상 못했던 듯 잠시 벙찌다가 피식 비웃음을 지었다.
“훗! 수중에 돈이 없으니 못 사 준다구요? 그럼 지금 내가 우영 형님의 주머니를 뒤져서 돈 나오면 어쩔 겁니까? 1실버 나올 때마다 한 대씩 저한테 처맞아 보시겠습니까?”
허걱! 이노무 자슥이!
뭐라고? 주머니 뒤져서 돈 나오면 처맞을 줄 알라고?
이 자식이 어디서 불량 고딩이 초딩한테 삥 뜯는 짓거리를 감히 나한테 하려 하다니. 내가 아무리 저레벨 유저라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도 우습게 보였던 건가. 정말이지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열 받을 대로 받은 나는 얼굴을 토마토처럼 시뻘겋게 붉히고는 다쓰를 증오에 찬 눈으로 쏘아보았다.
얼마나 울화통이 치미는지 꾹 쥔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자 란슬링이 나서면서 다쓰의 어깨를 툭 쳤다.
“이봐, 다쓰. 그만해라. 쉬익! 보고 있자니 좀 심하다. 쉬익!”
훗, 녀석. 그래도 나와 함께 있었던 시간이 다쓰보다는 많았다고 내 편을 들어주는군. 기특한 도마뱀 녀석 같으니. 앞으로는 니가 침 튀길 때마다, 더럽다면서 퍼붓던 잔소리를 하루 백 번에서 아흔아홉 번으로 줄여 주마.
“뭣! 내가 심하다고?”
“그렇다. 쉬익! 1실버에 고작 한 대씩이라니, 우영이 무슨 초딩이냐? 저 튼튼한 맷집을 봐라. 1실버에 열 대는 두들겨 패야 한다. 그래야 반성을 제대로 하고 우릴 알아서 모실 거다. 쉬익!”
“…….”
나는 잠시 벙쪘다.
이런 망할 도마뱀 자슥! 편을 들어주는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었구만. 불난 집에 물을 끼얹진 못말망정 도리어 화염병 투척을 하고 자빠졌네.
모셔? 내가 니들을 모셔야 한다고? 파티장인 내가 파티원인 너희들을?
한 놈은 머리 꼭대기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싸가지 만땅이고, 또 한 녀석은 에이리언 뺨치게 극악한 타액을 사방팔방으로 뿌리고 다니는 네놈들을?
아아……. 내가 이런 놈들을 동료라고, 한 팀이라며 믿고 다녔다는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크게 믿지는 않았다만.
기가 막히다 못해 서글퍼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래서 철퍼덕 의자에 주저앉아 지그시 두 눈을 감고 지금의 내 신세를 한탄했다.
하고많은 NPC들 중에서 어쩌다가 요따위 웃기지도 않는 놈들을 만나서 이런 수모를 당하는 건지…….
너무 기가 막혀 두 눈을 감고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다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우영 형님, 왜 그러십니까? 설마 우시는 건 아니죠?”
“아니긴 뭐가 아니냐. 쉬익! 우는 게 틀림없다. 마음 약한 우영을 울리다니 다쓰 넌 인간이 왜 그러냐. 쉬익! 앞으로는 말로 하지 말고 주먹질을 먼저 해라. 이왕 울릴 거라면 맞고 우는 게 우영 입장에서 훨씬 덜 창피할 거 아니냐. 쉬익!”
“야, 이 짜식들아!”
나는 울화통이 터져서 벌컥 탁자를 뒤엎으며 주점이 떠나갈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야, 이 오크 발싸개에 묻은 바이러스만도 못한 짜식들아! 니들 죽어 볼래? 막가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따구로 나한테 개겨도 되는 거냐? 명색이 파티장인 나한테 이따구로 함부로 굴어도 되냐고. 내가 니들 장난감이냐? 사람을 이렇게 참혹하게 놀려 먹어도 되는 거냐고! 이 XXXXXXXX하고 XXXXXXXX하며 XXXXXXXXX같고 XXXXXXXX보다도 못한 XXXXXXX 짜식들아!”
열 받을 대로 받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민망한 욕설을 폭포수처럼 퍼부었다.
두 녀석은 나의 격한 반응에 처음엔 움찔하더니 이내 비웃음을 지었다.
“훗, 그래서요? 우리가 그렇게 막가니 뭘 어쩌시겠다는 겁니까? 억울하면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한번 보여 주시죠?”
투핸디드 소드를 슬그머니 무릎에 올리며 다쓰가 말했다.
그리고 란슬링은 가지고 다니던 대거를 슬그머니 움켜쥐네?
이것들이 이자리에서 나하고 한판 벌이겠다는 생각인가 보다. 그것도 치사하게 둘이 합세해서 2대 1로 나를 두들겨 팰 모양인 것 같다.
아니…….
저 살벌한 표정들을 보니 날 한두 대 패는 걸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군.
어쩌면 완전히 담가 버린 다음에 땅에 파묻을지도…….
좋다!
이렇게 된 이상 가만있을 수 없지. 나도 더 이상 참지는 않겠다!
분노한 나는 호쾌하게 소리쳤다.
“좋다! 지금 당장 니들에게 보여 주지! 내가 흑맥주를 못 살 것 같냐? 나도 한다면 하는 놈이란 말이다. 이봐, 웨이터! 여기 흑맥주 가져와! 한 병이 뭐야, 적어도 세 병은 가져와야지! 빨랑 가져오라고. 차갑게 된 걸로 가져오는 거 잊으면 안 돼! 오징어 말린 거하고 땅콩하고 과일도 가득 내오고!”
“…….”
“…….”
내가 자리에 도로 앉으며 번개같이 주문을 하자 두 녀석은 어이없어 하다 피식 비웃더니 무기를 집어넣었다.
뭐라고? 한심하다고? 쪽팔리잖냐고? 인간이 왜 그렇게 사냐고?
그럼 내가 이 자식들한테 넝마처럼 두들겨 맞고 게임 로그아웃당하면 좋겠냐?
치사하고 비겁해도 어쩔 수 없다. 강한 놈이 끝까지 살아남는 게 아니고 끝까지 살아남는 놈이 강한 거니까. 그러기 위해선 당장의 쪽팔림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물론 언젠가 요 녀석들한테 그 쪽팔림을 고스란히 되돌려 줄 테다!
나는 겉으론 실실 웃으면서 속으로 이를 아드득 갈았다. 젠장…….
“여기 흑맥주하고 과일 가져왔어요!”
여종업원이 탁자에 흑맥주와 과일을 내려놓았다.
엉?
근데 다쓰 이 자식이 왜 갑자기 두 볼이 발그스름해지는 거지?
이 자식이 저러는 건 여자 속옷 만지작거릴 때하고 또 하나는…….
나는 탁자에 맥주잔을 내려놓는 여종업원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우훗!
상아 같은 피부에 두 눈은 보석처럼 빛나고 코는 정교하게 조각한 듯한 미인이었다.
게다가 허리는 낭창낭창하고 몸매는 팔등신 쭉쭉빵빵이로군. 쭉 뻗은 다리가 허벅지까지 훤히 드러나는 미니스커트에 풍만한 앞가슴이 반쯤 드러난 유니폼 덕에 그녀의 섹시한 몸매를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쓰 이 자식이 맛이 갈 만도 하네.
“못 보던 분들인데 이곳에는 처음이신가요?”
여종업원은 과일 접시를 내 앞에 놓으며 슬쩍 윙크를 했다. 다쓰와 란슬링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이지.
그 동작이 어찌나 매력적인지 하마터면 침을 흘릴 뻔했다.
훗!
매력이 너무 심하게 넘쳐서 주체를 못하는 놈은 어디를 가나 여자가 꼬이는구먼.
“네, 이곳은 초행입니다. 글래스 캐슬에 볼일이 있어서요. 근데 뜻밖에 아가씨 같은 미인을 보니 눈이 부셔서 장님이 될 것 같군요. 이 주점에 자주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치솟는데 성함 좀 알 수 있을까요?”
“어머머머! 짓궂으셔! 처음 대하는 여자의 이름을 대뜸 물어보시다니∼ 지금 저한테 작업 거시는 거죠, 그렇죠? 하지만 어림없어요. 그런다고 제가 제 이름이 마리사고 키가 172cm고 쓰리 사이즈가 33-24-34며 저쪽에 보이는 오두막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거하며 당신 같은 미남이 이상형이라는 것, 그리고 저녁 8시 이후로는 얼마든지 데이트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걸 말할 것 같아요? 흥, 어림 없어요!”
“…….”
나는 벙찌고 말았다.
이거 강적이구만.
이 아가씨 NPC가 틀림없을 텐데 처음 보는 남자한테 이렇게 노골적으로 작업을 걸다니…….
나는 슬쩍 다쓰와 란슬링을 돌아보았다.
짜식들!
부러워 죽겠다는 기색이 얼굴에 역력하구만.
아니, 부러운 정도가 아니라 질투와 시샘이 얼굴에 따닥따닥 붙어 있는 꼴이 아주 볼 만하다.
우후후후후후훗!
지금 이 아가씨를 어찌 해 볼 생각은 별로 없다만 너희들이 배 아파한다면야 또 문제가 다르지.
나는 승리감을 만끽하면서 그녀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그리고 식용유를 한 5리터쯤 퍼마신 듯한 느끼한 목소리로 말했다.
“훗! 정말 매력적인 아가씨군요.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아가씨 같은 타입이야말로 제 이상형이라는 것, 저도 오늘 저녁 8시 이후는 완전히 비어 있다는 걸 말씀 드리면 노골적으로 작업 거는 거 같으니 그냥 입 다물겠습니다. 이거참, 유감이군요.”
“오호호호홋! 정말 그러네요. 그럼 저도 8시에 저쪽의 시냇가 옆 물방앗간에서 은밀하게 만나는 게 좋겠다는 건 말씀 안 드릴 게요. 늦게 오셔도 9시까지는 기다리고 있겠다는 것도요.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서 말이죠. 죄송하군요. 오호호호홋!”
마리사가 섬섬옥수를 내 손에 맡긴 채 수줍게 말하자 다쓰와 란슬링의 얼굴에는 질투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 얼마나 시샘이 나는지 얼굴색이 시뻘겋다 못해 검은색으로 변하누만.
으흐흐흐, 짜식들. 그래, 질투해라 질투해!
인기 없는 남자의 설움과 비애를 한껏 맛보며 자학의 구렁텅이에 빠져 괴로워하라고!
이제야 아까의 굴욕과 비참함이 조금 치유되는 기분이군.
와장창!
바로 그때 접시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우리들 앞좌석에서 던진 접시였다.
“어이, 너! 죽을래! 지금 누구 손을 잡고 있는 거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마리사한테 작업을 걸고 있냐!”
“니 눈에는 여기 있는 ‘마리사 팬클럽’ 회원들은 보이지도 않냐?”
“어디서 굴러 온 새낀진 몰라도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여기가 어딘데 그딴 개수작이냐!”
어쩌구 하면서 왁자지껄 일어나서 손마디를 꺾는 녀석들이 대략 열 명이었다.
이른바 ‘마리사 팬클럽 회원’을 자처하는 놈들이었다.
팬클럽까지 생길 정도로 이 아가씨가 마을의 인기인이었나 보군.
사실 술맛도 평범한데 이상하게 손님이 많다 했더니 그 이유가 미인 종업원 마리사 때문이었나 보다.
훗! 저런 떨거지 녀석들이 감히 나에게 시비를 걸다니 가소롭군.
“난 작업 건 일 없는데? 그저 마리사 양과 오붓한 대화를 나눌 뿐인데 왜들 열 내는 겁니까? 마리사 양, 안 그래요?”
“물론이죠. 저 사람들은 왜 시빈지 모르겠네요. 내가 언제 팬클럽 만들어 달랬나, 아주 별꼴이네요. 오호호호홋!”
마리사가 내 말에 맞장구치며 웃음을 터뜨리자 떨거지들은 더 열 받는 듯했다.
하긴 자기들이 손목이라도 잡아 볼 수 없을까 애타게 바라보는 여자가,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놈하고 다정하게 손잡고 시시덕거리는 꼴이 보기 좋을 순 없겠지.
게다가 서로 데이트할 시간이 넘친다는 둥, 밤 8시 이후에 물방앗간에서 만나자는 둥 진도가 순식간에 마구 나가는 걸 보는 심정은 더더욱 속 터질 거고.
뭐 이해는 한다.
퍼억!
“…….”
나와 마리사는 웃음을 멈추었다. 떨거지들 중 한 명이 던진 칼이 내 머리 위의 벽에 꽂힌 것이다.
웃, 놀래라!
이 자식들 이거 세게 나오는데? 날 가만두지 않겠다 이거지? 질투에 눈이 멀어 날 아작을 내겠단 말이군.
그렇다고 내가 쫄 거 같냐, 어림도 없다. 내가 나설 것도 없이 다쓰와 란슬링이 처리하면 간단…….
응! 아니, 근데 이 자식들 아예 못 본 체 얼굴 돌리고 흑맥주만 처마시고 자빠졌네?
“야, 니들 뭐하냐! 저것들이 우릴 아작낼려고 하니 어서 손봐 줘라!”
“말을 똑바로 해라. 우리를 아작 내는 게 아니고 우영 널 아작 내려는 거다. 쉬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