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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21화)
Part 9.물방앗간과 마리사(2)


“맞습니다. 우영 형님이 해결할 일에 왜 우리가 나섭니까? 형님이 저 아가씨하고 히히덕거리며 짝짜꿍했지, 우리가 했습니까? 흑맥주 맛을 음미하는데 방해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치사한 놈들!
내가 마리사하고 진도가 잘나가는 게 질투가 나서 내가 다굴당하는 걸 구경만 하려는 속셈이다. 치사한 놈들!
좋아, 니들이 그러면 나도 치사하게 나가 주지!
“그러냐? 그럼 어쩔 수 없군. 난 저 녀석들한테 죽든 살든 알아서 할 테니 술값은 니들이 내라. 난 아직 한 푼도 계산 안 했거든?”
“…….”
“…….”
그 말에 다쓰와 란슬링은 마지못한 듯 인상을 쓰며 일어섰다.
훗! 짜식들.
지들 돈 나간다니까 이제야 나서는군.
스쿠루지 영감이 싸부님 하고 달려들어 부비부비노해 댈 노랭이 짜식들 같으니.
란슬링과 다쓰가 떨거지들과 밖으로 나간 다음 비명 소리와 두들겨 패는 소리, 악쓰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조용해졌다.
그리고 둘은 손을 툭툭 털며 들어왔다. 하기 싫은 일을 했더니 못마땅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위해 주먹을 쓴 게 그리도 억울하냐, 나아쁜 놈들 같으니.
그러나 마리사는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세상에! 이렇게 강한 부하들이 있다니 우영 님은 정말 보통 분이 아니시네요?”
“후훗! 저 정도 녀석들도 해치우지 못하면 비싼 흑맥주 축내지 말고 나가 죽어야죠. 근데 이 가게의 손님들인데 제가 심한 게 아니었나 모르겠군요.”
“어머머머머! 무슨 말씀을요. 정말 잘하셨어요. 그렇잖아도 저 인간들이 툭하면 여기 와서 내가 너무 미인이라 눈부셔서 장님이 되겠다는 둥, 내가 자기들 이상형이라는 둥, 발바닥이 닳도록 자꾸 들러야겠다는 둥 하면서 치근거리는 바람에 짜증나서 미칠 것 같았는걸요.”
그……그러냐?
그런 작업 멘트는 나도 날렸는데……. 나는 괜찮고 저 떨거지들은 안 된다는 거냐?
음, 그것참.
물론 내가 매력이 넘치는 놈이고 저 떨거지들은 하품 나오는 녀석들이긴 하지만…… 여자들의 남자 차별은 좀 심하구만.

“바로 이곳이군.”
현재 시각 8시 00분.
마리사가 말한 물방앗간 앞에 도착했다.

사실은 이곳에 못 나올 뻔했다. 여관에서 이곳으로 오려고 하는데 다쓰와 란슬링이 무기를 꺼내 들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던 거다.
“엉! 니들 이게 뭔 짓이냐! 왜 이러냐고? 흑맥주도 사 줬고 해 달라는 거 다 해 줬잖냐! 근데 왜 살벌하게 무기를 빼 들고 지랄들이냐고!”
“후훗! 별거 아닙니다. 그저 우영 형님께서 딱 9시까지만 이 방에 있어 줬으면 해서 말이죠.”
“그렇다. 쉬익! 나가려면 9시 이후에 나가면 된다. 9시부터는 나가서 별빛 아래서 태극권을 하든, 발가벗고 달빛 아래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든 안 말린다. 쉬익!”
허걱, 이것들이!
지금 시각은 7시 30분이고 마리사가 8시부터 9시까지 기다린다고 했으니 9시 이후에 가면 그녀를 만날 수가 없다.
“니들 설마 내 데이트를 방해할 셈이냐? 그건 아니겠지?”
“왜 아니겠습니까? 아까 우영 형님하고 그 마리사하고 짝짜꿍하는 거 보고 얼마나 짜증났는지 아십니까? 눈꼴이 어찌나 신지 하마터면 실명할 뻔했습니다.”
“그렇다. 쉬익! 배가 아파 못 살겠으니까 우리들의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데이트 포기하고 곱게 처자라. 쉬익! 그러면 우리들의 복통도 깨끗이 나을 거다. 쉬익!”
이런 치사한 것들이 있나. 질투에 눈이 멀어서 이 지랄들이시라고?
남 잘되는 꼴은 죽음을 무릅쓰고 막아 보겠다는 아름다운 심뽀들이시구만.
그러나 내가 ‘웃기지 마라, 이것들아! 니들이 뭔데 내 데이트에 재 뿌리려고 광분이냐!’라면서 흥분하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다.
나는 어이없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후후훗! 이거참, 어처구니없네. 이렇게들 머리가 안 돌아가서야. 한 놈은 머리 꼭대기에 피도 안 말랐고 또 한 놈은 도마뱀 대가리라서 그렇다고 해도 이건 좀 심하지 않냐?”
“…….”
“…….”
내 태도에 다쓰와 란슬링은 어리둥절해했다.
“하나만 묻자 니들은 내가 정말 마리사한테 반해서 데이트하러 가는 줄 아냐?”
“물론이죠.”
“데이트가 아니면 왜 가는 건데. 쉬익!”
“이 한심한 것들아, 우리가 이 동네에 온 목적이 뭐냐!”
“미라쥬 길드 마스터의 의뢰를 해결하려고 왔죠!”
“당연한 걸 왜 묻고 자빠졌냐. 쉬익!”
두 녀석의 반문에 나는 다시 한심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우리가 여기 와서 미라쥬 길마의 구혼 상대가 있는 글래스 캐슬에 대한 정보를 들은 게 있냐?”
“…….”
“…….”
내 말에 두 녀석은 입을 다물었다.
이 영지에 들어와서 아무리 물어도 시원한 정보를 말하는 사람이 없었거든. 그저 한숨을 쉬며 ‘가엾게도’라든가 ‘참 좋은 성주님이신데 어쩌다가 그렇게 되신 건지…….’라며 탄식만 했다.
물론 세영이한테 대충 들은 정보가 있지만 그걸론 모자랐다. 더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다. 퀘스트를 성사시키기 위해선 말이지.
“근데 그거하고 마리사하고 데이트하는 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후훗! 상관이 있지. 데이트를 빙자해서 정보를 알아낼 거니까. 주점 주인이 그러는데 마리사는 주말마다 글래스 캐슬의 성주 딸내미 수발드는 알바를 한다더라. 그러니 성안 사정에는 훤할 거란 말이지.”
“그게 정말이냐. 쉬익!”
“그러니까 이 데이트는 이번 임무 달성에 필수란 말이다. 근데 니들이 질투에 눈이 멀어 내 앞을 막으면 되겠냔 거다.”
“그렇군. 쉬익! 알아……들었다. 쉬익!”
“후……. 이것 참. 어쩔 수 없군요. 하지만 가급적 데이트는 삼가고 정보만 알아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납득한 두 녀석은 비로소 나를 내보내 주었던 거다.

끼이익!
기분 나쁘게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앗간 문이 열렸다.
헉, 이거 뭐 이리 컴컴하냐? 바로 코앞도 안 보이네.
너무 어두우니 들어가기가 겁이 난다. 이 어두운 방앗간 안에서 누가 구석에 숨어 있다가 나를 덮치기라도 하면…….
물컹!
“헉!”
나는 갑자기 팔에 감겨 오는 물컹한 감촉에 기겁했지만 그게 여자의 가슴이라는 걸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리사?”
“우후후훗! 우영 님, 시간에 딱 맞춰 오셨네요.”
아, 이 여자 참, 사람 놀래게 갑자기 달려들어 내 팔을 감싸 안으면 어쩌자는 거냐고.
근데 솔직히 기분은 참 좋구만. 거기다 마리사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는 더 좋다.
하지만 지금 거기에 신경을 쏟을 게 아니지. 우선 이 어둠부터 좀 어떻게 해야…….
“마리사 씨, 근데 왜 이렇게 안이 어두운 겁니까? 일부러 분위기라도 잡으려고 불을 다 꺼놓으신 건가요?”
“아이, 그게 아니구요. 우영 님이 놀라실까 봐서…….”
“제가 왜 놀랍니까? 혹시 마리사님 지금 홀라당 다 벗고 있으신 건가요? 그래서 불을 짜안∼하고 켜서 날 놀라게 해 줄 속셈이신 겁니까? 그럼 제가 두 눈 땡그랗게 뜨고 봐드릴 테니 어서 불 켜세요.”
“어머머머멋! 엉큼도 하셔라.”
앗 따거!
이 아가씨야 옆구릴 그렇게 세게 꼬집으면 아프잖냐.
여자가 힘도 좋지, 쇠스랑으로 내 옆구리 푸욱 찔러서 헤집는 줄 알았네.
내가 농담이 너무 진했나? 그러나 마리사는 이내 목소리를 낮추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게 아니구요. 사실 이 방앗간 안에는 우영 님이 보시면 놀랄게 그득하거든요. 그거 보시고 너무 놀라셔서 여기서 달아나실까 봐 일부러 불을 꺼놓았답니다.”
뭣!
달아나?
이 안에 있는 것들을 보면 내가 놀라서 달아난다고?
이 아가씨가 불안하게 이게 무슨 소리래?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이 안에 엽기적인 살인마라든가 아주 잔악한 몬스터라도 있는 거 아냐?
아니, 그렇다면 이 여잔 날 왜 이리 오라고 한거야?
허걱!
혹시 데이트가 목적이 아니라 날 그 몬스터한테 제물로 바치려고? 그렇다는 것은 마리사도 그 몬스터하고 한패?
인간만 미인계를 사용하란 법은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마리사란 여자도 인간으로 변신한 몬스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가누면서 날 잡은 마리사의 팔을 떼놓으려 했다.
“저, 마리사 씨, 지금 소변이 굉장히 급하거든요. 그러니 잠시 나가서 물 버리고 오게 팔 좀 놔주시…….”
“아이, 이 안에 있는 걸 먼저 보셔야죠. 그럼 불을 켜도록 할게요?”
“헉! 안 돼! 안 됩니다아아아아아아아……!”
내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벽에 걸린 기름등잔에 화악하고 불이 당겨졌다.
그리고 실내에 나타난 광경!
허걱!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내 예상과는 좀 다른 광경이 방앗간 안에 가득히 펼쳐져 있었다.
방앗간에는 대형 도끼를 든 살인자도 극악한 보스 몬스터도 없었다.
바퀴벌레!
바퀴벌레들만 우글거리고 있었다.
근데…… 바퀴벌레는 바퀴벌레인데 이거 보통 바퀴벌레하고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네.
보통 바퀴벌레의 약 100배는 됨직한 크기였다. 이 정도면 웬만한 고양이하고 동일한 사이즈다. 바퀴벌레는 작을 때도 징그러운데 덩치가 저 지경이니 장난이 아니다. 근데 고양이 뺨치게 큰 이노무 바퀴벌레들이 방앗간의 바닥과 벽 사방을 뻘뻘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이거 확실히 처음 본 사람들은 충격을 받을 만한 광경이다. 거기다가 어쩐지 이상야릇한 타액까지 뿜어내고 있다. 초록색의 액체 같은데 저기에 맞으면 조금은 데미지가 있을 것 같다.
이 광경이 도대체 뭐냐는 눈빛을 던지자 마리사는 한숨을 쉬며 설명을 시작했다.
“자이언트 바퀴벌레라는 것들이에요. 사실 이 바퀴벌레들 때문에 우리 영지에서 제일 큰 이 물방앗간의 피해가 크답니다. 여기 있는 곡식을 모두 말끔히 먹어 치워 버리니까요. 근데 이 바퀴벌레들은 어찌나 크고 튼튼한지 죽이기도 어려워요. 어머, 어머머머멋! 바퀴벌레, 바퀴벌레가 나한테! 꺄악! 꺄아아아악! 죽어, 죽어! 죽어 버려! 무서워, 무서워! 무서우워어어어어어!”
갑자기 땅을 뻘뻘 기어 다니던 바퀴벌레 하나가 슬쩍 마리사의 발에 부딪혔다.
그러자 마리사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도리깨를 집어 들고 미친 듯이 바퀴벌레를 향해 신들린 듯 내리쳤다.
퍼억! 퍽! 퍽, 퍽퍽퍽! 퍼퍽 퍼퍽 퍽퍽퍽퍽퍽!
웃!
저 도리깨질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군. 어찌나 빠르게 내리치는지 도리깨가 눈에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머리를 산발한 채, 입에 거품까지 물면서 복날 개잡듯 도리깨질을 풍차처럼 해 대는 저 모습!
가만 보고 있자니 자이언트 바퀴벌레보다 이 아가씨가 더 무섭다.
마리사가 수백 번쯤 내리쳤을까 싶자 그제야 바퀴벌레는 슬그머니 몸을 돌려 구석으로 이동했다.
음, 확실히 대단한 바퀴벌레군. 그렇게 두들겨 팼는데 끄덕도 없네. 이 정도면 확실히 이것들을 죽여서 박멸한다는 건 쉽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흑, 무서워. 너무 무서웠어요. 보셨죠? 저 바퀴벌레들은 쉽게 죽일 수도 없는데다, 이 방앗간을 완전히 점거하면서 쌓아 놓은 곡식까지 먹어 치우고 있어요. 그래서 이 동네 사람들에게 큰 어려움을 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뭡니까? 저더러 이 바퀴벌레를 없애 달란 겁니까?”
“네, 사실 이 바퀴벌레를 죽이려면 보통 사람은 어림도 없거든요. 근데 오늘 우영 님의 두 분 부하를 보니 얼마나 강하던지……. 우영 님은 훨씬 더 강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그래서 우영 님께 부탁을 드리는 거랍니다. 제발 이 바퀴벌레들을 없애 주세요. 네?”
이 아가씨 알고 보니 나한테 반한 게 아니라 다쓰하고 란슬링의 주먹질에 반했던 게로군. 은근히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네.
내가 슬그머니 인상을 쓰자 마리사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물론 공짜로 해 달라는 건 아니구요. 당연히 보상을 드리겠어요. 이 방앗간의 바퀴벌레들을 다 없애 주시면 우영 님께서 원하시는 거 하나를 무조건 들어 드릴게요.”
“정말입니까?”
“아이잉∼ 속고만 살아오셨나 봐?”
마리사는 애교를 떨며, 은근슬쩍 내 팔을 더욱 힘 있게 감싸 안았다.
음, 좋다. 이 아가씨 가슴은 확실히 풍만하군…… 이 아니라 가만있어 보자. 이것도 퀘스트 의뢰인가?
띠리링!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해 주듯 경쾌한 음향과 함께 설명 창이 떠올랐다.

- 물방앗간의 바퀴벌레를 소탕하라!-
글래스 캐슬 영지 내의 물방앗간 안에는 쌓아 놓은 곡식을 모두 먹어 치우는 대형 바퀴벌레들, 일명 자이언트 바퀴벌레들이 우글거린다. 이 자이언트 바퀴벌레들을 모두 소탕해서 동네 주민들이 제대로 방앗간을 이용할 수 있게 하라.
퀘스트 등급 : 6급
기한 : 일주일
보상 : 마리사가 너의 요구 한 가지를 무조건 들어줄 거다. 단 그녀의 능력으로 가능한 요구를 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마라.
충고 : 크든 작든 바퀴벌레는 밟아 터뜨리면 기분 찝찝하긴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