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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22화)
Part 10.글래스 캐슬(1)


“구백구십오, 구백구십육, 구백구십칠!”
퍼퍼퍼퍼, 퍽퍽!
“휴…….”
메이스를 맹렬하게 휘둘러 댄 다음 이마의 땀을 쓸었다. 오늘도 벌써 3시간째였다.
이 물방앗간에서 자이언트 바퀴벌레들을 때려잡은 시간이 말이지. 날짜로 따지면 오늘이 사흘째인가…….
점심시간이 되자 방앗간의 한쪽 구석에서 마리사가 가져다준 햄과 버터, 그리고 호밀 빵으로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사방이 온통 바퀴벌레들이 빽빽한 곳에서 점심을 먹으려니 처음에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사실 처음에는 이 퀘스트를 란슬링과 다쓰를 시켜서 처리할까 생각했었다. 귀찮기도 하고 별로 귀엽지도 않은 바퀴벌레들을 상대로 열 내면서 싸우는 것도 찝찝하니까.
근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
다쓰와 란슬링이 깔보지 못할 정도로 내 힘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는 이 시점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지.
바퀴벌레라고는 해도 엄청난 크기의 자이언트 바퀴벌레들이라 메이스로 제대로 가격하지 않으면 해치울 수가 없었고 가끔가다 합동해서 공격도 하는지라 메이스를 구사하는 스킬도 늘었다.
사실 무기가 아무리 초레어 아이템이라고 해도 이용자의 레벨과 무기 다루는 실력이 너무 떨어지면 큰 효용이 없는 법이다. 즉, 초보 레벨 사용자에게 신급 아이템을 줘 봐야 그 사용자가 금방 천하무적이 되는 건 결코 아니란 말이지.
자꾸 기어오르는 다쓰와 란슬링을 화끈하게 손봐 주지 못하는 이유도 그거니까.
그래서 이 퀘스트를 내가 메이스를 다루는 능력을 대폭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삼기로 한 거다.
그리고 사흘이 지난 지금, 자이언트 바퀴벌레와의 전투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첫날에는 메이스로 서른 대를 때려야 간신히 때려잡을 수 있었던 바퀴벌레들을 둘째 날에는 열 대 정도로 해치웠고, 이제는 서너 대 정도로도 저세상으로 보내 버릴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이 바퀴벌레들도 날 거들떠도 안 보다가 지 동족들이 제법 죽어 나가자 슬슬 나에게 공격을 해 왔다. 가끔은 무리를 지어서 달려들기도 했다.
뭐 그래 봐야 바퀴벌레 주제에, 없는 이빨로 물어뜯을 수도 없고 몸통 박치기 정도지만 그래도 부딪치면 아프고 멍드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입에서 초록색의 타액을 분사하면 제법 쓰라렸다. 하지만 란슬링의 무시무시한 타액에 적응이 된 나에게 그 정도는 별 타격이 못 되었다.
“자, 그럼 다시 슬슬 시작해 볼까?”
쉭! 쉬익!
다시 바람 소리를 내며 바퀴벌레들에게 메이스를 휘둘렀다.
“구백구십팔, 구백구십구, 천!”
띠리링!
응? 이게 뭐야?
갑자기 왜 소리와 함께 설명 창이 뜨는 거지?

메이스 스킬이 상승했다. 공격 속도가 20% 빨라지고, 옵션 스킬 2 파이어 엘레멘탈의 분노를 사용할 수 있다.

오호라.
죽기 살기로 메이스를 휘둘러 댔더니만 그 효과가 나타난 거였다.
옵션 스킬 1 오우거 거시기 할퀴기는 이미 습득한 상태였고, 이제 드디어 옵션 스킬 2 파이어 엘레멘탈의 분노가 사용 가능하게 된 거다.
뿌듯한 만족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오로지 메이스 다루는 스킬을 늘리겠다는 일념으로 이곳에서 땀 흘린 결과다.
누가 한 말처럼 진정한 노력은 배반당하지 않는 법이라고나 할까. 우후후후훗!
“가만있어라. 그러면 어디 새로운 스킬을 한번 시험해 볼까?”
나는 무수한 메이스질에도 불구하고 사방 벽을 뻘뻘 기어 다니고 있는 바퀴벌레들을 향해 메이스를 쭈욱 내뻗었다.
근데 새로운 스킬을 구사하려는 순간 갑자기 방앗간 문이 열렸다.
끼이익!
“웃! 아니, 너희들이 여기는 웬일이냐?”
다쓰와 란슬링이 갑자기 나타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녀석은 자이언트 바퀴벌레들이 스멀스멀 사방에서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는 얼굴이었다.
“우영, 도대체 여기서 뭐하는 거냐. 쉬익! 바퀴벌레들하고 살림이라도 차린 거냐. 쉬익!”
“살림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니들이 여긴 어떻게 알고 왔냐?”
“우영 형님이 날마다 땀에 전 채 밤에 들어오시길래 궁금해서 뒤를 밟아 확인해 보려고 미행했습니다. 그 땀은 불순한 이성 교제를 한 뒤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을 내렸 거든요.”
“불순한 이성 교제는 무슨 얼어 죽을. 그래, 직접 보니 오해가 싹 다 풀렸지?”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여기서 바퀴벌레 사냥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 그 마리사라는 아가씨가 부탁하던가요?”
“엉? 으응……. 맞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바퀴벌레 박멸 작업을 하고 있는 거야.”
“뭔가 수상하다. 쉬익! 이렇게 힘든 일을 우리들은 빼놓고 혼자 하고 있었다니. 이건 절대로 우영답지 않은 일이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다. 쉬익!”
란슬링이 길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하는 말에 내심 뜨끔했다.
도마뱀 대가리답지 않게 제법 판단력도 좋네.
“허허헛! 짜식들아, 그게 이상하냐? 생각해 봐라. 내가 니들한테 이 일을 맡기면 니들이 군소리 없이 했겠냐? 주는 거 없이 부려 먹기만 한다는 둥, 할 짓이 없어서 고작 바퀴벌레 따위를 붙잡고 싸우라는 거냐는 둥 하면서 개겼을 거 아냐? 그 투핸디드 소드에 대거를 마구 휘둘러 대고 발광하면서 말이지.”
“…….”
“…….”
내 말에 두 녀석은 침묵으로 긍정을 대신했다.
“훗, 그래서 나는 결심했지. 내가 너희 둘을 혹사하느니 무겁고 힘든 짐을 홀로 짊어지고 가자고 말이다. 그러면 너희들도 언젠가 파티장인 나의 고충을 알아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그래서 너희들한테는 말하지 않고 매일 이곳에 와서 나 홀로 이 고독한 싸움을 계속해 왔던 거다. 즉, 어디까지나 우리 파티와 너희들을 위한 일이었다 그거다.”
내가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으면서 사뭇 숙연하게 말하자 두 녀석은 쬐끔은 감동 먹은 얼굴이 되었다.
근데 란슬링은 감동 먹은 듯하다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바라보았다.
“우영, 솔직히 말해라. 여기 바퀴벌레 다 없애면 같이 자 주겠다고 마리사가 그런 거 아니냐. 쉬익∼.”
뭐, 뭣! 뭣이라고? 이런 썩을 도마뱀 자식이 있나.
“란슬링 이 자식아. 너 날 뭘로 보고! 네 눈엔 내가 그런 거 바라고 이 짓을 하고 있을 속이 시커먼 놈으로 보인다는 거냐?”
“응, 맞다! 그렇게 보인다. 쉬익!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그게 안 보인다면 시력검사를 해 봐야 한다. 쉬익!”
“음, 그렇군. 란슬링 니 말이 맞다. 이제야 우영 형님이 왜 이렇게 열심히 바퀴벌레들을 때려잡고 계셨는지 이해되는군.”
“야, 이 자식들아! 니들 자꾸 까불래! 그게 아니라잖아! 거짓말 같으면 마리사한테 가서 물어보면 될 거 아냐! 절대로 그런 걸 바라고 이러는 거 아니란 말이야! 이 바퀴벌레 사촌 같은 것들아!”
내가 두 눈 부릅뜨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으나 두 녀석은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은 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에잇, 기분 찝찝해. 오크 똥만도 못한 자식들! 나같이 순수한 사람한테 그게 무슨 몹쓸 소리냔 말이다.
한 시간 뒤에 란슬링과 다쓰가 다시 물방앗간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거 봐라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마리사한테 갔다 왔냐? 뭐래냐? 절대 아니라지? 내가 그런 걸 요구한 적도 없고 그런 걸 요구할 사람도 절대로 아니라고 그러지?”
“…….”
“…….”
“엉? 뭐야! 니들 표정이 왜 그래? 마리사가 뭐라 그랬는데 그러는 거냐고!”
난 언성을 높였다. 이 두 놈의 자식들이 부러움과 질투, 시샘, 그리고 착잡함과 열등감, 자학 등이 어우러진 표정을 지었던 탓이다.
짜증이 나서라도 소릴 또 안 지를 수가 없군.
“도대체 마리사가 뭐라고 했냐고!”
“쉬익! 너한테 말해 주기 싫다.”
“후우……. 저도 말하기 싫습니다만 알려 드리죠. 혹시 바퀴벌레 퇴치 보상으로 같이 자자고 우영 형님이 그런 거 아니냐고 우리가 물으니까 마리사 씨가 말하길 ‘어머! 뭘 그렇게 당연한 걸 질문하고 그러세요? 우영 님이 보상으로 그걸 원하시면 저는 약속대로 거기에 따라야 맞는 거 아닌가요? 저는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오호호호호홋!’이라고 했습니다.”
으음……. 이 두 녀석의 표정이 왜 이 모양인 줄 알겠군.
그나저나 좀 위험한 아가씨군. 물론 농담이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난 두 녀석을 향해 슬쩍 미소를 던졌다.
“훗! 그게 그렇게 심란하더냐? 걱정 마라. 내 너희들이 복장 터지는 꼴을 방지하는 차원에서라도 그런 요구는 절대로 하지 않을 테니까.”
“웃, 그게 정말이냐. 쉬익!”
“정말입니까? 무슨 요구든 들어준다고 했다던데 그래도 안 하실 겁니까?”
“훗! 자식들아. 지금 여자한테 신경 쓰느라고 우리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면 어쩌냐? 내가 안 한다고 했으면 안 한단 말이다!”
내가 자신 있게 소리치자 두 녀석의 얼굴에는 존경의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니 니들도 앞으론 날 제대로 따르고 내 말에 개개지 좀 말아라, 알아듣겠냐?”
“알겠다. 우영이 지금처럼 착하고 기특하게 굴면 예뻐해 주겠다. 쉬익!”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제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을 때는 말 안 해도 알아서 흑맥주 정도는 사 주실 걸로 알겠습니다. 그게 신상에 좋을 테니까요.”
뭐, 뭣! 착하고 기특하게 굴면 예뻐해 준다고? 그리고 말 안 해도 알아서 흑맥주 정도는 사 주는 게 신상에 좋을 거라고?
전혀 나를 윗사람으로 보지 않는 소리구만.
역시 이것들은 좋게 말해서는 안 된다. 내 실력이 부쩍 늘었을 때, 날을 잡아서 단단히 손을 봐 줘야 하겠구만.
난 그렇게 마음먹고 일단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며 두 녀석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사방에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들에게 두 녀석에게 쏟아부을 울화를 마음껏 풀기 시작했다!
“에이이잇! 모두 죽어 버려어어어어어!”
퍼퍽 퍽퍽! 퍽퍽퍽퍽!
스토커의 메이스가 신들린 듯 바퀴벌레들에게 작렬했다. 근데 이렇게 두들겨 패도 성질이 덜 풀리는구먼.
“어디 새로 습득한 스킬을 써 봐야지.”
나는 메이스를 쭈욱 뻗으며 마나를 움직였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파엘분!(파이어 엘레멘탈의 분노).”
쿠콰콰콰!
신난다! 화염 세례 한번 끝내주게 나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