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스토킹 마스터 1권(23화)
Part 10.글래스 캐슬(2)


“어머, 우영 님!”
물방앗간의 바퀴벌레 박멸 작업을 시작한 지 나흘째. 드디어 단 한 마리의 자이어트 바퀴벌레도 이곳에 존재하지 않게 하는데 성공했다. 단 한 마리도 말이지.
근데 마리사의 표정이 좀 미묘하네.
“저……. 우영 님. 바퀴벌레를 다 없애 주신 건 좋은데……. 물방앗간도 같이 없애 버리셨네요.”
“…….”
나는 할 말이 없어 먼 산을 쳐다보았다.
새로 습득한 메이스 스킬 파엘분을 확인도 해 보지 않고 쓴 게 실수였다. 손쓸 틈도 없이 바퀴벌레와 함께 물방앗간이 화마에 삼켜져 버렸으니 말이지. 재도 안 남고 홀라당 다 타 버렸다.
설마하니 그렇게 강한 화염 공격일 줄 몰랐다.
쩝, 인적 없는 들판에서 미리 시험을 해 보는 거였는데…….
이거참, 민망하구만.
근데 마리사와 함께 온 촌장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괜찮아. 물방앗간이야 또 지으면 되니까. 그 바퀴벌레들이 다 사라졌으니 새로 지을 방앗간은 안심하고 쓸 수 있을 테니 된 거지.”
“듣고 보니 그러네요. 우영 님 정말 감사드려요. 제가 우영 님께 부탁을 드리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촌장의 말에 마리사는 방긋 미소를 짓더니 촌장이 가 버리자 감격의 눈물까지 흘리며 내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음, 역시 이 아가씨 피부는 부드럽단 말이야.
엉!
에이, 란슬링과 다쓰 녀석, 가자미 눈을 하고 나를 째려보기는. 내가 잡은 게 아니고 마리사가 내 손을 잡은 건데 왜 날 째려보는 거냐고.
하지만 그런 두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리사는 나에게 감사의 말을 계속했다.
“제 힘든 부탁을 이렇게 성실하고 완벽하게 들어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려요. 정말이지 우영 님처럼 멋있고 훌륭한 분도 드믈 거예요. 자, 이제 저에게 소원을 말씀하세요. 약속했던 대로 무엇이든지, 무엇이든지 마구마구 들어 드릴 거랍니다아아∼앙!”
하이고……. 이 아가씨야. 그렇게 두 볼을 잔뜩 붉히고 온몸을 비비 꼬면서 말하면 저 변태 팰러딘하고 도마뱀이 또 날 의심할 거 아니냔 말이다.
난 두 녀석이 질투로 발작하는 걸 막으려고 재빠르게 말을 꺼냈다.
“내 제 소원은 글래스 캐슬에 대한 정보입니다. 성안 사정을 성주의 따님 이사도라 양을 중심으로 최대한 자세하게 알았으면 합니다.”
“…….”
엉? 아니, 이보세요, 마리사 양. 왜 표정이 싹 바뀌는 거야? 엄청나게 실망했다는 그 표정은 도대체 뭐냐고? 당신이 자꾸 그러니까 저 두 녀석이 질투와 배 아픔으로 고통스러워 하잖냐고!
뭐 쟤들이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건 사실 내가 알 바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 고소하지만……. 미라쥬 길마 장가보내 주기 퀘스트를 성공시켜야 할 중차대한 시점인 지금은 그러면 곤란하단 말이다.
“후우……. 정말이지. 뜻밖이네요. 실망했어요. 보상으로 그런 걸 알고 싶어 하실 줄은…….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약속은 약속이니까. 자, 그럼 귀 쫑긋 열고 잘 들으세요. 지금부터 말씀 드릴 게요.”

“으음……. 그렇군요.”
한 시간에 걸친 마리사의 설명이 끝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경쾌한 음향과 더불어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설명 창이 떴다.

물방앗간의 바퀴벌레를 소탕하라!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당신은 마리사가 부탁한 대로 물방앗간에서 자이언트 바퀴를 완전히 박멸해서 ‘물방앗간의 바퀴벌레를 소탕하라!’ 퀘스트를 완수했으며 그에 따른 보상도 받았다.

자, 그러면 지금 현재의 상태를 확인해 봐야겠지?
나는 캐릭터 창과 스킬 창을 연달아 열었다.

이름 : 우영
직업 : 스토커
레벨 : 20
명성 : 4 지식 : 15
힘 : 60 체력 : 35
민첩 : 25 행운 : 5
지혜 : 25 매력 : 75
HP : 100 MP : 58

공갈 협박 : 10
잔머리 : 5
무전취식 : 5
무기 수리 : 30
메이스 사용 : 100

레벨은 20으로 올라갔다. 힘이 60으로 늘었고 HP와 MP가 각각 100과 58로 증가했다. 메이스 사용 스킬이 생성되어 자그마치 100을 기록했다.
확실히 자이언트 바퀴벌레 박멸 작업의 효과는 있었다. 이 정도면 지금 당장 다쓰, 란슬링과 맞짱을 떠도 무방하지 않을까?
아니지, 서두를 건 없다. 이왕이면 완벽하게 나의 실력이 늘어난 다음에 저 녀석들을 손봐 주는 게 더 낫겠지.
후훗!
내가 미소를 머금으며 바라보자 다쓰와 란슬링은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내가 왜 그러는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모양이다.
우후후훗! 이것들아 기다려라.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마음껏 귀여워해 주마. 우후후후후훗!

“나는 이 글래스 캐슬의 성주 스트라스포드 백작이라고 하네. 마리사 양의 말을 들으니 우영 그대가 나의 고통과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해 날 만나자고 했다는데 사실인가?”
“네, 그렇습니다. 성주님.”
“흠…….”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금발의 노신사, 스트라스포드는 자세하게 관찰하려는 듯 지그시 나를 응시했다.
여기는 글래스 캐슬의 스트라스포드 백작의 방이다. 천장에는 휘황찬란한 샹들리에가 있고 침대 넓이만 한 크기의 상아로 만든 책상, 금과 은으로 도배를 한 가구들이 즐비했다.
지금 내가 대접받고 있는 이 고급 홍차의 찻잔만 해도 가만 보니 아주 가치 있는 골동품 같았다.
한마디로 이 스트라스포드 백작은 상당한 재력가임이 틀림없었다. 뭐, 이런 아름다운 성에 이 넓은 영지를 다스리고 있으면 그런 건 당연하겠지만…….

지금 스트라스포드 백작을 만날 수 있게 된 건 마리사를 통해서였다. 내가 그녀에게 글래스 캐슬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알려 달라고 했을 때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다.
“글래스 캐슬은 별다른 문제가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답니다.”
“그렇지 못하다니? 성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네, 성내에 극악한 몬스터가 나타났어요.”
“뭐라고? 극악한 몬스터가?”
난 난감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애초의 내 계획은 성안의 사람들, 특히 이사도라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알아내서 그녀에게 접근할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서 미라쥬 길마가 준비해 준 보석과 선물 공세를 퍼부어서 미라쥬 길마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켜서 둘을 만나게 해 줄 작정이었다.
그게 내 애초의 계획이었다.
그게 잘되겠냐고?
사실 잘되면 좀 이상한 거지. 소문에 듣자 하니 스트라스포드 양은 끝내주는 미인이고 미라쥬 길마는 동물원에 기거하는 게 더 어울릴 사람이니 말이다.
하지만 연애라는 건 꼭 남녀가 다 미인이라야 잘되는 건 아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이면 결혼에까지 이르는 것도 순식간에 될 수 있는 거니까.
그럼 아버지인 스트라스포드 백작은 어쩌냐고? 순순히 이 결혼에 찬성할 것 같냐고? 그건 나름대로 방법이 있다.
좌우간 첫 번째는 이사도라 양을 설득하는 거다. 그것만 되면 아버지인 백작은 두 번째 문제니까. 정 안 되면 미라쥬 길드의 모든 무력을 동원해서 위협 반 공갈 반으로 해결할 수도 있고…….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이것까지는 내 생각이 아니고 미라쥬 부길마 세영이의 복안이었으니까.
쩝, 그 녀석도 알고 보니 은근히 사악하단 말이야. 인륜지대사인 결혼을 그런 식으로 밀어붙이려 하다니.
뭐 어쨌거나 사실 여러모로 성사될 확률이 상당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걸 어디까지나 무대포 정신으로 해결하겠다고 이 퀘스트를 하고 있는 거다.
너무 무모하지 않냐고?
이 보라고.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만 하려 들면 가상현실 게임을 뭐하러 하겠어. 도저히 가능성이 안 보이고 불가능하고 무모한 일에 도전해서 부딪히고 깨지면서도 끝내는 이루고야 마는 것이야말로 가상현실 게임의 재미인 거라고.
좌우간 그건 그렇고 마리사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아주 흉폭하고 잔악한 몬스터가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났어요. 처음엔 성을 지키는 경비병들이 막으려 했지만 몬스터들의 우두머리인 보스 몬스터에게 순식간에 열 명이 칼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쓰러지자 백작님이 저항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어요.”
“그러면 지금 성은 그 몬스터들에게 점령된 상태인가요?”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번 퀘스트는 그 몬스터들과의 처절하고 피 튀기는 사투가 될 것 같은데……. 이것 참 심란하군.
그러나 마리사의 대답은 좀 뜻밖이었다.
“그런 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성을 완전히 점령하고 자기들이 글래스 캐슬에서 살 것처럼 난리를 쳤지만 보스 몬스터는 자기 부하들을 모두 성에서 철수시켰어요. 하지만 사흘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성을 찾아오고 있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왜 성에서 철수해서 보스 몬스터만 가끔 성에 들르는 건데요?”
“그게…….”
마리사는 성주가 참 안 되었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사실은 보스 몬스터가 이사도라 양을 보고 그 미모에 홀딱 반했답니다. 그전에는 성을 완전히 점령해서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고 성을 자신들의 거처로 삼으려고 했지만 미녀인 이사도라 양을 직접 보고는 그녀의 마음과 몸을 모두 다 정복하는 게 더 즐겁겠다는 판단을 내렸던 거죠. 아예 이사도라 양과 정식으로 결혼할 마음까지 먹었답니다.”
허걱!
이런 처죽일 몬스터가 있나. 몬스터 주제에 감히 인간 여자에게 흑심을 품는 것만도 괘씸한데 초미인에 백합처럼 고결한 성품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이사도라 양의 몸과 마음을 모두 정복해서 완전히 자기 여자로 만들어 즐길 마음을 먹었다고?
오! 그것참. 엄청나게 부럽…….
허걱! 이거 내가 무슨 소리야.
아, 거참……. 이상한 게임을 하다 보니 내 인간성까지 이상하게 변하는 것 같군.
그나저나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되면 미라쥬 길마 로저의 강력한 경쟁 상대가 나타난 게 아닌가 말이다.
몬스터 대 인간……. 아니, 솔직히 말하면 몬스터 대 몬스터의 경쟁이로군. 외양으로만 본다면 로저도 인간보다는 몬스터에 가깝다고 해야 할 테니까.
마리사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게 그 몬스터가 제법 인간 흉내를 내려고 한다는 거예요. 부하들을 철수시킨 다음 점잖게 스트라스포드 백작님께 이사도라 양과 결혼하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청혼을 해 왔으니까요.”
“으음……. 격식을 갖추어서 청혼을 해 왔다고? 그것참……. 몬스터 주제에 가지가지 하는군.”
“그렇군. 쉬익! 정말 꼴값에 육갑을 하는 녀석이다. 쉬익!”
내 말에 란슬링도 고개를 흔들며 공감을 표했다.
이것 참……. 이 도마뱀 대가리야, 너도 외관만 따지면 당근 몬스터거든?
“어쨌거나 그래서 스트라스포드 백작님께서는 크게 고민 중이세요. 그런 극악한 몬스터에게 따님인 이사도라 양을 줄 수는 없고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그 몬스터의 압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으니까요. 백작님은 지금 마음고생이 너무 심해서 미칠 지경이시랍니다.”
“으음…….”
나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음,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백작이 몬스터의 청혼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는 거군. 그렇다면 내가 개입해 볼 여지가 아직 있다!
그러나 서둘러야 한다. 그 몬스터의 강한 압박을 백작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는 거니까.
“마리사 양, 나를 스트라스포드 백작님께 소개를 해 줄 수 있습니까?”
“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백작님이 너무 불쌍해서 말이죠. 어떻게 해서든 백작님의 고통을 덜어 드리도록 해 보고 싶습니다. 또 그게 곧 이곳 주민인 마리사 양을 도와 드리는 일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름다운 레이디가 가슴 아파하는 일을 저는 절대로 그냥 두고 보지 못하니까 말입니다. 우후후후후훗!”
나는 다시 식용유를 양동이로 퍼마신 듯한 느끼한 말투로 주절거렸다.
하지만 마리사 양은 매우 감격한 표정이었다.
“정말이지 우영 님께서는 너무도 훌륭하고 봉사 정신이 뛰어난 분이군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우리 성주님을 도와주시겠다니……. 정말 감동했어요! 알았어요, 지금 당장 글래스 캐슬에 가서 성주님께 말씀을 드리고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