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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 (24화)
Part 10.글래스 캐슬(3)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글래스 캐슬의 성주 스트라스포드 백작과 만나게 된 거였다.
“후우……. 정말 마음고생이 심하시겠군요, 백작님. 그런 극악한 몬스터가 한 떨기 백합처럼 고결하고 아름다운 따님에게 감히 흑심을 품고 결혼을 요청하다니 말입니다.”
“크흑!”
내 말에 백작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다시 울먹였다.
“정말이지 너무도 기가 막혀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네. 그렇게 순결하고 마음 착하고 천사같이 고운 내 딸이 그런 흉악한 몬스터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니. 그 몬스터 녀석은 결혼을 끝내 인정하지 않겠다면 강제로라도 내 딸을 취하겠다고 협박까지 하고 있네.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이 성의 망루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자결할 생각이네. 그게 우리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니까.”
흠……. 결심 하난 대단하지만 정말로 그러면 곤란하지.
자결해도 내가 퀘스트를 성공시킨 다음에 해야 할 거 아니냐고.
어쨌거나 백작이 이렇게 말할 정도로 정말 그 이사도라라는 아가씨가 훌륭하고 품성 좋고 보기 드문 미녀인 건 사실 같다.
“백작님 그렇게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리사 양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니 백작님께서 뭔가 도움이 필요하신 듯해서 우리들이 이곳을 찾아온 거니까요.”
“자네……들이 도와주겠다는 말인가?”
“도움을 요청하신다면요.”
나는 말을 끝내고 슬쩍 뒤에 서 있는 다쓰와 란슬링에게 시선을 던졌다.
폼 한번 잡아 보라는 신호였다. 그러자 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들의 무기에 손을 얹고 최대한 위압적인 기세를 뿜어 보였다.
뭐, 나는 한싸움 할 것처럼 안 보인다만 이 두 녀석의 파이팅 포즈는 제법 뽀대가 난다.
“오오……. 과연 믿음직해 보이는 사람들이군. 알겠네. 내 우영 그대에게 부탁하겠네. 우리 딸아이를 제발 극악한 몬스터의 마수에서 구해 주게! 그렇게만 해 주면 큰돈으로 보답하고 그 이외에 자네가 원하는 것 한 가지를 해 주겠네!”
그렇지, 이게 바로 내가 바라던 대답이었어.
나는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물었다.
“제가 무엇을 원해도 말씀이십니까?”
“일단 금전적 보상으로는 5백 골드를 주겠네. 그밖에는 돈을 제외하고 내 능력 범위 내에서 가능한 것 한 가지를 무조건 들어주겠네. 뭐, 설마 이 글래스 캐슬을 달라거나 하지는 않을 거 아닌가? 난 이곳 주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니 만약 내가 이 성을 내주기라도 하면 폭동이 발생할 테니까 말이지. 그러나 다른 요구, 이를테면 그대가 내 딸아이와 결혼하겠다면 그건 기꺼이 들어주지. 허허허.”
허걱! 이 아저씨 이런 말까지 하다니, 나를 상당히 좋게 본 모양이군.
그래도 그렇지, 무슨 결혼 승낙을 이리도 쉽게 하냐? 금이야 옥이야 하는 딸인데 말이지.
좀 찝찝하네.
좌우간 이로써 다시 퀘스트 성립이다.
즉 더블 퀘스트가 생성된 거지. 돌 한 개로 두 마리 새를 잡는 것과 마찬가지다. 움화하하하하하하!
“알겠습니다. 백작님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여서 이사도라 양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띠리링!
경쾌한 음향과 함께 설명 창이 떠올랐다.
글래스 캐슬 성주의 딸 이사도라를 몬스터의 마수에서 지켜라!!
이사도라와 결혼하려는 몬스터를 퇴치해서 그녀의 아버지 스트라스포드 백작의 고민을 해결하고 글래스 캐슬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
기한 : 한 달
보상 1 : 500골드
보상 2 : 당신이 요구하는 것 한 가지.(단 스트라스포드 백작의 능력 범위 내에서 가능해야 하고 돈은 제외됨)
충고 : 남의 결혼을 파토내려면 당사자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안 다음에 하는 게 순서 아니냐?
퀘스트 등급 : 4급
이잉? 이건 뭔 소리래?
남의 결혼을 깨려면 결혼 당사자들부터 파악하고 하는 게 좋을 거라고?
이놈의 충고는 별 영양가가 없단 말이야. 이미 퀘스트가 주어진 다음인데 저런 충고를 해 봐야 뭐하냐고.
어쨌거나 이것으로 내 계획대로 일이 돌아가게 되었다.
짐작했겠지만 백작이 요청한 퀘스트를 완수한 다음에 이사도라를 미라쥬 길마 로저와 결혼하도록 허락하라는 요청을 할 작정이거든.
분명히 백작의 능력으로 가능한 요청이니까 거부하진 못할 거다.
고로 이제는 오로지 그 몬스터만 확실하게 없애 버리면 되는 거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생각에 내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사도라 양이 우리를 초대했다구요?”
“네, 우영 님. 이사도라 아가씨께서 자신을 구해 줄 백마 탄 기사님이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 한번 만나 보고 싶다고 해서요.”
스트라스포드 백작을 만나고 숙소로 돌아와 있는데, 마리사가 찾아와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아니, 별로 뜻밖도 아니구만. 사실 여자라면 자기를 구해 줄 남자가 등장했다는데 누군지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알겠습니다. 곧 가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럼 저는 글래스 캐슬로 가서 기다리고 있겠어요!”
“후후후훗! 룰루룰루!”
나는 휘파람을 불면서 거울 앞에 서서 옷단장 머리단장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야, 다쓰, 란슬링. 내가 이사도라 양을 만나고 올 테니 니들은 여기서 잘 놀고 있어라?”
“…….”
“…….”
엉? 이것들이 인상을 쓰네!
그럼 니들도 같이 가겠다고?
이것들아 변태 여자 속옷 마니아에다가 염산이나 다름없는 침을 사방에 튀기는 도마뱀을 달고 갔다가는 그 아가씨가 내 미모에 반하다가도 졸도할 거란 걸 알아야지.
하지만 무기에 손을 얹는 꼬라지들을 보니 내가 끝까지 못 따라오게 하면 날 죽이겠다고 달려들겠구만.
그 끝내주는 미인이라는 이사도라 양의 얼굴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겠다는 흑심들을 품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래, 가자 가! 니들이 그렇게 맘껏 나한테 개길 날도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그동안은 내가 봐주지 뭐.
“아가씨 이분들이 바로 아가씨를 구해 주겠다며 나선 그 용감한 분들이시랍니다.”
“훗!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사도라 스트라스포드 양. 저로 말하면 우영이라 하고 여기 이 둘은 저의 충성스런 부하들입니다.”
“…….”
약간 의외였다.
다 큰 처녀인 줄 알았는데 세영이보다 어리게 보이는 얼굴이다.
한 17세 정도? 하지만 몸매는 성숙하고 과연 미인은 미인이다.
훤칠한 키에 늘씬한 몸매, 그리고 금발은 길게 길러서 허리까지 늘어져 있는데 윤기가 철철 흐르는 게 눈부실 지경이다. 두 눈은 보라색의 보석과도 같았는데 도도한 기운을 가득 담고 있었다. 드높은 콧대도 역시 그녀가 명령받는 위치가 아니라 명령을 내리는 위치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근데 이 아가씨가 왜 이러나? 나를 보는 눈이 무슨 듣보잡 보듯 하는 시선인데……. 글쎄 내가 괜히 자격지심에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가?
“훗! 보아하니 귀족도 아니고 하잘 것 없는 천하디 천한 평민 나부랭이들 아냐? 날 돕겠다고 나선 건 귀엽지만 말이야. 아아, 실망했다. 난 또 끝내주는 왕자가 백마라도 타고 등장한 줄 알았네. 쳇!”
웃! 이게 무슨 소리야? 천하디 천한 평민 나부랭이라고?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서 실망했다고? 그게 지금 애써 도와주러 달려온 사람한테 할 말이냐?
난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리고 다물지를 못했다.
이사도라의 미모에 넋이 나가 침을 질질 흘리던 다쓰와 란슬링도 입을 쩍 벌리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셋이 벙찐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자 이사도라는 피식 웃으며 품에서 뭔가를 꺼냈는데……. 그것은 담배였다.
웃!
저 담배를 꼬나무는 꼴이 보통 놀아 본 솜씨가 아닌 것 같군.
“야, 마리사 뭐해! 너 뒤질래! 내가 이걸 물면 덥썩 불을 붙여야 할 거 아냐?”
“네, 아가씨!”
마리사가 재빨리 그녀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사도라는 슬쩍 나를 째려보더니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가 후 하고 연기를 허공에 내뿜었다.
으응?
저게 뭐야? 담배로 글자도 쓸 줄 아네?
저건 보통 재주가 아닌데.
아니, 근데 저 글자는…….
나는 이사도라가 담배 연기로 허공에 쓴 글자를 읽다가 상승하는 혈압에 그만 졸도할 뻔했다.
그 내용은 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