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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25화)
Part 10.글래스 캐슬(4)


― 뭘 꼬나봐! 담배빵 한번 당해 볼래?

“…….”
나는 하도 기가 막혀 마리사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녀는 민망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담배빵, 담배빵이라…….
허허, 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
백작이 고결하고 백합 같은 딸이라던 이사도라의 본성이 초불량 여고딩이었을 줄이야…….
아니, 백작같이 점잖은 중년 신사가 어떻게 딸내미는 이렇게 개차반으로 키운 거지? 거참, 이해 안 가네.
아, 정말 스팀 오르는군. 퀘스트 해결이고 뭐고 몬스터한테 된통 당해 보라고 하고 그냥 떠나 버려?
내가 이런 왕싸가지를 위해서 두 발 벗고 뛰어야 하다니.
내가 슬며시 눈에 힘을 주고 째려보자 이사도라는 피식 웃었다. 어절씨구리 하나도 겁 안 난다 그거지?
이게 정말……. 든든한 니 아버지 빽이라도 믿고 그러는 거냐? 이것아, 나도 빡 돌면 뭔 짓을 할지 모른단 말이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여길 떠나면 그만……은 아니군.
뭔 수를 쓰더라도 재경이의 행적을 알아내서 그 녀석을 구해야 하니까. 더럽고 아니꼬와도 일단 참을 수밖에.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이사도라는 다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다리를 꼬고 말했다.
“이봐 너, 귀 닦고 잘 들어! 솔직히 후줄근하고 너무도 평민스런 니들 꼬라지 보니까 니들이 그 몬스터 쫓아 주겠다고 하는 거 그냥 거절하고 니들을 먼저 내쫓고 싶어! 그냥 놔둬도 그 자식이 날 죽일 것도 아니거든?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일단 니가 우리 꼰대한테 해 주겠다고 약속한 대로 일을 진행해. 알았냐?”
“그러니까 몬스터한테서 너를 구하는 일을 예정대로 하란 말이냐?”
내가 반말로 응수하자 이사도라는 두 눈을 치켜떴다. 젠장! 꼴이 꼴 같아야 경어를 써 줄 거 아냐.
“훗! 좋아. 니가 귀엽게 생겼으니까 나한테 반말하는 거 용서해 줄게. 그래, 우리 꼰대가 시킨 대로 하라고. 사실 그 몬스터야 별 신경 쓸 것도 없지만 슬슬 집을 떠나서 다른 동네에서 한번 놀아 보고 싶던 참이었거든? 니 덕분에 한번 딴 동네 구경 한번 해야겠다.”
아, 거 말하는 거 한마디 한마디가 싸가지 없음이 철철 넘쳐흐르네. 저 끝내주는 미모에 어떻게 저따위 개차반 같은 품성이 들어앉았는지 모르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널 미라쥬 길마, 로저 같은 반 몬스터 반 인간에게 시집보내게 만드는 일에 죄책감을 느꼈다만, 이젠 아니다.
오히려 로저한테 죄책감이 느껴지누만.
좌우간 좋다.
이 못돼 먹은 기집애는 보아하니 그 몬스터든 이 글래스 캐슬이든 지 아버지 스트라스포드 백작이든 아무 관심 없고 오로지 자신의 불량 여고딩 짓을 계속 하고 다닐 새로운 무대를 찾는 데만 온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그걸 이용해서 나는 내 목적을 달성하는데 신경을 쓰면 되는 거다.
“훗! 알겠다. 이 글래스 캐슬을 떠나서 다른 곳을 구경하게 해 주지. 하지만 그러자면 나한테 제대로 협조해야 한다, 알겠냐? 그렇지 않았다간 사태가 아주 재미가 없어질 테니까, 명심하는 게 좋을 거라고.”
“…….”
내가 아주 오만하게 주절거리자 이사도라는 다시 인상을 쓰더니 노골적인 비웃음이 가득한 썩소를 날렸다.
그러자 나의 뒤에 서 있던 다쓰가 투핸디드 소드를 꺼내서 바람 소리 씽씽 나게 휘둘렀고 란슬링은 짝다리를 짚은 채 이 우아하고 멋진 방의 양탄자에 녹색 침을 퉤 내뱉었다.
이 녀석들도 엔간히 열 받았군.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런 공포+혐오스런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으니 말이지.
“알았어. 알았으니까 눈깔에 힘들 주지 말고 여기서 사라져 줘! 그 보스 몬스터는 밤 여덟 시에 오니까 니들이 그때 와서 해치워 버리란 말이야! 너무 평민스런 니들 면상들을 보고 있자니 내 귀족적인 눈이 너무 피곤해지고 짜증이 마구마구 솟구치니까 빨랑 사라져!”
“그러냐? 근데 남에게 부탁하는 말이 뭐 그따위냐. 정중히 부탁한다고 말해라!”
“뭐, 뭐라고? 이게 근데!”
“그리고 날 오빠라고 부르고. ‘오빠, 부탁해요’라고 말해 봐라. 그럼 니가 원하는 대로 일단 사라져 주마.”
“…….”
내가 다시 거만하게 말하자 이사도라는 도끼눈을 했다. 그리고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더니, 다시 담배를 한 모금 마시고는 ‘후!’하고 연기를 내뿜었다.
허공에 또렷한 연기 글자가 써졌다.
나는 허공에 써진 담배 연기를 보고는 씨익 미소 지으며 란슬링과 다쓰에게 손짓을 했다.
우장창! 빠직! 우지끈! 쿠당!
퉤!퉤!퉤! 퉤퉤퉤퉤퉤퉤퉤퉤!
곧 다쓰의 투핸디드 소드에 방 안의 가구와 장식들이 마구 부서져 나갔고, 란슬링이 기관총처럼 난사하는 타액에 악취가 마구 진동하는 오물 구덩이가 되었다.
이사도라가 당장 그만두지 못하겠냐며 바락바락 악을 썼지만 나는 들은 척 만 척했다.
우리들을 열 받게 만든, 이사도라가 담배 연기로 쓴 글씨는 이거였다.

― 개지랄 떨지 말고 어서 꺼져 줘!

“오오 이럴 수가 있나. 그 몬스터가 드디어 사악한 무력시위를 시작했단 말인가?”
“아아, 아빠 너무 무서웠어요! 흑흑흑흑!”
눈앞의 광경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오네.
저녁이 되어 글래스 캐슬에 다시 들어오니, 이사도라가 스트라스포드 백작의 품에 안겨 훌쩍이고 있었다. 스트라스포드는 딸내미를 가엾은 한 마리 새처럼 다독이며 한숨을 내쉬고 있고 말이다.
알만하구만, 다쓰와 란슬링이 제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걸, 그 보스 몬스터가 청혼 빨리 받아들이라고 꼬장 부린 거라고 둘러댔겠지.
설마 지가 하도 싸가지 없이 굴자, 열 받은 우리들이 그랬다고는 말 못할 테니까.
스트라스포드 백작은 나한테 등을 보인 자세에서 이사도라를 가볍게 안은 채로 한숨을 지었다
“우리 천사 같은 이사도라가 어서 이런 험한 꼴을 벗어나야 할 터인데…….”
“후후후후. 맞습니다, 백작님. 너무 천사 같아서 문제죠. 제가 봐도 이사도라 양같이 기막힌 아가씨는 처음 봅니다.”
사실은 조소가 담긴 말을 던지자, 지 아버지한테 안겨서 얼굴을 내 쪽으로 향하고 있는 이사도라는 날 잡아먹을 듯 째려보았다.
내가 피식 웃으며 썩소를 날려 주자, 지 아버지 등에 놓은 손을 스윽 올리고 중지를 세워 뻑 큐 사인을 날리는구먼.
참 가지가지 하는구나.
내가 거듭 그 싸가지 없음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는 순간, 마리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다.
“왔어요. 그 몬스터가 성문을 통과했어요!”
“으음…….”
마리사의 말에 스트라스포드 백작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고, 이사도라는 어쩔 줄 몰라 바들바들 떨었다.
물론 그건 연기가 분명했다. 저 불량 여고딩은 그 몬스터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있으니까 말이지.
어쨌거나 그놈의 몬스터 낯짝 한번 봐야겠군. 보아하니 한가닥하는 몬스터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은데 어떤 녀석인지 한번 봐야겠다.
“그 몬스터가 이사도라 양을 만나는 곳이 어디죠?”
“보통은 내 방에서 만나는데?”
“방에서? 둘이서만?”
나는 좀 어이가 없었다. 방에서 단둘이서 만난다고?
그러나 이사도라는 뭐가 잘못되었냐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라스포드 백작이 한숨을 쉬며 보충 설명을 했다.
“그 몬스터가 그래도 아직은 신사인 척하느라 그런진 몰라도 우리 이사도라에게 함부로 하지는 않는다네. 그래서 지금까진 방에서 단둘이 만나는데 별 문제는 없었지. 하지만 오늘 이 아이 방을 엉망으로 만든 것을 보니 이제부터는 위험할지도 모르니 걱정이군.”
“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밤에는 더 위험한 짓을 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 우리가 이사도라 양의 방에 숨어 있도록 하겠습니다.”
“내 방에 숨어 있는다고?”
이사도라가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아, 그 몬스터하고 뭔 짓을 하길래 우리들이 숨어서 보는 게 그렇게도 싫다는 거냐? 아무리 불량스럽고 막가는 계집애라도 그렇지 그런 흉악한 몬스터하고 단둘이 있는 게 그리도 좋냐? 이 날라리 계집애야!
내가 마음속으로 욕을 퍼붓는 걸 눈치챘는지 이사도라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그러나 백작은 안도의 표정이 되었다.
“오오,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군. 그대들이 숨어서 지키고 있으면 위험한 사태는 틀림없이 막을 수 있을 테니까. 꼭 부탁하네!”
“이사도라 양, 들었죠? 자, 갑시다! 가서 그 몬스터를 기다립시다. 내가 확실히 지켜 드릴 테니까 걱정할 거 조금도 없습니다.”
내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이사도라는 달갑잖다는 표정을 얼굴 가득 지었다.

“니들 꼭꼭 숨어 있어. 재미없게 굴면 가만 안 놔둔다.”
란슬링과 다쓰는 침대 밑에, 나는 벽장 속에 숨었다.
이사도라는 침대에 앉아 몬스터를 기다리면서 우리들을 향해 은근히 협박을 했다.
저게 저딴 소리를 하는 걸 봐선 확실히 그 몬스터하고 방 안에서 뭔가 이상야릇한 짓을 하는 게 분명한 것 같다.
변태 같은 것!
근데 왜 다쓰와 란슬링은 침대 밑인데 나 혼자만 벽장 속에 숨었냐고?
아, 그거야 그래야 저것들이 침대에서 뭔 짓을 하는지 자세히 구경을 할 수가…… 라고 말하려니 나도 변태가 되는 기분이군.
그냥 이사도라를 잘 지켜 주기 위해서라고 하겠다. 흠흠…….

벽장 속에 자리 잡은 나는 숨소리를 죽였다.
복도에서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쿵!
음……. 이 발걸음 소리로 봐선 장난 아니게 큰 놈이란 말인데…….
난 긴장한 나머지 침을 꿀꺽 삼켰다.
발걸음 소리는 방문 앞에서 멈추었다.
쿠당!
저벅저벅!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몬스터가 걸어 들어왔다.
난 슬쩍 두 눈을 가늘게 해서 벽장문의 좁은 틈새 사이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내 두 눈 가득 들어온 광경!
나는 놀라서 마음속으로 냅다 비명을 내질렀다.
헉! 꾸에액! 아니, 저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