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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경
스토킹 마스터 2권(26화)
Part 1. 더블 퀘스트 완수(1)
아니, 저게 웬 돼지 새끼야?
아주 그럴 듯한 횐색 갑옷을 입고 있고 두 발로 걷고 있었지만 머리는 분명히 돼지 대가리였다.
근데 얼굴이 보통 돼지보다는 훨씬 더 붉은색이네?
게다가 손톱이 15cm 정도로 날카롭고 뾰족했다. 저기에 배라도 한 방 맞으면 내장이 줄줄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이빨도 뾰족한 게 하이에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날카로워 보인다.
그리고 손에는 내 메이스의 네 배 길이는 되는 삼지창, 즉 트라이던트를 들고 있구만.
덩치가 웬만한 성인 남자의 두 배에 키도 한 2m는 될 것 같다.
음……. 뭐 특별히 엽기적으로 기괴하다고 할 것까진 없어도 한눈에 봐도 만만한 녀석이 아닌 건 틀림없다.
좌우간 녀석은 새침하게 침대에 앉아 있는 이사도라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절씨구리, 이사도라가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짓네?
“흐흐흐흐, 나의 어여쁜 한 마리 종달새. 그동안 잘 있었어?”
“응, 너도 잘 지냈니? 이 썩을 돼지 대가리야!”
허걱! 아니, 쟤가 간덩이가 부었나?
저 살벌해 보이는 몬스터한테 무슨 꼴을 당하려고…….
그러나 뜻밖에도 이사도라의 욕설에도 불구하고 몬스터는 흐믓한 표정을 지었다.
“흐흐, 잘 지냈다. 역시 너는 말도 귀엽게 하는구나. 흐흐흐흐.”
“그래? 자, 그러면 오늘도 시작해 봐야지?”
“그렇다. 어서 시작하자. 흐흐흐흐.”
“흥! 그 짓이 그렇게도 좋아?”
“좋고말고. 우리 이사도라와 하는 플레이인데 어떻게 안 좋을 수가 있냐?”
“알긴 아네?”
이사도라는 피식 웃으며 담배를 꼬나물고 불을 댕겼다.
그러자 몬스터는 기대에 가득 찬 표정이 되었다.
뭘 하려고 저러는 거지? 플레이라니 도대체 무슨 플레이를 한다는 거야?
이사도라는 담배 연기를 훅 내뿜으며 말했다.
“이봐, 메피스트. 내가 그렇게도 좋으면, 내가 죽으라면 죽을 수 있어?”
“그건 곤란하지. 죽으면 너와 함께 이 플레이를 못하니까.”
“흥! 바보인 척하면서 의외로 영악하다니까.”
저 몬스터 녀석의 이름이 메피스트였구만.
으응? 아니, 저, 저! 저게 무슨 짓이야!
나는 기겁을 했다.
이사도라가 피우고 있던 담배를 메피스트의 손등에 대고 짓누른 것이다.
담배빵!
담배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허거거거걱! 저게 무슨 짓이람.
설마 담배빵을 진짜로 해 대는 기집애일 줄이야. 아까 낮에는 설마 공갈로 그런 소릴 하는 줄 알았건만.
치이이익!
어쨌거나 순식간에 방 안에는 돼지 비계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하이고, 이 고소한 돼지고기 냄새. 거, 식욕이 동하네……가 아니지.
메피스트란 녀석은 지 손등이 타는데도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야 감이 잡힌다. 저 녀석 M이었구만. 즉, 마조히스트란 말이다.
“흐흐흐흣!”
저런 골 때리는 녀석이 있나. 아무리 몬스터라고 해도 그렇지. 자기 살이 타는데 저런 황홀한 표정이라니.
가만 보니 담배빵을 하는 이사도라도 짜증나는 표정이다.
하긴 한두 번도 아니고 돼지 비계 타는 냄새를 맡으면서 담배빵을 하는 것도 즐겁지는 않겠지.
“흐흐흐, 근데 이사도라. 우리 결혼은 언제 할 거냐?”
“흥, 결혼을 왜 하는데?”
“왜라니? 흐흐흐. 결혼을 해야 한 집에 살면서 매일 이런 걸 할 수 있을 거 아니냐. 흐흐흐.”
“결혼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에잇, 죽어 버려. 이 변태 돼지 자식!”
퍼억!
이사도라는 갑자기 침대 옆에 세워 두었던 목각 인형을 들어 메피스트의 뒤통수를 퍽 내리쳤다.
“흐흐, 이사도라 너 정말 끝내준다.”
자기 머리에 부딪힌 목각 인형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으나 메피스트는 여전히 즐거운 표정이었다.
“죽어라, 죽어! 이 돼지! 변태! 악당! 망할 썩은 돼지 대가리 자식!”
오호, 이것 봐라?
메피스트는 이제 아예 벌러덩 바닥에 드러누웠고 그 위에서 이사도라는 펄쩍펄쩍 뛰면서 메피스트를 발로 마구 짓이기고 있었다. 있는 욕 없는 욕을 마구 퍼부으면서 말이다. 근데 신고 있는 구두의 굽이 무려 20cm는 될 것 같은 뾰족한 하이힐이다.
저걸로 찍히면 얼마나 아플까 싶어 보는 내가 다 살이 떨린다. 근데 저놈의 돼지 몬스터는 밟히면서도 마냥 흐뭇한 표정이다.
하이고…….
초불량 여고딩과 M인 돼지 몬스터라……. 어떻게 생각하면 궁합이 잘 맞지만 더 이상은 내가 역겨워서 더 봐주고 있지를 못하겠다.
나는 슬며시 벽장문을 조금 더 열어서 이사도라에게 내가 아까 시킨 대로 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다행히 누워 있는 메피스트에게는 내가 전혀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이사도라는 별로 내키지 않는 기색이긴 했지만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메피스트, 지금부터 오늘 플레이에 약간 변화를 주도록 해 볼까?”
“어떤 변화냐? 네가 하는 거라면 다 기대된다. 흐흐.”
“뭐, 눈만 살짝 가리면 돼.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네 몸에 뭔 일이 갑자기 벌어지는 거, 너무 가슴 두근두근하지 않아?”
“흐흐, 그렇겠다. 빨리 시작해라, 흐흐.”
이사도라는 준비해 두었던 검은 헝겊으로 메피스트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뒤로 물러섰다.
그때 나와 란슬링, 다쓰가 옷장과 침대에서 슬며시 나와서 누워 있는 메피스트를 둘러쌌다.
이사도라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소리 높여 말했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게? 너무너무 짜릿하겠지만 비명은 지르면 안 되는 거 알지?”
“흐흐, 물론이다. 지금까지도 그랬잖느냐? 니 아버지가 알면 이거 못하게 되니까 소리내면 안 된다고.”
“호호홋! 잘 알고 있네. 자아, 그럼 시이∼작!”
퍽! 퍼퍼퍼퍽! 퍽퍽!
쉬익! 쉬쉬쉬쉭!
우지끈! 뚝딱! 콱콱!
나와 란슬링, 다쓰는 각기 메이스와 대거, 투핸디드 소드를 들고 메피스트를 신나게 두들겨 패고 내리찍기 시작했다.
눈 감고 누운 몬스터를 두들겨 잡는 거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이 절호의 기회에 이 녀석을 확실히 보내지 못하면 우리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신나게 아작나던 메피스트는 뭔가 이상한 듯 입을 열었다.
“이사도라, 자기, 오늘따라 너무 힘이 좋아진 것 같다. 흐흐.”
“어머, 그래? 요즘 돼지고기를 많이 먹었더니 그런가 봐∼.”
“억! 흑! 이봐, 이사도라, 이건 좀 심하다. 짜릿하긴 해도 이건 좀 아니잖냐. 흐흐흐.”
“아이, 조금만 있으면 끝나니까 그냥 있어 줘∼.”
“흐흐, 빨리 끝내라. 흐흐.”
나는 진땀이 흘렀다.
아무리 M이라도 당하는 고통이 도를 넘으면 그때는 그게 즐거움일 수가 없다. 결국 폭발하고 말거라는 건 뻔한 이치였다.
그러니까 이 녀석이 발광하며 날뛰기 전에 서둘러 끝내 버려야 한다.
나는 다쓰와 란슬링에게도 눈짓을 해서 최대한 이 녀석을 아작 내라고 신호했다.
당연히 다쓰와 란슬링도 결사적으로 칼과 채찍을 휘둘렀다.
아, 근데 이놈의 돼지 몬스터 자식, 비계살 한번 정말 두껍네. 경지에 오른 내 메이스 실력으로도 이 정도나 버텨 내다니.
“이젠 더 못 참겠다. 이사도라, 이거 뭐하는 짓이냐! 흐흐!”
결국 우리는 확실히 메피스트를 보내는데 실패했고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졌다.
놈은 눈가리개를 찢어 던지면서 벌떡 몸을 일으킨 것이다.
근데 이 녀석은 울화통을 터뜨리면서도 웃는 버릇이 있구만 그래.
“엉? 아니, 이거 뭐냐? 너희들은 누구냐? 흐흐. 왜 이사도라가 아니고 네놈들이 나를 즐겁게 해 주고 있는 거지? 흐흐.”
“이사도라한테 부탁받아서 더 짜릿하게 해 주고 있는 거다. 그러니 입 닥치고 다시 누워라. 너무 짜릿해서 이승인지 저승인지도 구분이 안 가게 만들어 줄 테니까.”
내가 이죽거렸으나 놈은 내 말을 믿을 정도로 덜떨어진 놈이 아니었다.
“이제 보니 날 해치려고 준비하고 있었구나. 가만 안 둔다, 흐흐. 모두 죽여 버리겠다. 흐흐흐. 백작부터 먼저 죽인 다음 하인들까지 모조리 죽이고 이 성을 무덤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흐흐흐.”
그 말에 이사도라의 안색도 흙빛으로 변했다.
나는 크게 소리쳤다.
“다쓰, 란슬링 뭐하냐? 빨리 해치우자고!”
“알……았……다. 쉬익!”
“알았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아니, 나와 란슬링은 과감하게 메피스트에게 달려들었다.
란슬링은 아무래도 전투력이 떨어져서 소리만 치더니,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뭐, 나무랄 순 없겠지. 저놈의 자식은 동네 똘마니들 정도면 충분히 상대하지만 이런 보스 몬스터를 상대론 무리다.
카캉!
콰직!
다쓰의 투핸디드 소드와 나의 메이스 공격이 놈의 트라이던트에 걸렸다.
허억! 이 자식. 가볍게 지 트라이던트를 휘두르니 나와 다쓰가 가볍게 방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네?
체격 만큼 힘도 엄청난 놈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나는 재차 메이스를 휘두르며 달려들어 번개 같은 15연타 공격을 퍼부었다.
퍼,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15연타 공격이 뭐냐고?
응, 자이언트 바퀴벌레 잡으면서 내가 만든 메이스 스킬이다. 1초에 15번의 메이스 공격을 가해 주는 거지. 그야말로 휘두르는 메이스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전광석화 같은 공격!
메피스트는 휘청하며 세 발짝을 물러섰다.
놈도 내 메이스 공격에 좀 당황했나 보다.
순간 다쓰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뒤쪽으로 돌아서 몸을 날려 투핸디드 소드를 내리찍었다.
됐다! 저건 절대로 피하지 못…….
허억! 이게 웬일이야. 돼지 몬스터가 뒤에 눈이라도 달린 듯 돌아보지도 않고 트라이던트를 통나무 휘두르듯 뒤쪽으로 휘둘렀다.
“우왁!”
쿠당탕!
다쓰는 놈의 트라이던트에 직빵으로 얻어맞고 방 한구석에 나가떨어졌다.
저런! 다쓰 녀석, 쓰러져서 피까지 흘리잖아?
란슬링이 달려가서 혓바닥으로 힐링해 주곤 있지만……. 이래서는 안 되겠다. 우리가 완전히 밟히겠다고.
“흐흐, 조용히 포기들 해라. 너희들이 내 상대가 되려면 적어도 백 년은 더 있어야 한다. 흐흐.”
정석대로 대결하면 그럴지도……. 아직 저레벨인 나로서는 무리일지도…….
하지만 아직 히든 카드가 있지.
나는 메피스트를 향해 메이스를 쭉 뻗어 보였다.
“이봐, 썩은 돼지 대가리. 지금까진 장난이었다. 경고하는데 그 자리에 가만있어라. 아니면 통돼지 구이를 만들어 줄 테다!”
“흐흐, 무얼 하겠다는 수작이냐. 흐흐.”
“이렇게 하겠다는 수작이지!”
푸슝! 펑!
“흐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