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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2권(28화)
Part 1. 더블 퀘스트 완수(3)


나는 이사도라에게 두 시간 뒤에 미라쥬 길드가 있는 비기닝 시티로 출발할 테니 그때까지 나한테 오라고 하고선 숙소로 가려고 성을 나섰다.
“야! 어찌 된 거냐? 다쓰, 아직도 다 안 나은 거냐?”
우리들이 묵는 여관의 방 안에 들어서니 다쓰는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란슬링이 그 징글맞은 초록색의 긴 혀를 다쓰의 몸에 대고 있지 않은 걸로 봐서 치료는 끝난 것 같은데?
“글쎄……. 내가 보기엔 다쓰의 몸에 난 상처는 다 아문 것 같다. 쉬익! 아, 아니다. 아직 상처가 남아 있다. 쉬익!”
“그래, 그거 문제네. 이제 두 시간 뒤에 비기닝 시티로 가야 하는데……. 그래, 아직 어떤 상처가 치료가 안 된 거냐?”
“마음의 상처다, 마음의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고 있는 게 분명하다. 쉬익!”
“…….”
순간 나는 기가 차서 란슬링을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번개같이 다쓰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자슥이……. 눈을 슬며시 뜨고 내 표정을 살피다가 내가 째려보자 다시 눈을 감고 의식이 없는 척 쇼를 하는구먼.
뭐 마음의 상처가 어쩌고 어째?
그러니까 내가 그 돼지 몬스터 때려잡는다고 널 개의치 않고 메이스 필살기를 쓴 것 때문에 삐졌단 소리구만. 그 돼지와 널 한통속으로 노릇노릇 화염으로 구워 버렸다고 말이야.
뭐 이따구로 웃기는 놈이 다 있어. 니가 나한테 어떻게 개겼는지는 신경도 안 쓰고 내가 너한테 한 건 억울해 못 견디겠다 그거냐?
아직 철이 덜 들었구나 다쓰. 허허허,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후훗! 아직까지 상처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면 어쩔 수 없군. 그냥 여기 놔두고 갈 수밖에.”
“그냥 놔둔다고? 쉬익! 그게 무슨 소리냐. 소중한 파티원을 그렇게 쉽게 내팽개치는 파티장이 어디 있냐. 쉬익!”
“내 마음도 아프지만 어쩌겠냐. 내가 세운 일정이 워낙 빡빡해서 말이지. 다행히 다쓰는 제 한 몸 바쳐서 돼지 몬스터와 함께 화염 세례를 받는 헌신적인 놈이니까 내 결단을 충분히 이해해 줄 거다.”
내 말에 다쓰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리고 다물고 있던 입술이 어째 위로 쭈욱 솟아오른 것 같네?
짜식아, 그러고 있는다고 내가 니 삐진 걸 달래 줄 거 같냐?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엇, 저게 뭐냐?”
“엉? 뭐 말이냐. 쉬익!”
“여기 다쓰가 벗어 놓은 부츠 속에 얼핏 삐져 나온 이 연두색 헝겊……. 아니, 이건 여자 팬티 스타킹 아니냐?”
“그, 그런 것 같은데? 쉬익! 근데 이건 못 보던 물건 같은데……. 쉬익!”
“음……. 그러고 보니 마리사가 연두색 팬티 스타킹을 신고 있지 않았냐?”
“그, 글쎄.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도 같다. 쉬익!”
“아니, 그리고 저 침대 밑에 쑤셔 박혀 있는 검은색 천 쪼가린 또 뭐야? 이건 여자 팬티 아냐? 근데 어째 사이즈가 이사도라의 히프하고 대충 일치하는 것 같은데? 글래스 캐슬의 이사도라 옷장에 들어 있을 물건이 여기엔 왜 있을까?”
“그, 글쎄……. 쉬익!”
다쓰가 이 지역에서 몰래 수집해 놓은 아낙네 속옷들을 내가 마구 들춰내면서 호들갑을 떨자 누워 있는 다쓰의 이마에선 삐질삐질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후후후훗! 이거 전부 다 이 영지에 사는 아낙네들 속옷 같은데……. 이걸 우리가 가지고 다닐 수는 없고 이 여인숙 주인 부부한테 잘 좀 보관해 달라고 말해야겠군 그래. 우리 다쓰의 귀중한 수집품이니까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말이지. 그 부부들 워낙 입이 싸서 우리 다쓰의 고상한 취미에 관해서 동네 사람들한테 금방 소문이 쫘악 퍼지는 게 두렵긴 하지만, 이대로 놔뒀다가 분실하면 우리가 다쓰를 무슨 낯으로 보겠냐고. 안 그러냐, 란슬링?”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쓰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 잘 잤다. 우영 형님 오셨습니까? 식사는 드셨는지요?”
“훗! 갑자기 내가 밥 챙겨 먹고 다니는 것까지 걱정하냐? 너도 쬐끔은 철이 드나 보구나. 경고하는데 앞으로 함부로 삐진 척하면 가만 안 둘 테니까 작작해라.”
“아, 형님도 참. 제가 삐지기는 언제 삐졌다고 그러시는지 모르겠군요. 자, 떠나기로 했으면 짐 챙겨야죠?”
다쓰는 호들갑을 떨면서 사방에 숨겨 놓은 여자 속옷들을 마구 끄집어내서 제 짐 속에 꼭꼭 챙겨 넣기 시작했다.
후후후훗! 그러게 약점이 있는 녀석은 알아서 기어야 하는 법이다.



Part 2.배우냐, 국왕이냐(1)





1.

“그래요? 성공하셨단 말이죠. 정말 잘됐네요. 난 또 우영 님이……. 아니, 우영 오빠가 꼭 성공할 줄 알았어요.”
“그래, 그러니까 뻑적지근하게 우리를 환영할 준비나 하고 있으라고 니네 길마인 로저한테 말해 둬라. 신부감을 데리고 그쪽으로 출발할 테니까.”
“그거야 말 안 해도 당근이죠. 그럼 기다릴게요! 엉? 아니, 근데 오빠 뒤에 보이는 여잔 누구야? 뭐하는 여자죠?”
미라쥬 길드의 부길마인 쥬리아, 아니 세영이는 나하고 연락소에서 마법 수정 구슬을 이용한 화상통신을 하다 말고 두 눈을 부라렸다.
이 연락소는 이 이케루스라는 게임 세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유저들이 멀리 떨어진 다른 유저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인 곳이지.
좌우간 수정 구슬 속의 세영이가 갑자기 두 눈을 치켜뜨고 목청을 높이자 내 뒤에 서 있던 이사도라는 그 모습을 보다가 피식 사람 열 받게 만드는데 즉효인 썩소를 날렸다.
나는 당황해서 황급히 마법 통신을 끄면서 말했다.
“세영아, 이 아가씨가 바로 니네 길마 결혼 상대거든. 그럼 그쪽으로 출발할 테니까 준비나 해 놔라. 끈다!”
“오빠, 오빠!”
마법 통신이 꺼지면서 사라지는 세영의 표정이 열 받은 걸 봐선 이사도라의 썩소를 봤나 보구만.
근데 세영이 저 자식이 왜 저러지? 내 옆이든 뒤든 딴 여자가 서 있는 걸 지가 왜 화를 내고 야단이야?
“훗! 당신 애인인가 보지? 하는 꼴을 보니 너무너무 평민스러운 걸로 봐서 짐작은 했지만.”
“…….”
“뭐야? 왜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세영이가 그러더니 이번엔 이사도라가 눈을 치켜뜨고 날 노려보았다.
“이봐, 이사도라. 분명히 말해 두겠다. 목적지까지 곱게 가자. 만약에 함께 여행하면서 계속 거만하게 굴거나 평민 평민 하면서 말썽을 일으키면 나도 가만 안 있을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냐?”
“…….”
내가 두 눈을 부릅뜨고 위압적으로 말하자 이사도라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지금의 입장이 글래스 캐슬에서 자기 아버지 후광을 입고 있을 때와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는 소리지.
뭐 어쨌거나 분명히 경고는 했으니 또 함부로 굴면 이제부터는 따끔하게 혼을 내 줄 작정이다.
띠링!
엇, 이건 뭔 소리야?
난데없이 창이 떴다.

위압적으로 경고를 한 덕분에 이사도라와의 친밀도가 하락했다

잉? NPC라고 해도 중요성이 제법 있어야 친밀도 여부가 나오는데, 이사도라가 바로 그런 NPC란 말인가?
하긴 존재감만 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캐릭터긴 하지. 지금으로선 이사도라와의 친밀도 하락이 게임 진행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터벅 터벅!
“아, 뭐하는 거야! 좀 빨리 갈 수 없어!”
이사도라가 짜증스레 말했다.
“빨리 가든 느리게 가든 내가 결정할 거니까 조용하랬지? 너 혼자 말에서 내려서 걸어서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가.”
“쳇!”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이사도라는 구시렁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우리들은 스트라스포드 백작이 준비해 준 말을 타고 비기닝 시티로 가는 중이었다. 사실 말들을 빨리 달리면 좀 더 빠르게 비기닝 시티에 도착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말을 타는데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정도 속도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근데 바람처럼 말을 달리라고? 곤란한 말씀이지.
그렇다고 해서 ‘난 말 타는데 전혀 소질 없거든?’이라고 말하려니 쪽팔려서 못하겠다.
이사도라는 둘째치고 저 란슬링과 다쓰 자식이 다시 또 그걸 가지고 날 비웃으며 개개려 들 거란 말이다.
지금까진 아무 생각 없이 지냈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저놈의 자식들이 날 깔아뭉갤 건수를 만들어 주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쓰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후후후, 오랜만에 말을 타니 참 기분이 상쾌하군요. 역시 기사라면 말을 타고 움직이는 게 기본이니 말이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영 형님.”
“…….”
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째 말투가 자기 잘난 체하는 투라서 밥 맛이어서 말이지.
“후후후, 사실 우영 형님이나 란슬링은 말을 탈 기회가 별로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말이란 놈은 자신을 타고 있는 사람의 말 타는 능력을 기막히게 알아맞춘답니다. 그래서 승마술이 서투른 사람을 태우면 일부러 흔들면서 장난을 치고 가지고 놀죠. 한마디로 말도 주인을 우습게 본다는 거죠. 후후후후.”
으음……. 어째 내가 타고 있는 말이 나를 가볍게 흔드는 느낌이던데 그래서 그랬던 거군…… 이라는 것은 옆에서 내 꼴을 보고 있는 다쓰가 내가 말을 타는데 초보라는 것을 이미 간파했단 말이로구만.
난 다쓰가 또 흰소리 주절거리기 전에 입을 열었다.
“허허허허. 다쓰 니가 하는 말은 참 유익한 게 많구나. 그럼 이왕 말난 김에 너의 고상한 취미 생활로 화제를 바꿔 보는 건 어떻겠냐?”
“아니, 우영 형님. 나의 취미 생활이라뇨! 갑자기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말에 다쓰는 얼굴이 붉어지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사도라는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 건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춰서 음산하게 말했다.
“후후후후, 사람이 갑자기 말이 많아지면 다른 사람들의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다는 걸 너한테 말해 주고 있는 거다. 알아듣겠냐?”
“아, 알겠습니다. 명심하죠. 지금부터 입 다물겠습니다.”
다쓰는 못마땅해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짜식이 말이지. 그저 틈만 나면 파티장인 나한테 개개려고 든단 말이야.
메이스 필살기 맛을 한 번 보고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어떤 의미에선 대단한 녀석이긴 하다.
“피곤해! 저기 여관이 보이니까 쉬었다가 가!”
이사도라가 짜증난다는 투로 투덜거렸다.
음, 그래도 이번엔 ‘평민’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말하는군. 그 점이 갸륵하니 특별히 쉬어 가자는 요청을 들어주기로 하지.
솔직히 말하면 나도 좀 피곤하다.
다쓰와 란슬링 녀석은 잘 달릴 수 있는 말을 일부러 느릿느릿 달리는지라 별로 피곤해하지 않는 것 같지만 말이지.
좌우간 우리들은 길가에 있는 여관에 투숙하기 위해 말을 세우고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