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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2 -



스토킹 마스터 2권(29화)
Part 2.배우냐, 국왕이냐(2)


“어서 오시죠. 식사를 하시겠습니까?”
“피곤하니 일단 방에서 쉬어야겠소!”
“이리 오시죠.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관 주인은 싹싹한 태도로 우리를 2층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근데 갑자기 우리를 돌아보며 당부하듯 한마디를 던졌다.
“죄송하지만 가급적 조용히 지내 주셨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죠?”
“엉? 우리가 그렇게 시끄럽게 보이냐. 쉬익!”
란슬링이 기분 나빠했지만 난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훗! 하긴 나를 제외한 이 녀석들은 하나같이 기차 화통 삶아 먹은 것들처럼 시끄럽지만 너무 걱정할 건 없소. 내가 입 닥치고 쥐죽은 듯 있으라고 할 테니까 말이지.”
“헤헤, 그러시군요. 손님께서 우두머리시군요.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여관 주인은 간사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비볐다.
거참, 그러니까 인간이 엄청 가벼워 보이네. 근데 좀 궁금해지는군 그래.
“근데 주인장. 왜 그런 부탁을 하는 거요? 뭐 특별히 그래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네……. 그게 사실은 이런 말을 하면 절대로 안 되는 건데……. 비밀이라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겁니다만……. 너무도 중요한 비밀이거든요. 아니, 비밀을 넘어서 기밀 차원의 일이죠. 한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다고 해도 좋을 일이니까요.”
흠……. 그렇군. 그렇게 중요한 비밀이라면 굳이 꼭 들어야겠다며 닦달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알겠소. 그렇게 중요한 비밀이라면 굳이 말 안 해도…….”
“하지만 손님은 너무너무 입이 무거우신 분 같으니 말씀 드려도 괜찮겠군요. 사실은요. 손님들 옆방에 엄청 중요한 분들이 묵고 계시답니다. 누군고 하니 말이죠. 근자에 마토스 왕국과 가뎀 왕국 사이에 전쟁이 있었던 거 아시죠? 그래서 가뎀 왕국이 마토스 왕국의 군대를 물리치고 그 나라를 점령했다는 것도요. 근데 그 마토스 왕국의 젊은 국왕은 가뎀 왕국에 잡히지 않고 행적이 묘연하다지 뭡니까? 그와 더불어 왕자의 최측근인 궁정 마법사와 친위기사단의 기사단장, 그리고 시중드는 시종장도 함께 행적이 묘연합니다. 필시 일단 몸을 피해서 다시 나라를 구할 계획을 세우려고 나라 밖으로 피신한 거죠. 근데 암만 봐도 손님들 옆방에 묵으시는 분이 그 국왕 일행들 같다 그 말씀입니다.”
훗! 이 아저씨 봐라? 아주 두 눈까지 반짝 반짝 빛내면서 열띠게 주절거리시네?
이보세요, 아저씨. 꿈 깨세요.
뭐 망한 왕국이라고 해도 그래도 일국의 왕이 개나 소나 다 묵는 이런 여관에 틀어박혀 있겠냐고. 더군다나 이 지역은 유동 인구가 워낙 많아 사람들 눈에 띄기도 엄청나게 좋은데 왜 이곳에 오겠냔 거다.
보아하니 이 아저씨, 모험담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로군. 그러니까 투숙하는 손님들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이런 이야기를 마구마구 지어내는 거겠지.
“하하, 그렇군요. 그런 귀빈들이 계시니 조용히 해 달란 말씀이군요. 명심하겠습니다.”
“헤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편히 쉬세요. 아, 거기 205호실에 묵으실 손님 이리 오세요. 제가 안내해 드리죠. 근데 손님 가급적 조용히 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왜냐구요? 그게요. 이건 비밀인데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거지만…….”
어이구. 저 아저씨 나한테 했던 것과 똑같이 다른 투숙객을 붙들고 주절거리기 시작하는군.
저 투숙객도 피식 웃는군.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는 거겠지.
도대체 어떤 손님을 가지고서 마토스 왕국의 국왕이라고 단정 짓고 저러는 건지 궁금하다.
우리 일행들은 방에 들어가서 이사도라에게는 침대를 내주고 나와 란슬링, 다쓰는 마루에서 침낭을 펴고 잠을 청했다.

“아함 잘 잤다! 야, 니들 안 일어날래?”
아침이 되자 나는 다쓰와 란슬링을 발로 정겹게 마구 두들겨 차서 깨웠다.
이사도라는 이미 일어나서 화장까지 마친 상태였다.
식사를 하기 위해 세 사람을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는 수다쟁이에 망상증 환자인 여관 주인장이 식사를 다 차려 놓은 상태였다.
“오잉?”
나는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식사가 이미 차려진 우리 테이블 바로 옆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보자마자 바로 어저께 이곳 주인장이 국왕과 그 일행이 틀림없다고 말한 사람들임을 직감했다.
왜냐고?
아, 글쎄, 일행 중 우두머리가 틀림없어 보이는 젊은이는 금실과 은실이 수놓인 실크로 된 옷을 입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왕족이 아니면 입을 엄두도 못 낼 고급스런 것이었다. 거기다가 턱을 괴고 한숨을 쉬는 것 하며 손을 내젓는 동작 하나하나도 거창하기 짝이 없는 게 너무도 왕족스럽군.
음, 저러니 주인장이 오해를 했군. 하긴 내가 봐도 당장 무릎을 꿇고 ‘오……. 왕시이여!’라고 부르고 싶어지니 무리도 아니네.’
그러나 저렇게 온몸으로 자신이 왕이라는 걸 부르짖고 있는 사람이 진짜 왕일 리는 없지. 아마 어느 왕국의 왕족 나부랭이거나 어떤 극단의 배우가 비싼 옷을 대여해 입은 거겠지. 이 근처에서 공연이라도 하려나?
난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그 젊은이 맞은편에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는데 불안한 듯 눈을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다.
이 사람이 주인장이 마토스 왕국의 궁정 마법사가 틀림없다고 말한 인물이군.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마법사가 입고 다니는 로브로 옷을 바꿔 주고 스태프 하나 쥐어 주면 영락없이 6서클 정도의 마법사로 보이니까 그렇지.
그리고 옆에 앉은 중년인이 기사단장이라고 주인장이 오해한 인물인가? 평복으로 입고 있긴 한데 고급 갑옷으로 바꿔 입히면 상당히 관록 있는 기사로 보일 것 같으니 말이지.
물론 진짜일 리가 없겠지만 왕과 수행원들다운 티가 마구 풍기긴 하네. 주인장이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친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오오……. 어쩌다 나와 그대들이 이런 누란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단 말인가. 내가 하룻밤 사이에 이렇듯 쫓기는 운명이 될 줄이야 그 누가 짐작이나 했으리요.”
젊은 청년은 연신 거창한 폼을 잡으면서 실의에 잠긴 척하고 있었고 (자신은 정말로 실의에 잠겨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내가 볼 때는 그랬다) 궁정 마법사와 기사단장일 할배와 중년인은 두 눈을 사방으로 뒤룩뒤룩 굴리며 추적자가 쫓아오지 않는지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거, 정말 그러니까 패망한 국가의 도주하는 국왕 일행 같긴 하다.
“제발 그런 말씀 좀 하지 마십시오!”
“아니, 어째서?”
“사람들의 눈이 있잖습니까!”
왕이 고색창연한 탄식을 터뜨리자 할배와 중년인은 다시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하소연처럼 말했다.
그때 할배가 조심스레 목소리를 낮추어 청년에게 말했다.
“저……. 여기도 혹시 적들의 눈이 미칠지도 모르니 어서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허어, 쫓기는 신세도 서러운데 식사까지 제대로 못한데서야 말이 되겠는가! 경은 어찌 그리도 소심하단 말이오!”
“아니, 저 그러니까요. 경이라는 둥 제발 그런 말투 좀 쓰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습니까?”
이른바 왕의 불평에 중년인이 당황해서 내 쪽을 힐끔거리며 하는 말이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뭐하는 사람들인지 몰라도 정말 주인장이 딱 오해하기 좋게 행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엔 그저 이 사람들이 귀엽게 보일 뿐이었다. 절대로 한나라의 국왕과 그 국왕을 모시는 사람들일 리야 없지만, 왕과 수행원이라고 일부러 생각하고 봐도 잘 어울리는 게 꽤 재미있구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이사도라와 다쓰, 란슬링이 내려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와르르!
요란하게 문을 밀치며 들어서는 한 무리의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있었다. 지금 이 지역은 가뎀 왕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는 지역인지라 병사들 역시 가뎀 왕국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 주인장이 마토스 왕국의 왕과 그 일당이라고 멋대로 단정 지은 세 사람은 (아니, 정확히는 두 사람이로군. 왕이라는 청년은 여전히 태연했으니)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어라라, 이 사람들 왜 이래? 정말 자기들이 마토스 왕과 그 수행원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식탁과 의자가 모자라 병사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내 옆에 앉았다.
흠, 식사를 하러 들어온 게로군 그래. 근데 누구를 체포라도 하러 온 것처럼 위세당당하게 들어온 거람?
“실례 좀 하겠소. 여행 중이신가?”
“네. 이렇게 넷이서 비기닝 시티로 가는 중입니다.”
“흠, 그렇군. 근데 저 옆쪽에 앉은 사람들은 누구지?”
주인장이 마토스 국왕이라고 주장한 사람들 쪽을 보며 대장이 묻는 말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실내의 모든 사람들이 듣도록 큰소리로 말했다.
“푸하하하하! 이 여관 주인장이 사람들마다 붙들고 마토스 국왕과 수행원들께서 묵고 계시니까 떠들지 말고 조용해 달라고 합디다. 저분들이 그 국왕과 수행원이라면서 말이죠!”
“무엇?”
대장은 인상을 쓰며 찌릿하고 국왕들 쪽을 노려보았다.
할배와 중년인의 얼굴은 이제 아예 사색이 되었다. 그러나 국왕은 아랑곳없이 멋들어진 포즈로 이마를 짚으며, ‘오, 어쩌다가 나의 치세에 나라가 이 꼴이 되었단 말인가…….’ 어쩌구 하면서 계속 주절거리고 있었다.
그 꼴을 보자 대장은 피식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지역에도 마토스 국왕의 현상 수배가 내려졌지만, 저렇게 얼굴을 드러내 놓고 복장까지 왕의 것처럼 사치스럽게 입어 의심이 들게 하면서 다닐 턱이 없지. 마토스의 국왕이 설마 저러고 다니면서 날 잡아가쇼 할 만큼 머리가 안 돌아갈 리도 없고 말이지.”
“그렇죠? 내가 봐도 어느 연극단의 배우들이 이 여관에 투숙한 것 같습니다. 저 개폼 잡는 거 보니 틀림없어요. 진짜 국왕이 정말로 저런 꼴을 하고 여기 있다는 건 머리가 정신박약아 수준이라는 말밖에는 안 되니까요.”
“그럴 테지. 그러나 밥 먹으면서까지 연기 수업이라니 꽤나 열심이군. 어느 극단의 배우들인지는 몰라도.”
대장은 식사를 끝내고 나서는 병사들을 데리고 나갔다.
나가면서 개폼 잡는 젊은이에게 ‘당신의 국왕 연기가 제법 그럴 듯하군. 오버하는 감이 있는 게 좀 흠이지만.’이라며 어깨까지 토닥여 주면서 말이지.
“휴우…….”
“살았다…….”
으응?
병사들이 모두 나가자 할배와 중년인은 땅이 꺼져라 안도의 한숨을 쉬네? 그것 참……. 연기의 완전 생활화냐? 뭐, 대단한 열정이라고 칭찬은 해 주지.
그들에게 신경 끄고 식사에 열중하려는 순간이었다. 나지막하지만 존재감 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사는 방 안에서 드시도록 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 드렸는데 주인님을 모시고 나오다니……. 어떻게 된 겁니까, 두 분?”
슬쩍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열너댓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할배와 중년인을 다그치고 있었다. 개폼 젊은이는 여전히 우아하게 탄식을 하고 있었고.
근데 뭔가 이상하네. 할배와 중년인이 아까 병사들이 왔을 때보다 더 당황하고 있으니 말이지.
“아니, 그게. 우린 절대 모시고 나오지 않을 작정이었네.”
“암 그렇구 말구. 근데 전하께서……. 아니, 주인님께서 끝끝내 우기시니 우린들 별수가 있느냔 말일세.”
“훗! 그 명칭으로 주인님을 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잖습니까. 근데 제 말을 개무시하시는군요. 사람 많은 식당에서 민폐 끼치지 말고 방으로 좀 들어들 가실까요?”
“…….”
“…….”
소년의 단호한 말투에 할배와 중년인의 낯빛은 사색이 되었다.
거 황당하네. 새파란 꼬맹이가 지 아버지와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을 불량 초딩 대하듯 위압하고 있으니 말이지.
어쨌거나 그들이 모두 방으로 들어가자 나도 식사를 시작했다. 란슬링과 다쓰가 또 핸드백과 여자 속옷을 가지고 지랄을 떨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말이지.
다행히 이번엔 그러지 않는군. 글래스 캐슬에서 내가 화끈한 화염 세례를 한 방 먹여 줬더니 그것 때문에 조심을 하는 것 같다.
그러게 남자는 약하게 보이면 안 되는 거다. 무시당하기 시작하면 종국에는 바퀴벌레처럼 비참한 꼴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니까 말이지. 앞으로 오거할(오우거 거시기 할퀴기)이든 파엘분(파이어 엘레멘탈의 분노)이든, 아니 필요하다면 레달입(레드 드래곤의 달콤한 입맞춤)도 요것들에게 종종 사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날 아주 신처럼 받들어 모시겠지. 흐흐흐흐흐흐흐.
“헛! 우영 형님 갑자기 왜 그렇게 변태처럼 실실 쪼개시는 겁니까? 무섭습니다!”
“하도 느끼해서 먹던 거 올라올 뻔했다. 우영, 나처럼 비위 약한 놈 앞에서는 그렇게 웃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쉬익!”
“훗! 내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추파를 던지고 싶은 심정은 아는데,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토 쏠리게 미소 짓는 건 좀 삼가해 줬으면 좋겠어. 난 당신 같은 평민 나부랭이한테는 별 관심 없거든?”
“…….”
아니, 근데 이것들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은 걸 가지고 요리조리 씹고 자빠졌네. 나한테 은근히 맺힌 걸 복수하겠다는 속셈이로군. 이 쪼잔한 것들!
내가 니들 보고 처웃은 줄 아냐고 한마디 해 주려던 순간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실례지만 우리 주인님이 뵙고 싶어 하시는데 시간 좀 내주실 수 없겠소?”
슬쩍 고개를 드니 아까의 중년인이었다.
으응! 근데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있네?
아까 그 소년을 따라서 방으로 들어간 뒤 뭔 일이 있었던가 보군. 뭐, 그거야 내가 알 바 아니긴 하다만.
“저에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우리 주인님께서 긴히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으셔서 꼭 뵙기를 요청하십니다. 제 얼굴을 봐서라도 좀 만나 주시구려.”
나 좀 살려 달라는 투로 중년인이 말했다. 그것참…….
내가 안 만나겠다고 거절하면 시퍼렇게 멍든 저 얼굴이 더 참혹한 꼴이 되는 게 아닌가 불안하군.
어쨌거나 말투를 보니 잘하면 퀘스트가 하나 생길 것 같다. 그렇다면 못 이기는 척 만나 주지 뭐.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만나겠습니다.”
“오오, 고맙소이다. 자, 이리 오시구려.”